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화. 밤의 연회 (1)
고청운은 웃으며 물었다.
“그래도 사형 축하드립니다. 맞다, 사형은 국자감에 입학하실 건가요?”
하겸죽은 즉답을 하지 않고 잠시 생각한 끝에 말했다.
“나는 가보고는 싶어. 다만 경성의 물가는 높기만 하고 우리 집은 사실 은자가 충분하질 않아 아직은 잘 모르겠네. 허나 조문헌을 보니, 국자감에 간 지 이제 1년밖에 안 됐는데 학문이 퇴보하질 않았니. 사람도 전체적으로 뭔가 좀 변했고. 국자감은 안 가게 되더라도 아마 부학은 갈 것 같긴 하구나.”
보궐 명단에 들어가면 부학에 공부하러 가는 것도 가능했다.
“2년 뒤엔 조 사형과 나와 함께 회시에 응시해요. 보궐 합격자이니, 국자감의 시험도 사형에겐 그닥 어려운 시험이 아닐 거예요.”
고청운이 나즈막히 말했다. 아마도 나중에 진사에 합격한다 한들 제일 잘나가는 양방(兩榜)진사란 이름도 얻게 되지 못하니, 출신이 정통진사보다는 못하다는 생각에 조문헌이 더 낙심했을 것이다.
보통 향시에 급제하여 얻은 신분을 을방(乙榜/거인)이라 하고, 이후에 다시 전시(*殿試: 황제 앞에서 치르는 과거시험)에 합격해 갑방(甲榜/진사)의 신분을 받은 사람을 양방진사라고 했다. 양방진사와 일반진사는 실제로는 둘 다 사실상 같은 의미지만, 조금 신경 쓰는 사람은 끝까지 이 출신을 따지기는 했다.
모두들 양방진사가 더 낫다고는 했다.
고청운도 조문헌이 국자감에 입학했던 것이 도대체 좋은 것인지 아님 나빴던 것인지는 말하기가 어려웠다. 경성은 그들이 사는 지역으로부터 멀어 배를 타고 가더라도 한 달이나 소요됐다. 중간에는 육지로 나와 가는 방편을 바꿔야 해서 왕복으로 오가는 것을 생각하면 더욱 더 어려웠다.
“그럼 다시 자세히 생각해 보세요.”
고청운은 하겸죽이 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는 조문헌처럼 패기가 있는 사람이 아니었고, 게다가 아리따운 처와 어린 자녀도 있어, 분명 집이 걱정될 터인데, 이들 모두를 데리고 상경하자니 비용이 너무 많이 들 것이었다.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도대체 지금의 조씨 집안을 어느 집의 가정형편이 비교를 할 수가 있겠는가.
점심을 먹고 난 뒤, 고대하는 아직도 고청운의 방에 남아 도대체 떠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오늘 한 무리의 사람들에 둘러싸여 축하를 받았는데, 그의 흥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줄곧 끊임없이 남들이 그에게 했던 칭찬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아버지, 얼른 돌아가셔서 쉬세요. 오전 내내 바쁘지 않으셨습니까.”
그의 아버지는 이렇게 기분이 겉에 드러나는 사람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고청운은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듣는 바람에 그만 책을 내려놓고 아버지를 말렸다.
“나는 쉬지 않아도 상관없다.”
고대하는 뒷짐을 지고 왔다 갔다 하다 말고 갑자기 그에게 다가가서 낮은 소리로 말했다.
“요 며칠간은, 우리가 언행을 좀 삼가긴 해야겠다. 저 둘은 시험에 낙방했고, 우리가 너무 좋은 티는 내지 말아야지. 이러다 너희들 관계에 금이라도 갈라.”
고청운은 놀라서 고대하를 훑어보았다. 그의 아버지가 이런 생각을 해 주다니. 어쩐지 오늘 오전에 그렇게 빨리 다른 사람들을 내보내고, 점심에 식사할 때 기쁜 감정을 표출하지 않고 매우 차분하셨던 것이, 이를 의식한 것이었구나 싶었다.
“명심할게요, 아버지. 이런 아버지가 제 곁에 계셔 주시니 정말 좋아요.”
고청운이 진심을 담아 말하자, 고대하는 기쁨에 겨워 그의 어깨를 토닥이고 웃으며 말했다.
“너는 네 아비가 바보 같은 줄 알았지? 내가 이 나이까지 헛살아오기만 한 건 아니란다. 세상물정 정도는 좀 알고 있지. 오늘 밖에 나가서 한 바퀴 돌고 들어왔는데, 많은 사람들이 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걸 보지 않았겠니. 내 너에게 먹칠을 해서는 안 되지. 참, 한 가지 더 알려줄게 생겼단다. 황언성이 낙방을 했다는구나.”
고청운은 고개를 끄덕여 알았다고 몸짓했다. 사실, 그는 방금 고삼원에게 합격자 명단을 사오라고 시켰는데, 그는 이번에 함께 합격한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를 알아야 했다.
그러나 지금 그의 아버지가 이 화제를 꺼내자, 그는 기회를 틈타 벼르고 있던 말을 꺼냈다.
“그래서 제가 아버지가 계신 덕분에 우리 집이 다시 도약할 수 있었다고 말씀 드린 거예요. 만약 제가 관원이 되어 벼슬까지 할 수 있다면 다 가족 덕택이지만, 또 이 이후로도 가족들의 역할이 더 중요해질 거예요. 우리 가족과 우리 고씨 친족들이 규율을 잘 지켜야만 제 관직이 안정적으로 지켜질 거예요. 제가 아무리 힘을 쓴다 한들, 친인척이 뒤에서 민간의 전답을 강제로 매매하거나, 간음죄 같은 중죄를 저지르게 된다면, 제가 정말 천신만고 끝에 진사에 합격한다 해도, 관직을 잃는 일이 생기게 되겠죠.”
그는 불미스러운 일을 사전에 방비하고자, 역사책에 기록되어 있던 실제 관청의 사례를 언급했는데, 당시 그는 그것을 보고 은근히 경계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고생 끝에 진사에 급제하고, 또 가까스로 관리로 임용되고 나서, 친인척에게 연루되어 관직에서 물러나거나 유배가 되는 것 정도까지는 무섭지 않았으나, 무엇보다 두려운 것은 집안 식구들이 불행을 함께 겪는 일로, 이런 일들만은 정말 피하고 싶었다.
고대하는 이 말을 듣고는 짐짓 심각해졌다.
두 사람은 이후로도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상상의 나래를 펼쳐 가족끼리 이 기쁜 소식을 들은 모습도 함께 상상해 봤는데, 한참이 지난 후, 고청운이 하품을 하자, 그제야 고대하가 방을 떠났다.
* * *
오후에 고청운은 손에 전갈을 전달받았는데, 내용인즉슨 청하방(清河坊)의 청락(清乐) 다방에 차를 마시러 가자고 초대하는 내용이었다.
청락 다방, 그는 당연히 여기가 뭐하는 곳인지 알고 있었다. 작년에 방자명이 다녀와 곤드레만드레 취해서 돌아온 모습이 생각났다. 고청운은 자신이 사전에 준비를 잘 해서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했다.
가지 않을 수는 없는 모임이었다. 이는 일종의 교제의 장으로 이번 시험에 함께 급제한 동기들끼리 모이는 첫 교류의 기회인데, 자리에 참석하여 할 수 있는 만큼 재량껏 버티면 될 일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당장 내일 저잣거리에 새로운 해원이 자기 재능만을 믿고 남을 깔보는 인물이라는 소문이 파다해져 개인의 인상 형성에 아주 불리해 질 것이었다.
게다가 가서 몇 사람을 더 알아 두면 나중에 혹시 요긴하게 도움이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다들 이러한 생각을 품고 있을 것이라, 병이 나서 병상에 누워있는 경우들을 제외하면 이런 기회를 거절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이번 모임은 청락 다방에서 돈을 내주는 것으로,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신진 거인의 신분이 된 그 하룻밤 만이었다. 오늘 밤이 지나면 이렇게 좋은 일은 다신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고청운은 한숨을 쉬며 그런 자리에는 정말 가기 싫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강호에 몸담은 사람은 강호에서 자유롭지 못한 법 아니겠는가.
참석 전에 그는 밥 한 그릇을 해치우고도, 찐빵 한 개, 기름진 족발 두 개를 더 먹어 배를 든든히 채웠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그는 정말 자신이 술을 감당하지 못할까 봐 두려웠다.
그는 불안했다. 다방이라고는 하나 분명 술이 있을 것임을 알기에. 자신은 한평생 술을 많이 마셔본 적이 없었다. 향시를 치르는 도중 마셔본 대추주를 뺴고는 자신의 주량을 가능해 본적도 없다. 그는 주사 때문에 망신을 당하지 않기 위해 아버지께 부탁드렸다.
“아버지, 제가 술자리에서 돌아오지 않으면 꼭 다방 밖에서 저를 기다려주셔야 해요.”
고대하는 자신의 아들이 무슨 걱정을 하고 있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기껏해야 술에 취했을 것이고, 다른 사람들은 틀림없이 그를 데려다 줄 터였다.
고청운은 청락 다방은 사실 청루(*青楼: 기생집)로, 아가씨들이 많이 있는 곳이라는 것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
“삼원아, 너는 나랑 같이 가자꾸나. 잘 기억해두렴. 내가 엎드려서 잠을 자고 있으면 나를 반드시 부축해서 돌아와 줘야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함부로 돌아다녀서도, 함부로 남을 들여다보고 다녀서도 안 돼.”
약속장소로 이동하기 직전에 다시 한번 당부했다. 고삼원의 작은 몸을 보니 뒤늦게 과연 자신을 부축해서 돌아 올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청운 숙부, 안심하세요. 제가 기필코 숙부를 부축해서 돌아올게요.”
“응, 일단 믿으마. 나를 잘 지켜봐야 해. 그 아가씨들이 나를 통해서 득 볼일 을 만들어줘서는 안 돼.”
고청운이 다시 한번 당부했다.
“무슨 아가씨들이요?”
고삼원은 이해 할 수가 없었다.
고청운은 헛기침을 하며 조용히 말했다.
“그곳은 다방이야. 그것도 여자가 있는, 무슨 말인지 알겠지?”
고삼원이 생각해보니 문득 깨닫는 바가 있었다. 그가 지내던 시골에서도 이런 곳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곳에 가는 사람들은 좋은 사람이 아니란 것도 알고 있었는데, 고청운이 그런 곳을 가다니…… 설마 학자들과 그런 사람들과는 또 다른 것인가?
“무슨 여자?”
고대하의 목소리가 갑자기 뒤에서부터 들려왔다.
고청운이 일순 경직된 채 고개를 돌려 아버지를 쳐다보았으나, 말을 떼지는 못했다. 마음이 갑갑해져 왔다. 방금 아버지는 외출하지 않으셨던가?
“너희들 기방 같은 곳까지 가는 게야?”
고대하의 미간에 주름이 깊게 잡혔다.
“전자야, 너는 뜻을 이뤄냈다고 자만하여 자신의 처지를 잊으면 아니 된다. 그런 데 가면 안 돼. 나이도 어린놈이, 간씨 집안 아가씨에게 미안한 일이걸랑 하면 안 되는 법이야.”
“아이고, 우리 아버지는 참. 저는 그럴 엄두도 못 내요. 이번에 함께 급제한 동기끼리 축하연을 하필 그쪽으로 잡아서 저도 어쩔 방도가 없이 참석하게 된 거예요. 안심하세요. 술을 먹고 나면 바로 취한 척 연기하고 있을 셈이에요.”
고청운은 얼른 달래며 말했다.
이에 고대하의 태산 같은 시름을 담은 당부를 뒤로하고, 고청운과 고삼원은 연회장으로 나섰다.
* * *
이들이 모이기로 한 청락 다방은 군성의 청하방에 위치하고 있었다. 연류화교(煙柳畵橋), 풍렴취막(風帘翠幕) 등 주변은 모두 고급 요릿집들로, 아직 날이 저물지도 않았고 인구 유동량이 많지도 않았는데, 듣자하니 이곳은 밤만 되면 인파가 늘어 온 거리가 불빛으로 훤해지며 인기가 치솟는다고 했다.
그들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조금 늦게 도착한 편이었는데, 안에는 이미 2~30명이 먼저 도착해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가 도착한 것을 보더니 대부분 하던 일을 멈추고, 그중 그를 아는 사람들이 먼저 다가와서 인사를 건넸다.
“고 형, 오셨습니까!”
“하하, 우리 신진 해원님이 오셨군요.”
……
그와 인사를 나누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주로 고청운이 이 시험에서 가장 어린 나이의 거인인데다, 심지어 해원을 거머쥐었기에 사람들이 그의 얼굴만 봐도 기본적으로 그를 알아볼 수 있었다.
“고 현제(*贤弟: 연하인 친구에 대한 경칭), 진작부터 말씀 많이 들어왔습니다. 소생, 송백호(宋伯虎)라고 합니다. “
차석 급제자로 2위인 아원 송인(宋寅)이 인파를 헤치며 다가와 공수(拱手)한 손을 얼굴 앞에 들고 허리를 앞으로 공손히 구부렸다 펴면서 인사했다.
군성 출신의 송인 집안은 관료집안으로, 고청운이 도착하기 전까지는 뭇사람들이 그를 둘러싸고 이야기 나누고 있었다.
“백호 형님.”
고청운도 답례인사를 하며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웃으며 말했다.
“소생이 지각한 것은 아닐 런지요?”
그렇다, 이름은 송인이요, 자(子)는 백호였다. 고청운은 처음 알았을 때만 해도 그가 당백호(唐伯虎)인 줄 알았는데, 당백호는 명나라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상기하곤 다시 침착해졌다.
“늦은 게 아니라, 저희가 일찍 온 게지요.”
송인은 옅은 청색을 띄는 비단옷에 호리호리한 몸매로, 지금 약 스물다섯 살 정도 된 그는 훤칠한 외모에 백옥 같은 피부를 가졌으며 전신에 귀족의 태가 흐르고 있었다. 그럼에도 얼굴에는 온화한 웃음기를 머금고 있어 아주 어울리기 좋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두 사람이 함께 서서 몇 마디를 나누었는데, 곧 다른 사람들도 그들을 둘러쌌다.
고청운은 문회에 몇 차례 참가했지만 그래도 비교적 자유로이 참가했었다.
잠시 뒤 다른 사람들이 하나둘씩 속속 도착해, 송인은 이번 연회의 주선자로서 일어서서 몇 마디 축사를 하며 아직 병상에 누워있는 여섯 거인의 쾌유를 기원했고, 그제야 사람들은 차와 과자 등을 먹고 마시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