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화. 돌아가다 (1)
방자명은 한숨을 내쉬곤 조급한 듯, 한데 몰려 아직도 혼잡하기만 한 인파를 바라보았다.
조문헌 역시 참지 못하고 다급히 고청량에게 캐물었다.
“고 아우님, 내 이름은 보지 못하였는가?”
다른 사람들도 모두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다.
고청량은 자신의 흐트러졌던 옷을 이제 막 추스르고 있는 중이었는데, 묻는 말에 뜸을 들이다 대답했다.
“보지 못했어요. 제가 서 있던 곳은 명단의 끄트머리 쪽이었는데, 그 방향에서는 모든 명단을 다 확인할 수가 없었어요. 게다가 청운이 이름을 발견하자마자 급히 사람들을 헤집고 나오기 바빴죠. 그렇지 않았다면 내 어찌 이리 빨리 나올 수 있었겠어요.”
고청운은 고청량의 속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의 모습을 보아하니, 아마도 조문헌은 이번 시험에 급제하지 못한 듯했다. 그래서 저런 말로 둘러 댄 것이리라.
조문헌을 포함한 사람들의 얼굴에 일순간 실망의 기색이 비쳐졌다.
고청운은 자신의 성적을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바로 자리를 뜨지 않고 원래의 장소에 계속 서 있었다.
이때 인파속에서 환호가 들려왔다. 누군가가 외쳤다.
“해원(*解元: 명청 시대 향시의 수석 합격자), 해원이다! 장수원이 해원에 등극했다!”
“와-”
군중들이 일간 소란스러워졌다.
‘해원이라니! 저 가문은 네 번 연속 장원급제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는 건가?’
고청운도 덩달아 격양되었다. 그는 비록 현장에서 장수원이 어디 있는지 살펴보진 않았지만 짐작컨대, 아마도 그는 객잔 밖으로 나오지 않고 있을 터였다. 과연 그가 해원이라니 역시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자명 사형, 갓 20살에 해원이래요!”
그는 방자명의 손을 잡았다.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속마음이야 조금은 시큰거리며 질투심이 일었지만, 곧 있을 장수원과 방씨 가문의 혼사를 생각하니, 방씨 가문 입장에서는 좋은 일이 아닌가 싶은 생각에 마음이 조금은 더 편해졌다.
방자명 역시 매우 기뻐했다. 그는 애써 조심스레 웃어 보였다.
“아원(*亞元: 수석인 해원의 바로 아래, 차석 급제자)은 백자군이요!”
또 누군가가 소식을 외치며 알려줬다.
……
한 사람씩 이름이 호명되어 감에 따라 사람들 중에서는 우는 사람도, 웃는 사람도 생겨났다. 고청운은 나이 지긋한 수재 한 분이 자신이 급제하지 못했음을 확인하고는 머리를 쳐들고 벽으로 돌진하는 광경마저 눈앞에서 목도했다. 다행히 주변 사람에 의해 제지를 당했지만, 그 사람은 결국 구석진 곳에 쪼그리고 앉아 눈물을 펑펑 쏟았다.
그 누구도 그 분을 감히 비웃지 않았다. 지금 이곳에서는 어떤 사람은 미친 듯이 기뻐하고, 또 어떤 사람은 눈물을 흘리고 있다. 고작 한 장짜리 명단의 마력이 너무 대단해 응시생들의 희로애락을 조종하고 있었다.
이 때 지기, 조삼 그리고 하씨 아저씨도 드디어 인파를 헤집고 빠져나왔다. 남은 사람들의 합격여부는 그들의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이번 시험에서 방자명은 40등이라는 등수로 급제를 거머쥐었다. 이치대로라면 그는 매우 기뻐해야 정상인데, 고청운은 그가 생각보다 기뻐하지 않는 것을 보았다.
고청운은 아까부터 이해가 가지 않았다. 다시 생각을 정리해보다 장수원을 떠올리자, 그제야 그의 반응이 이해되었다. 저 반응, 등수에 불만이 있는 게 아니라면 또 무엇이겠는가? 게다가 이번 시험에서 방자명의 답안이 꽤 훌륭했기에, 모두들 진즉부터 그의 등수가 이보다는 좀 더 높을 것이라고 예상하기도 했었다. 이렇게까지 뒤쪽 등수일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었다.
다만, 낙방한 사람이 이렇게 많은 것을 보면, 고청운은 방자명이 더 기뻐해야 옳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겸죽은 낙방이었다. 그는 대기합격자 반열에조차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다만 그는 이런 결과를 예상했던 듯, 추태한 행동은 아주 잠시 뿐, 하씨 아저씨의 몇 마디 위로에 바로 진정이 되는 것 같았다.
조문헌의 처지는 자신과 마찬가지인 보궐 합격자였다. 이번 대기 합격자 명단에는 총 12인이 이름을 올렸는데, 그의 이름은 바로 12번째에 위치하고 있었다.
조문헌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필사적으로 명단을 확인하고 돌아온 조삼을 추궁했고, 조삼은 몇 번이나 자세히 반복해서 설명을 해줬다. 그는 그제야 넋이 나간 듯 멍하게 잠시 있었는데, 결국 체념하지 못하고 혼자 그 많은 인파를 비집고 들어가 몇 번이고 명단을 죽일 듯 노려보며 이름을 확인하고 또 확인하다가 조삼에게 이끌려 나왔다.
방자명은 이 상황을 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다가 우선은 지기를 돌려보냈다. 분명 얼마 지나지 않아 합격 사실을 알리는 관원인 보희(*報喜: 과거 급제, 진급 소식을 알리는 사람)가 파견되어 들이닥칠 텐데, 기쁜 소식을 전하는 그들에게 쥐어 줄 위로금을 준비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네 사람이 함께 향시에 응시했지만, 하나는 정식 거인(擧人)으로 승급했고, 보궐 대기자인 두 명은 수도의 국자감에 가서 공부할 자격을 얻었으며, 또 한 명은 낙방하였다.
국자감에 대해서는 고청운의 경우, 자격이 주어진다 한들 자신은 그곳에 가지 않으려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보궐 합격자라고해도 부질없었던 셈이었다.
국자감에는 대유(大儒)라는 생활법이 있어, 관리를 매우 엄격하게 한다고 한다. 그에 의식주를 행함에 있어 이에 관한 규정이 따로 정해져 있다고 했다.
국자감에 입학할 수 있는 자들은 크게 두 분류가 존재했는데, 그 중 하나인 감생(監生)이란 과거를 보지 않고도 입학이 가능한 권세가의 후손 혹은 가족 중에 왕이 하사한 작위를 지닌 집안 자제이거나 집안에 고관대작 출신이 있는 자들이었다. 간혹 관직의 품계는 낮다고 하나 황제가 만족 할 만한 일을 했을 경우, 황제로부터 직접 상을 하사 받을 수도 있었다. 은음일자(*恩荫一子:은음이란 선대가 공이 있어 후손에게 음서로 채용될 수 있는 대우를 갖게 해주는 것으로, 일종의 음서제도로 중국에서는 상고시대부터 내려온 세습제도의 변형)라 하여, 이 시대에는 이 방법으로 자식들을 국자감에 넣어 줄 수 있었다.
이들 감생들은 관직에 오를 수 있는 관리의 후보격으로써, 국자감 졸업 후 곧바로 관직에 봉해질 수 있었다. 과거를 통해 국자감에 입학하는 선비들과는 다르게, 이들 같은 귀족 일가의 자제들이 관직에 오르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었다. 하지만 귀족 후손이라는 신분 하나만으로는 관직에 오른다 한들 3품 이상으로는 승진이 어려웠다. 그래서 어떤 감생들은 바로 회시에 응시하기도 했는데, 만약 급제만 한다면 진사 출신이라는 신분과 함께 여기에 그들의 가문적인 배경이 더해지면 3품이라는 관직의 문턱을 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다만 이 시대에는 권문세족에 대한 일종의 견제이자, 서민과 권세가의 형평성을 맞추기 위해서라도 감생이 회시에 응시하는 것은 단 한번만 가능하다는 규제가 존재하고 있었다. 만약 이 단 한번의 기회에 급제를 하지 못한다면 시험 응시 기회가 더는 주어지지 않았다.
국자감에는 이들 감생들 외에도 다른 한 종류의 입학생들이 있다고 했는데, 이들은 바로 수재들로, 매년 부학에서 단 한명의 우수학생을 선발해 국자감 입학생으로 추천해주는데, 이외에도 고청운처럼 보궐 합격생도 국자감에 입할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그럼, 거인의 행방은 어찌되는 것이냐, 거인이 된 이들은 국자감에 입학할 필요가 없었다. 거인으로 선발되는 것 자체가 이미 사람들에게 노야(老爺)라고 불리는 신분이 되는 것인데, 결원이 생겨 관직이 비는 즉시 관리로 임용되었다.
고청운은 국자감으로 갈 생각이 없었다. 국자감에 권세가의 자제들이 많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었고, 그저 나이 어린 일개 수재가 국자감에서 감당해야 하는 일들은 너무 심오할 것이라 그는 도저히 견딜 재간이 없었고, 수도에서 지내는 동안 들어갈 생활비도 감당이 되지 않았다. 비록 국자감에서 먹고 머무르는 데는 돈이 들어가지 않지만, 그들과 교제하며 지내는 일에 꽤나 돈이 많이 들 터였다. 어지간한 돈 없이는 분명 그 시절을 지내는 것이 힘들 게 분명했다.
일개 수재가 수도의 도성에 발을 들여놓는다는 것 자체가, 한 마리의 개미새끼 같은 처지가 될 진데, 밟혀 죽기나 할 일에 너무 큰 소모를 할 수 없었다. 고청운은 자신의 담이 작다는 것을 인정했다. 두려운 것이 사실이었다.
그의 신분이 그런 생활을 견뎌낼 만큼 높지는 않았다.
고청운이라는 사람 자체가 누구에게나 두루 곱게 보이는 처세를 잘 하는 사람도 못 되는데다가, 아첨이라고는 담을 쌓고 살아왔는데, 만약 고관대작의 아들이라도 언짢게 만들었는데, 하필 그가 황제의 외척이라도 되면 또 어찌 할 것인가?
방인소가 언급했었던 상황들을 기억하고 있었기에, 고청운은 이미 국자감에 입학하지 않기로 마음을 굳혀버렸다.
자신의 성적을 알게 된 모두는 함께 걸어 돌아갔다.
조문헌은 실의에 빠져, 돌아가는 길 내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방자명을 기다리고 있던 보희라 불리는 관원을 보게 되었다. 방자명이 자신이 합격자 본인임을 확인시켜주고, 위로금을 건넸다. 그제야 보희는 기쁜 모습으로 돌아갔고 방주인까지 축하를 해주러 나타났다.
고청운과 조문헌은 거인이 아니었기에, 희소식을 받은 방자명 같은 대우는 당연히 받을 수 없었다.
여러 사람들이 함께 방자명에게 축하를 건네며 몇 마디씩을 나누고 있는데, 하겸죽은 내일 집에 돌아가야 한다며 그 핑계로 자기 방으로 돌아가 짐을 꾸렸다.
조문헌도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방으로 돌아갔다.
고청운은 방자명과 단 둘이 남게 되자 그에게 물었다.
“주점이라도 가서 한잔 할까요? 거인이 된 것을 축하 해야죠. 방 형은 관리가 될 자격이 있어요.”
시험에 급제해 거인이 된 것은 아주 잘 된 일 이었다. 지금도 관원이 부족하니 거인들은 바로 관원으로 파견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인맥이 좀 있어야 하겠지만.
하지만 방자명의 문벌로는 어느 외진 곳의 현령이나 주부(*主簿: 문건 관리를 주로 하는 좌사의 일종) 정도만이 가능할 터였다.
방자명은 고갤 저으며 말했다.
“우리 둘이서만 무슨 축하를 하겠어. 상위 등수로 급제한 것도 아니고, 내 성적으로는 회시 시험을 치룰 자신도 없어.”
고청운은 또 노답이라는 생각이 스쳤지만 대답은 했다.
“너무 멀리까지 생각했네요. 회시는 내년에나 예정되어 있고, 그때가 되면 학문적으로 더 성장해 있지 않겠어요? 게다가 시험이란 건 정말 운이 좋아야 하는 거예요. 만에 하나 출제되는 문제가 잘 아는 분야기만 하면, 회시 장원을 따는 것도 가능할지 몰라요.”
“그건 너무 과장인 거 아니야?”
방자명은 결국 웃음을 참지 못했고, 고청운에게 관심 있게 물었다.
“국자감에 입학해서 공부 할 예정이니?”
“안 가려고요. 현학에 남아서 계속 공부할 거예요. 3년 후에 다시 시험 치러 가죠, 뭐.”
“안 가는 것도 괜찮지.”
고청운은 방자명이 잠시 망설이긴 했지만 마저 읊조린 말에 적잖이 놀랐다. 이런 말을 하다니. 분명 입학을 권할 줄 알았다. 필경 국자감에는 박식한 사람들이 많아 꽤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었고,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인맥을 쌓을 수 있는 기회의 장이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