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대생활 (93)화 (93/504)

93화. 마지막 시험

오늘은 8월 15일, 바야흐로 중추절(*중국의 추석)이었다. 예년 이맘때 그는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는데, 처음에는 그들의 집안형편으로는 월병(*月饼:중국의 추석인 중추절에 우리나라에선 송편을 먹듯 월병을 먹는 세시풍속이 있다)조차 사기 아까웠다. 낭비라고 생각되어 직접 만들어 먹다가 나중에 경제 여건이 좋아지면서 월병을 사먹거나 아예 직접 제대로 만들어 먹을 수 있었다.

가족을 생각하니 고청운은 더욱 잠을 이루지 못했다.

고하는 추수 후에 임요조와 혼인식을 올리기로 했는데, 혼인 상대는 성실한 남자로, 고하의 총명함과 역량까지 잘 갖춰져 분명 잘 살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임씨 집안은 200묘나 되는 경작지를 보유하고 있었는데, 그 중에는 과수원도 하나 있어 매년 수입이 적지만은 않았다. 고하는 닭 키우는 기술도 뛰어났다. 그녀의 양계 기술은 고청운보다 더 좋았다. 나중에 시집가면 과수원의 과일나무 아래에서 닭을 기를 수도 있으니, 걱정을 덜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큰누이보다 더 잘 지낼 터였다. 큰누이가 시집간 남자는 결국 그 집안 차남이지 않은가. 

이쪽 시공간에서 생활 해본 16년 동안 고청운이 알게 된 것은 이곳 사람들이 장남을 중하게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이후 분가할 때에도 역시 장남이 재산의 7할을 차지하게 되었다. 물론 이것은 절대다수의 상황으로 만약 더 어린 자식이 총애를 받는다면야 부모의 개인적인 재산정도는 많이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큰누이가 지금 낳은 어린 남자 아이도 만 3살이 다 되어가, 그녀가 시집간 하씨 집안에는 어느 정도 초보적인 입지를 굳힌 것으로, 걱정할 필요까지는 없었다.

하씨 집안을 떠올리면 하 수재가 생각나고, 또 하림이 떠올랐다. 그 집으로부터 받은 도움이 꽤 큰데, 나중에 자신이 출세하게 되면 도울 일이 있을 때 기꺼이 도와 줄 수 있었다. 그리고 사제인 하지도 있잖은가. 올해 14살로 나이가 어리다고 볼 수는 없었는데, 하씨 부자의 말로는 다음 번 시험에 참가해 현시와 원시를 보게 하여 일거에 수재 타이틀을 거머쥐게 하게 하겠다고 했다. 

‘아, 4년 전의 중추절 때만 해도 군성에서 명절을 쇠었는데, 이번 중추절은 시험장에서 보내게 되다니.’

자신도 모르게 그는 이번 시험에 자신이 과연 합격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곧 자신이 과거에 급제하면 얼마나 기쁠지, 또 가족들은 얼마나 흥분할지까지 상상하다가도 만약에 또 낙제하면 어떻게 실의에 빠질지 생각하며, 어떻게 입을 떼서 가족들에게 비보를 전할지까지 상상해 보았다. 어느덧 침대에서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다시 다른 사람들을 돌아보니 촛불을 켜 놓고 격정적으로 붓을 휘갈기고 있는 사람도 있고, 고청운마냥 이미 침상에 드러누워 있는 사람들도 보였다. 

‘그냥 얼른 쉬자, 마지막 이틀을 보내고 다시 생각하는 거야. 다른 데 시간을 뺏길 수는 없지.’

천천히, 그는 정말로 어렴풋이 잠에 들었다.

두 번째 날이 밝았다. 고청운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정신이 맑다고 느꼈는데, 그가 시를 한 소절 써 본 후에야 비로소 여전히 정신이 별로 없고 계속 졸음이 오는 것을 느꼈지만, 자신이 어젯밤 수면 시간만은 이미 충분했다.

아무래도 요 며칠 너무 힘들어서 후유증이 생긴 것 같았다. 오죽하면 조문헌이 지난 시험에서 마지막 이틀이 되면 감각에 의지해 문제를 풀어야했었다고 했을까.

그는 일어나서 몇 바퀴 돌아보았지만 정신은 여전히 활기가 돌아오지 않는 듯했다. 마지막에는 찬물로 얼굴을 한 번 자극한 후에야 조금 정신을 차려지는 느낌이었다. 이때 또 억지로 시 한 수를 썼는데, 쓰고 나서 몇 번이고 다시 읽어보았으나 만족스럽지 못했다. 세 편의 시어 모두 그럴듯한 내용을 담지 못한 채 임기응변을 발휘해 구색만 맞추었다.

그래서 그는 다음 시간에도 계속 시 구절을 다듬다가 마지막 시험지를 제출 할 때가 다 되어서야 비로소 마지막 시를 베껴 썼다.

시험지를 제출한 후에 원고지도 제출해야 하는데, 이는 원고지 내의 내용이 모두 다른 사람의 것을 표절한 것이 아니며 자신이 쓴 문제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원고지에 자신의 본문내용에서 몇 글자를 고치고, 또 몇 글자를 첨가해야 했다.

이는 답안지를 읽는 사람이 부정행위를 할 것에 대비해 답안지를 고쳐내는 것이라고 한다. 고청운은 이 규정을 들었을 때 받은 유일한 느낌은 향시가 정말로 엄격하다는 것이며, 그들과 같은 가난한 학생들에게는 유용한 제도라는 것이었다.

이 밖에 이들이 답안지를 제출하고 이름과 본적 등을 기재한 부분은 원시 때와 마찬가지로 이름을 풀로 붙이고 봉인해야 했다. 전생에서의 대학 입시, 대학원 시험 및 공무원 시험 등과 같이 중요한 국가고시 시험에서도 모두 시험지를 밀봉 하는 형식으로 공평성을 보장했었다.

지금 와서 돌아보니 이런 형식은 과거제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었다. 

마지막 시험은 해 질 무렵까지 계속되었고, 시험이 끝나서도 바로 나갈 수 없어 내일 아침까지는 기다려야 시험장의 대문이 빗장이 열리게 될 것이었다.

이제 더 이상의 시험은 없었다, 3년에 한 번 있는 향시가 이렇게 끝난 것이다. 고청운은 원래 자신이 매우 흥분할 것이라고 생각했었지만, 실제로는 그러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답안지를 낸 후, 사람들은 모두 자기 호실에 힘없이 앉아 있었는데, 악취 나는 방 인근의 인재들만 골목 어귀로 옮겨 앉아 있었다.

피로, 피곤함만이 모든 응시생들이 공통으로 느끼고 있는 감정일 터였다. 

고청운은 그간 사람들이 동기라는 둥, 같은 해에 이뤄진 관계나 소속감을 따지는 것을 이상하게 여겼었는데, 9일 동안 함께 뒤엉켜 시험을 치른 경험 덕에 단합하여 온정을 나누고 싶은 것뿐만 아니라, 각자의 가장 지저분한 면모를 본 만큼 왠지 모를 친밀감을 느끼게 되었다. 아마 모두가 공감 할 터였다.

고청운 옆에 앉은 황언성은 먹을 게 더 있느냐며 힘없이 물었다.

“더 있지요, 황 형은 더 없나요?”

고청운은 이상했다. 아무래도 큰 찐빵 한 봉지를 더 가지고 있는 것 같았는데.

“찐빵은 보기만 해도 토할 것 같아요.”

황언성은 고청운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싶었다. 고청운은 재빨리 그를 말리려 하였으나, 코끝이 아직 기능을 상실하지 않았던 탓에 황언성의 몸에서 나는 화장실 냄새와 진배없는 냄새를 맡게 되었고, 자신에게도 이런 냄새가 난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에 일단 좀 진정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고청운은 황언성이 어깨에 머리를 기대기 전에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호실에서 꺼내온 면포와 호리병 박 등을 사용해 얼굴을 닦고 물을 끓여 차를 마실 준비를 했다.

사흘째 푸르른 야채를 먹지 못하는 것은 영 적응이 되지 않았다. 

그는 찐빵을 더 이상 먹고 싶지 않았다. 심지어 찐빵을 보기만 해도 역겨움을 느꼈다.

그날 저녁 두 사람은 함께 차를 몇 잔 마셨고, 고청운은 찻잎을 입에 넣고 몇 번 씹고 뱉어냈다.

사람들은 모두들 옹기종기 모여 이야기들을 나눴고 호실의 침대 깔판을 복도 어귀에 갖다 놓고 잠자리에 들었다.

하루도 편히 밤잠을 못 자던 고청운은 끊임없이 악몽을 꿨는데, 늘 무언가 자기를 쫓는 것 같았다. 한 번은 자신이 급히 뛰다가 높은 데서 뛰어내려 경련을 일으키며 잠에서 벌떡 깨어난 적도 있었다.

잠에서 깨어난 직후 순간 자신이 어디 있는지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주위에서 떠드는 소리가 도리어 그에게 안정감을 줬다. 주위를 자세히 살펴보니 일부 사람들은 이미 잠들어 있었고, 휴식을 취하기도 했으며, 많은 사람들이 한데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등 모두들 날이 밝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고청운도 잠이 오지 않았다. 등의 식은땀을 닦고 나니 한 시진만 더 있으면 동이 틀 시간이었다. 얼른 호실로 들어가 물건을 정리하고 옷을 입은 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앉아 있었다.

이야기꽃은 거의 다 이번 시험 문제와 관련되어 있었는데, 어떤 이는 얼굴에 기쁜 기색을 감추지 못했고, 얼굴에 근심이 가득하거나, 시험관이 낸 문제를 저주하거나, 한쪽 구석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고청운처럼 차분한 표정으로 도대체 시험을 잘 본 건지 못 본 건지 헷갈리게 하는 사람도 있었다.

장수원이 고청운에게 질문을 던지자 그는 어리둥절해하다 답했다. 고청운은 자신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이미 시험을 쳤으니, 합격 여부는 시험관들이 어떻게 판단하느냐에 달렸다고 말했다.

이것은 고청운 스스로가 자기 자신에게 가장 마음에 들어 하는 부분으로, 그는 과거 시험을 볼 때 오탈자, 사용이 금기시 되는 글자사용 등 기초적인 저급한 실수를 범하지 않았다. 물론 시험장의 환경 조건에는 영향을 좀 받았는데, 때로는 9할의 실력만 발휘되고 1할은 환경의 영향을 받곤 하였다. 예를 들어 이번 시험의 경우, 마지막의 두 시부에 대한 답변 수준은 그리 높지 않을 것 같았다.

머리를 쥐어짜서 겨우 도출해 낸 답안이건만, 생각만 해도 답답했다. 자신은 왜 영감이 확 찾아와서 번쩍하고 단숨에 문장을 완성해 내지 못한단 말인가?  아무래도 쌓인 지식이 모자라서 그런 것 같았다. 시간이 좀 더 흐르고 나면 이쪽으로는 더 발전할 여지가 있을 것이었다. 

“장 형은요?”

하고 고청운이 되물었다. 

장수원은 생긋 웃을 뿐, 답해주진 않았다.

고청운은 이로써 확실해졌다. 이번 시험 문제는 그의 구미에 딱 맞았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 같았다.

두 사람은 또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장수원은 영원히 홀로 지낼 걱정은 없을 것 같았다. 누군가가 또 그에게 다가와 친근하게 말을 걸었다. 

* * *

여럿이 모여 수다를 떨다가 드디어 시험장의 빗장이 열렸다. 

서로 밟히지 않고 나가기 위해서 여전히 줄을 서서 나가야 했다. 몸이 좋지 않은 사람들은 병사들이 부축해 나가도록 했다.

밖은 사람들의 소리로 들끓고 있었다. 여저기서 조바심이 난 가족들이 이름을 부르짖으며 울부짖는 소리까지 나고 있었다. 

고청운이 줄맞춰 나고 있을 때는 해가 아직 뜨지 않은 시간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밖의 신선한 공기를 마신 것만으로도 정신이 맑아지고 울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어쩌면 죄수가 석방될 때 이런 기분이 들까? 이 9일간의 여정은 몸과 정신에 대한 시련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청운아!” 

고청량이 마침내 인파를 뚫고 들어와 그를 부축해주려 했지만, 막상 고청운에게 다가가자 조건반사적으로 바로 몇 걸음 뒤로 피해 물러나며 깜짝 놀라 소리쳤다.

“왜 이렇게 고약한 냄새가 나는 거야!”

고청운은 먼 산을 바라보듯 그를 쳐다봤다.

고청량은 머쓱해져서 웃었다. 서둘러 그의 시험 바구니 등의 짐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그를 부축해 천천히 큰길가로 나와 그대로 미리 예약해둔 가마를 찾아 걸어갔다.

사합원으로 돌아간 고청운은 너무 피곤하기만 해서 다른 친구들의 형편을 알아볼 겨를도 없이 뜨거운 물로 먼저 후딱 샤워를 하고 양치질을 한 후, 흰죽을 한 그릇 먹고 서둘러 침상으로 기어 올라가 잠이 들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줄곧 잠들어 있는 동안 고청운은 온몸에 땀이 났는데, 그가 눈을 떴을 때, 고청량이 줄곧 그의 침상 옆에서 지키고 있었고, 머리는 침상 가장자리에 대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때 고청운이 일어나 앉자마자, 고청량도 움직이는 소리를 듣고는 맹렬한 기세로 눈을 떴다. 

“둘째 형.” 

고청운이 가볍게 불렀다.

“나 때문에 괜히 깼네요. 왜 형 침상에 가서 쉬지 않고?”

“내가 어떻게 잠을 잘 수가 있겠어? 살이 이렇게 빠져서 돌아와서는, 잠잘 때 호흡도 무겁고, 밤에 열이라도 날까 봐 걱정했어. 듣자하니 응시생들이 대부분 집에 돌아와 그렇다는데, 너를 지키고 서있는 수밖에 없었지.”

고청량이 그의 이마를 만져보니 온도는 정상이어서 이제야 안심했다.

“정말 놀랬다, 응시생들이란 시험 본다고 진짜 고생하는구나. 형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시험을 본다고 9일씩이나 갇혀 지내다니. 나였으면 견디지 못했을 거야. 그나저나 넌 몰라. 네가 나왔을 때 무슨 몰골이 초두부 같았다고. 네가 가지고 나온 옷가지들은 또 어떻고. 옷 세탁해 주시는 아주머니가 돈을 더 주지 않으면 옷도 안 빨아준다고 하실 정도였어.”

고청량은 말하면서 문 쪽으로 걸어갔다. 

“너희들이 한밤중에나 일어날 줄 알고 주방에 고기죽을 따뜻하게 준비 해 놨으니, 내가 좀 가져다줄게.”

고청운은 배를 만져봤는데 정말 배가 많이 고팠다. 재빨리 침상에서 일어나보니 정신상태가 너무 좋아 진 것 같았다. 

그가 기지개를 켜자 온몸의 관절에서 뚝뚝 소리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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