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대생활 (94)화 (94/504)

94화. 합격자 명단

고청량이 고기죽을 들고 왔을 때, 고청운이 물었다.

“그들 셋은 어떻게 됐어?”

가져온 고기죽은 어린 아이가 먹는 죽 마냥 묽었으나 일단 배부터 채우고 보는 것이 우선이었다. 어찌 해도 찐빵보다는 맛이 있었다.

“하 형이랑 방 형은 다 잘 있어. 정신 상태야 너랑 비슷하다만. 조 형은 열이 좀 나지만, 조삼이 지금 그를 돌보고 있어. 의원 이미 진맥을 해서, 약도 먹었다더라. 큰일은 아닌 모양이야.”

고청량은 참지 못하고 말했다.

"청운아, 오늘 도시 전체의 의원들이 얼마나 불려 다녔는지 몰라. 조삼이 의원을 모시러 가서도 한참을 기다려 겨우 차례가 되었는데, 조 형이 가벼운 증상이 아니었으면 아마 급해서 죽을 지경이었을 거야.”

고청운은 고청량이 앞서 해준 말을 듣고 이미 마음을 놓았다. 하겸죽과 방자명 두 사람의 몸 상태는 원체 나쁘지 않았는데, 특히 방자명은 평소 몸을 가꿔왔고 인삼까지 챙겨서 시험장에 들어가지 않았던가. 고청운처럼 운이 나쁘게 악취방을 배정받은 게 아니라면, 정신 상태까지 멀쩡할 것이었다. 

조문헌에 대해서는, 그의 몸은 이미 의식적으로 단련을 해왔지만, 그들이 어렸을 때부터 단련해 온 것에 비할 바가 못 되며, 그간 인내심을 가지고 꾸준히 하지도 않았는데, 열이 약간만 나는 정도라면 나쁘지 않은 결과였다.

이미 너무 늦은 밤이어서, 고청운은 그들을 보러 가지 않기로 했다. 고청량에게는 더 이상 곁을 지켜줄 필요가 없다고 당부했다. 그는 목욕을 한 후, 다시 몰려오는 졸음을 참지 못하고 계속해서 잠을 잤다.

다음 날은 평소의 생활리듬에 맞게 일찍 깨어났다.

그가 밖을 한 바퀴 돌아보고, 9일간의 일대기를 일기로 기록하고 나서야 일행들도 속속 침상에서 일어났다.

모두 함께 조문헌을 보러 갔는데 더 이상 열이 나지 않아 다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허나 평화는 아침까지 밖에 이어지지 않았다. 고청량이 그들에게 나쁜 소식을 전해준 것이다.

이번 시험의 응시생 중 몇십 명이 지금 병상에 누워 있는데, 그중 몇 명은 상태가 심각해 중병이 나서 목숨이 경각에 달렸다고 했다. 아주 위중했던 한 명은  다행히 환관집의 자제라 명의가 응급처치하고 명약의 도움을 받아 겨우 목숨을 부지했다고 했다. 

옛날이야 늘 몸이 약한 사람들이 시험장을 나서서 유명을 달리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지금은 위급한 상황만 지나면 몇 달간 침상에 누워 요양하면 되었다. 하지만 이게 유일했던 희소식으로, 그들이 아는 황언성은 시험장에서 아무 문제도 없어 보였지만 시험장을 나서서는 토와 설사를 하더니 지금 침상에 누워서 요양 중인데 감히 침상에서 내려올 수가 없는 정도라고 했다. 

고청량은 한 번 데였던 가슴이라 그런지 한 번 더 말했다.

“과거라는 건 정말 무서운 거구나. 시험을 위해 목숨도 아끼지 않다니, 나는 절대 그렇게는 못 해.”

“내년이면 형 차례예요.”

고청운은 그에게 눈을 흘겼다.

고청량은 입은 삐쭉이고 있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방자명과 하겸죽은 옆에 나란히 앉았는데, 활기도 아직 돌아오지 않고 귀찮은 듯 말도 하고 싶어 하지 않은 듯 보였다.

향시 때문에 모두들 한바탕 앓고 있는 듯했다.

다들 황언성을 보러 다녀온 뒤, 어디론가 불편하게 돌아다니고 싶지 않다며 거처로 돌아갔다. 

“정말 대단하다.”

다 같이 답을 맞춰보면서 방자명이 대단하다는 듯 말했다.

“청운아, 그 악취방에 그렇게 가깝게 있었으면서 문제까지 이렇게 잘 풀다니 정말 쉽지 않은 일을 해냈어. 우리가 있던 복도는 악취 나는 방을 배정받았던 응시생 하나가 3일 만에 못하겠다며 호실을 떠나서 돌아오지 않았거든.”

“몸 상태가 좋아서 버틸 수 있었어요. 근데 이런 게 무슨 소용이에요. 결과는 성적이 좌우할 텐데.”

고청운은 풀어지는 방자명의 안색을 보고는 그가 시험을 잘 치렀다는 것을 눈치 챘다. 

하겸죽에 대해서는, 그가 원채 낯빛만으로는 좋고 나쁨이 구별이 안 가서 잘 몰랐다.

"우리가 있던 곳에서는 9일 동안이나 견뎌내고서도, 시험지를 제출하더니 기절한 사람이 있었어. 병이 너무 심하게 나 버렸다고 하던데, 병사들이 보기에도 뭔가 이상하니까 급히 그를 옮겼지. 다행히 목숨 건진 거야. 참 나, 스스로 몸이 안 좋았으면, 적당히 버텼으면 이런 사달도 안 났지.”

“부귀공명이 사람을 이렇게 만드는 거지요.”

고청량이 한숨을 내쉬었다. 모두들 똑같았다, 자신의 몸보다 부귀공명을 중시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모든 일은 자신의 몸을 제일의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 법이다. 만약 그 수험생의 처지였다면, 차라리 시험을 포기할지언정 고통에 시달리지는 않을 것이다.

생명은 고귀한 법이었다. 생명이 제일 중했다.

세 사람은 몇 마디를 더 나눴다. 그들은 산술 같이 오답 여부가 바로 채점되는 문제면 몰라도 주관이 많이 들어가 채점관이 어떻게 심사할지 모를 경의, 시부와 책론 같은 문항에 대해서는 더 언급하고 싶지가 않았기에 이런 시험 문제들과 관련된 주제는 피해서 대화를 진행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며 수재들은 합격자 발표 공문을 기다리고 있었다.

시험관들도 시험 답안지를 읽느라 긴장하고 있었다.

고청운은 과거 시험에 참가한 후에서야 이번 왕조 향시의 답안지 채점에 있어서도 표준 절차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호명, 봉인 절차 외에도 시험관이 특정 응시생의 필적을 감별하거나 면식이 있는 응시생에게 혜택을 주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향시 시험 답안지는 시험관이 직접 대면 검토를 하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향시마다 전문적인 등기요원이 고용되어 주사(*朱砂: 붉은 염료)로 수험생이 먹으로 쓴 글을 한 차례 옮겨 적었다.

물론 옮겨 적을 때 잘못 옮겨 적는 실수를 방지하기 위해, 조정에서는 또 한 무리의 수재를 파견하여, ‘대독생’으로 삼았는데, 붉은 답안지와 응시생들이 검은 묵으로 쓴 글을 상호비교 및 교정하는 것이다. 잘못 옮겨 적으면 황색으로 수정했다.

지난 번 향시 땐 그도 관청으로부터 대독생 역을 맡으라는 권유를 받았으나, 한창 바쁠 때여서 완곡하게 거절했었다. 이 일을 하면 보수는 꽤 된다고 했다.

봉인, 등록, 대독이 끝나면 관원이 도장을 찍어 책임자를 표기해야 했다. 그 중에서도 채점 작업과 관련된 글들은 먹색이 제각각이었다. 주임 시험관 및 주 시험관은 검은색 먹물을 썼다. 그 외에 서로 다른 직무의 책임을 지는 다른 시험관은 보라색이나 남색을 사용했고, 등기자는 빨간색으로, 대독자 노란색을 사용했다. 

5가지 색으로 나눠진 이 번거로운 절차는 굉장히 높은 수준의 공정성을 보장하는데, 그래도 최종 순위는 시험관들이 주는 평가에 달려 있었기에 시험관의 기호와 성향에 따라 좌우되었다.

물론 마지막 단계에는 향시 시험지를 모두 경성의 한림원에 보내 그곳 관리들로 하여금 다시 검토하게 하여 부정행위 여부를 최대한의 검열한도로 검사해 내었다.

하지만 고청운의 생각에는 현대의 시험과 비교해서 이곳의 시험이 주관성이 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기에, 시험결과에 대해서는 조바심을 내고 있었다.

8월 30일이 되어서야 성적을 알 수 있었는데, 앞으로 성적 확인을 위해 기다려야 하는 10여 일 동안, 네 사람은 정말 식욕이 없었다. 그들뿐만 아니라 다른 수험생들도 상황은 매한가지라 만나기만하면 향시에 물어보는 상황이니,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서 어떤 비밀 소식이라도 듣고 싶어 했다. 

물론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었다. 이번 왕조는 과거 시험을 매우 엄격하게 관리했는데, 이맘때 즈음 이번에는 시험관들이 시험장에 갇혀 답안지를 고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합격자 발표일 까지는 갇혀 있을 예정이라, 만에 하나 누군가가 성적에 관해 알고 있었다면 말할 것도 없이 부정행위가 있었다는 것이기에 수많은 조정 사람들과 수험생들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었다.

시간이 하루하루 지나가고, 수재들이 모여드는 이곳 분위기는 갈수록 점점 더 거칠어지고, 억압되고, 다들 불안해하고 있었다. 시험의 결과가 자신의 운명에 미칠 영향이 너무나도 크기에 모두에게 중요 할 수밖에 없었다. 향시를 치른 뒤 집에 갈 수 있다는 공문도 붙었지만,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돌아갈 리가 없었다. 어느 누구의 집에서 군성보다 더 빨리 소식을 알 수 있단 말인가.

합격자 발표날에 가까워질수록 모두들 더 긴장하기 시작해, 방자명과 장수원 마저도 긴장감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고청운도 평소와 달리 행동거지가 달라졌음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고청운은 이번 시험의 모든 문제를 다 풀어 답안지를 제출했고, 책론이야 아마도 점수는 좋을 것 같지만 결과는 합격 아니면 탈락만이 있을 뿐이니, 만약에 주임 시험관이 조금 너그러운 사람이 걸렸다면 잘하면 합격을 점쳐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가 제출한 답안지가 주임 시험관이 보기에 불편했다면, 불합격이지 않겠는가.

* * *

기다리고 기다리던 8월 30일 날, 드디어 합격자 발표일이 도래하였다.

동이 트자마자 모두들 시험장 입구에 에워싸고 기다렸다.

고청운과 일행들은 인파를 비집고 들어가진 않고 옆의 공터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고청량 외의 서동들이 이미 비집고 들어가 있었다. 

발표자 명단이 나오자마자, 고청운은 미친 듯이 몰려들어 헤집고 명단을 확인하려는 사람들과 주변으로 몰려든 구경꾼들을 보았다. 

미쳐 날뛰고 소리를 질러대는 인파를 바라보며 그는 조용히 제자리에 서서, 그 한가운데를 비집고 들어가고픈 충동을 자제하며 긴 기다림을 시작했다.

십여 분의 기다림이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고청량이 군중 속에서 흐트러진 옷차림으로 인파를 뚫고 나오자, 고청운은 긴장한 표정으로 그의 얼굴을 살폈다.

환한 표정이 환희 같기도 하고 슬퍼하는 듯 보이기도 한 것이, 복잡해 보였다. 

고청운은 자신의 앞으로 달려 나온 고청량을 얼떨떨하게 쳐다보고, 마른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

“저 떨어졌나요?”

말을 하고나니 목은 쉬고 마음도 무겁게 망연자실해졌다.

“청운아, 네 이름이 명단에 있기는 해. 보궐 합격자로, 61등이야. 이번 향시에서는 60명만 합격시켰어.”

고청량은 그가 견뎌내기 힘든 충격을 받을까봐 걱정이 되어 고청운을 부축했다. 

그 말을 듣고 나자, 고청운은 자신도 모르게 정신이 아득해짐을 느꼈다. 

앞에 몇 마디만 듣고 마냥 기뻐하고 있다가, 뒤에 딸려온 말 한마디에 꼼짝 못하고 멍해져 버렸다. 

단지 한 등수 차이라고? 그는 피를 토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이건 정말이지 꼴찌만도 못한 일이었다. 차라리 꼴찌를 했으면 마음이라도 편했을 텐데.

고청운이 멍해져 있는 모습을 본 방자명이 옆에 있다가 그의 어깨를 살살 두드리며 나지막이 말했다.

“청운아, 괜찮아?”

고청운은 재빨리 정신을 차렸다. 하겸죽과 조문헌 모두 자신을 향해 오고 있었다. 

‘우선 입을 굳게 닫자, 이미 벌어진 일인 것을.’ 

그는 오기로 인파를 뚫고 나아가 다시 한번 붙어있는 합격자 명단을 확인하러 갈까 했다가, 종국엔 이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마음을 정하고 다시 입을 열어 대답했다. 

“괜찮지 않아요. 굉장히 실망스러워요. 하지만 이미 이렇게 될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있었어요. 저는 이미 최선을 다 했고, 이번에 채용하는 인원수 자체가 적었는 걸요. 보궐 합격자에 이름이라도 올려봤으니 그것만으로도 이미 대단하다고 생각 할래요.”

말을 마치자, 고청운은 실제로 자신이 말한 것과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번 시험에서 이만한 성과를 냈다는 사실에, 실제로도 정말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아직 젊었고, 시험은 다음 기회에 또 치르면 그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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