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화. 석차
“시험은 어땠어요?”
고청운이 또 물었다. 두 사람은 올해 고하와 임요조의 결혼식 때, 단 한번 만났을 뿐이었다.
결혼식을 떠올리니, 고청운은 고하 생각이 났는데, 이번에 그가 향시에 참가하러 가자 뜻밖에도 자신에게 은 10냥을 보내왔다. 자신은 돈이 부족하지 않았기에 한사코 받지 않으려 했으나, 그녀 역시 기어코 주겠다며 그녀는 돈이 부족하지 않다고 말했다.
보아하니 고하는 임씨 집안에서의 입지가 굳건해진 것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는 은 10냥을 단번에 내놓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할 수 있는 건 다 했고, 못하는 것마저 다 써 냈어요. 겨우 시간에 다 맞춰냈죠.”
황언성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아직 경지에 이르지는 못한 듯해요.”
고청운은 묵묵히 있었다.
날이 밝기를 기다리며 붙어 앉아 있던 두 사람은, 왠지 모르겠지만 몸과 마음이 아주 피곤하면서도 머릿속의 생각을 놓을 수가 없어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3년에 한 번씩 이렇게 시험을 치러왔는데도 여러 번 낙방을 하면, 정말 절망스러울 때가 있지요.”
황언성이 한숨을 섞어 말했다.
고청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한 전라의 모습으로 크게 웃으며 그들을 지나쳐 뛰어다니는 중년 남성을 보게 되었다. 뒤로는 2명의 순찰병이 뒤쫓고 있었는데 곧 중년 남성은 병사의 손에 잡혀 강제로 겉옷을 걸치고, 입안에는 누더기 천을 물린 채, 끌려나갔다.
이게 몇 번째지? 고청운은 치렀던 2번의 향시를 생각해 보니, 시험을 끝까지 치르다보면 꼭 마지막에 미친 사람이 나타났다. 정말 미친 사람인지 아니면 잠깐 정신이 나간 사람인지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처음에는 아연실색하였으나, 지금에 이르러서는 태연하기 그지없었다. 어안이 벙벙하긴 하나 지금까지는 침착한 상태였다. 처음에는 옷을 입지 않는 사람을 보고 얼굴뿐만 아니라 귀까지 붉어졌었는데, 지금은 한가하게 남의 몸매를 보는 것뿐만 아니라 은연중에 자신의 몸과 비교해 보기까지 하였다.
자신의 ‘일찍 일어나시는 새님’이 조금 더 큰 것 같긴 했다. 그는 속으로 이중 자신만큼 큰 사람은 없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눈 깜짝할 사이에 자신이 너무 보잘 것 없는 사람으로 느껴졌다. 이딴 것이나 비교하고 있다니, 정말 사악하지 아니한가! 자신은 분명히 시험을 치르다 보니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뿐이지, 결코 자신이 옹졸해서 이런 것이나 비교한 것은 아니었다!
드디어 시험장을 나왔을 때, 고청운은 온몸이 나른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번에는 그의 시험장 여건이 아주 좋아서, 고대하에게 발견 된 후, 바로 업혀져 스스로 걸을 필요가 없었고, 곁에서 고삼원이 호리병에 든 따뜻한 물을 건네 고청운이 마실 수 있게 해주었다.
‘이런 게 바로 친아버지지!’
고청운은 고대하가 마치 자신의 몸에서 나는 시큼한 냄새를 맡지 못한 것 마냥, 미간 한 번 찌푸리지 않고 바로 자신을 업어주는 것을 보았다.
“아버지, 제게 너무 잘해 주시는 것 같아요.”
고청운은 참지 못하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고대하는 살며시 씩 웃더니 다시 급히 말했다.
“말하지 말고 어서 쉬기나 해라.”
고청운은 입을 오므리고 조용해지기 시작했다. 그는 이번에 시험에 합격하기를 얼마나 바래왔는가. 그래주기만 하면 그의 아버지도 다시는 실망하실 일이 없을 것이다. 그는 가족이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기를 바랐다.
* * *
성적을 기다리면서, 고청운은 다음 이야기 책 내용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돈벌이란 무릇 영원히 움직이는 것이었다. 지난번에는 도를 닦는 도사 이야기를 썼으니, 이번에는 선인의 무협이야기를 약간의 신화를 곁들여 쓸 요량이었다. 그 이야기는 이 시장에서 독자들이 원하는 입맛에 부합할 것이었다.
빼어난 외모의 범상치 않은 실력을 겸비한, 하지만 또 정이 많은 주인공과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 같은 미모의 여주인공, 그리고 귀여우면서도 강한 힘을 지닌 애완동물까지. 다채로운 세계관, 주인공이 모험을 통해 가족 간의 정, 그리고 사랑과 우정을 얻는 이야기였다.
분명 보는 독자가 있을 것이었다.
일단 대략적인 개요를 쓰고, 여기에 5만 자를 써서 물 타기를 해볼 것이었는데, 제목은<오천선협전(傲天仙侠传)>이다.
일전에 그가 완결을 내지 않고 몇 번인가 연재중단 하자, 주위의 사람들이 ‘일침황량’에 대해 성토했던 것을 생각하면, 고청운은 가슴이 철렁했다. 방자명 뿐만 아니라, 기혼자인 하겸죽과 조옥당마저 즐겨 보고 있었던 것이다.
내일이면 성적 발표가 있는 날이었다. 고청운은 5만 자를 다 베껴 쓴 후에, 계속 먹을 갈고 있는 고삼원에게 말했다.
“삼원아, 먹을 더 갈을 필요 없다. 이미 다 썼어. 우리 아버지는? 그리고 또, 하 사형과 조 사형이 주변에 있어? 그들은 뭘 하고 있는지 알고 있니?”
“아버님과 하씨 족숙님께서는 야시장을 구경나가셨어요. 하씨 도련님과 조씨 도련님은 여기 계시는데, 두 분 모두 달구경 중이셔요.”
고삼원은 눈을 깜빡이며 붓과 벼루를 씻을 준비를 했다.
고청운은 일순 어리둥절해하며 머리를 내밀어 하늘을 살폈다. 날이 채 어두워지지도 않았는데 무슨 달구경?
그는 눈썹을 솟구치며 고삼원에게 말했다.
“먹물이 마르기를 기다렸다가 순서대로 종이를 접어두어라. 섞어 두면 안 된다는 거, 잘 기억해두고.”
고삼원은 신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그는 간단한 갖은자(*한자로 나타낸 숫자)와 숫자를 배워 알고 있었다.
고청운은 소매를 털어대고 고개를 돌려가며 우물 쪽으로 걸어갔는데, 과연 하겸죽과 조문헌이 마주 앉아있었다. 그들 가운데에 둥근 탁자가 있었고, 그 위에는 맑은 차가 담긴 주전자와 몇 개의 잔, 그리고 월병 한 상자가 놓여있었다.
비어있던 의자에 앉은 고청운은 모기향 냄새를 맡으며 미소 띤 얼굴로 물었다.
“대보름 16일도 아니고 오늘 밤은 29일인데 하늘에 달이 뜨겠어요?”
“뜰 거야.”
하겸죽이 웃으며 월병을 내밀었다.
“하씨 아저씨께 부탁해서 사온 건데, 우린 이미 먹었으니 너도 좀 먹어.”
고청운은 흘끗 보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저는 밤에 이렇게 달고 느끼한 건 안 먹어요.”
사실, 그는 저녁을 다 먹은 후 후식을 먹는 일이 거의 없었다. 몸을 관리하기 위함인데, 그렇기에 음식을 탐하거나 하지 않았다.
조문헌은 빙긋 웃으며 옆에 있던 조삼에게 끓인 물 한 잔을 따라 오라고 분부했다.
“감사합니다. 조 사형. 역시 사형께서 절 잘 아시네요. 경성에서 돌아온 이후에 더 배려해 주시는 것 같아요.”
고청운이 웃으며 말했다. 예전엔 이렇게까지 잘 챙겨주지 않았는데, 자신이 가장 잘 마시는 것이 찻물이 아닌 맹물이라는 것까지 기억을 해주다니.
조문헌은 그를 노려는 보았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겸죽은 억울했다.
“너 배고플까봐 권한 건 아니었거든?”
고청운이 헤헤 웃었다.
세 사람은 달맞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마음은 전혀 달빛에 가있지 않았다. 모두들 한마음으로 초조해하고 있었다.
“만약 이번 시험에 급제하면, 3년 뒤에 열리는 회시에 다들 참가해 볼 건가?”
조문헌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고민하던 고청운은 머리를 흔들며 말했다.
“그때 가서 다시 상황을 봐야죠. 회시는 하(夏)나라 전체가 보유하고 있는 거인들끼리 경쟁을 해야 할진데, 우리 군에서 기용된 사람들은 아직 경쟁력을 갖추지 못했어요. 강남 쪽 거인들은 대단하잖아요.”
본 왕조의 국호는 '하(夏)'였다.
두 사람은 말없이 있다 문득 방자명이 생각났다. 그들 부자는 올해 3월 경성에 가서 시험을 쳤는데, 기존 계획보다 배가 넘는 인원수의 합격자를 발표할 예정이라고 해서 괜찮게 급제할 것이라고 생각했었으나, 그들 두 사람 모두 낙방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장수원은 양 대인의 압박에 시험을 치러 가지 못했다고 했다. 만약 시험을 쳤다고 한들 결과가 좋지는 않았을 듯했다.
전체 월양군 지역 내에서는 총 3명만이 진사로 승급했고, 그중 한 명은 동진사였다.
이러한 합격률을 생각하면 절망스러웠다.
고청운은 지금 자신이 학문적 성취가 향상되었다고 생각하지만서도, 3년 후의 회시에서 합격하리라고는 장담할 수 없었다. 물론 그가 3년 동안 경성에 가서 방인소의 가르침을 받는다면, 가능성은 아마 어느 정도 있겠지만, 지금의 이 정도로는 안 될 말이었다.
잠시 뒤 고대하와 하겸죽의 족숙은 먹거리를 잔뜩 사들고 돌아왔다.
고청운은 유혹을 뿌리치고 따라서 먹지 않았다. 차라리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도움이 되기에 방으로 돌아가 씻을 준비를 했다.
막 다 씻고 나와 머리 물기를 닦고 있는데, 고대하가 막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어지간히 초조한 듯 왔다 갔다 하다가, 고청운이 먼저 묻는 것을 기다리지 못하고 결국 실토하듯 입을 열었다.
“전자야, 또 네가 급제하는 것에 돈을 걸고 왔다. 방금 순간 충동적으로, 네가 해원이 되는 것에 3배로 돈을 걸었다. 돈을 다섯 냥이나 걸었단다.”
고청운은 듣자마자 눈을 크게 뜨고 그를 보며 나지막이 소리쳤다.
“아버지, 5년 전에 다시는 도박을 하지 않으신다고 약조하지 않으셨나요? 또 이런 일을 벌이시다니. 아버지, 정말 너무하신 것 아닙니까!”
여간 그만 두기가 힘든 모양인데, 고백산이 알게 되면 죽사발이 될지도 몰랐다.
“네가 급제하는 것에 돈을 걸면 1:1인데, 사람들이 다 네가 급제할 것이라 생각했기에 돈이 되지 않더구나. 내가 보아하니 사람들은 네가 1등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게 보였다. 아주 맘이 조급해지지 않았겠더냐. 급한 마음에 덜컥 걸어버렸지. 괜찮다, 아비는 아주 냉정했어. 은자 5냥밖에 들이지 않았다.”
고대하도 조금 거북스러웠던 듯 손을 비비며 말했다.
고청운은 입을 삐죽거리며 외면했다. 그는 자신이 급제하는 것에 있어서는 가능성이 아주 클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해원에 등극하려면 반드시 운까지도 따라줘야 하는 일이었다. 게다가 자기 스스로는 그렇게 운이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10등 안에만 들 수 있어도 아주 만족스러울 터였다.
이날 밤, 고청운은 밤새 잠을 설쳐 중간 중간 계속해서 잠에서 깼다.
날이 채 밝기도 전에, 그들은 서로 합격자 명단을 확인하러 가기로 약조했었지만, 고청운은 몸이 너무 피곤한 나머지 아예 가지 않기로 했다.
어렴풋이 그는 시끄러운 소리와 발자국 소리를 들었는데, 그 소리가 점점 그에게 가까워졌다.
고청운이 어렵사리 눈을 뜨자, 문이 '쾅' 하는 소리와 함께 폭발하듯 거칠게 걷어차이며 열렸다. 그의 아버지가 머리가 산발이 되어 그에게 뛰어 들어오고 있었다. 고대하의 얼굴에 희열이 넘쳐흐르는 것이 보였다.
고대하가 거칠게 헐떡이며 소리쳤다.
“전자, 전자야! 네가 장원급제를 했다. 네가 해원에 등극했더구나. 네가 해원이 되었어!”
해원?! 고청운은 벌떡 일어나 아직 잠이 덜 깬 것은 아닌지 의심했다.
“아버지, 잘못 보신 것은 아니죠?”
그는 마치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자신의 목소리를 되찾은 것 같았다.
고대하의 입이 매우 크게 벌어져 있다가, 고청운의 말을 듣자마자 힘차게 머리를 저었다.
“그럴 리가 없다! 내가 잘못 볼 것이 따로 있지, 네 이름을 잘못 보겠느냐! 게다가 나만 확인 한 것이 아니야. 다른 이들도 다들 네 이름을 보았다! 네가 정말로 해원에 등극한 것이 맞다!”
그는 말하면서도 아직 숨을 헐떡거렸는데, 이마에도 아직 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있었다.
고청운은 이 말을 듣자마자 마음속에 희열이 가득 차, 두 손을 꼭 부여잡고 숨을 죽여 한참을 기다리고선, 비로소 큰 숨을 한 번 내쉬고 이 사실을 받아들였다.
사실, 이 결과는 매우 의외였지만 납득하는 게 그렇게 어렵지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