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대생활 (98)화 (98/504)

98화. 사제 (1)

고청량과도 헤어진 직후, 고청운은 곧바로 집에 도착했다.

부두에서 날품팔이를 하는 마을 사람들로부터 고청운이 이미 현성에 돌아왔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겠지만, 가족들은 여전히 그를 기쁘게 맞아줬다. 

“내 이쁜 손주, 이렇게 늦었는데 현에서 그냥 하룻밤 묵고 오지 그랬누? 이렇게 늦은 시간에 걸어 다니려면 조심해야 한다. 길을 걷다 혹시 뱀이라도 마주치면 어떻게 하니!”

노진씨는 고청운을 살폈다. 

“맙소사, 살이 많이도 빠졌구나!”

노진씨가 품에 안고 한바탕 주무르고 나서야 고청운은 마침내 품에서 벗어나 옷매무새를 정돈할 수 있었는데, 그때 고계산의 말소리가 들렸다.  

“저렇게 장성한 녀석을 걸핏하면 품에 안아대니. 우리 전자가 애기도 아닌데 그런 모습을 사람들 눈에 보였다간, 그 녀석에게도 좋지 않소.”

노진씨가 잠시 멍해졌다가 바로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내가 이 아이 친할미인데, 안아주는 것 하나도 그렇게 신경 써야 해요? 그렇지, 우리 전자야?”

고청운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어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 

‘아, 우리 할아버지는 아직도 잡혀 사시는구나. 여전히 힘이 없으시군.’

“할머니, 괜찮아요. 저희는 어두워지기 전에 도착했어요. 게다가 할머니가 보고 싶어서 하룻밤이라도 더 기다릴 수가 없었는걸요.” 

고청운은 달콤한 말을 참 잘도 해댔다. 

이 말 한마디에 노진씨 얼굴에 또 한 송이의 꽃이 폈다. 

“그래, 그런데 왜 그렇게 살이 빠졌누? 향시는 참말로 무서운 시험이구나!”

노진씨는 손자의 손을 만져주면서 가슴 아파했다.

“이번 시험에서는 제 공부가 부족했던 탓에, 거인에 당선되지 못했어요.”

고청운은 이제야 기회를 잡아 운을 떼었다. 

“괜찮다, 괜찮아. 네가 무사히 잘 돌아온 걸로 되었다. 이 며칠간 네 큰할아버지가 낙방을 탓하며 자살한 수재에, 여독(*旅毒: 여행으로 말미암아 생긴 피로나 병)때문에 죽은 수재들 이야기를 해대셨는데, 네가 편안히 돌아온 것만으로도 우린 만족 한단다.”

노진씨는 조금도 개의치 않는 모습으로 말했다.

모두들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저쪽 동네 수재인 이씨 집안도 몇 년씩이나 시험에 응시 했었는데, 40살이 되도록 합격하지 못했단 말을 들었다. 우리 전자는 이렇게 젊은데, 뭘 그리 급하게 생각하니. 네 건강이 가장 중요하단다.”

소진씨도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렇지, 몸이 제일 중요해.”

숙모 이 씨도 덩달아 입을 열었다.

고청운은 가족들의 말을 듣고는 가슴이 뭉클했다. 가족들이 비록 단번에 합격하지 못했다 해서 공부를 포기하라는 둥, 실망했다는 둥의 말을 하지 않을 것 이라고는 알고 있었지만, 위로의 말을 직접 들으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보아하니, 큰할아버지께서 미리 언질을 하셨기에 가족들 반응이 더욱 이렇게 따듯한 거겠지.’

어려운 말을 꺼내야 했던 관문을 잘 넘기자, 고청운은 다른 말을 할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시험장에서 음식을 잘 먹을 수가 없었어요.”

고청운은 모두가 있는 틈에 낑겨 눈을 크게 뜨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던, 자신의 셋째 동생 고청안을 품에 안고 향시의 과정을 이야기해 내려갔다. 

그는 자신이 말하는 것에 있어서는 타고난 소질이 있다고 느꼈다. 자신이 향시를 보고 돌아온 줄거리를 겪었던 우여곡절대로 구구절절 읊어 내려가자 깜짝깜짝 놀라며 경청하고 있는 가족들을 보고 있노라니 꽤나 성취감이 느껴졌다. 

“큰형아, 냄새가 진동해도 찐빵을 먹을 수 있었다니. 정말 대단해요.”

고청안의 얼굴에 일순간 존경심이 일었다. 

가족들은 고개를 떨궜고, 아이와 눈을 맞추고 말했다.

“이런 똥강아지가, 반어법이냐?”

“나한테 똥강아지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어요! 난 고청안이라구요!”

7살 난 아이일 뿐이었는데, 고청운은 더 안고 있을 수가 없어 놓아줬다. 

“오늘 공부는 끝냈어?”

고청운은 고청평과 고청안을 차례대로 바라보며 물었다. 두 형제는 일찌감치 학교에 입학했는데, 큰할아버지 말씀을 듣자하니 배움의 정도가 나쁘지는 않다는 것 같았다. 

두 사람은 멍해졌다.

이 씨는 무슨 생각이 난 듯 대뜸 물었다. 

“이 천둥벌거숭이 같은 녀석 둘이 오늘 하교하자마자 강가에서 물고기나 잡고 놀았을 텐데, 아마 숙제는 아직 일거야. 빨기 가거라! 저녁밥 다 먹으면 숙제부터 해야 한다!”

“했어요, 숙제 다 했다고요. 숙제를 다 하고 강가에서 물고기를 잡은 거예요.”

 고청평이 변론에 나섰다. 

이 씨의 말 덕분에 다들 문득 밥 때가 된 사실을 깨달았다. 

* * *

고하와 고용은 바쁘게 다 지어진 밥과 반찬을 들어 날랐다.

고계산은 밥상을 한번 둘러보고는 말했다.

“닭 한 마리 더 잡아라. 전자가 어렵사리 돌아왔는데 몸보신 좀 시켜야지.”

“네네, 제가 바로 갈게요.”

고하가 곧바로 대답했다. 

“할아버지, 닭은 내일 잡는 게 어때요? 지금 시간이 이미 너무 늦은 것 같아요.”

고청운이 급히 제지하며 말했다. 

고계산은 잠깐의 궁리 끝에 손주의 말에 동의 해주기로 했다. 닭은 내일 아침에 다시 잡아도 되었다.

모두들 저녁밥을 먹기 시작했고 식사 하면서 평소대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식사를 마친 후, 아이들이 모두 잠자러 가기를 기다렸다가 고청운은 자신이 국자감 입학 자격을 300냥의 은자와 바꾸었다는 사실을 알렸다. 

고씨 가족들은 깜짝 놀랐다. 고계산은 하하 웃으며 물었다. 

 “대기 합격자에까지 오른 것이냐? 대기 합격자가 되면 이런 일이 가능하구나. 왜 진작 말하지 않았느냐?”

생각해보니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기도 했다. 

“국자감에 가는 것은 별로더냐? 상경 할 수도 있었는데?”

“별로예요.” 

고청운은 자신이 들었던 소식을 말씀드렸다.

다들 말은 하지 않았지만, 권세가들이 얼마나 거북살스러운 인간들이던가. 자신들 같은 서민 백성들은 잘은 알 수 없지만, 현의 관아에서 일하는 하인들이 얼마나 고생했는지 그들은 예전부터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기왕 이렇게 된 일, 이 이야기에 대해서는 입단속을 좀 해야겠구나.”

고계산은 위엄 있게 아들과 며느리들을 한 번씩 바라보았다.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겠노라 답했다.

“내일 아침에 폭죽을 터뜨릴 거란다. 61등에 든 것도 얼마나 축하할 일이니.”

소진씨가 생글거리며 말했다.

고청운은 급히 말렸다. 어찌어찌 보궐 합격을 하고 돈이 생긴 의미를 이해 시켜 드렸다. 

그가 은표를 꺼낸 후, 온 가족이 그 은표를 보고 더욱 기뻐하며 일일이 손과 손으로 전해가며 돌려보았다.

“이 돈은 함부로 쓰면 안 되겠구나. 네가 나중에 또 경성에 가서 시험을 치를 때, 그때나 사용하자꾸나.”

최종 결정은 소진씨가 내렸다. 그리고 모두가 그 의견에 동의했다.

고대하와 소진씨 모두 뛸 듯 기뻐했다. 

고이하와 이 씨도 함께 기뻐했는데, 특히 이 씨는 은표를 자기가 운용하지 못하는 것이 한탄스러웠지만, 그녀는 이 몇 년간 봐온 게 있어 자신의 위치를 잘 알고 있었다. 이 집안은 조카인 고청운에게 의지해야 한다는 것, 심지어 고청운은 이 어린나이에도 이미 출중한 재주를 갖추지 않았는가? 조금 더 장성하고 나면? 반드시 좋은 관계를 잘 유지하고 있어야만 했다. 

고이하에게 든 생각은, 역시 돈 버는 학자야말로 진짜 대단한 것이란 사실이었다. 자기 집의 두 아이도 반드시 학교에 잘 다니라고 독촉을 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고하와 고용에게는 이 일이 더 반가운 소식이기도 했다. 집에 돈이 있어야 시집도 갈 수 있고 배짱도 생기는 법이었다.

어느덧 집안에서의 지위가 더 높아진 고청운은, 이제 집에서 말 한마디만 해도 그 말이 천금 같은 위력을 발휘하여 가족들 모두가 그의 말을 잘 따르게 되었다. 

“아버지, 할머니, 있는 돈을 두고 쓰지 않는 것은 좋지 않아요. 차라리 논을 좀 더 사시고, 맞는 매물이 있다면 현성 안쪽의 점포도 하나 매입해 두시면 임대료라도 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게다가 할머니 연세도 있어 이제는 좀 안락하게 지내셔야 하는데, 매일 아침부터 일찍 일어나 밤늦게까지 현성에서 오가시는 것도 좀 그래요. 지금 갖고 계신 점포는 세를 줘버리세요.”  

고청운이 권유했다. 

지금의 가계(家計)에는 은자가 좀 있지 않은가. 부농이라 하기엔 부족했지만 이번에 모처럼 큰돈이 들어왔으니, 가업을 키우는데 사용해야하지 않겠는가.

자신의 다음 과거 비용이야 지금 집필 중인 글의 고료로 대처가 될 터였다. 그 부담을 가족들에게 지우지는 않을 것이었다. 

고대하와 고이하는 이 말을 듣고 있자니 자신들의 어머니와 관계되는 말이라 서둘러 이 의견을 거들었다. 그녀는 올해 이미 58살로 확실히 매일 바쁘게 뛰어다니기 힘든 나이였다. 전에도 비슷한 문제를 논했던 적이 있는데, 노진씨가 아주 열정이 대단하여, 멀리 다니지 말라고 만류를 해도 그냥 다니고는 했다. 

고청운조차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으시고는, 여러 사람들이 권하니 이젠 동의하는 수밖에 없었다. 다만, 100냥 정도의 은자는 반드시 남겨두고,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고청운의 다음 과거 시험 때 사용해야 한다는 의견은 꺾지 않으셨다. 

그 다음날 고청운은 큰할아버지인 고백산에게 또 불려갔는데, 한 번 더 위로를 하시려는 것 같았다. 

고청운이 말씀을 듣자니, 이번 시험의 낙방이 자신에게 큰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고는 말씀 하시는데, 다들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고백산의 표정은 마음속으로 언짢지만 억지로 기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가족들이 아주 조심스레 그의 안색을 살피자, 그는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표정이 되었다. 

그렇게 이틀간 집에 머무르는 동안, 고청운은 연속해서 닭 두 마리를 먹었다. 그는 자신이 머무르는 동안 집안의 닭이 다 사라질까 두려웠다. 

* * *

고청운은 현성으로 돌아간 후, 생각을 거듭하다 마침내 용기를 내 방가촌으로 갔다.

고청운은 책방에서 방인소를 어렵지 않게 마주칠 수 있었다. 

“선생님, 제자가 선생님의 명성에 오점을 남겼습니다.”

고청운은 방인소의 친숙한 외모를 마주하자 왠지 코가 찡하며 눈물이 핑 돌았다.

“감히 이제야 노부를 보러 온 게냐?”

방인소는 보던 책을 덮고 그를 바라보았는데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고청운은 놀라 눈물이 쏙 들어갔다. 그는 손수건을 꺼내 남은 눈물을 훔치며 너무 쉽게 흘러내리는 자신의 눈물이 죽을 듯 후회스러웠다. 

“헤헤, 스승님. 제자가 마음에 켕기는 것이 너무 많아 그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제가 감히 스승님께 누를 끼친 터라 너무 창피하여 그만 집에서 어물쩍거리고만 있었습니다. 이제 뵈러 온 것도 용기를 내서 간신히 뵈러 왔습니다. 스승님께서 절 더 이상 받아 주시지 않을까 두려웠습니다.”

고청운은 웃으며 그의 등 뒤로 달려가 어깨를 주무르며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스승님, 저는 앞으로 계속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고 더 정진하면, 다음 향시에서는 더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하, 조심하지 않고 또 '나'라고 지칭해버렸네.’ 

어쩔 수 없는 습관이었다.

방인소는 가타부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고청운의 행위 역시 제지하지는 않았다. 

이에 고청운은 자신감이 붙어 손에 더욱 힘을 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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