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화. 약혼 (3)
이렇게 고청운의 곁에는 고씨 일가의 가족인 조카 고삼원이 한 명 더 생기게 되었다. 기본적으로 심부름 등을 도와주는 것이 그의 임무였지만, 고삼원은 매우 부지런하고 몸이 날래서 빨래도 하고 밥도 할 줄 알았다.
소진씨는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고삼원에게 어떻게 국을 끓이고 요리를 해야 고청운의 입맛에 맞을 수 있는지를 참 열심히도 가르쳤다.
고청운은 또 그에게 틈만 나면 글씨를 가르쳤고, 데리고 다녀야 했기 때문에 예의범절도 가르쳐야 했다.
고청운은 누군가가 자신을 도와 발품을 팔아준다는 것이 정말 매우 편리하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전 같았으면, 그는 하겸죽을 찾아 시간을 정해 주점에서 술을 한 잔 하려고 해도, 모두 자신이 직접 한 번은 다녀와야 했었고, 그가 어떤 물건을 간씨 집으로 보내려고 할 때면 자신이 직접 뛰어다니며 일을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 귀찮아도 늘 문으로 들어가 인사를 해가면서 작은 일을 크게 처리해야만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고삼원이 같이 일을 봐주는 덕에 그가 공부를 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수많은 자질구레한 일들을 자신이 직접 하지 않아도 되게 된 것이다.
특히 고삼원은 책을 집필할 때 먹을 갈아주는 등, 적지 않은 힘과 시간을 절약할 수 있게 해주었다.
현재 그의 <이림수선기>는 이미 대미를 목전에 두고 있었다. 이 5만 자를 다 완성하고 나면 고청운은 잠시 글 쓰는 것을 멈추기로 했다. 향시가 다 끝나면 다시 붓을 잡을 예정이었다.
하림에게 있어서는 아쉬운 소식이었지만은 사정을 이해해주었다. 그는 돈을 잘 벌어다주는 소설이 이렇게 빨리 완결을 내게 된 것이 못내 아까웠다.
고청운은 이제 이 소설을 마무리해야 할 때라고 생각했는데, 벌써 2년을 집필하는 동안 이미 시중에 한 시대를 풍미할 그의 작품이 나와 있었다.
하림의 말에 따르면, 그의 ‘일침황량 (*一枕黄粱: 허황한 꿈)’이라는 필명은 이미 한 무더기의 애독자를 만들어 냈는데, 지금은 그 필명의 작가가 새 책을 내기만 하면 틀림없이 많은 사람들이 돈을 내고 살 것이라고 했다.
고청운은 기분이 좋았다. 한 무더기의 애독자가 생겼다니 집필은 앞으로도 계속 해야 할 것 같았다.
* * *
시간이 빠르게 흘러 고청운은 이틀에 한 편씩 책론과 시를 써서 간지원에게 첨삭을 청했다. 간지원이 자기에게 글에 대한 해설을 해 준 후, 다시 문제를 내서 답하는 방식으로 계속해서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간씨 집안에 아기씨가 꼬박 만 3개월이 되었다. 시간으로 따지면 이미 8월이 도래한 것으로, 군성으로 떠나야 할 시기가 온 것이다.
8월에 고청운이 아는 많은 사람들이 과거시험을 치른다고 했다. 하겸죽, 조문헌은 향시를 응시하고, 고청명, 조옥당, 하지는 원시에 응시하기로 했다.
고청량은 이번 현시에는 급제하였으나, 부시에서 낙방하여 고청명을 따라 근처의 부성에 가서 그들을 돌봐주는 것 밖에는 할 수 없었다.
고청운의 경우 이번 시험 장소에 그의 아버지와 고삼원이 함께 따라가기로 하였는데, 집안 식구들이 고삼원이 같이 간다니 불안해했다. 그는 아직 너무 어려서, 누가 누구를 돌봐주겠다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이번에 군성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먼저 조문헌을 찾아갔는데, 그는 일찍이 경성 국자감에서 돌아와서 곧장 군성에 머무르고 있었다. 이미 전셋집을 마련하여 미리 편지로 주소를 알려줘 객잔을 찾아다녀야 했을 불편함을 덜게 해주었다.
1년 만에 만난 조문헌은 고청운이 몰라볼 정도였다.
모두가 서로에게 인사를 한 후, 방에 들어가 물건을 정리했다. 다만 고청운, 하겸죽, 조문헌 세 사람만이 우물정 모양의 칸막이 안에서 서로 얼굴만 쳐다볼 뿐 어찌 할 바를 몰라 했다.
“문헌 사형, 1년 만에 뵙는군요. 못 알아 볼 뻔했어요.”
고청운이 힘껏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건 좋게 변해서 그래? 아님 나쁘게 변해서 몰라본 거야?”
조문헌은 웃으며 말했다. 가늘고 긴 눈에 웃음이 서렸다.
고청운은 그를 자세히 살펴보았는데, 이전의 조문헌은 나약함 속에 음침함까지 띠고 있었다면, 지금의 그는 나약해 보이는 면모에 깊이감이 더해져 갑자기 몇 살이나 더 성숙해진 느낌이었다.
하겸죽도 비슷한 생각을 한 것 같았다.
“물론 좋게 변한 해서 그렇죠.”
“맞아.”
두 사람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조문헌이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세 사람은 대청에 앉아 국자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국자감에 대해 말하자면, 조문헌은 미간을 약간 찡그리며 말했다.
“국자감 내부에서의 관계는 복잡하게 얽혀 있고, 나는 아직 갈피를 잡지 못했어. 그곳에서는 내 신분이 너무 낮은 탓에, 지금 나는 심부름꾼 정도나 되는 존재야. 그곳은 마음 놓고 공부만 하기는 힘들어. 처음 갔을 때는 물 쓰듯 돈이 나가더라. 지금은 좀 나아졌어. 됐다, 이런 얘기는 더 하지 말자. 너희들 이야기를 좀 해줘 봐.”
고청운과 하겸죽이 서로 마주보았다. 그가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게 보였고, 또 강요하고 싶지도 않았다. 어차피 고향을 등지고 떠나면 고생할 수밖에 없었다. 잘 지내기가 쉽지 않겠지만, 지금 정신 상태는 괜찮아 보이는 것을 보니, 고청운과 하겸죽은 마음이 좀 놓였다.
1년 동안 만나지 못했으니, 세 사람은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각자 자신의 현황을 알렸다.
고청운은 이미 약혼을 했다.
조문헌은 아직 아이가 없었다.
하겸죽은 그의 뚱뚱한 아들 때문에 투덜거렸다.
그들은 옛일을 잠시 회고하다가, 시간이 조급해져 모두들 다시 복습을 시작했다.
* * *
8월 초아흐레에 그들은 다시 시험장에 들어섰다.
이번에 고청운은 자신의 호실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한 줄로 늘어선 방의 중간 정도에 위치하고 있었고, 물 긷는 곳과도 멀지 않았다. 드디어 악취가 진동하는 호실을 벗어난 것이다.
실은, 작년의 그 향시에 처했던 상황은 그에게 너무 깊은 영향을 남겨 지금은 거의 결벽에 가까운 사람이 되었다. 늘 손을 씻고 또 씻는데, 목욕할 때는 껍질을 한층 벗겨낼 수 없는 것이 한스러울 정도로 사람이 변했다.
이번에는 이런 곳에서 9일을 보내야 한다면, 나름 좋은 조건이었다.
그렇게 첫 시험이 시작되었다. 시험지가 배포되자, 고청운은 너무 불안한 마음에 재빨리 제목을 훑어보았다.
시험에는 뜻밖에도 시부 문항이 출제되지 않았다!
‘시부가 없다니!’
고청운은 깜짝 놀랐다. 보아하니 경의와 산술, 이 두 과목으로만 점수 비율이 7:3이라는 점이라는 것이 그를 매우 놀라게 했다.
첫 번째 문제를 보니, 사서에 나오는 경의 문항이었다.
[요임금의 은덕은 넓고도 넓어 백성들이 그 어떤 말로도 칭송할 길이 없다! 숭고하여라, 요임금이 이룩한 업적이여! 찬란하게 빛나도다, 요임금이 만든 예의법도여!] (*荡荡乎, 民无能名焉. 巍巍乎,其有成功也,焕乎其有文章!)
이 문제는 틀에 딱 박힌 경의 문항의 전형적인 출제 유형으로, 아주 평범해 보이지만, 사실 <논어·태백>편 중, 공자가 요임금을 칭송하는 장면에서 등장하는 글귀였다.
고청운이 잘 생각해보니 이 문장은 공자가 요임금을 칭송하는 말이자, 요임금의 공적에 대한 찬사가 묻어나는 문장이었다.
‘이 문장…… 지금 우리가 시험을 치룰 기회를 한 번 더 얻은 것은…… 은식 덕분이 아닌가. 은혜 은 자가 들어간 그 은식(恩式)이란 말이지. 이 상황을 잘 연결 지으면……’
그는 생긋 웃으며 어떻게 문제를 풀어야 할 지 알 것 같았다.
문제를 풀 때는 반드시 옛 성인 및 선현들께서 천지만물을 발전시킨 것에 대한 찬미를 우선 언급하고, 요임금이 백성을 위해 어떤 일을 했고, 어떤 현인들을 국정에 기용했는지 짚어야 하며, 그 다음에는 본 왕조에서 황제폐하의 영명하고 위풍당당하신 모습을 칭송하여 겸사겸사 충심을 내비치고 앞으로는 반드시 분발하여 위대한 황제를 보필하여 백성들을 위한 크나큰 사업을 일으키겠다 등의 내용을 서술해야 했다.
고청운의 영감이 샘솟듯 떠오르자, 몇백 자라는 그 방대한 양을 거침없이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다만 검토하다 보니 갑자기 자기가 너무 아부하는 내용만을 쓴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약간만 함축적으로 바꿔봐야 하나?
그가 맞은편을 보고는 모두가 열심히 문제를 풀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희미하게 눈살을 찌푸려가며, 그는 방인소와 자신이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는데, 때는 바야흐로 막 선황의 승하 소식을 들었을 때 즈음의 대화였다.
“스승님, 폐하께서는 어떤 분이신지요? 지금 연세는 어찌되실까요?”
막상 말을 꺼내고 보니 이 왕조 최고의 만인지상의 나이조차 못 헤아리고 있었다니. 물론 지금 새로이 등극한 새 황제는 만수절(*万寿节: 황제의 생일)을 한 번만 지내면, 온 천하의 관리들이 그의 나이와 생일이 언제인지 기억하게 될 터였다.
“폐하께서는 총명하고 유능한 분이시다.”
방인소는 잠시 뜸을 들이다 다시 말을 이었다.
“본처 소생의 장남이 태후마마의 수중에서 얼마나 오래 살 수 있었겠느냐.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려 22년이란 긴 시간을 태자 자리에 머물러 있었지. 그 후에도 순조롭게 즉위하였으니, 네가 말해보거라. 그런 일이 간단히 평범한 사람에게 가능한 일이더냐?”
고청운은 묵묵히, 지금의 이 경 태후는 선황제가 천하를 얻은 후에 맞이한 명문세가의 자녀로, 전 왕조에서의 가문의 기개가 대단했던 터라, 그 가문의 안목만 봐도 매우 정확하여, 옥쇄를 선황제에게 억류시키는 도박을 걸었는데 그것에 대한 정치적 보답을 얻은 셈이었다. 그 당시 선황의 정실부인은 막 태자비가 된 이후 바로 병으로 세상을 뜨고 말았다. 경 태후는 순조롭게 의당 태후자리까지 그대로 계승하게 된 것이다.
경 태후는 또 아들을 하나 낳았는데, 바로 지금의 진나라 왕으로, 그는 지금 막 20살이 되었을 뿐이고, 새 황제는 이미 40살이 되었다.
“새 황제는 제왕의 협공에도 태자 자리를 지키고, 무사히 즉위할 수 있었다.”
방인소는 여기까지 이야기를 하고는 고청운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그분은 어렸을 때부터 줄곧 전장에서 자라서 지금처럼 장성하셨지. 사람됨이 용감하고 지략이 있으며, 인내심이 많고, 후일 우리가 관원이 되어 관직을 차지할 수 있게 되면, 성실히 직무에 임하되 꼼수를 쓸 생각은 하지도 말아야 할게야.”
고청운은 듣자마자 이 황제에게 매우 탄복했다. 얼마나 많은 태자가 황위에 등극하기도 전에 누군가에 의해 제거되는지 알고 있었다. 20여 년을 생존한 바야흐로 살아있는 표적의 처지가 아니었던가. 결국 역경을 극복해서 최후의 승자까지 될 수 있었다니!
참으로 놀랍고도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새 황제 덕분에 이번엔 자기 자신에게도 기회를 다시 한번 줘 보자 라는 생각이 들은 고청운은 결국 끝끝내 써 내려갔던 문장을 고치지 않았다.
‘그냥 새로 등극하신 황제의 비위를 좀 맞추고 아부를 좀 떨어보자.’
어차피 자신이 무슨 경천동지할 재능을 가진 재목도 아니고 자기의 재능을 믿고 남을 업신여길만한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성실히 힘이 닿는 데까지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볼 뿐이었다.
여기까지 생각을 마친 고청운은 바로 첫 번째 문제에서 벗어나, 그 다음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이번 문제는 그의 취향에 잘 들어맞는 문제였는데, 그의 학식이 크게 향상된 것인지, 아니면 정말 쉬운 문제가 출제된 것인지, 어쨌든 고청운은 바로 다음 날 오후에 모든 문제를 다 풀어버렸다. 문제를 푸는 속도가 작년에 비해 크게 빨라졌다.
남은 것은 이제 잠자기, 밥 짓기, 그리고 정신수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