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화. 결혼 (1)
고청운은 두 사람이 함께 집을 나서는 뒷모습을 보며 암암리에 한숨을 내쉬었다. 이 집에 아직 시집도 오기 전인데, 할머니는 벌써 간미와 사이가 좋지 않을까 걱정하기 시작했다. 그녀에게 잘 대해주라고 했다가도. 대장부의 위엄을 보이라고 하는 둥, 손자며느리에게 코 꿰이지 않게 신경 쓰라는 말을 하시다니.
고청운은 현성과 임계촌의 양쪽 집에서 번갈아가며 사는 방법만이 가정불화를 해소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라고 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의 할머니와 어머니는 그에게 매우 잘해주었는데, 그렇다고 해서 나중에 무조건 간미에게도 잘해주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그녀가 시집오자마자 모두들 그녀를 까칠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도 있었다. 특히 그녀의 가문이 그의 집보다 더 좋기 때문에, 가족들은 그가 며느리로부터 눌려 고개를 들지 못할까 봐 더욱 걱정할 터였다.
반대로 그녀의 집에서도 자기네 집 딸이 시집가서 홀대받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할 것이었다.
‘아아, 다들 같은 생각이겠지.’
결국 종국에는 여자들이 더 약자의 입장에 놓이긴 했다.
고청운은 생각을 정리하며 계속해서 그의 난초에게 물을 주었는데, 난초는 아주 오래 잘 살아서, 몇 개는 도중에 부분적으로 파내어 어머니에게 나눠드린 것도 있지만, 알게 모르게 시들어버려서 다른 난으로 교체된 것도 있었다. 결국 그의 서재에 남게 된 몇 개의 난 화분은 아주 잘 자라고 있었는데, 생기가 넘치고 자태가 제각기 멋들어져서 그가 생각했던 것만큼 여리게 보이지는 않았다.
지금 그는 화분들을 자세히 들여 보다 말고, 창가의 화분을 다른 곳으로 막 옮기려 하는데, 고삼원이 곧장 방으로 뛰어 들어왔다. 초조해하는 얼굴이었다.
“청운 숙부, 큰나리께서 아버님을 때리고 계세요!”
고청운은 깜짝 놀랐다. ‘큰나리’라 함은 청운의 할아버지를 부르는 말이었다. 그가 급제한 이후 지역 유지들이 모두 고계산을 큰나리라 부르기 시작하자, 고삼원도 그게 재미있다고 여겼는지 그들처럼 호칭을 따라 불렀다.
“두 분은 사당을 짓는 문제로 업자를 찾아가지 않으셨니? 할아버지께서 무슨 연유로 아버지를 때리고 있다는 게지?”
고청운은 놀란 기색은 드러내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짐작가는 바가 있었다.
당초 수재 합격 후, 거인 합격을 기원하기 위해 사당을 한 번 지었었는데, 이번에는 풍수지리를 보는 사람을 찾아 사당을 한 번 더 확장하고 손을 보기로 했었다.
그는 높은 곳에서 아래쪽에 위치한 고삼원을 흘끗 쳐다보았다.
고삼원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두 손을 꼬고 있다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
“큰나리께서는 줄곧 두 분께서 향시를 보러 가셨을 적의 일을 물으셨는데, 물어보시는 게 많아지자 그만 아버님께서 실수로 그 일을 발설하셨어요.”
고청운은 확실히 알았다. 아버지께서 합격자 발표가 있기 전 도박으로 돈을 건 일은 그들 셋만이 알고 있는 비밀이었다. 그가 애초에 특별히 고삼원에게 비밀을 지키라고 요구하지 않은 것은, 그들이 모두 마을로 귀향한 이후에 고삼원을 통해 아마도 무심코 밖으로 흘려질 수 있는 이 일로 하여금 그의 아버지의 운이 좋은지 아닌지를 한 번 시험 해 본 것이었다.
게다가 이번에는 아버지 스스로도 너무 흥분해서, 도박으로 딴 은전을 받아오고 나서도 친아들이 과거에 급제했다는 기분에 도취되어 다른 사람들에게도 입단속을 요구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니 그의 할아버지가 아실 수밖에.
아니, 예전에 제일 처음 도박을 걸렸을 때를 생각하면, 아버지도 참 너무하셨다. 그렇게 진중한 모습으로 다시는 도박을 하지 않겠노라 약속했던 모습을 떠올리면 모진 마음을 생겼다.
그의 아버지는 운이 또 그렇게 좋아서, 걸기만 하면 당첨이었다. 그래서 몇 번 해보지도 않은 도박판에 바로 중독이 되어버린 것이다.
허나 특히 지금처럼 생활이 좋아져서, 그의 손에 있는 은자도 별안간 많아진 시점에, 만약 나쁜 마음을 먹은 사람에게 꼬드김을 당하면 큰 중독에 빠져 집안을 망쳐버리게 될 터였다.
“가봐야겠다. 어서 가서 상황을 좀 들여다보자.”
고청운은 할아버지의 손이 매서울까 걱정도 되어 성큼성큼 문을 나섰다.
큰방 마당 문을 나서 안채로 들어서자, 고계산이 몽둥이를 내던지고 숨을 고르고 있는 것이 보였다. 고대하는 긴 의자에 엎드려 엉덩이를 문지르며 작은 소리로 통증을 호소하고 있었다.
소진씨는 옆에서 속상한 듯 손수건을 움켜쥐고 있었는데, 고계산을 감히 막지는 못하고 남편에게 감히 손도 대지 못한 채 속수무책으로 서있기만 했다.
고청운은 오늘 고청평과 고청안이 집에 없다는 것이 참 다행스러웠다. 그의 할머니도 사람들과 수다를 떨러 출타 중이셨는데, 그렇지 않았다면 집안은 분명 더 큰 난장판이 되었을 것이다.
“할아버지, 너무 역정 내시면 몸에 좋지 않아요.”
고청운은 급히 달려가 할아버지를 부축하고 고개를 돌려 숙부인 고이하를 쳐다보았다.
고이하는 쓴웃음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무슨 일 때문에 이러시는지 나도 모르겠구나, 방금 사당 쪽에서 일을 하다가, 집에 돌아와 보니 형님이 엎드려 계시고, 아버지께서 나무 몽둥이를 찾아오셔서 무작정 패시질 않니.”
고이하는 아직도 얼떨떨한 모양이었다.
고청운은 어쩔 수 없이 고삼원에게 빨리 의원을 불러 오라고 시켰다.
“의원을 부르기만 해봐라, 저놈은 그냥 아프게 두거라! 집안에 불상사가 생기지 않도록 교훈이나 삼게.”
고계산은 실은 손자 얼굴을 보자 화가 좀 누그러졌음에도, 이 말을 하다 말고 다시 화가 폭발하였다.
“내가 그렇게 신신당부했는데! 해서는 안 될 일을 그렇게 알려주었는데! 네 놈이 정말 간덩이가 부어서 하지 말라는 것만 고대로 가서 해? 말 안 듣는 놈은 때려 죽여야지!”
고삼원은 문을 향해 나서던 걸음을 다시 뒤로 움직여 천천히 제자리로 돌아왔다.
고계산은 말을 마치자 더 화가 치밀었는지 다시 몽둥이를 집어 들었다.
고청운이 어쩔 수 없이 재빠르게 그의 아버지 등에 매달려서 외쳤다.
“할아버지, 화 좀 가라앉혀보세요! 너무 화내시면 몸에 좋지 않습니다.”
고계산이 자신을 보고 때리려던 손을 멈추기를 바랄 뿐이었다.
허나 아쉽게도 고계산의 움직임이 너무 빨라서 고청운은 그대로 한 대 얻어맞았다.
“아야!”
그는 크게 소리쳤다. 비록 큰소리로 아프다고 소리쳐대는 꼴이 매우 창피했지만, 그의 엉덩이는 정말 너무 아팠고, 필경 그는 스승님께 손바닥 몇 번 맞아본 것 외엔 아주 오랫동안 누군가에게 얻어맞아 본적이 없기도 했다.
“아이고, 전자야! 괜찮으냐?”
고계산이 깜짝 놀라 막대기를 내동댕이치고 빠른 걸음으로 그의 곁에 다가왔다. 얼굴에는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
“전자야, 너 괜찮니!”
소진씨도 바삐 다가왔다.
고청운이 스스로 자초한 일이기에 몸을 바로 일으켜 엉덩이를 주무르며 멋쩍게 웃었다.
“저는 괜찮아요. 할아버지, 조금도 아프지 않아요. 제 가죽이 얼마나 두꺼운 데요!”
할아버지의 얼굴을 보니, 못 믿으시는 것 같아 바지를 벗어 보여드렸다. 그리곤 움직이며 다시 말했다.
“너무 화내시다가 몸을 해치지는 마세요. 아버지께서도 이젠 잘못을 뉘우치셔서 다시는 안 그러실 거예요.”
“맞아요, 맞아. 아버지,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고대하는 자기 아들이 대신 맞은 것을 보고 더 이상 아픈 척을 해댈 수가 없어 몸을 일으킬 준비를 했다. 고청운은 그의 동작을 제지하며 말을 이었다.
“아버지, 저는 괜찮으니 걱정 마세요.”
그렇게 몇 걸음 걸어 그가 멀쩡하다는 것을 확인시켜주자, 모두들 그제야 안심하는 눈치였다.
확실히 처음엔 진짜 아팠지만, 지금은 그 아픔이 지나갔고, 별거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일단 할아버지 손이 그닥 맵지 않았다.
고계산은 아들의 체면을 세워줘야겠다고 생각했고, 손자도 보고 있겠다, 말을 이어나갔다.
“이 놈은 마저 때려야지. 해야 할 일도 찾아 하지 못하는 녀석 같으니라고. 의원은 필요 없다. 일단 좀 더 맞아야겠구나. 혼 좀 내자.”
고대하의 외침 소리가 더욱 커졌다.
고청운이 쓴웃음을 지으며 몇 마디 더 달래드리자, 고계산은 계단을 따라 내려오다가 끙끙대며 몇 마디를 던지고 나서야 나갔는데, 가는 방향을 보니 아마 큰할아버지를 찾아가서 이야기를 나누려는 것 같았다.
남겨진 사람들은 그제야 바빠졌고, 고청운은 고이하와 함께 아버지를 방으로 모셨다. 소진씨는 서둘러 상처에 바르는 약을 찾으러 갔다. 예전에 약을 좀 받아둔 것이 있었는데, 흔히 볼 수 있는 지혈약과 상처에 쓰는 약이 아직 남아있을 터였다. 그러니 할아버지도 의원을 부르지 말라 하셨지……
고청운과 고이하는 그대로 방에서 물러났다.
“숙부, 청평이랑 청안이는요? 오늘 종일 안 보이네요?”
고청운이 물었다. 이말 말고는 달리 여쭐 것이 없기도 했다.
“둘이서 네 숙모랑 같이 숙모 친정집에 갔다.”
고이하가 웃었다.
“전자야, 그동안 네가 집에 있으면서 두 놈을 가르칠 때, 말을 듣지 않으면 네가 매섭게 때리더라도 숙부는 네 탓을 하지 않을 것이다.”
고청운은 빙긋이 웃었다.
“숙부, 그 둘을 너무 얕보신 거 아닌가요. 각각 10살, 8살인데 둘 다 아주 철도 빨리 들었고 공부도 엄청 열심히 해요. 제가 가르쳐주는 지식들에 대해서도 비교적 빨리 터득하는 편이고요.”
그는 평소 숙부와 숙모가 현성에서 돌아오면 바로 그들의 수업에 대해 물어봤는데, 큰할아버지도 자주 찾아뵙고 교류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부모님부터가 아주 열성적이었는데, 둘째는 성적이 나쁘지 않았고, 학문을 닦는 것에 각별히 공을 들이고 있었다. 주변에 좋은 귀감도 있기에 다른 마을 아이들도 그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것에 대한 중압감을 느꼈던 고청평과 고청안은 자신도 모르게 더 스스로 공부를 찾아 하게 되고 공부에 쏟는 시간도 늘어났다.
고청운은 사촌 동생이 똑똑한 편이라고 생각했지만, 전생의 경험으로 미루어 보아, 어린 시절의 총명함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항상 노력하는 자세를 유지하는 것 만이라는 것을, 그런 점이 나중에 고시에 합격할 수 있는 관건이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바로 대표적인 예였는데, 비록 모두는 그의 머리가 총명하다고 여겼지만, 그는 스스로 자신의 성공 여부는 각고의 자율적 학습 습관과 약간의 운이 결정지었다는 것을 줄곧 잘 알아서, 지금에 이르렀다.
고이하는 고청운의 말을 듣고는 얼굴에 비친 웃음이 더 커졌다.
두 사람이 잠시 말을 나누는 사이, 소진씨가 방에서 나와 말을 건넸다.
“전자야, 아버지의 상처는 심하지 않은 것 같아. 아버님께서 조금 봐주신 듯하구나. 독하게 때리진 않으셨어.”
고청운과 고이하는 모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