115화. 동방(洞房) (2)
한 바퀴 돌고나니 고청운은 배에 물이 가득 차서, 밖에 마을 주민이 한 가득 더 있다는 생각을 하자 더 이상 움직이고 싶지 않아졌다.
혼례를 치른다는 것은 여자에게만 힘든 것이 아니라, 남자에게도 피곤한 일이었다. 특히 오늘 밤에는 찾아온 사람들이 많아 순서를 잘 정해야 했다. 누구를 먼저 접대하고 인사를 드릴지 실수를 범해서는 안 됐다.
그리하여 고청운은 먼저 안뜰로 가기로 했다.
그가 막 나오자마자 비틀비틀 걸어가고 있는 아버지를 발견하고 소리쳤다.
“아버지, 어디 가세요?”
오늘 저녁 고대하는 매우 기쁜 나머지,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미쳐버릴 지경이었는데, 이때 고청운에게 발견된 것이다. 그가 고청운의 손을 부여잡고 말했다.
“전자야, 네가 장가를 드니 이 애비는 마음이 놓이는 구나. 애비는 정말 너무나도 기쁘다. 너 같은 아들을 두다니, 이 아비는 죽어도 여한이 없다.”
고청운이 일갈하며 부축했다.
“아버지, 이 기쁜 날에 무슨 죽는다는 말씀을 하세요? 참, 도대체 술을 얼마나 드신 거예요? 왜 이렇게 취하셨어요?”
“나 얼마 안 마셨다. 정신 차리고 있거든. 난 오늘 그냥 기분이 좋아서 그렇다. 내가 곧 할아버지가 되겠구나. 하하하, 난 할아버지가 될 준비를 해야겠어!”
고청운의 얼굴이 붉어졌다. 아버지가 진짜 취하신건지도 모르겠다.
그때 마침 큰매형 하상춘이 찾아왔다.
“매형, 우리 아버지 좀 봐주세요. 너무 취하신 것 같아요.”
하상춘은 고대하를 찾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아까부터 내가 봐도 장인어른께서 술을 너무 많이 드셨더라고. 계속 주시하고 있었는데 내가 잠시 몇 마디 나누는 새에 사라지고 안 계시지 뭐야. 여기 계실 것 같아 와보긴 했는데, 다행히 찾을 수 있었네.”
“아버지께서 오늘 너무 기쁘셨나 봐요. 안 그랬으면 술을 이렇게까지 드시지는 않았을 겁니다. 참, 우리 할아버지도 사람들과 술을 엄청 드시고 계시는 거 아니신지 모르겠어요.”
고청운은 걱정이 많았다. 할아버지는 그 연세에도 여전히 술을 좋아했는데, 평소라면 조금씩 마셔도 괜찮지만 너무 많이 마시는 것은 좋지 않았다.
“그래, 다들 마시고 계시지. 다들 이렇게 축하주를 부어 주는데 안 마실 수는 없지. 그래도 너무 염려치는 말거라. 요조가 옆에서 돌봐드리고 있다.”
하상춘이 웃으며 말했다.
고청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임요조는 믿음직하고 또 성실한 사람으로, 그 사람이 곁에서 봐준다면 할아버지도 술에 너무 취하지는 않을 것이다.
큰매형더러 아버지를 부축하여 술에서 깨어나게 하였다.
고청운은 다시 술 마시는 곳으로 돌아왔다가 곧장 눈치 빠른 고청명에게 이끌려 인사하러 갔다.
“우리 형님, 나 좀 한숨 돌리게 해줄 수는 없어요?”
고청운이 그의 귀에 다가와 속삭였다.
“이게 다 너를 위해 그러는 게 아니야? 형님 말 잘 듣거라. 얼른 인사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가야 할 게 아니냐. 신혼 첫날밤을 놓쳐서는 안 되지. 이게 다 너를 위해서야. 이게 다 경험자의 배려라는 것이다.”
고청명은 술을 다 막아주다가 도리어 실속 없이 권하는 술을 마셔대는 바람에 벌써 혀가 꼬부라져있었다.
고청량은 그렇지 않았는데, 그는 그들을 도와 잔이나 채워주고 있었기에 정신이 멀쩡했다.
고청운은 그를 한 번 백안시했다. 정말 어느 주전자가 물이고 술인지 구분을 못하고 있는 것인가. 시간을 더 끌 수나 있는 것인가.
“큰할아버지랑 형 아버지께서는 둘째 형이 장사하는 거에 동의하셨나요?”
고청운이 관심 있게 물어봤다. 만약 두 집이 일찍이 분가하지 않았더라면 장유유서의 순서를 지키느라 자신도 아직 결혼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직 동의해 주시진 않았는데, 만약 동의해 주시지 않으면 난 장가가지 않을 작정이야.”
고청운은 속으로 한마디 했다.
‘나도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이 세상을 살아가게 된 이상 규칙대로는 살아야지.’
비록 고청운이 계속 꾸물거렸음에도 고청명과 고청량의 전폭적인 지지와 함께, 그의 할머니와 늙은 어머니도 계속해서 그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즉시 고청운을 신방으로 밀어 넣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워보였다. 내년에 바로 살결이 희고 통통한 귀여운 아이를 봐야 할 것이기 때문에, 고청운은 어서 자리를 파하고 신방으로 돌아갔다. 이때는 이미 밤이 깊었다.
신방에는 한 쌍의 용봉홍촉이 여전히 잘 타고 있었다. 방안의 간미는 수놓은 비단 치마 한 벌로 옷을 갈아입고 있었는데, 보아하니 이미 세수를 한 듯, 피부가 맑고 방금 전의 짙은 화장도 사라졌으며, 머리카락도 아직 약간 젖어 있어 아까보다 훨씬 보기 좋았다.
고청운이 그녀를 바라보자, 간미도 그를 바라봤다. 두 사람 눈이 마주치자 그녀는 참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여보, 저녁은 먹었소?”
고청운은 이 말밖에는 생각나지 않았다.
“나는 이미 먹었소.”
아니, 내가 이렇게 조리 없이 말을 하다니.
“저도 먹었습니다.”
간미는 수줍은 얼굴로 있다 뭔가 떠올랐는지 말을 이었다.
“상공, 여기 이 둘은 제 여종으로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랐는데, 하나는 혜향(慧香)이고 하나는 영향(迎香)이라고 합니다.”
고청운은 두 사람을 한 번 보았는데, 모두 청의를 입고 머리를 틀어 올렸다. 대략 16, 17 살의 나이로 하나는 용모가 아름답고 다른 한 명의 용모는 평범해 보였다.
두 사람은 그에게 바삐 예를 올렸다.
고청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는 먼저 목욕하러 갈 테니, 잠시 기다리시오.”
그는 그녀가 가져온 혼수명단을 보았는데, 4명의 하인 이름이 있었고, 그중 한 쌍의 중년 부부가 그들 현성의 저택으로 보내져 집을 지키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옷을 찾으려 하였는데, 신방에는 그녀가 가져온 가구들로 가득 차서, 그는 자신의 옷을 어디에 정리해 두었는지 모두 알지 못했고, 결국 그녀가 옷을 찾아다 주었다.
그가 욕실에서 어물쩍어물쩍 시간을 끌며 목욕을 마치자 그의 어머니가 그를 재촉하러 왔고, 그제야 복잡한 심정으로 신방에 들어갔다.
‘에이, 본능이 대단한 건 알겠는데, 첫날밤에도 믿을 만하려나?’
영향과 혜향이 빠져나간 방엔 신혼부부만 남았다.
고청운은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간미도 침상 옆에 앉아 고개를 숙인 채 말을 하지 않고 있었다.
‘내가 남자니까 먼저 말을 꺼내야지.’
고청운은 주먹을 쥐고 있다가 한참 뒤에야 입을 열었다.
“보아하니 당신 시를 제법 잘 지으시던데, 평소에 어떻게 공부하고 계시오? 내가 지은 시는 스승님으로부터 자꾸 타유시라고 놀림을 당한다오.”
잠깐 얘기를 좀 나눠야 했다.
간미의 소리는 가늘었다.
“소첩은 3살 때 글씨를 익혔는데, 조금 더 큰 후에 글자 수 맞추기와 운율을 더 배워 1,000자가 넘는 시를 익혔습니다. 이때 외할아버지께서 다시 사성, 허실, 운부, 쌍성, 연운을 가르쳐 주셨는데, 그제야 시문을 배우고 시를 써보았습니다. 첫째로 선인의 작품을 모방하며 천천히 익혀왔으나, 상공에 비할 바가 못 됩니다. 이후로는 사서오경을 익히느라 시를 짓는데 시간을 많이 할애할 수 없었습니다.”
고청운은 갑자기 간미의 목소리가 나긋하고 또 흥미진진하게 이야기 하고 있어 매우 듣기가 좋았다. 진심으로 귀를 기울이게 하였다.
그런 점은 누구를 닮은 것일까? 그는 갑자기 장모님인 연 씨도 그런 면모가 있었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분도 말을 잘했는데, 말이 또렷하여 평범한 말이지만 계속 듣고 싶게 만들었다.
“당신은 자신을 소첩이라 부르지 마시고 '나'라고 그냥 부르시오.”
고청운은 듣기 익숙하지가 않아 그리 말했다.
간미가 그를 올려다보고는 ‘네’ 하고 눈시울을 붉혔다.
“당신 눈이 참 예쁘군.”
고청운이 말했다.
간미의 원래도 용모가 청순하다고 생각해왔는데, 지금 피부가 하얗고 눈이 글썽거리는 것이 더욱 예뻐 보였다.
간미의 얼굴이 갑자기 붉어지며 고개를 떨어뜨리고 손가락으로 손수건을 꽈배기 모양으로 꼬기 시작했다.
고청운은 자신의 뺨이라도 한 대 때리고 싶었다. 어떻게 이런 경박한 말을 할 수 있지?
“상공의 궁술도 좋으시던데, 연습을 많이 하셨나요?”
그녀가 또 물었다.
오늘 신부 가마를 내리기 전에, 고청운은 활을 당겨 가마의 문을 향해 3개의 붉은 화살을 쏴야 했는데, 이는 신부가 오는 도중에 묻혔을지 모를 사악한 기운을 몰아내기 위함이었다. 당시 그가 쏜 화살은 매우 정확하게 맞아, 구경꾼들의 갈채를 받았다.
아마 그녀는 안에서 이 모든 일을 듣고 있었나보다.
“그렇소, 틈만 나면 연습한다오. 나중에 해보고 싶으면 같이 연습하도록 합시다.”
고청운이 부드럽게 말했다.
그녀는 한참 후에야 낮은 소리로 응했다.
두 사람은 이야기를 계속했고, 조용한 신방은 그들의 속삭임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그리고 붉은 촛불이 타오를 때 가끔 한두 번 툭툭 타는 소리도 났다.
반 시진 동안이나 이야기를 나눈 고청운은 서로에 대해 조금은 더 잘 알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술을 좀 마셔서 충동의 힘을 빌어 일을 벌일까도 싶었지만, 예전에 참석했던 혼롓날을 떠올리며 창가로 다가가 귀를 기울였다.
역시 창밖에서 바스락 소리가 났다.
“왜 이리 오래 걸리지? 전자랑 제수씨는 어떻게 된 사람들이길래 신혼날 밤에 시를 짓고 앉아 있는 거야? 나는 내가 왜 수재 시험에 낙방했는지 이제 알 것 같다. 전자처럼 이렇게까지 노력해야 가능한 일이구나.”
이것은 고청명의 목소리다.
“전자 녀석, 아예 구실을 못하는 놈인가?”
고청량의 목소리에 의심이 묻어있었다.
“아님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 아기가 생기는 줄 알고 있는 거 아냐?”
“설마? 청운이가 책방에서 책 좀 깨나 사서 공부했다던데?”
하겸죽은 믿지 않았다. 청운은 언제나 정색하여, 평소에 큰길을 걸을 때조차 지나다니는 젊은 처자들을 잘 쳐다보지 않고, 더욱이 부적절한 곳은 더 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의 총명함으로 그런 책까지 사서 보았다면 분명히 알 건 다 알 거라고 생각했다.
“뭐? 책까지 사왔다니. 그럼 나도 꼭 빌려보고 싶다.”
조옥당은 이게 핵심이었나보다.
“큰형님들, 저는 이만 돌아가고 싶어요. 여기 모기가 너무 많아요.”
착해 보이는 목소리, 하지의 낮은 목소리에는 졸음까지 겹친 듯했다.
“애송이는 애송이지. 그래, 빨리 가 봐라.”
하겸죽은 나지막이 웃었다.
“우리는 좀 기다릴게.”
……
고청운은 이미 어이가 없었다. 이전에 그들 몇 사람이 혼례를 올렸을 때, 그는 한 번도 벽에 귀를 대고 있지 않았고 주변 사람들을 물려주느라 고생했는데, 지금 그들이 뜻밖에도 그렇게 불량하게, 반나절이나 되도록 단념치 않고 은혜를 원수로 갚고 있었다니.
하지만 그들 몇 사람만이 그렇게 대담할 뿐, 마을의 젊은이들까지는 감히 행동을 같이 하지 못했다.
그는 나무대야가 놓여 있는 선반을 보았는데, 그곳에는 간미가 쓰고 남은 세면수가 담겨있었다.
그래서 그는 조심스럽게 창문을 열고 소리가 나는 벽 쪽을 향해 물을 한바가지 들이부었다.
안타깝게도 창문을 여는 동작에 놀란 그들은 재빨리 피해 물벼락을 거의 맞지 않았다.
“청운아, 우리 이제 갈게.”
멀리서 몇 사람의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가지 말고 기다려요! 주는 대로 앙갚음을 받아야지!”
고청운이 외쳤다.
그가 나무대야를 내려놓자, 간미의 얼굴이 아까 그 붉은 천처럼 달아올라 있는 것이 보였다.
몰래 숨을 들이마시고, 고청운은 상 위에 술이 남아 있는 것을 보고 아까 다 마시지 못한 술을 들고 성큼성큼 다가가 술병과 술잔 두 개를 들고 말했다.
“여보, 우리 한잔 더 합시다.”
간미는 호기심 어린 얼굴로 그를 한 번 쳐다보고 동의했다.
두 사람은 이때 즈음에는 앞서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보니 서로 조금 더 익숙해져 있었고, 고청운은 술도 마셨겠다 이제는 다음 동작으로 넘어가도 될 것 같았다. 그는 오늘밤 더 이상의 특수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한, 만약 그가 간미와 합방을 하지 않는다면 그 또한 그녀에 대한 모욕이며, 두 사람의 미래에 모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이었다.
‘제길, 일을 처리하는 것도 단칼에, 움츠리는 것도 단칼에 해야 해. 늦든 이르든 어차피 해야 할 일. 나는 어려서부터 스스로에게 암시를 걸어오지 않았는가, 잘할 수 있다!’
얼마 전 다방에서의 반응만 봐도 본능이 건재하는 한 그는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믿지 않았다!
술이 더 대담하게 만들어 주자 고청운은 간미를 끌어안고 입을 맞추었다.
이어 술기운을 빌어 고청운은 두 사람의 첫 경험을 완성했다. 과정이 짜릿했고 스릴 넘쳤음은 뭐 말할 것도 없었는데, 어쨌든 마지막에 가보니 남성의 본능이라는 것은 너무 강하다는 생각을 했다.
아닌가, 술에 뭐가 들어갔던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