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화. 혼사 (2)
석 달 남짓이 훌쩍 지나가고, 국상 기간이 끝이 났다. 이후 고청운은 두 번 연속으로 혼례에 참석했는데, 한 번은 자신의 둘째 누이인 고하와 임요조의 혼례였다. 이번 혼례는 그가 장성하여 진행된 혼례기에, 둘째 누이를 번쩍 업고 시집보낼 수 있었다.
고하의 혼수는 훌륭했고, 임씨네 예물도 전부 옮겨 돌려보냈다. 자신의 집에서 침상이며 화장대 등의 가구를 모두 혼수로 챙겨주었고, 맏누이인 고연을 챙긴 것만큼이나 잘 챙겨주었지만 그때보다는 지참금 액수가 좀 더 셌다. 10냥 정도를 챙겨주었는데, 앞서 고연이 시집갈 때는 이만큼은 못 챙겨줬었기에 이번 기회에 그녀에게도 금액을 맞춰 더 보내주었다.
이것은 이미 고청운이 앞서 실현시키고자 노력했었던 목표였다. 그간 고씨 가문에도 변화가 적지 않았기에 가능했다. 다만 이제는 정말 은자가 별로 남지 않았다.
지난번에 고청운이 논과 상가 점포를 매입하겠다고 한 후, 고계산과 노진씨 두 사람이 어찌 상의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돈으로 꽤 비옥한 상등급의 논 12묘를 매입했는데, 여기에 은자 120냥을 쓰게 되었다. 이렇게 기존의 논들과 합치면 고씨 집안에선 총 30묘의 토지를 갖게 된 것이다. 마침 고청운은 세금을 면세 받을 수 있는 한도가 있었기에 다른 고씨 가문 가족들도 자신들의 명의로 보유하던 논의 명의를 돌렸다.
이어서 그들은 또 현성에서 보름간 대학 순방을 했다. 그러던 중 70냥을 들여 저잣거리에 인접한 상점을 하나 매입했는데, 지금은 세입자를 구해서 매달 임대료 1냥 정도를 받고 있었다.
남은 은 10냥으로는 당나귀 한 필을 사는데 사용했다. 당나귀는 노동력으로도 쓸 수 있었지만 남에게 빌려주어 비용을 보전할 수도 있었다.
이렇게 단번에 200냥의 은화가 다 지출되었다.
춘절을 보낸 후, 고계산과 노진씨는 내부적으로 분가를 결정하고 관청에 등록했다. 서류상으로만 분가지 여전히 한 가족 이었고, 아직 식사도 같이 했다.
허나 처음 이 결정이 내려졌을 때, 집안은 한 번 들끓었다. 모두 어리둥절해졌다.
고청운이 생각해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일반적으로는 부모님 계실 때는 분가를 잘 하지 않았다. 지금도 고계산과 노진씨는 잘 지내고 있지 않은가. 왜 갑자기 분가를 생각하신 것일까? 그리고 아직 방씨 집안과의 혼사는 얘기도 못 꺼냈는데, 왜 갑자기?
고계산은 외려 덤덤하게 말했다.
“바로 얼마 전에 급성으로 병치레를 했는데, 지금이야 나아졌지만 그때 내가 갑자기 갔더라면 너희 형제 둘만 남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라도 형제가 싸우면 지하에 가서도 눈을 감지 못할 것 같았다.”
얼마 전, 고계산은 어찌된 영문인지 넘어져서는 인사불성이 되었었다. 다행히 하씨 의원이 제때 와준 덕에, 한동안 몸을 요양하고 거의 회복되었다. 가족들에게도 참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아버지!”
고대하와 고이하가 이구동성으로 아버지를 외쳐 불렀다.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
고계산은 손을 흔들어 입을 다물라고 했다.
“형제끼리 싸우는 일을 많이 봐왔다. 그 조그마한 가업 하나 때문에 너 죽고 나 살자며 형제간의 우애 따위는 사라지는 꼴을 많이 봤다. 너희가 그들과는 다르다고 믿는다만, 나는 내 정신이 멀쩡할 때 배분을 잘 마치고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모두들 침묵을 지키며 서로 쳐다보기만 했다.
“네 아버지 말씀을 따르거라.”
노진씨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최종 논의를 거쳐, 마을안의 5묘의 논과 부두의 식당 점포, 그리고 세를 준 정원을 모두 차남에게 넘기기로 했는데, 이것들은 모두 그들이 요구한 것으로 고이하 생각에는 이런 논은 돈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식당이나 열어볼 요량이었다. 다시 논을 경작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눠 얻은 논조차 장남에게 맡기고 경작된 식량이나 4대 6으로 나누기로 했다.
임계촌의 20묘의 논과 현성 안에 있는 새로 매입한 점포는 모두 장남에게 돌아갔다.
고계산과 노진씨는 집안일을 관여하지 않기로 했다. 그들은 그저 5묘의 논을 남겨 노후에 사용하고자 했다. 장남에게 그곳의 농사를 맡기고 자신들은 양계나 하고 계란을 얻어 수입에 보탤 셈 이었다.
고대하와 고이하는 부모님에게 매년 일정 노후 비용을 보내드리기로 하였다. 그리고 이후에 있을 셋째 딸 고용의 혼인 비용은 공동으로 내기로 했다. 고청평과 고청안의 학비는 그들이 12세가 될 때 까지만 부담해 주고 그 이후로는 차남이 알아서 부담하기로 결정하였다.
고이하와 이 씨는 서로를 한 번 쳐다봤다. 고청운이 12살에 수재 시험에 합격하여 가족들이 학비를 더 부담할 필요가 없었던 탓에 반대할 구실도 없고 그저 동의하는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가진 이 쌈짓돈은 때가 되면 공평하게 두 몫으로 나누겠다.”
고계산은 생각해 보고 한마디 더 덧붙였다.
“그 중 100냥은 전자의 것으로, 계산에 포함하지 않는다.”
고청운은 듣고서 울지도 웃지도 못했다.
“그리고 당나귀는 주로 차남이 사용할 것이야. 소는 장남에게 일임해 경작할 때 사용하게 하거라.”
노진씨가 마저 설명을 더했다. 그들 집의 소가 몇 년 전 송아지를 한 마리 낳았는데, 송아지는 고백산의 집에 가져다주었다. 그래서 지금 가지고 있는 이 소의 소유권은 자신의 집에 있었다.
모두가 동의했다.
고계산은 마지막으로 고백산을 불러 모두 문서에 날인하여 하나씩 챙겨 들었다.
고백산은 비록 매우 놀라웠지만, 이번 일은 필경 동생네의 집안일로, 차라리 미리 정리를 해 놓으니 서로 감정 상할 일 없이 오히려 정이 더 들겠다 싶었다.
과연, 이후에 고청운은 부모님과 숙부네 집 사이가 더욱 돈독해진 것을 발견했다. 모두들 의욕이 넘치고 있었다. 숙부네는 부두에 가게를 차렸는데, 며칠 간격으로 한 번씩 현성에서 밤을 새고 돌아오는 일이 생길 때마다, 집에 있는 아이들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돌봐주었다.
이전에 소진씨는 개인적으로 자기 집이 손해봤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 대부분의 살림이 다 그들의 아들 덕에 모인 것이라고 여겨, 차남집이 큰 덕을 보았다고 생각했는데, 이 일은 이미 해결되었다. 그녀의 성정은 변하지 않을 것이고 고대하 역시 변하지 않을 것이었다. 운명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소진씨는 분가 결정 후, 결과적으로 자신은 집주인이 되어 있었고 그게 너무 좋았다. 게다가 차남 집은 결국 가장 친한 형제 사이라 관계를 지속할 의지가 있었으며, 실제로 서로 도와야만 했다. 비로소 마음속 껄끄러웠던 기분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고청운은 이번 분가에 대한 결과에 대해서 별다른 의견이 없었다. 어쨌든 그는 지금 스스로 돈을 벌 수 있었고, 작년 춘절을 보낼 때, 서점 하림으로부터 큰 금일봉을 받았다. 무려 30냥에 달하는 원고료였다. 거기에 매월 쌓이는 원고료와 가끔씩 현시와 원시의 응시생에게 지급되는 비용까지 더해져, 지금 그의 작은 금고에는 이미 200냥에 이르는 은자가 보관되어 있었다. 그가 매달 사용하는 종이 값이 좀 덜 나갔더라면, 또 인간관계 유지비가 좀 적게 들었다면, 모여 있을 돈은 이보다 훨씬 더 많았을 것이다.
그는 마음을 정했다. 이 이상 이변이 생기기 전에 돈을 잘 모아 군성과 경성으로 가서 과거를 치룰 비용을 만들기로 결심한 것이다. 남에게 의지하는 것보다 자기 자신에게 의지하는 것이 더 나았다. 부모님께 부담을 지기도 싫었다.
……물론 혼례에 드는 비용도 벌어서 모으는 편이 가장 좋을 터였다. 스승님 말씀에 의하면 약혼을 했더라도 2년은 지나야 혼례를 치를 수 있다고 했다.
실은 아직 준비가 덜 된 그로서는 참 맘에 드는 조건이었다.
* * *
그가 참석한 두 번째 혼례는 바로 장수원과 방자명의 누님의 혼인식으로, 고청운은 방씨 가문과 가까운 사이었기 때문에, 또 장수원과도 안면이 있었기에 반드시 혼례에 참석해야 했다. 게다가 관습에 따라 신부 측 가족과 함께 근방의 북산현으로 신부를 데려다주기까지 했다.
장수원의 의기양양한 모습을 지켜보며 다들 부러워했다.
신랑 얼굴은 관옥과도 같고, 신부의 자태가 빼어났으며, 두 사람이 함께 서서 절을 할 때 매우 잘 어울려보였다. 한 쌍의 벽인(璧人)이라 할 만했다.
확실히, 지금 장수원의 위세는 사실 정말로 대단해서, 월양군 전체를 통틀어 가장 인기 있는 사윗감일 터였다. 기억하기로는 군성에서 합격자 발표가 난 후 주변에서 그가 이미 정혼자가 있는 사람이란 소식을 듣고 많이들 아쉬워했다고 했다. 그를 바로 파혼시키지 못해 다들 한스러웠다고들 한다
이튿날 아침, 고청운과 방자명 일행들은 객잔에서 일어나 귀가를 서둘렀다. 그들의 신행(*新行: 혼인할 때 신랑이 신부집에 가거나 신부가 신랑 집에 가는 일) 임무는 여기까지였다. 신혼부부를 만나려면 3일을 기다려야 했다.
오는 도중에 마차 위에 있던 방자명의 표정은 매우 낙심한 듯 보였다.
고청운은 하품을 하고는 푹신한 담요위에 반쯤 누웠다. 어젯밤 피로연이 늦게까지 시끄러워 제대로 쉬질 못했다.
“왜 그래요? 친누이가 시집가는 게 아쉬워서 그래요?”
고청운이 웃으며 말을 걸었다. 두 사람은 한 마차에 타고 있어 담소를 나누기 매우 편했다.
방자명의 형인 방자뢰는 다른 마차에 타고 있었는데, 그는 이미 2년 전에 장가들어 아내를 맞이하였다. 아내는 임 씨네 서녀로, 그들 사이엔 아이가 하나 있었다. 방자뢰는 줄곧 수재 시험에 합격하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여즉 동생(童生) 신분이었다. 다만 장가를 들어 아이가 생겨서 그런가, 예전 첫 만남보다는 훨씬 성숙해진 모습이었는데, 보기만 해도 눈살을 찌푸리던 두 사람의 만남은 간데없고 지금은 담소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시간은 사람을 나이 들게 하지만, 또 성숙해지게 하는 법이었다.
옛날 같이 어울려 공부하던 친구들을 다시 떠올려 보니, 지금은 방자명과 자신만 남기고는 모두 장가 들어버렸다.
“아쉽지만…….”
방자명은 그에게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누이가 장씨네 집에서 잘 못 지낼까 걱정이 되지만,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없어. 결국 누이도 시집간 여인이니까.”
청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다.
“맞아요, 내 두 누이도 출가한 후, 지금은 집에 돌아와도 예전과는 느낌이 달라요. 우리 어머니도 시댁에서 잘 지내고 있는지 걱정이 되실 텐데, 누이들에게는 남편이 있고, 이젠 자신의 직계가족을 위주로 살아가야 하니 말이에요. 하지만 우리도 똑같을 거예요. 결혼 후에도 틀림없이 우리 가족을 먼저 돌보게 될 테죠. 장수원은 인품이 좋잖아요. 게다가 재주도 있고, 두 집은 기본적으로 문벌이 잘 맞기도 하고 게다가 정실로 시집을 간 것이니, 누님만 약골이 아니시면 무조건 잘 지내실 거예요.”
방자명은 그를 힐끗 쳐다보더니 손을 흔들며 말했다.
“아이고, 말해 뭐해. 너는 몰라.”
고청운은 그 말을 듣고 수긍할 수 없었다.
“제가 모를 리가 있나요? 나를 우습게 보지 마세요.”
방자명이 잠시 생각하더니 작게 말했다.
“사실 우리 누이는 나랑 다르게 생겼어.”
고청운은 어리둥절했다. 그는 방자명의 준수한 얼굴을 한 번 쳐다보고는 왕 씨의 얼굴을 떠올렸다. 또 친아버지인 방인례의 평범한 얼굴을 다시 상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