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화. 결혼 (2)
고이하를 문 앞까지 배웅한 고청운은 돌아와 침상에 엎드려 엉덩이에 커다란 면 보자기를 얹은 채 누워계신 아버지를 뵈러 갔다.
“아버지, 할아버지께서 도박에 대해 아시게 된 거죠?”
방금 그의 할아버지는 그나마 아버지에게 체면치레를 해주시느라 도박에 관한 사정까지는 언급치 않으신 것이리라.
고대하는 ‘그래’ 하는 소리와 함께 머리를 베개에 파묻었다.
소진씨는 고청운을 끌어내며 낮은 목소리로 말하였다.
“네 아버지에게 미안하긴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할아버지께서 잘 때려주신 것 같다. 이런 일은 다신 벌어져서는 안 돼. 더 이상 제지하지 않고 그냥 뒀다가 네 아버지가 만약 도박에 중독되시기라도 하면 그땐 어쩔 뻔했니. 그 날에야 은자 12냥을 따왔다지만, 나는 좀 불안했다. 네 아버지가 계속 자신의 운이 좋다고 허풍을 떨면서 앞으로는 내기 도박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을 하시는데, 이런 말을 들어줄 수가 있어야지. 몇 년 전에도 또 그렇게 말해놓고 결국 남이 바람 한 번 넣었다고 바로 내기 도박에 돈을 건 것이 아니니.”
“어머니, 이번에는 아버지께서 합격 여부를 놓고 남들이 저를 무시하기에 돈을 거신 거래요.”
고청운이 한마디 했다.
“어찌 되었건 간에 이런 일을 저질렀으니 확실히 교훈도 줬겠다, 네 아버지도 다시는 그러지 않으시겠지.”
소진씨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버지께 걱정 마시라고 해라. 할아버지께서 그나마 집으로 돌아오신 후에 때리신 거라 소문이 밖으로 나진 않을 거야.”
고청운은 남몰래 웃다가, 밖에서 고청명이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 밖으로 나갔다.
“형님, 저를 찾으셨어요?”
고청운은 그를 서재로 데리고 갔다.
고청명은 방 배치를 둘러보더니 예전과는 다른 느낌이 들었지만 크게 개의치 않고 말했다.
“전자야, 네가 보기에는 내가 계속 과거 시험을 준비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니?”
고청운은 어리둥절해하며 그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의 턱수염은 이미 자리가 잡혔고, 얼굴에는 예리함이 스며들어, 이미 한 남자로 장성한 태가 보였으나, 아직 소년이라는 생각을 떨치기 어려웠다.
큰 사촌형은 고청운보다 5살이 더 많아, 올해로 22살이 되었다. 하지만 그는 올해 8월에 원시에 응시했으나 낙방하였다. 고청운이 한 달 남짓 그를 가르쳐 봤는데, 고청명의 학식이라면 이미 수재에 붙고도 남을 만한 생각이 들었는데도 불구하고 어찌된 일인지 연전연패했고, 그런 점은 조옥당도 마찬가지였다.
반면 하지는 단번에 급제했다.
“당연히 더 준비하는 게 맞아요. 원시 하나만 더 합격하면 수재가 되는 것인데, 왜 계속하지 않겠다는 거예요. 더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수재에 붙고 난 다음에나 고민 해볼 말이에요.”
고청운이 강하게 말했다.
“이렇게 오래 공부만 하느라 다른 일을 할 줄 아는 것도 아니잖아요. 또 큰할아버지는 아직 정정하시니, 촌장직을 당장 수락해야 하는 처지도 아니고요. 아버님도 계시잖아요. 아니면 밭에 나가 일하고 싶으신 거예요?”
기본적으로 임계촌의 차기 촌장은 큰할아버지 집에서 나올 터였다.
고청명은 이 말을 들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머리에서 열이 나는 것 같아. 오늘 내 동생이 할아버지께 공부는 그만 접고 사업을 하고 싶다고 했는데, 내가 공부한다며 돈만 너무 써버려서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닌가 싶었어.”
고청운은 그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고청량이 더는 참지 못하고 하고 싶은 일을 가족에게 주장했다는 사실을 간파할 수 있었다.
“그래, 계속 해 나가야겠다. 네 말대로 내가 공부하는 것 말고는 또 뭘 할 수 있겠니?”
고청명은 뭔가 생각난 듯, 정신을 가다듬고 총총히 사라지며 작별을 고했다.
고청운은 눈살을 찌푸렸다. 정말 집집마다 곤란한 사정이 있는 법이었다.
며칠이 지나 아버지의 맞은 상처가 다 나았다. 아버지는 여전히 별일 아닌 듯 굴며 고청운을 끌어다 놓고 말했다.
“전자야, 네 할아버지가 어렸을 때도 나를 자주 때리셨어. 이번에 맞을 때는 나는 정말 할아버지가 나이가 드셨다는 생각을 했다. 늙으셔서 힘이 예전만큼 세지 않으시더구나, 에잇.”
고청운은 침묵을 지켰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결코 피할 수 없는 문제였다. 자신의 가족들이 하루가 다르게 늙어가는 것은 무능력하게 바라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는 자신이 반드시 몸을 잘 간수해서, 앞으로 백 살까지 장수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 * *
그 후 납징(*纳征: 신부 측에 예물을 전달해 혼인이 이루어짐을 의미함), 청기(*请期: 신랑 측에서 결혼 날짜를 정해 신부 측의 지장의 유무를 물어봄)까지의 혼례준비 다음에는 그와 간미의 혼례 준비가 일사불란하게 진행되었는데, 지금은 친영(*请迎: 신랑이 신부집에 가서 신부를 맞이함)이라는 마지막 단계만이 남은 상태였다.
준비한 폐백은 그가 현에서 구입한 정원 하나짜리 저택과 약간의 초빙금, 비단 천, 은 장신구 등이었는데, 논밭처럼 대동할 수 없는 자산 말고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물품은 다 동원하여 이번 혼사를 매우 중히 여기고 있음을 드러내었다.
처음 물건들을 내보낼 때에는 소진씨는 마음이 좀 쓰렸지만, 고청운의 스승이 자신의 아들을 도와주는 것을 생각하면, 이런 물건들을 내주는 것쯤이야 아무것도 아니었다.
혼례일은 내년 3월로 정해졌다. 이 날은 길일로 점쟁이가 그날이 두 집 모두에게 제일 좋다고 해서 두 집 모두 같은 날짜에 혼례를 치르는 것으로 동의했다.
고청운은 결혼 날짜가 정해졌기에 간미의 집을 더 이상 드나들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남은 기간 동안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이 지은 시문을 보내면 간미가 시를 품평해 주고, 혹은 두 사람이 함께 시를 짓기도 했고, 어쩔 때는 그가 저잣거리를 나갔다가 선물을 사들고 돌아와 미래의 아내에게 보내는 등 좋은 인상을 주기위해 무던히 애를 썼다.
이 밖에도 그는 현학에서 가르치는 일을 시작했는데, 현학은 매일 가지 않아도 되었다. 방인례와 방(庞) 교유처럼 많게는 한 달에 4일 정도 가르치는데, 가르치는 과목도 산술로, 가르치는 데에는 어려움이 없었다.
물론 수재들이 다른 질문을 하더라도, 아는 한에서는 성실히 답을 해줘야지 못한다고 말하지는 않을 참이었다.
현학에서 가르치는 것은 결코 힘들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모두들 성인으로, 설령 처음에 그가 좀 어색하다고 느꼈더라도, 결국 지난 몇 개월 전에는 그도 그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 오히려 수재들이 자신보다 더 생각이 트여서 공손히 대해주고 예전처럼 허울 없이 대하지는 않았다.
고청운은 이 세계가 확실히 위계가 뚜렷하고 계급이 분명한 세상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수업이 있는 날만 빼면 그는 혼자 가족들이 있는 시골로 가든가 아니면 그 삼중 정원인 저택에서 지냈다. '고택(顾宅)'으로 이름 붙여진 삼중 정원 구조의 그 집은 그에게 너무 커서 앞쪽 첫 번째 마당에서 마음대로 방 한 칸을 골라 살았다.
정원의 다른 곳은, 고청운의 요구에 따라 대나무와 과일나무를 심고, 기타 가구 배치는 그의 부모님이 결정하셔서, 되도록 간결하면서도 대범한 느낌을 추구했다.
고청운은 현성에서는 하겸죽과 제일 자주 한담을 나누었지만, 한 달 후 그의 식구가 공부하러 부학으로 넘어 갈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리고 조문헌도 있었는데, 그도 이미 경성에 돌아가 국자감에서 계속 공부하였으니, 다음번 회시 응시를 위해서는 반드시 국자감에서의 시험을 봐야 했다.
방자명은 돌아오지 않고 방인례와 함께 경성에 남았는데, 왕 씨 말에 의하면 그들은 경성에 방인소와 함께 살고 있었고, 방인소의 한 친구가 방자명을 마음에 들어 하여 경성에서 혼례를 준비한다고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왕 씨는 혼례식에 참석할 예정이어서 상경해 혼사를 준비했다.
고청운은 소식을 듣고는 기뻐했다. 방자명은 그보다 2살 위였는데, 훌륭한 인물이라 경성을 한 바퀴 둘러보면 반드시 신붓감을 찾을 수 있을 줄 알았다. 어느 집과 혼사를 준비 중인지는 왕 씨가 말해주지 않았고 방자명이 편지에서도 밝히지 않았다.
* * *
하루하루 시간이 흘러 드디어 고청운의 혼롓날이 밝았다.
그 날은 그의 마음이 도통 진정되지 않아 무슨 약이라도 사와야 하나 하고 생각했지만, 지금 몸과 마음이 건강한 상태라는 생각이 들자 약까지는 필요가 없겠다 싶었다. 오히려 그의 아버지가 횡설수설해서 그에게 합방에 대한 일을 떠벌리는 탓에 웃을 수도 울 수도 없었고, 그의 아버지의 서사에 가까운 해석에 의하면 그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는 거사를 벌일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고청운은 추한 꼴을 피하기 위해 소책자를 사서 열심히 연구했다. 하지만 책에 의존하느니 본능이 발휘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례식 전날, 간미네 혼수가 임계촌으로 옮겨져 왔는데 모두 48개의 짐을 들여왔고, 그들이 보낸 폐백 예물도 모두 돌아왔다.
이 혼수들이 임계촌에 일으킨 파장은 두말할 것도 없었는데, 고청운은 이 혼수들만 봐도 암암리에 앞으로 간미에게 잘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많은 혼수를 챙겨서 일반 서민의 집에 시집온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결정이었을까.
그날 밤 고청명의 두 살배기 아들이 세시풍속에 따라 그들의 신혼 침상에 누워 굴러다니면서 후대에까지 복을 빌어주는 신방동자(*滚床童子: 농촌지역에서 남아로 하여금 신혼 침상에서 뒹굴고 놀며 후대에까지 복을 번성해주길 바라는 세시풍속)가 되어주었는데, 고청운은 그의 희고 귀여운 모습을 보니 매우 기뻤다.
나중에 자기 아이도 이렇게 귀여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밤새 거의 잠에 들지 못했지만, 다음 날 그의 정신은 여전히 맑았다.
태평소 소리와 함께 징과 북을 치고, 큰 홍희포(*红喜袍: 중국 전통혼례식에서 입는 붉은색의 전통 혼례복)를 입고 꽃가마를 탄 신부가 들어왔을 때, 그는 마치 목각인형처럼 중매쟁이가 시키는 대로 그저 행동하고 있었는데, 계속 긴장하며 불안한 탓에 자신의 얼굴이 경직되어 있을 것 같았지만 모두들 그가 너무 기뻐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합방진행’이라는 외침소리와 함께, 고청운은 심장이 더 빠르게 뛰는 것을 느꼈다. 얼굴은 귀까지 붉어졌으며 특히 붉은 천으로 감싸 둔 신부의 머리장식을 걷을 때에는 더 긴장이 되어 손이 떨리기 시작해 아주 여러 번 시도를 거쳐서야 겨우 장식을 걷어줄 수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주변사람들은 모두 웃었는데, 고청명이 특히 낭랑하게 웃어댔다.
등불 아래로 봉황 장식이 달린 관을 쓴 간미의 얼굴이 드러났다.
간미의 새빨간 입술, 어설프게 하얀 얼굴, 수줍어하는 눈빛을 본 고청운은 굳어버렸지만 얼굴에는 억지로 웃음을 한가득 짓고 있었다.
그런데 이걸 어찌하나. 신부의 화장이 조금도 예쁘지 않았다. 그가 전에 봐왔던 간미의 얼굴을 정말 알아 볼 수도 없게 이런 화장을 해 놓다니.
‘젠장.’
그는 매우 긴장하며 두려워졌다. 오늘 밤 그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갑자기 큰매형을 찾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