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화. 똥호실 (1)
병사들의 주시를 뒤로 하고, 고청운은 무표정하게 목판을 열어 젖혀 자신에게 배정된 호실로 들어갔다.
방안에 약간 음습한 느낌이 있어서, 설마 어젯밤에 막 내린 비 몇 방울에 지붕이 새는 건 아니겠지? 하고 고개를 들어 지붕을 올려다보니 정말 나무껍질로 만든 지붕이 보여 지금 이 곳이 너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관청이 이렇게까지 돈에 쪼들리고 있는 거야? 기왓장 하나 내 주지 않고 아끼고 아껴서 이런 모양새로 건물을 지어놓다니.’
일단 생각은 여기까지 멈추고, 시험장 바구니 등 소지품을 내려놓은 뒤, 고청운은 걸치고 있던 두꺼운 옷부터 벗었다. 저녁 무렵에 갑자기 커질 기온 차에 대비하기 위해 경험이 있는 시험 응시자들은 으레 두꺼운 옷 한 벌씩을 챙겨왔다.
옷을 내려놓은 뒤에는 잠시 땀을 닦고, 소매를 걷어붙인 뒤 먼지를 닦기 시작했는데, 검게 변하기 시작한 얼룩들까지는 잘 지워지지 않아 손을 더 써 볼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한 차례 닦아 낸 후, 그는 바로 호실 안의 구석구석을 상세히 살펴보기 시작했는데, 성과라고는 작은 지네 한 마리와 바퀴벌레 몇 마리를 밟아 죽이고, 쥐를 쫓아내는 것 정도가 다였다.
하지만 그 후로도 다시 몇 번의 검사를 거치고, 또 다시 뱀, 지네, 쥐들을 쫓기 위해, 사 들고 들어온 웅황분(*雄黄粉: 천연으로 나는 비소 화합물)을 사방에 뿌렸다.
쥐야 무섭지 않았지만 뱀과 지네는 무서웠다. 듣자 하니 예전에 한 응시생이 뱀에 물려 죽었다지 않는가? 가족들이 얼마나 슬퍼했겠는가, 하지만 본인 재수를 탓할 수밖에!
침대 깔판에는 삼베를 한 장 깔았다. 이 삼베는 주름이 너무 잡혀서 모양이 말이 아니었지만 다른 방도가 없었다. 병사들의 손 수색을 거치고 나니 이렇게 되어버렸는데, 고청운은 챙겨온 음식들도 매한가지로 많이 부서지고, 짓눌리고 또 심지어 새로운 형태로 빚어져 혹시 음식 안에 종이 쪼가리라도 한데 뒤섞여 있지나 않을까 우려스러웠다.
고청운은 챙겨온 물건들을 하나하나 정리하고 나서, 옆방에 아직 아무도 없을 때를 틈타 화장실에도 가고, 아직 시험지를 돌리지 않았으니 서둘러 물을 먼저 떠와 라로우판(*腊肉饭: 후난지방색의 훈제고기밥)을 만들 준비를 했다. 앞으로 나올 식사는 분명 좋지 않을 것임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이때 즈음 대다수의 수험생들이 입장했고 고청운은 맞은편을 바라보았는데, 두 줄로 늘어선 두 열의 호실 사이의 복도는 원시를 볼 때만큼 넓지 않았기에 건너편 사람의 표정까지도 뚜렷하게 보였다.
이번 그의 맞은편에는 장수원이 아닌 모르는 사람이 자리 잡고 있었지만, 대각선 맞은편에는 지인인 황언성이 있었다. 두 사람은 눈이 마주치자 빙긋 웃었다. 정말 인연이긴 했다. 그래도 눈만 마주칠 뿐 무슨 말을 나누진 못했는데, 호실 밖으론 병사들이 아직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른쪽 옆방으로 바로 화장실 옆 호실을 배정받아 응시생이 작은 소리로 슬프게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는 와중에도, 고청운은 조롱박에 물을 담고 돌아와 등유 난로에 불을 붙여 물, 쌀, 돼지고기를 마구잡이로 한데 넣어 찌기 시작했다. 그러고 나서야 비로소 붓, 붓걸이, 벼루, 묵괴, 문진 등을 조심스럽게 꺼내 습관에 맞춰 일일이 책상 위에 배치 해 놓았다.
일렬의 배치를 다 끝내고서야, 고청운은 평정을 느낄 수 있었다. 악취 나는 곳 가까이에 호실을 배정받은 찝찝함과 불쾌한 분노가 마침내 가라앉았다. 이런 불편한 느낌은 시험을 치르는 데 아무짝에도 도움이 되지 않기에, 시험 보기 전에 한 번은 해소해 버려야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험지가 배포 되었다. 세어 보니 20장이었고, 총 12개의 문제로, 풀어야 할 내용이 꽤 많았다. 시험지와 함께 원고지 한 묶음도 같이 배포되었다. 고청운은 누락 등 이상이 없는지 검사하며 제목 내용을 대충 훑어보았다.
이번 향시에는 이미 묵의와 답경이라는 점수를 거저 주던 문항이 없어졌다. 첫 시험은 여덟 문제로 이뤄진 경의 과목 문제와 두 개의 산술 문제, 두 개의 시부(*诗赋: 옛 선인들의 시구나 명언인용)를 푸는 시험이었는데, 그 중 경의는 사서에서 발췌된 문제만을 낸 것으로서, 점수배분에 있어 산술은 2할의 점수배분밖에 차지하지 않았고, 남은 8할의 점수는 모두 경의와 시부에 할당되어 있었다.
고청운은 사전에 마음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문제 내용이 이상하진 않았다. 그는 먹을 갈기 시작하면서, 지금 자신이 정신력이 충만한 틈을 타서 문제를 풀 마음가짐을 다잡았다.
붓에 먹물을 먹인 뒤 먼저 시험지 윗부분에 자신의 이름, 본적, 나이, 외모 특징을 써내려갔는데, 외모 특징에 대한 내용을 써내려가는 부분에서 고청운은 잠시 손을 멈칫했다. 결국 '얼굴이 검고 수염이 없다'라고 쓰기로 했다.
이후 계속해서 빈칸을 써 내려갔다, 범법 행위를 저지른 적이 있나? 하고 자기 자신에게 되물었다. 당연히 없지. 마지막 줄에서는 자신의 증조부, 조부와 부친 삼대의 이름을 기입하는 항목이 나왔고, 그 뒤로 정식 시험문제가 이어졌다. 먼저 경의 항목을 풀었다.
첫 번째 문제는 바로 <대학>의 대학지도, 재명명덕, 재친민, 재지우지선(大学之道,在明明德,在亲民,在止于至善)라는 구절에서 발췌한 문제였는데, 언뜻 보기에는 쉬워 보이는 발제였지만 간단할수록 어려운 문제인 법이었다. 하도 여러 번 봐왔기에 막상 자기 스스로 새로운 것을 써 내기 어려웠다.
그러나 이 발제는 이미 방인소가 그에게 설명해 준 적이 있는 문제였기에, 문제될 것이 없었다. 문제의 답을 다 쓰자 고청운은 자신감이 꽤 커졌기에, 문제의 답을 계속해서 써내려갔다. 왼쪽의 작은 난로에서는 이미 좋은 냄새가 서서히 흘러나오고 있었다.
정오가 되자, 그는 이미 세 문제나 다 풀어 낸 상태였고, 밥도 이미 다 되어 있었기에 그는 점심을 먼저 먹기로 했다.
훈제 고기밥은 정말 끝내줬다. 그는 귀에 솜을 틀어막아 소음을 조금 차단하고자 시도는 해 봤으나 이미 한 응시생이 화장실로 들어간 뒤였다. 화장실 옆에서 먹어야만 하는 식사의 맛이란…… 그는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아졌다.
솜으로 귀를 틀어막아보았다 한들, 벽 너머로 들리는 일명 악취방을 배정받은 응시생이 몹시 초초하게 왔다갔다하는 소리까지는 막아낼 수는 없었는데, 옆 호실의 누군가는 시험지를 촤라락 뒤적여대기까지 했다. 그런 소리를 듣고 있노라니, 자신이 제일 운이 없는 사람인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감히 확신해 봤는데, 지금의 방 배정운만 보더라도 벽 너머의 응시생은 설령 지금 재주와 금은보화가 넘쳐나는 사람일지언정 그 운이 그와 함께 끝까지 갈 것 같지는 않았다.
지금 날씨가 이렇게나 더운데, 더군다나 또 이 많은 사람들이 한 장소에 틀어박혀 있었기에 해가 한 번 내리쬐면 후덥지근한 증기가 같이 올라와 온 시험장 호실들이 더 푹푹 쪄지고 있었다. 그럼 맴돌던 그 악취들은…… 생각만 해도 너무 메스꺼워졌다.
식사를 마친 후, 고청운은 식기를 씻고 호탕하게 옷을 벗어 반라의 모습으로 특별 제작한 커다란 반바지에 민소매 조끼 하나만 걸쳤다. 이런 차림에도 불구하고 땀이 계속 흘러내렸는데, 땀을 아무리 닦고 또 닦아 낸다 한들 그는 모발이 특히나 두껍고 촘촘해서 목 쪽으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이 덥게 느껴져 돌돌 말아 묶었지만 그게 또 무겁고 불편하다고 느꼈다.
‘머리를 다 밀어버리지 못하는 것이 한스럽구나!’
대각선 맞은편 황언성은 찐빵을 뜯어 먹는 중이었는데, 부러움이 한가득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고청운은 맞은편 병사들이 눈에 들어와, 황언성과는 감히 눈빛 교환조차 하질 못했다. 그는 호실 안을 천천히 왔다갔다 움직이며 소화를 시켰다. 30분 후, 고청운은 낮잠까지는 못 자고, 솜을 다시 잘 틀어막고 특별 제작한 현대의 마스크와 같은 천을 착용했다. 지난 번 원시 시험에서 자신이 다음 시험에서 냄새가 고약한 방을 배정 받을까 봐 겁을 먹지 않았던가. 그래서 이번에 미리 준비를 했었는데 막상 쓸 일이 생길지는 몰랐었다.
……하지만 쓸 필요가 없느니만 못했다.
그는 서둘러 앉아서 문제를 풀기 시작하여, 저녁 무렵에나 겨우 경의 항목 세 문제를 풀었는데, 오전에 푼 것까지 다 합치면 모두 여섯 문제를 다 푼 것이었다. 고개를 살살 돌려보니 어깨와 목이 뻣뻣해져 있었다. 고청운은 맞은편을 한 번 바라봤는데, 꽃이 한 점 한 점 피어난 것 마냥 모두들 신발과 옷가지를 벗어 던져두었다.
‘헐, 문인의 망신, 개망신이로구나!’
고청운은 참 웃기다는 생각이 들었다. 밖에서는 겉모습이 단정하고 멋들어진 책 좀 읽는다는 사람들이 호실에 들어와서는 이런 모양새다. 과거 시험이 이렇게나 어려운데도 응시자가 물밀 듯이 들어오다니, 실은 자기 자신도 포함해 이렇게들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지금의 고생은 향시에 급제만 하면 필히 보상이 되리라!
무표정을 유지해야 하는 병사들도 속내는 참 여렵긴 할 것이다. 이런 난장판을 목도하고도 저 무뚝뚝한 표정을 유지해야 할 테니 말이다.
고청운은 원고지를 잘 말려서 조심히 시험 바구니에 넣었는데, 오늘 밤엔 등불을 켜고 야간 시험에 임할 수 없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이 시기에는 이미 저녁 무렵이라 모기들이 매우 극성을 부릴 때였는데, 모기들이 왱왱대는 소리가 났다. 특히 고청운처럼 화장실에서 가까운 쪽의 호실을 배정받은 있는 이들에겐 악취까지 더 해져 질식할 지경이었다.
오늘 하루 종일 문제를 풀기가 매우 바빴고 또 점심에는 휴식도 취하지 못했기에, 고청운도 날씨가 덥고 구린내 나는 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마스크를 벗은 후 바로 잠을 청했다.
실로 생화학 무기에 버금가는 위력이었다! 아까는 문제를 푸는데 온 힘을 다하느라 모기들이 자신을 물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었다. 지금에서야 그는 서둘러 쑥에 불을 붙이고 더위를 삭히는 약을 먹었다.
하루 종일 내리쬔 태양열이 빠지지 않은 실내에서 금세 시험장 전체에 각종 모기 쫓는 냄새가 진동하더니, 이 때문에 공기가 더 덥고 건조해져 실내 온도가 또 다시 올라갔다.
고청운은 용무중이라고 써진 팻말을 들고 화장실에 다녀온 후, 그는 밥을 더는 먹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뭔가 요리한다는 행위 또한 언급하기 조차 싫어졌다. 그러나 아무것도 안 먹자니, 종국에는 억지로 대강 긴 찐빵을 입에 쑤셔 넣고 다시 방안을 한 시간 가량 어기적거리며 돌아다니다가 옷을 걸쳐 입고 쓰러져 잠을 청했다.
오늘은 문제를 푸느라고 긴장된 하루를 보냈는데 평소와 다르게 오후에 갖는 휴식 시간도 없었기에, 고청운은 더운 날씨나 악취와 관계없이 곧바로 잠이 들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