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화. 지위 (1)
고청운은 옷자락을 들쳐 몸을 가린 후, 고삼원을 앞세웠다. 다행히 청락 다방 앞에 몇 대의 마차가 세워져 있었기에 그 중 한 대를 얼른 잡아타서 가격을 흥정하곤 집으로 돌아갔다.
돌아가는 도중에 고청운은 말을 하지 않았는데, 고삼원도 그가 저기압인 것을 느끼고 움츠러들어 안절부절 못한 채 몰래 그를 주시하고 있었다.
고청운은 사실 고삼원을 탓하는 것은 아니었다. 필경 몇 달 전만 해도 고삼원은 세상물정 모르는 시골 남자였다. 졸지에 고청운을 따라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곳에 와서 금세 눈이 멀어지기 마련이었을 것이었다. 그가 필요할 때 고삼원이 움직이지 않은 것은, 고삼원도 자기가 나설지 말지 아직 판단력을 키우지 못했기 때문이었을 터였다.
다만 고청운은 여전히 자신의 의도를 표출하고 싶었다. 자신이 오늘 같은 상황을 기분나빠했다면, 고삼원은 이것을 교훈삼아 다음부터는 주저하지 않고 행동할 것이었다.
그는 앞으로 몇 년 안에 고삼원이 그의 곁을 따르다 보면 서동정도는 되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뭔가를 더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들은 모두 빠른 속도로 스쳐가는 한 점의 감상에 불과할 뿐, 진짜 지금의 고민거리는 아직 그의 몸 위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마차의 커튼을 말아 올리고 밤바람을 좀 쐬어주자, 조금 지나서 고청운의 육체적 소동이 평정되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매일 아침마다 그랬듯이 처리방법은 스스로 가라앉히는 것이었다.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 *
거처로 돌아갔을 때, 아버지가 아직도 대청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아버지, 다녀왔습니다.”
고청운은 큰 소리로 말하곤 주변을 둘러보자 하겸죽과 조문헌의 방에는 빛이 새어나오지 않고 있었다.
“아버지, 왜 방에서 기다리시지 않고요. 늦가을이라 밤은 쌀쌀하고 이슬도 있으니 감기 걸리지 않도록 조심하셔야지요.”
고대하가 웃으며 말했다.
“내가 잠이 안 와서 그리했다. 너는 오늘밤에 왜 이렇게 일찍 돌아왔니? 네가 말한 시간도 채 안 되었구나. 아까까진 내가 널 데리러 나갈까 말까 궁리하고 있었단다. 참, 하겸죽 그들도 오늘 밤에는 외출을 했어. 누가 술대접을 한다고 하더구나.”
“마차를 타고 돌아와서 생각보다 더 일찍 도착했나 봐요.”
고청운은 다른 말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씻을 준비를 했다.
“잠깐, 우선 씻기 전에 해장 탕약 그릇 마시고 가거라.”
고대하는 부엌으로 들어갔다가 그릇에 담긴 탕약을 내어왔다.
“이건 옆집 아주머니께서 주신 건데, 오늘 저녁에 네가 술을 마시고 돌아올 줄 알고선, 대추와 칡뿌리를 네게 달여 주라며 들고 오셨다. 해장 효과가 아주 좋다고, 그 집 아들에게 자주 해 먹이신다 하더구나.”
비록 오늘 술을 얼마 마시지 않아 조금도 취하지는 않았지만, 아버지의 호의가 보여 그릇을 받아들고는 그대로 단숨에 다 마셔버렸다.
‘음, 아직도 뜨끈하네.’
“삼원아, 이리 와 보거라. 네게 할 말이 있다.”
고대하가 고삼원을 불렀고, 고청운은 씻기 위해 자리를 옮겼다.
* * *
고청운은 욕실에서 자기 팔뚝을 쳐다봤다. 붉은색 점 몇 개가 있었는데, 이는 그가 스스로 붉은 염료를 사용해 피부에 찍어둔 점으로, 이것을 정말 사용하게 될 줄은 몰랐다.
시선을 돌려 고개를 숙였다. 방금 칠칠치 못하게 나무 목욕통 가장자리에 쓸렸는데, 아직 술기운이 남은 듯 둘째가 벌떡 일어섰다. 그는 아까처럼 그것을 무시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잠시 생각해보다가 결국 처녀인 다섯 손가락을 이용해서 해결하기로 결정했다.
호흡을 꾹 참고, 혼란함 속에서 그저 느낌에 의지해 고청운은 자신의 첫 번째 경험을 끝냈다.
‘이건 본능일 뿐이야.’
그는 신혼밤에 대한 걱정을 할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의 근심을 날려버렸다.
됐다, 됐어. 전생에서도 남자랑 안 해봤다고 해서, 이번 생에 남자로 태어나는 게 안 될 것은 또 무언가. 적어도 지금 생각으론 나쁘지 않았다. 아주 자유롭게 느껴졌다.
‘이런 일은 더 이상 생각하지 말자.’
숨이 좀 트인 고청운은, 목욕을 마친 후 방으로 돌아와 촛불을 켜고 <전당서(全唐书)>를 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 단락을 보고 난 후, 고청운은 자신의 마음이 좀 혼란스러워져 이런 골머리를 앓게 하는 책은 더 보고 싶지 않아졌다. 그래서 다시 자신이 새로 쓰기 시작한 소설을 꺼내들었는데, 자세히 검수하다가 실수 하나를 발견하였다.
제목을 잘못 정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오천(傲天)’이라는 단어는 마음대로 쓸 수 없는 것이었다. 그중 다행인 것은 주인공 이름을 '용오천(龍傲天)'으로 짓지는 않아서, 이 5만 자의 원고를 모두 다시 써야 할 것 같지는 않았다.
아마도 그는 내심 그런 오만한 캐릭터가 부러웠었나 보다. 간계를 부리는 적들의 지능이 늘 상상 이상임에도 그 어떤 난관으로도 굴복시킬 수 없는 주인공, 그래서 불현듯 그런 이름이 떠올랐었다.
하지만 이곳은 고대라는 시대적 배경 때문에 황제를 암시하는 ‘하늘' 같은 단어는 늘 조심히 사용해야 했다. 고청운은 은근히 경계되어 깨닫는 바가 있었는데, 앞으로는 이런 큰 오해의 소지를 불러일으킬만한 기본적인 실수를 다시 범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했다.
한참을 생각한 후, 그는 제목을 <선검(仙檢)>으로 바꾸기로 결정하였다. 이렇게 간단한 이름으로 작품의 제목을 선정한 것은 결코 자신의 작명 감각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다만 자신의 필명이 이미 유명해졌으므로 책의 제목이 이젠 그렇게까지 중요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됐어, 만약 제목이 부합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또 들면 하림에게 도움을 청해도 돼.’
하림은 이미 부성에서 현성으로 옮겨가, 집에서 가까운 곳에서 지내고 있었다. 어쨌든 그는 하 수재의 유일한 아들로, 자신이 앞으로도 늘 곁에서 잘 돌봐 줘야했다.
* * *
그리고 사흘 뒤, 총독(*巡抚: 지방 행정장관)이 주최하는 녹명연에 고청운 등 새로 과거에 합격한 새 거인들이 참석했다.
연회 장소는 이곳 현지의 향신이 개방해 준 한 정원이었는데, 안쪽에는 정자 누각, 인공산에, 천까지 만들어 실제 물이 흐르고 있었고, 짙푸른 녹림과 붉은 꽃이 아름답게 피어있어 한 걸음 뗄 때마다 또 한 걸음만큼의 아름다운 경치가 펼쳐지는 풍경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모두가 경관을 감상할 수 있었다.
녹명연이라는 것은 본디 지방 관료와 새로 과거에 합격한 신진 거인들과의 교류가 이뤄지는 장소이기 때문에, 고청운은 으레 술을 마셔야 한다는 것을 알고 사전에 미리 집에서 음식을 좀 먹고 와서 위를 보호하고자 했다.
전통적으로 연회 석상에서 모두 다 같이 <녹명(鹿鸣)>이란 시를 읊으며 괴성(魁星) 춤을 추곤 했다.
고청운은 그중에서도 가장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는데, 총독에게도 불려가 몇 마디 말까지 나눌 수 있었다.
방인소의 제자임을 알게 된 총독은 고청운을 대하는 태도가 왠지 모르게 싸늘해졌다.
고청운은 이를 이상하게 여기지는 않았는데,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냉담하긴 했지만, 열정적인 면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세속에 대한 욕망이 없이 의연한 면모가 있지만, 어쨌든 방인소 역시 이미 아내도 있겠다, 자신이 무슨 큰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한, 관직을 박탈당할 일을 만들진 않을 것이었다. 게다가 일반 관리들에 비하면, 고청운은 밑밥정도도 못한 정도라 남들을 상대할 필요까지도 없긴 했다.
이 때문에 고청운은 나름대로 연회를 즐겁게 보내고 있었다.
녹명연의 일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길고 긴 향시의 종착지 같은 의미였기에 한시진이 지나자 음악이 멈추고 대인들은 자리를 떠나고 거인들만 남게 되었다.
모두들 지난 밤 이미 친숙하게 섞일 기회가 있어 이젠 더 체면 차릴 것 없이 가볍게 몇 마디를 나눈 뒤에는, 대부분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급급한 상태가 되어 그대로 자연스럽게 자리가 파하게 되었다.
고청운은 조금 실망했다, 그 말로만 듣던 전설의 녹명연이 이것 밖에 안 되나 싶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금세 집에 갈 수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 * *
그가 숙소로 돌아왔을 때, 고대하가 이미 짐을 싸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현재 이곳에는 그들 세 사람만 머물고 있었는데, 하겸죽과 조문헌은 어제 진즉 돌아가버렸다.
“아버지, 이만 저희도 집으로 가요.”
고청운이 말했다. 그는 오후에 부성으로 돌아오는 배 한척이 그들이 사는 임산현을 경유하여 지나가는 것을 알고 있었다.
“좋다, 집으로 돌아가자꾸나!”
한 달 남짓한 시간을 떠나와 있었더니, 실은 고대하도 진즉부터 집이 그립던 참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 마주보고 웃으며 금의환향할 생각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 * *
간씨 집안.
분주한 종종걸음으로 청색 옷을 걸친 여종 하나가 간미의 규방 안으로 들어갔다.
“아가씨, 노비가 방금 소식을 하나 듣고 왔는데, 고씨 나리께서 군성에서 돌아오셨답니다. 지금 선착장에서는 사람들이 그 나리께서 거인이 되셨다는 소식을 듣고 다들 그 얘기뿐이라 합니다.”
간미가 그 말을 듣고는 손에 들고 있던 책을 내려놓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도 또 초조해져 책을 집어 들고 아무데나 펼쳐가며 뒤적이다가 물었다.
“진짜 돌아온 것이니?”
“물론이죠, 밖에 있는 머슴들도 다 보았고, 안방마님께서도 그 일을 논하고 계셔요.”
여종이 매우 기뻐하며 낭랑하게 말했다.
“고씨 나리께서 돌아오셨으니 혼례준비야 계속되겠고, 아가씨는 내년이면 시집가시겠어요. 정말이지 나리께서는 외모도 참 준수하시고, 아가씨께도 참 잘하시지 않습니까? 아가씨 할아버님께서는 정말 보통 안목이 아니세요. 아가씨는 앞으로 펼 일만 남았어요.”
간미는 그 말을 듣고는 참지 못하고 입술을 오므리며 웃음을 지었다. 하얀 얼굴을 위로 두 개의 보조개가 드러났다. 그녀는 손목에 있는 단향목 팔찌를 만지작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그녀는 고청운이 해원이든 아니든 하는 것은 크게 개의치 않았지만, 다만 과거에 급제하고 연회를 갖는 그날 밤, 과연 밖에서 밤을 지새웠을지 그 여부가 제일 신경이 쓰였다. 아까 외숙부가 한 말이 생각나서 그녀는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여종은 그 모습을 보고 얼굴에 웃음을 띠었다. 그녀는 소도(小桃) 언니에게 아가씨께서 또 고씨 나리가 주신 팔찌를 만지작거리고 있다는 걸 말해줄 생각이었다.
* * *
역시나 고청운의 귀향은 가족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노진씨와 소진씨는 기쁨에 겨워 눈물을 흘렸다.
노진씨는 큰 소리로 외쳤다.
“아이고, 내 착한 손주! 정말이지 나한테도 이런 시절이 올 줄은 몰랐구나. 사람들이 정말 왁자지껄하게도 떠들어댔어. 다른 집에 혼례를 치를 때보다도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축하를 하더니, 모두들 너무나 즐거운 나머지 어떻게 되는 줄 알았다. 마을 사람들이 다 그랬다. 처음에는 정말 믿기지가 않았지. 그날 밤 네 할아버지는 밤새 한숨도 못 주무시고, 그 다음 날 향불을 피워 조상신에 감사제를 올리러 가셨단다. 어젯밤에는 한밤중에 자다가도 웃음을 터뜨리시는 바람에 내가 어찌나 놀랬는지!”
고청운은 이미 군성에서 한 번 기쁨을 누렸었지만, 이번에 다시 추켜올려 세워져 할머니와 어머니가 기뻐하는 모습에 자부심은 예전보다 더 커졌다.
그는 도화진 지역에서 배출한 첫 거인 신분의 인물로, 심지어 해원을 거머쥔 거인이 되었다. 고청운은 순식간에 도화진 내에서 지명도가 굉장히 올라갔다. 현 안에서 아주 많은 사람들이 그와 어울리기를 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