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화. 수염
두 번째 시험은 책론과 시부였다. 시부는 한 문제뿐이라 고청운은 어렵지 않게 답을 쓸 수 있었다.
다만 책론의 답안은 원래 신경을 좀 써 줘야 하는 문제들이었다.
첫 번째 정책관련 문항이 묻는 대략적인 내용은, 지금의 현학, 주학에서의 수재 관리가 더 엄격해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고청운은 이 문제를 보자마자 자신의 현 상황에 대한 이해에 관해 묻고 있는 것임을 깨닫고 더욱 정신을 집중했다. 그의 관점은 물론 현재의 관리 방식이 매우 좋고 아주 절묘하여 실생활에 부합한다는 것이었다.
생각해보라, 수많은 수재들을 전생에서의 고3 수험생들처럼 관리한다고 생각해보면 고청운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풀어놓다가 이제 와서 비로소 엄격한 관리를 도입하겠다니, 가당키나 한 일인가? 그들은 군인들도 아니고, 게다가 수재들의 연령도 들쭉날쭉하여, 수재마다 각자가 집에 처자식들이 있었다. 그런 사람들을 한데 모아 숙소생활이라도 시켜 관리하기라도 할 것인가? 그럼 그 국가의 후손 양성대계는 언제 이뤄지느냔 말이다.
만약 개국 초기 때부터 엄격하게 관리해 왔었다면 당연히 실행에 문제가 없었을 텐데, 지금은 개국한 지 시간이 너무 오래 지났고, 현학 등지에서 무슨 문제가 발생된 적 또한 없었다. 심지어 현학에는 가르치는 선생님들마저 인원수가 모자라는 마당에 이 모든 사람들을 한데 구속하듯 몰아넣고 관리를 한다고 하면 이게 무슨 좋은 작용이 일어날까. 이럴 바에야 엄마를 찾아 다들 자기 집으로 해산시키는 것이 더 나았다.
주임 시험관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이런 문제를 기출하다니. 그게 아니라면, 설마 조정의 큰 윗사람이 이런 문제를 내게 한 것일까?
자신은 이번 시험에 반드시 붙어서 수재가 아닌 거인의 신분이 되어야 했다.
만약 조정에서 이렇게 거행하겠다고 해버리면, 마치 자신이 전생에 보았던 명나라 시절과 마찬가지로 너무 엄하게 단속하다가 절대 뜻대로 되지 않거나, 뜻밖의 일로 낭패를 보게 될 형국이 초래할 것이었다.
답안을 다 작성한 후, 고청운은 상당히 만족하였음에도 잠시 생각해보고는 고사와 경전의 명언을 약간 다듬어야할 것 같아, 서둘러 다시 써서 잘 다듬어 보고 나서야 비로소 시험지에 베껴 쓸 수 있었다.
책론 문항의 몇 문제를 다 풀고 나서, 고청운은 그제야 이 기출 문제 내용들이 오늘날의 정치, 경제, 군사, 교육 등에 이르기까지 매우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문제들로 구성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모두 매우 구체적인 사실들로써 응시생들로 하여금 이런 사회적 문제에 대한 명확한 해결방안을 제시하라는 요구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엄청 실용주의적이야.’
고청운은 내심 기뻐하면서 자신에게 유리한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말단 조직에 대한 해결책 제시를 요구하는 문항들이 주로 그러했다. 이와 관계 된 것이 그에게 장점으로 작용했다.
‘북방 경계선 부근 유목민족과의 호시(*互市: 변경 지역 또는 항구에서 외국 또는 다른 민족과 교역하는 것) 개방을 계속해야 하는가’라는 책론 문항도 고청운에게 유리했던 문항이었는데, 그는 당연히 긍정적인 답안을 제시했다. 그는 당연히 계속해야 한다는 주장을 위해 그가 사는 임산현의 소, 양, 말의 개체 수 증가를 논증 사례로 제시했다. 가격이 너무 높아 실거래가 없었던 수준에서 지금은 각 소와 당나귀의 개체별 구체적인 가격이 매겨져있었다. 게다가 소와 같이 경작에 필요한 가축들이 늘어나, 사람 대신 논을 경작해주어 투입 인력을 크게 줄일 수 있었다. 이렇게 논 경작에 투입되던 기존 인력들이 다른 일감을 담당하면서 결국에는 가정의 총 수입을 늘리는 결과에까지 발전하였다.
고청운은 문장 말미에서는 한 문단을 더 추가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목민족의 늑대 같은 야심은 또 반드시 경계해야 한다고도 썼다. 이들과 관계를 지속해 나가되, 반드시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고 썼다.
여기까지 쓰고 나자, 고청운은 이런 유목민들이 전생의 세계에서의 청(淸)나라가 아닌가 싶었다.
예상되는 바가 있었기에 고청운의 글쓰기는 매우 순조로웠고, 어찌 쓸지 몰라 생기는 난처한 고뇌도 없었으며, 심지어 그 곤란한 시문조차도 순조로이 잘 답하고 나자, 스스로 중등 이상의 수준은 될 것 같다는 평가를 해보았다.
‘어차피 타유시(*打油詩: 운율에 얽매이지 않는 통속적인 해학시)는 아닐 테니까!’
고청운은 방인소에게 비웃음을 당했던 때가 생각났다. 군성에 시험 보러 오기 전, 간미는 문득 고청운에게 보낸 시집이 모두 손수 쓴 책들로, 모두 자신이 직접 몇 년 동안 지은 시라고 밝혔다. 시집에 표기된 주석에도, 남들에게 보인 적 없는 구절이니 잘 봐 달라는 글귀까지 적혀있었다.
그는 당시 그 글을 보고 적잖이 놀랐다. 이렇게 뛰어난 시문을 쓰다니, 미래의 부인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 중 몇몇은 여성들만의 이념이 들어간 생각들이지만 그래도 일부 시문은 기개가 꽤 웅장했었는데, 만약 간미가 쓴 시구였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시를 접했더라면 일말의 여성스러움을 풍기지 않던 이 시를 보고 아마도 2, 30대의 남성이 지은 시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지금 그는 문득 간미의 ‘남들에게 보인 적 없는 구절’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매우 의미심장한 것 같은 느낌을 풍기던 그 말, 특히 지금 시부 문항에서 요구하는 작문법에 매우 부합하였다.
그가 졸렬하게 행동한다면 그 구절을 고쳐 그대로 답안으로 제출할 수 있을 정도였다. 지금 자신이 작문 중이던 시구보단 절대적으로 나을 것임이 분명했다.
게다가 고청운과 간미, 두 사람만 이 시구에 대해 알고 있을 뿐 그가 베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사람도 없었다.
고청운은 턱을 만지작거리다가 수염에 손을 찔렸다.
‘우울하다. 수염이 자라나버리다니!’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으나, 자신의 턱을 만졌을 때 솜털 같은 수염이 난 것을 발견했다. 이 때문에 그는 하겸죽과 방자명을 찾아가 깎아야 하는지 물어보았는데, 그들은 깎아버릴 필요는 없다며, 20세가 되어 관례를 치룰 때까지 기르다가 그 후에 깎으라고 알려줬다.
수염이 자라는 속도는 사람마다 달랐다. 고청운의 벗들 중 조옥당의 수염이 가장 숱이 많고 자라는 속도도 빨랐으며, 구레나룻의 연장선으로 자랄만한 잠재성을 보이고 있었다. 방자명, 하겸죽, 조문헌은 오직 턱과 입술 윗부분에나 조금 자라났는데, 그들은 고청운과 마찬가지로 입술 위쪽에 자란 수염은 개의치 않아 했다. 제일 중요한 것은 턱에 난 수염이었는데, 아직 솜털 수준으로 자라, 범위도 작고, 만져보면 손에 까끌거리는 느낌은 있으나 멀리서 보면 보이지도 않았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그는 안 그래도 걱정이 태산인데 자신의 심리적 상태가 생리적인 부분에 영향을 주어, 분비되는 안드로겐이 충분하게 분비되지 않을까, 만약 자신이 남자도 여자도 아니게 변하면 어쩌지, 이후에 생식능력이 없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 등의 고민이 생겼다.
다만 매일 아침마다 기둥 하나로 하늘을 떠받치고 있으니, 그쪽으로는 문제가 없을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민간요법은 해본 적이 없어 아직 신뢰가 가질 않았다. 안심할 수만은 없었다.
고청운은 그래도 의학 상식이 좀 있어서 언젠가 고대하에게 이에 대해 물어봤더니, 그 또한 어린 시절에 수염이 풍성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에 고청운은 안심이 되었다. 유전이라지 않는가?
본론으로 돌아와서, 고청운은 자신이 쓴 시를 보고, 기억 속 간미가 쓴 시 구절을 생각했다. 만약 자신이 쓴 것이 중등 정도의 수준이라면, 그녀가 쓴 것은 상등 수준이었다. 만약 자신이 그 시를 베낀다면…… 그는 간미가 이 일을 절대 발설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실은 그녀도 아마 평생 이 일을 알지 못할 것이다. 일반적인 향시 시험지는 외부로 유출되지 않기 때문이었는데, 만에 하나 유출된다 한들 그녀가 보리라는 법도 없었고, 외부로 전해져도 반드시 볼 수 있는 것은 아닐 터였다. 유출되었을 때면 그때 그녀는 이미 자신의 아내가 되어 있을 것이기 때문에, 두 사람은 함께 한 사람이 부귀해지면 따라서 부귀해지고, 한 사람이 망하면 따라서 같이 망할 것이었다.
게다가 그녀의 말을 생각해보면, 마치 자신으로 하여금 그녀의 시를 비축분으로 삼으라는 말 같지 않았던가? 그런 뜻이 분명 내포되어 있었을 것이다.
고청운은 눈을 감은 채 생각에 젖었는데, 마음속으로는 격렬한 투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서서히 음식 냄새가 느껴졌다. 이것은 그가 방금 끓인 산채밥 냄새였다. 이제 조리가 다 된 듯 먹어도 될 것 같았다.
맞은편의 응시생들이 코를 막고선 먹물을 갈며 원망을 담아 고청운을 노려보고 있었다.
고청운은 상대방을 한 번 노려보고는 자신이 쓴 시를 채용하기로 결정했다.
‘그래, 됐다. 남을 속일 수는 있어도 나 자신까지 속일 수는 없는 법. 궁지에 몰려 목숨을 걸어야 할 일도 아닌데, 구태여 양심에 거리끼는 일은 줄여야 그만큼 더 떳떳하게 살 수 있으니까.’
'나는 하루에 세 번 자기 자신을 반성한다'라는 좋은 습관은 계속 유지해야 할 것 같았다.
고청운은 한 고비를 이겨낸 기분이라, 마음이 매우 유쾌해져서는 아예 문제를 풀지 않고 점심을 먹은 뒤 잠을 청했다.
세 번째 시험 역시 잡문, 법률, 경의와 시부로 작년 그대로였다.
다만 지난해 향시에 비해 잡문과 율법의 문항 수가 많아졌다. 경의는 오경서(五經書)에서 두 문제 출시되었고, 시부는 한 문제밖에 없었다.
고청운은 앞선 2개의 시험이 순조로웠기에, 3번째 시험 문제를 확인하고는 자신이 이번 시험에 합격할 확률이 높다고 생각했다.
* * *
8월 17일 정오, 고청운은 정식으로 시험을 끝냈다.
시험지를 제출 한 후, 고청운은 황언성과 이야기를 나눴다. 이번에도 그들은 같은 복도 내에서 시험을 치렀는데, 정말 인연이 있는 셈이었다.
황언성은 여전히 기운이 없어서 고청운이 끓여주는 음식 덕분에 요기를 했다.
“1년 동안 집에서 매일같이 하루에 8리(*약 3km)를 걸으니, 건강하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왜 똑같은 시험을 보면서도 청운은 밥 할 정신까지 있는데, 나는 왜 찐빵만 뜯는 걸까요.”
황언성은 죽을 먹고서야 정신을 좀 차리고는 고청운에게 푸념을 늘어놨다.
고청운은 생긋 웃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그 악취 나는 방을 배정받지 않았기에, 냄새와 싸우느라 애쓰지 않아 마음이 편한데다, 시험 문제가 비교적 잘 풀려 기분이 좋았고, 또 그는 항상 체력을 단련하고 있었다. 그래서 9일을 버티는 것은 아무 문제도 없었다.
비록 좀 피곤하기는 하고, 또 체중도 좀 가벼워진 것 같았지만, 아무렴 저번에 비해서는 정말 많이 좋아졌다.
“이번엔 합격할 수 있겠지요?”
황언성은 팔꿈치로 그의 팔을 툭 쳤다.
“모두들 네가 합격할거라고 말하고 있어요. 저번에 보궐 명단에서 1등이었으니. 조금만 더 했으면 그때 이미 합격하는 거였는데.”
“단정할 수는 없지요.”
고청운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 시험은 은식이잖아요. 작년에 시험을 치르지 않은 사람도 올해 시험은 치렀다고 해요. 보아하니 인재가 차고 넘치는데, 임수부의 수장급인 송인(宋寅)만 봐도 대단하지 않아요?”
황언성이 생각해 보니 그 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