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대생활 (107)화 (107/504)

107화. 사람의 운명은 종잡을 수 없는 것

고청운은 몸에 걸쳐진 얇은 이불을 젖히고 침상에서 내려와, 옷을 입기 시작하면서 말했다.

“아버지, 고생 많으셨습니다. 어서 방으로 돌아가서 머리를 빗으시지요. 조금 있으면 합격 통보를 하는 보희들이 올 텐데, 그들에게 전할 사례비는 준비하셨나요?”

“걱정 말거라. 내 다 준비해 놓았으니.”

고대하는 급히 방으로 돌아가 생각을 해보고 혼잣말을 했다. 

“안 되지, 은자를 조금 더 넣어야겠다. 해원이지 않니.”

그의 말소리가 끝나자마자, 고삼원이 문밖에서 쿵쿵 소리 내며 뛰어 들어왔고, 손에는 아직도 나무 비녀를 꼭 쥔 채 숨을 훅훅 내 쉬며 말했다. 

“어르신! 너무 빨리 달리셔서 나무 비녀도 다 떨어트리셨어요.”

고대하는 한 손으로 비녀를 건네받고선 재촉하며 말했다. 

“너도 옷매무새를 빨리 정돈하거라. 조금 있다가 사람들이 올 거란다.”

“삼원아, 난 아침도 먹어야겠다. 주방에 가서 음식이 아직 따끈한지 보고 오겠니.” 

고청운은 또 소리쳤다.

고삼원은 즐겁게 네, 하고 대답했다.

세 사람은 각자 움직이기 시작했고, 흥겨운 분위기가 공기 중으로 퍼져나갔다. 고대하는 심지어 뜰에서 뱅글뱅글 돌기까지 했다. 계속해서 가슴을 문지르다 입으로는 어정쩡한 가락을 흥얼거리며 덩실덩실 춤을 추더니 흥분해서 얼굴이 붉어졌다.

고청운은 흥분하고 나자 손발이 풀려, 긴 겉옷을 입은 후, 머리를 쓱쓱 빗어내려 두피를 기계적으로 마사지 해 주면서 마음을 추슬렀다.

‘진정해라, 진정해. 아버지처럼 기쁨을 온 얼굴에 표출해서는 안 된다.’ 

고청운은 남몰래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 듯 차츰 기분이 진정됨을 느꼈다. 그는 자신의 인생이 새로운 단계로 들어섰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세수를 마치고 나서야 자신이 평소보다 한 시진 늦게 일어난 것을 발견하였다. 그는 자기주도적인 사람이라, 이렇게까지 늦은 기상은 드문 일인데, 향시의 결과에 너무 연연해 그랬다고 생각하는 수밖에 없었다.

시험이 끝나고 나서, 그는 시험 문제를 매우 순조롭게 풀었으니 자신이 급제할 수 있다는 것은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여전히 자신의 석차를 매우 의식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의 아버지가 이렇게 돈을 쓰신 것을 알고 나서는, 그 일이 마음에 걸려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결국 이렇게 늦게 일어나게 되었다.

지금 그의 아버지가 이렇게 일찍 돌아오실 수 있었다니, 아마도 명단을 확인하기 위해 가장 빨리 뛰쳐나간 사람들 중 하나였을 터였다. 

‘인파를 헤치고 나가시느라 정말 힘드셨겠지?’

고청운은 느릿느릿 죽을 먹으며 합격자 명단 앞에 드글드글 모여 있던 인파를 떠올렸다.

“아참, 아버지, 하 사형과 조 사형은 시험에 붙었나요?”

고청운은 고대하가 들락날락하는 것을 보고 있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아까까지는 내내 기쁨에 젖어 있느라 물어보는 것을 잊었다.

고대하는 주체 안 되는 발재간을 멈추고 머리를 긁적이며 한참을 생각한 후 말했다.

“이 아비는 정말 기억이 나지 않는구나. 네 이름만 눈에 들어와서, 네 호적이 맞는 것만을 확인하고는 너무 흥분해 버렸단다. 심지어 옆에서도 너보고 해원이라지 않니. 기쁨에 젖어 그대로 사람들을 헤집고 나와 네게 뛰어 돌아온 거란다. 다른 것은 도통 기억나지 않는구나.”

고청운이 들어보니 자신이라도 충분히 그랬을 것 같았다. 하지만 하겸죽과 조문헌 둘 다 아직 돌아오지 않은 것을 보니 이름을 아직 찾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과연 그들은 합격했을까?’

고삼원은 그의 맞은편에 앉아서 계속 실없이 웃고 있었다.

“왜 웃어?”

고청운이 보니, 겨우 석 달 남짓 지났을 뿐인데, 고삼원의 얼굴은 찐빵의 밀가루 반죽처럼 부풀어 올라 있었다. 말라비틀어졌던 예전과 비교하면 이젠 혈색도 돌고, 살이 찌고 성격도 예전처럼 과묵하지도 않아졌다. 

“족장 어르신께서 제 이름을 잘 지었다고 말씀하셨대요. 나중에 상금을 좀 주신댔어요.(*장원의 ‘원’과 삼원이의 ‘원’은 둘 다 으뜸 원元을 사용한다.)

고삼원은 고청운이 이번 시험에서 거인이 되면 이 집에서 계속 지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친어머니가 안 계신 이후로, 그에겐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날이 거의 없었다. 지금 이 집에서는 매일 배불리 먹을 수 있고, 간혹 고기도 먹을 수 있었다. 고청운은 마을에서 제일 학식이 있는 사람이 아닌가. 마을 사람들 모두 그를 '문곡성(*文曲星: 중국 남송의 정치가이자 시인)'이라 불렀다. 그는 자신에게 매우 잘 대해 주었고, 자신이 글씨 배우는 것에 이렇게 아둔한데도 때리지도 않고 욕만 조금 할 뿐이었다. 고삼원은 평생 이 집에서 살고 싶다고 생각하였다. 그렇게 되면 그의 새어머니는 더 이상 그를 업신여길 수 없게 될 것이었다.

그래서 이 며칠 동안 하씨 아저씨에게 줄을 잘 댔는데, 청운네 집에 남아있으려면 뭘 해야 하는지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지금은 고청운이 거인 나리까지 된 마당에, 어렴풋하게 자신의 앞길에도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심지어 1등으로 급제하시다니요!”

여기까지 생각이 들자, 고삼원은 별처럼 빛나는 눈으로 고청운을 바라봤다. 그 전에 그는 향시 대해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았다. 자신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이야기라 시험 합격자는 거인 나리가 된다고만 집에서 들어왔었다. 이제야 그 사실이 현실적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는 그는 거인이 그렇게 쉽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고청운이 그 힘들다는 시험에 단번에 합격할 줄이야.

“됐다, 여기서 나를 홀리고 있을 필요 없어. 우리 아버지께 가서 뭐 도울 일 없으신지 보고 오너라.”

고청운은 안방에서 들려오는, 아버지께서 흥얼거리시는 향속적인 노랫가락을 듣고는 참지 못하고 웃어버렸다. 

고삼원이 큰 소리로 네, 하고 대답했다.

* * *

고청운은 조금 빨리 아침 식사를 마치고 뜰채에서 소화할 겸 몸을 움직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문밖에서 꽹과리 소리가 들려오고 소리가 점점 커져서, 보희가 온 것임을 알게 되었다. 

과연 거인에 대한 대우는 달랐다. 희소식을 알리는 1보, 2보, 3보가 따로 나뉘어 전보를 알려주고, 3차례의 인마가 따라오고, 여기에 주변 이웃들까지 더해져 이 작은 뜰채가 더욱 붐볐다.

‘과거 시험에 합격한 사람을 알리는 급보를 전합니다. 귀댁의 고청운 나리께서 월양군 향시 1등 해원(解元)에 등극 하셨습니다.’하는 등의 글씨가 문 밖에 내걸려 있어 지나가는 사람도 호기심 어린 듯 머리를 내밀고 수군거렸다.

“아버님 감축 드립니다. 정말 대단한 아드님을 두셨습니다. 이렇게 젊은 데 벌써 거인 나리가 되시다니!” 

한 이웃이 부러운 듯이 고대하에게 탄복하며 말했다. 

“심지어 1등, 해원이라니!”

다른 한 명이 보충 설명을 곁들였다.

“아버님, 댁에서 평소에 거인 나리에게 뭘 잡숫게 하셨길래 그렇게 똑똑하신 아드님을 길러내셨습니까?”

어떤 사람이 궁금한 듯 물었다. 

“어디서 사신건가요? 저도 좀 사서 아들에게 먹이고 싶습니다.”

고대하는 기쁨에 겨워 사람들의 칭송을 듣고 있었다. 

“아니, 아닙니다. 그냥 우리 아들이 많이 노력해서 얻은 겁니다. 우리와 매한가지로 가족들이 뭘 먹으면 그냥 같이 따라 먹는 거지요, 무얼.”

고청운은 도대체 축하의 말을 몇 번이나 들었는지 이루 셀 수가 없었다. 그는 그저 웃으며 답례 드리는 수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하지만 조금 답답한 것이, 팔과 허리를 예의 없이 어루만지는 이들도 있었고, 너무 붐벼서 그로 하여금 공기가 탁해졌다고 느끼게 하였다. 그는 재빨리 그의 아버지 쪽으로 비집고 가서 아버지의 팔을 툭툭 쳐 그에게 눈짓을 하였다.

고대하가 눈치를 챘다. 

어렵사리 두 사람은 사람들을 다 내보내고 집주인과 몇 마디 더 한 후 에야 겨우 대문을 닫을 수 있었다.

고청운은 헝클어진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찻물을 마시며 하겸죽과 조문헌에게 언제 돌아왔느냐며 물었다. 아까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그들이 돌아온 것도 알아채지 못했다. 

“돌아온 지 얼마 안 됐네.”

하겸죽이 말했다.  

“해원을 축하해. 허허, 네가 해원에 등극한 덕에 우리도 덩달아 덕을 봤네. 집주인이 이번 방값은 안 줘도 된다고 하더라.”

“축하해.”

조문헌도 말을 이어갔다.

“집주인도 손해 보지 않을 게다. 다음 향시 시험 때 비싼 값에 내놓을 수 있을 거야. 다들 풍수지리가 좋다고 할 테지.”

그의 맘이 좋아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고청운도 면전에서 그의 성적을 묻기 힘들어 하겸죽을 바라봤다. 하겸죽은 붙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웃을 수 있겠는가?

하겸죽은 고청운의 뜻을 알지만, 그는 말없이 부채만 꺼내 흔들며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한편, 고대하와 하씨 아저씨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조삼과 고삼원은 마당을 청소하기 시작했는데, 방금 집주인이 폭죽을 사서 놓고, 이웃들이 들어와 폭죽을 놓는 바람에 바닥 가득 쓰레기를 남겨 두고 나간 탓이었다.

“말 못 할 게 뭐 있어, 그냥 떨어진 거야.”

조문헌은 목소리를 낮추었다.

“시험 치르고 나서 결과가 좋지 않을 것임을 알았어. 다만 희망은 안고 있었지. 내가 쓴 답안이 주임 시험관 마음에 들지도 모르는 거니까. 솔직히 1년 동안 국자감에서 공부하느라 보낸 시간이 임산현에 공부할 때보다 더 짧았으니 낙방한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닌 내 탓이 크다.”

그가 이렇게 자신을 분석하자 고청운과 하겸죽 모두 깜짝 놀랐다.

조문헌은 말을 마친 후, 매우 쓸쓸하게 한숨을 쉬며 그들을 다시 한 번 쳐다보고는 돌아서서 또 한마디를 던졌다. 

“나는 어젯밤에 잠을 설쳐서 피곤하네. 좀 있다가 점심 먹을 때 밥 먹으라고 나를 부르지 말아줘.”

조문헌이 떠나자, 고청운과 하겸죽은 서로의 얼굴만 쳐다볼 뿐이었다.

하겸죽은 쥘부채로 손바닥을 한 번 내리치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둘은 보궐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어. 이번 향시에서는 합격자 50명, 보궐 합격자는 10명을 뽑았는데, 우리는 보궐 명단의 2위와 10위에 각각 이름을 올렸지. 어쨌든 조문헌은 자기 순위에 만족하지 못하겠지만, 나는 만족해. 내게 그간 학문적 발전이 있었던 것 같고, 다음에는 합격할 수도 있잖은가? 우리 하씨 가문에서 아직 단 한 번도 거인을 배출 한 적이 없기에 나는 유일하게 보궐 합격자 명단에라도 이름을 올린 수재가 되었어.”

자기보다 나은 사람보다는 좀 못하고, 자기보다 못한 사람보다는 좀 낫다고 하는 말도 있지 않는가. 하겸죽은 자신이 발전이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 되었다고, 다른 사람과 비교할 필요도 없고, 비교도 안 되고, 모든 사람의 상황도 다르다니, 계속 생각해봤자 자신의 평정심을 잃게 만들 뿐이라고 말했다. 몇 년 전만 해도 누가 고청운처럼 10살 밖에 안 되던 그가 어느 날 해원을 하고, 정5품관 벼슬을 지닌 사람을 스승으로 섬길 줄이나 알았겠는가.

사람의 운명은 참으로 종잡을 수 없는 것이라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하겸죽의 생활은 비교적 행복하고 원만했다. 그 덕에 지금 그의 마음은 매우 평온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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