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화. 돌아가다 (2)
고청운의 놀라는 모습을 보고, 방자명이 웃으며 말했다.
“이상해? 국자감에서는 권력과 세력 없이는 버티기가 힘들어. 이쪽으로는 내가 연통이 좀 있는데, 그곳에서 공부하는 평민 수재들은 결국엔 나중에 다시 부학으로 돌아와 공부를 계속하게 되던지, 아님 먹고 마시며 주색잡기나 도박 따위에 빠져 학업은 뒷전에 버려두고 종국엔 국자감에서 쫓겨나거나 병들어 죽거나 하곤 해.”
방자명은 특히 마지막 몇 글자를 강조해서 말했다.
고청운은 깜짝 놀랐다.
“또 거기에는 법도 하늘도 업신여기는 녀석들이 있어서 국자감에서도 전혀 통제할 수 없어.”
방자명은 작은 목소리로 이어 말했다.
“내가 막 수재에 합격했을 때부터 아버지는 내가 백부님을 통해 부학 추천으로 국자감에 입학하길 원하셨다고 하셨어. 하지만 그곳 사정을 아는 백부님께서 반대하실 줄은 몰랐지. 청운아, 네 성정에 그곳은 진짜 안 어울려.”
고청운은 방자명을 한 번 흘겨보았다. 물론 방자명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은 그도 알고 있었다.
오래지 않아 장수원은 사람을 보내 방자명에게 찻집에 가서 축하자리를 갖자고 청했는데, 고청운도 동석하자며 같이 불렀다.
고청운은 그들이 모두 정식 거인 합격자들인데, 사람들이 다들 축하하는 자리에서 지금 자신이 어떻게 그 여흥을 맞출 수 있겠냐 하며 완곡히 자리를 거절했다.
방으로 돌아와 고청운은 종이와 붓을 펼쳐 수선기를 계속 집필할 준비를 하였는데, 두 달간 시험 준비를 하느라 연재를 하지 못해 빨리 내용을 보충해야 했다. 전에는 향시 결과를 몰랐으니, 비록 소설을 매일 써 가고는 있었지만 마음이 딴 곳에 가 있어 겨우 2만 자밖에 쓰질 못했다. 이젠 시험 결과도 알았겠다, 마음이야 홀가분하지만은 않지만 결국 대단원의 막은 내린 셈이라, 이제 원래의 생활을 계속해 나가야 했고, 생활을 하려면 은자가 필요했기 때문에 계속 노력해 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고청량은 옆에서 그를 바라보고 있다가, 말하려던 것을 참았다.
“청운아, 속상하지 않니?”
하지만 고청운이 다시 글 쓰는 데 몰두하자, 고청량은 참지 못하고 바로 물었다.
‘조문헌 같은 반응을 해야 정상인건가?’
고청운은 붓으로 먹물을 찍으면서 고개조차 들지 않고 대답했다.
“조금은요. 그래도 진작에 마음을 정리했어요. 사실은 이 정도 성적을 낸 것만으로도 난 진짜 기쁜 일이라고 생각해요. 준비한기간동안 내 실력이 늘었다는 것을 증명 했잖아요. 이번에는 잘 안 풀렸지만, 3년 후의 결과는 좀 자신 있을 것 같아요.”
고청량은 이 같은 말을 듣자 그제야 한시름을 놓으며 말했다.
“그럼 넌 괜찮다는 거지? 난 좀 나가서 돌아다녀야겠다. 며칠간 군성을 돌아다녔는데, 괜찮은 물건을 봐 둔 게 있어. 임산현에 있는 점포에 들여놓으면 꽤 잘 팔릴 거야. 발품값 정도는 벌겠지.”
“가요, 가.”
고청운은 퉁명스럽게 손을 휘 저으며 말했다.
“큰할아버지께 안 걸리게 조심하고요.”
고청량은 엽전 꾸러미 같은 존재였다. 어렸을 때부터 뚱뚱하단 이유로 사람들에게 이끌려 인간 굴렁쇠가 되어 매번 용돈을 벌었는데, 이 덕에 사탕을 사 먹을 수 있었던 그는 아주 어린 나이에 이미 남다른 금전 개념을 탑재하고 있었다. 그런 그는 장성해서 재물광의 면모를 여지없이 드러냈다. 매번 군성을 오갈 때마다 물건을 가지고 현성으로 돌아가 차익을 챙겨 즐거움을 얻고 있었다.
고백산은 진심으로 그에게 과거 시험에 응시하게 하려 했다. 상업에 종사하는 것은 분명 찬성해줄 리가 없었기에 그는 매번 몰래몰래 이런 일을 벌이곤 했다.
“내가 뒷바라지를 게을리 하는 것도 아니고, 실제로 사업을 벌리는 것도 아니니, 너랑 내가 입만 다물고 있으면 누가 알 수 있겠냐.”
고청량은 옷을 갈아입으며 중얼거렸다.
“잠깐만요.”
고청운은 잠시 생각을 해보고서, 붓을 내려놓고 자신의 은자를 챙겨와 40냥을 건네며 말했다.
“이건 내가 쓰고 남긴 돈이에요. 나도 투자를 좀 할게요. 1할은 형이 고생한 값으로 가져가요.”
고청량의 눈이 빛났다. 스스럼없이 돈을 받아 들고선 입만 살아 미안한 기색을 가장해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내가 어떻게 네 돈을 받을 수가 있겠니?”
“잔말 말고 어서 가요.”
고청운은 그를 재촉했다.
고청량은 흐흐 웃으며 잽싸게 가버렸다.
그 후 점심때가 되었지만, 조문헌과 하겸죽은 식사를 하러 나오지 않았다. 고청운은 허전한 자리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사형들에게 음식을 남겨주지 않을 거예요. 어차피 먹지도 않을 거고, 저녁이 되면 자연히 방에서 나오겠죠.”
조삼과 하씨 아저씨의 걱정스러운 모습을 본 고청운은 계속 말을 이어갔다.
“진정될 때까지는 그냥 놔둬도 괜찮을 거예요. 어차피 지금 당장 밥이 넘어가지도 않을 테니.”
그들 모두 작은 현성 안에서는 뛰어난 실력을 보였었건만, 지금은 낙방을 하게 되어 분명 견디기 힘들 것이었다. 그들 모두 자신 같진 않겠지. 그는 전생에서 얼마나 많은 크고 작은 시험들을 치렀는지 몰랐다. 죽는 일만 아니면 이딴 시험 결과 따위에는 초연할 수 있었다.
“그런데 도련님은 오늘 아침 물 한 모금도 안 드시고 나가셨는데, 저녁이 될 때까지도 아무것도 드시지 않아서 몸이 상하진 않을까요? 나중에 마님과 아씨께서 아시면 염려하실 거예요.”
조삼은 그래도 걱정되는 모양이었다.
조씨 가문은 지난 몇 년간 아마도 별 탈 없이 지내왔던 것 같았다. 조삼만 봐도 예전보다 더 커져서 최소한 다른 사내들만큼 키가 자랐고, 얼굴색도 더 붉어져 처음 만났을 때처럼 마냥 누런 얼굴이 아니었다. 게다가 그의 조문헌에 대한 충심은 아주 지극했다.
“괜찮아, 고작 하루 안 먹고 안 마시는 걸로는 사람은 어떻게 되지 않아. 네가 계속 권할수록 외려 자명 사형은 괴로울 거야.”
고청운은 이미 조문헌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어린아이 같은 구석이 있어서 타이를수록 더 억울해하며 더 심하게 구는 사람이다.
조삼은 생각을 해보곤, 더 말이 없었다.
하씨 아저씨도 곁에서 생각에 잠긴 듯했다.
두 사람은 고청운이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식욕이 좋은 것을 보고는 어지간히 놀랍기도 했지만, 그런 모습을 보고 이상하다고 말하기도 어려웠다.
과연 저녁 식사 때는 하겸죽과 조문헌 모두 방에서 나왔다. 두 사람은 기분이 아직 다 가라앉진 않은 상태지만, 그래도 확실히 젊은 사람들이라 오래지 않아 쉽게 초연해질 수 있었다.
“내일 하겸죽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려고.”
조문헌은 수저를 내려놓으며 물었다.
“너도 같이 돌아갈래? 아니면 방자명을 기다릴 거야? 녹명연(*鹿鸣宴: 향시 합격자를 발표한 다음 날에 행하여진, 시험관과 합격자와의 합동연회)에도 참석해야 해서 꽤 기다려야 할 텐데.”
녹명연은 보통 합격자 발표일 이후 3일째가 되면 열렸다.
고청운은 놀라 물었다.
“문헌 사형은 국자감에 들어 갈 거예요?”
“그래야지, 일단 집에 돌아가서 가족들과 상의해 보려고.”
가족이야기만 나오면 조문헌의 얼굴은 부드러워졌다.
고청운은 생각을 해봤다. 조문헌 처의 재력이면, 그가 도성에 가서 생활하는 것을 기꺼이 지원해 줄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럼 국자감에 가서는 몸조심해요.”
고청운은 간단하게 언급할 뿐이었다.
두 사람은 일전에 비슷한 화제로 말을 나눴었기에, 조문헌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뜻을 이해했다는 신호를 보냈다.
“알아, 나는 그냥 임산현에서만 배우는 것은 너무 더디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래. 수도에 넘어가서 학업을 계속해 나가면 진전이 더 빠를 것만 같아.”
특히나 이번에도 고청운이 결국 그의 이름보다는 앞에 이름을 올렸잖은가. 당초 진의 서당에서 공부를 할 때만 해도 학문이 자신보다 못하구나 싶었는데 말이다.
이것만 봐도 좋은 스승을 만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었다. 임산현에서는 좋은 스승을 구할 수 없으니, 국자감에 들어가 스승을 구하는 것이 나을 것이었다.
“청운아, 너는 안 갈 거야?”
하겸죽은 계속 묵묵히 듣고만 있다가 그제야 입을 열었다.
“안 갈 거예요. 가게 되면 지출이 너무 커요. 지금은 유학비용 지출을 감당할 수가 없어요. 임산현에 남아서도 공부는 계속 할 수 있어요. 내가 배우지 못한 것들이 아직 많이 남아있는 걸요.”
고청운은 빙긋 웃어 보였다.
그날, 그들은 한 수재가 소란을 피웠다는 소식을 접했다. 이번의 거인 정원이 너무 적었던 것은 주임 시험관들의 월양군 출신에 대한 차별 때문이라고 주장했다는데, 결국 주임 시험관에게 제지당했고, 하마터면 학정에 의해 수재의 명예를 박탈당할 뻔했다고 한다.
고청운은 깜짝 놀랐다. 오늘 점심때, 어떤 사람이 그와 결탁했던 사람들을 찾아다녔다는데, 당시 고청운은 소설 집필이 너무 힘들어서 곧장 잠들어 있었다. 그는 누가 찾아와 술 마시러 나가자고 할까 봐, 지기에게 미리 부탁하여 다른 이들에게는 자신이 출타 중이라고 말하라고 일러두었었다.
그날 저녁, 방자명은 처음으로 술에 취해 돌아와 지기와 몸종 둘이 밤새 그를 돌보았다. 고청운은 때마침 달디 달게 잠을 자다 말고, 벽 너머의 동정을 듣게 되었다.
다음 날 방자명은 아직 깨어나지 못했고, 하겸죽과 조문헌은 방자명의 모습을 보고서도 서둘러 채비를 해야 해서, 작별 인사도 못 건네고 먼저 떠날 수밖에 없었다.
숙소 전체를 통틀어 고청운과 몇 사람만이 남게 되었다.
고청운은 왜 그들을 따라 돌아가지 않았을까? 이유는 그가 국자감에 가지 않을 작정이면, 그의 국자감 입학 자격을 돈을 주고 팔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국자감에 들어가기 싫어했지만, 필경 그곳에 가고 싶어 하는 수재들이 있었기에, 절차만 잘 맞으면 입학 자격을 양도할 수가 있었다.
사실 이런 일들은 모두 비공식적인 일들이지만, 관청에서 눈감아 주니 이런 거래는 매년 발생하고 있었다. 다만, 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2번 이상의 자격을 양도 받는 것은 수용되지 않았다. 왜냐면 국자감에 입학한 사람이 2번이나 보궐 대기자 명단에 오르게 되면 관청에서는 반드시 그 두 번째 답안지를 찾아 검사에 돌입할 테니 말이다. 이것은 시험 참가 자격과도 관계되므로 소홀히 볼 수만은 없는 조건이었다.
고청운처럼 평범한 집안에서는, 이런 경우 입학 자격 양도를 택할 때가 많았다. 꽤 많은 은자를 받을 수 있게 되니 말이다. 그는 수재 중에 기인이 한 명 있다고 들은 적이 있었다. 향시에 매번 보궐 대기자 명단에 올라 놓고는, 매번 국자감에 입학하지 않고, 자신의 입학 자격을 계속해서 양도하는 것을 선택하였다는 것이다. 가난했던 그 사람의 집안은 평소 그의 아내와 노모가 사람들의 옷을 세탁해주고 자수를 해주는 품삯으로 연명해왔었으나, 그간 그가 3번이나 국자감 입학 자격을 팔아 치운 결과, 뜻밖에도 그들은 현지의 부호로 거듭났다고 했다. 보통 사람들은 시험을 여러 번 볼수록 집안 형편이 기울기 마련인데, 그는 그 반대를 기록했으니 정말 대단한 사례가 아닐 수 없었다.
책 속에 황금 집이 있다고 하더니, 이 말은 정말 맞는 말이었다.
과연, 이날 오전부터 입학 양도를 원하는 사람들이 속속 그를 찾아오기 시작했다. 다만 이런 일은 직접 나서기 어려워 고청량에게 맡겨 자신을 찾은 사람들의 명단을 작성해 누구와 거래할지 나중에 다시 생각해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