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화. 향시 (2)
고청운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현재 가지고 있는 정보가 제한적이었고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 수가 없는데다가 향시 날짜가 다가와서 더 이상 관찰하지 않았다.
방자명은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갑자기 장수원의 이야기를 꺼냈다.
"장 형도 이번에 향시를 치른다고 하는데 제가 보기엔 붙고도 남을 것 같아. 양 학정을 따라 3년 동안 공부했으니, 실력이 꽤 늘었겠지. 지난 번 시험 이후로 3년 동안 이를 갈며 열심히 공부를 했으니까. 우리의 큰 적수인 셈이야."
고청운은 그의 표정을 면밀히 살펴보다가 기분이 썩 좋지 않은 것 같기에 물어보았다.
"장 형이 붙지 않았으면 하는 건가요?"
"아니야. 그저 내 뒤에 있기를 바랄 뿐이지. 그래야 누님이 시집가서 더 잘 살 테니까."
방자명이 솔직하게 답했다.
고청운은 목소리가 고운 소녀를 떠올리고서는 속으로 그의 말에 동의 했다. 현실이 그랬다. 지금 보니 장씨 집안은 방씨 집안보다 더 높은 집안이었기 때문에 방자명이 누이 걱정을 하는 건 지극히 자연스런 일이었다.
"누이와 장수원은 언제 혼인하나요? 날짜는 정해졌나요?"
고청운은 그래도 장씨 집안이 매우 성의가 있는 편이라고 생각했다. 몇 년 전에 한 약속을 지금이라도 지키다니. 만약 방씨네 노태야가 돌아가셔서 손자뻘이 전부 1년상을 치러야 하지만 않았어도 누이가 시집을 갔을 것이다. 나중에는 방씨 집안에서 딸이 일찍 시집가는 걸 서운하게 여겨서, 장수원이 향시에 합격하면 다시 혼인을 하는 걸로 약속했다.
장수원 역시 혼인을 하기에 마땅한 처지가 아니었다. 양 학정 밑에서 3년 동안 공부를 하고 경성에 돌아온 후 아버지가 계신 곳에서 공부를 했는데, 이곳은 임산현과 매우 먼 곳에 있었다.
"10월 중순으로 정했어. 그때가 되면 우리 집에 술 한 잔 하러 와야 해?"
방자명이 웃으며 말했다.
고청운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응했다.
"물론이죠."
소화가 거의 다 된 것 같아서 고청운은 방자명에게 인사를 건넨 후 방으로 돌아가서 휴식을 취했다.
* * *
그 후 며칠 간 고청운은 저택에만 머물면서 두문불출했다. 필요한 물건은 고청량에게 사오라고 시켰다.
고청량은 군성에 도착하자마자 환경을 익히러 밖에 나갔다. 향시 시험장과 원시를 치르는 시험장은 같은 곳이 아니었기 때문에 근처에 가서 둘러 볼 필요가 있었다. 적어도 근처에 먹을 걸 파는 곳과 약방 정도 위치는 미리 알고 있는 게 좋았다. 그렇지 않으면 필요할 때 급하게 찾으려고 하면 못 찾기 일쑤니까.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나가서 바람을 쐬고, 사찰에 가거나 벗을 만나서 정보를 교류했다. 그래서 고청운이 저택에만 처박혀 있는 것이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고청운은 그저 거절하며 나가고 싶지 않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혼자 방 안에서 소소한 즐거움을 누렸다. 공부를 한 후 복습을 했고, 생활을 규칙적으로 이어나갔다.
물론, 시험 볼 때 필요한 물건을 준비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반드시 필요한 문방사우 외에도 부싯돌, 면포, 갈아입을 옷 세 벌, 걸레, 우산, 벌레 물린 데 바르는 약, 솜으로 만든 귀마개, 대추술, 석유난로 등을 챙겼다. 시험장에서는 음식을 제공하지 않았는데, 8월의 무더운 날씨에 준비해간 음식은 금세 쉬어버렸으므로 대량의 마른 식량을 챙겼다. 뜨거운 물을 마시려면 직접 끓여 먹는 수밖에 없었다.
석유난로에는 오경계(*五更鸡: 훠궈)라는 별칭이 있었다. 동철 혹은 대나무로 만들어진 외관 중간에 기름등을 넣은 것이었는데 밤에 음식을 데울 때 적합한 크기의 작은 난로였다. 시험장에서 물을 끓이거나 음식을 데우는데 용이했다. 시험장 안에서는 장작을 태우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기름을 쓸 수밖에 없었다. 넉넉한 이는 차유(*차나무 씨에서 짜는 기름)를 사용했고, 넉넉하지 않은 이는 동유(*유동의 씨에서 짜낸 건성 기름)를 사용하기도 했다.
가져가는 음식에는 콩, 쌀, 육포, 말린 버섯이 있었는데, 콩과 쌀은 전날 군성에서 샀고 나머지는 집에서 가져온 것들이었다.
보통 응시생들은 모두 부잣집 자제였기 때문에, 평소에 자신들을 모시는 이들이 있었다. 그래서 음식을 끓일 줄도 몰랐고 이런 일을 귀찮게 여겼다. 문제에 답하는 시간 자체가 넉넉하지 않았기 때문에 음식을 하는데 시간을 할애하지 않았다. 그래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건량을 먹으며 시험을 치렀다.
소위 건량이란 만두, 속이 빈 찐빵과 같은 수분이 적은 것이었다. 대부분 속이 빈 찐빵을 싸왔는데, 수분기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 찐빵을 잘라서 말리면 9일 내내 두어도 곰팡이가 생기지 않았다.
물론 이런 건량은 끔찍할 정도로 맛이 없었다. 하지만 시험장에서 열심히 답안을 작성하다 보면 맛이나 냄새가 이상하다고 불평을 할 겨를이 없었고, 그저 배만 채울 수 있으면 되는 것이었다.
방자명처럼 잘 사는 집안 출신이면 집중력에 도움이 되는 인삼이나 대추술를 가지고 오기도 했다.
* * *
8월 초이렛날, 고청운이 시험장에 가지고 갈 물건들을 확인하고 있을 때, 하겸죽이 문을 밀고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이에 고청운은 하던 일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서 그를 보니 매우 불안한 기색으로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고 숨을 거칠게 쉬고 있었다. 고청운은 물건 목록을 고청량에게 건네주고 확인하라고 시킨 다음, 그제야 낮은 소리로 무슨 일인지 물었다.
"사형, 무슨 일이에요?"
하겸죽은 고청운의 얼굴을 보고 크게 숨을 내쉬며 답했다.
"청운아, 방금 내가 어떤 소식을 들었는지 알아? 즐거운 마음으로 객잔에 가서 현학 동창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는데, 장수원이 길을 가다가 2층에서 떨어진 화분에 머리가 깨질 뻔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
고청운은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라며 바로 물었다.
"그럼 지금은 어떻대요?"
"옆에 하인이 둘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눈과 손이 빨랐던 덕분에 그를 밀쳐내서 아무 일도 없었대. 대신 그 하인이 어깨에 맞은 모양인데, 피가 조금 났고 어깨 전체에 멍 들었다네."
"정말이지, 정말 무섭네요. 장수원의 운이 좋아서, 그리고 책임감 있는 하인이 마침 같이 있어서 천만다행이었네요."
고청운은 어렵사리 한 마디를 내뱉었다.
하겸죽의 안색은 원래대로 돌아왔고, 푸른 대나무가 수놓아진 손수건을 꺼내 땀을 닦으며 말했다.
"정말 무서운 일이야. 누구의 소행인지 정말 질투심이 어마무시해. 장수원을 건드릴 생각을 하다니! 최근 명성이 꽤 있는 이들이 빈번히 변을 당하고 있어. 엄청 심하지 않은 일이더라도 사람을 질리게 할 정도는 되거든. 청운아, 나가지 않기로 한 게 옳았어. 너의 이름도 어느 정도 알려져 있으니 너도 머리 조심을 해야 할 듯해. 조심해서 안 좋을 건 없잖아."
"이런 일은 매번 시험 때마다 일어나는 걸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통 자기가 재수가 없어서 그런 줄로 알고 있지만요. 그래서 우리는 모두 자기 자신을 보호할 줄 알아야 해요."
고청운은 잠시 동안 말이 없었다. 4년 전 원시에서 배탈이 난 응시생을 본 후부터 그는 시험장에서 답안을 잘 작성해야 하는 것 외에도 시험 전에 몸 털끝 하나라도 다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에게는 집안에 처박혀서 나가기 않는 것이 최선의 방범 수단이었다.
이전에도 그는 그들에게 몸조심해야 한다고 당부한 적이 있지만 하겸죽과 조문헌은 이 말을 귓등으로만 듣고, 남들은 자신들에게 관심이 없으니 조금만 조심하면 된다고 여겼다. 2,000명이나 넘는 사람들 중에서 그들은 그저 평범하기 짝이 없는 수재 나부랭이였으니까. 지금 가장 중요한 점은 주임 시험관이 선호하는 성향을 파악하는 것이기 때문에 여전히 날이면 날마다 외출을 강행했다.
사실이 그랬다. 그리고 최근 며칠 간 아무 일도 없이 순조로웠다. 하지만 갑자기 아는 사람이 이런 봉변을 당한 것을 들으니 당황스럽기 시작했다.
한편 방자명은 이런 일을 걱정하지 않았다. 항상 머슴을 둘씩 대동하고 다녔는데, 이는 아마도 그의 집안 어르신들이 이미 비슷한 일을 겪었기 때문이리라.
"내일 모레면 시험장에 들어가네요. 이제 외출을 자제하도록 해요."
고청운이 위로의 말을 건넸다.
하겸죽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정말 빨리 시험을 끝내고 싶어. 아들 녀석이 보고 싶거든."
순간 고청운은 할 말을 잃었다. 갑자기 왜 아들이 보고 싶어진 거지?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제 막 돌이 지난 아이는 뽀얗고 통통한 것이 매우 사랑스러울 때였다.
그리고 조금 후 조문헌과 방자명도 돌아왔다. 밥상에서 장수원 사건에 대해 각자 의견을 내놓았는데, 모두 그가 운이 좋다고 여겼다. 그리고 다른 정보를 교환했다.
고청운은 경(景)씨 성을 가진 대학사가 이번 주임 시험관이라는 말을 듣고 순간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는 방인소 밑에서 1년 넘게 공부를 하는 동안 현재 조정의, 소위 수구파에 대해서 들은 적이 있었다. 그리고 마침 이 경씨 성의 대학자는 수구파 출신의 일원이었다. 사서오경의 문제를 늘리고 응시생들의 도덕적 수양을 중점적으로 시험하여, 덕으로 인재를 뽑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였다.
이런 그가 문제를 낸다? 고청운은 이미 향시가 썩 순조롭게만 풀리지 않을 것이라는 예감을 했다. 그는 그저 경의와 시문의 비중이 너무 크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 * *
8월 초이렛날, 좌석표가 쓰인 명단이 붙었다. 모두 가서 자신의 시험패 번호를 받아와서 사합원에서 마음을 가다듬고 외출을 자제하기로 했다.
이번 향시는 세 부분으로 나누어졌는데, 시험날짜는 8월 9일, 12일, 15일이었다. 3일마다 한 번씩 시험을 보았고, 매번 3일씩 시험을 치러서 총 9일 동안 시험을 보았다.
응시인원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나누어서 입장을 해야 했는데, 어떤 사람은 새벽에 이름이 불려져 입장하기도 했다. 고청운 무리처럼 현성에서 온 이들은 8월 9일 여명 때 폭죽소리를 듣고 입장을 했다. 입장을 하면 18일 아침이 되어야 시험장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시험관들 역시 응시생들처럼 9일 동안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시험이 원활하게 진행되기 위해서 시험이 시작되면 바로 자물쇠를 걸어 잠갔고, 그 사이에 어떤 일이 있어도, 설령 화재가 일어나 응시생들이 타죽는다고 해도 문을 열 수가 없게 되어 있었다.
고청운은 이번 조대 때 향시를 치르는 동안 큰 화재가 났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었지만, 주임 시험관이 이 규정을 읽을 때 여전히 마음 한 구석이 서늘했다. 만약 지금 같이 있는 시험생이 시험을 치다가 정신이 나가서 불을 질러 모두 태워죽이면 어떡하나?
하지만 시험관들 역시 사전에 화재 진압을 염두 해 두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자 마음이 놓였다.
모든 절차가 끝난 후, 고청운은 사병을 따라 자신의 호실까지 걸어갔다.
시험장의 호실은 전부 남쪽을 향한 채로 늘어져 있었다. 긴 호실은 몇 백 칸이 있었고, 짧은 호실에는 5~60칸이 있었는데 이는 마치 작은 골목을 연상시켰다. 사이사이마다 글자가 쓰여 있었고, 등과 물 항아리가 있었는데 이는 시험생들이 밤에 변소를 가고 낮에 물을 마시는데 편리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호실 내부 길이는 10척, 넓이는 8척으로 원시 때 있었던 호실보다 조금 큰 편이었다. 적어도 몸을 바르게 눕힐 수 있을 정도의 크기였다. 호실 안에는 탁자 하나가 있었고, 의자로 사용할 수 있는 침상판, 그리고 물 한 그릇이 있었다. 또 밥을 지을 수 있는 작은 공간도 마련되어 있었다.
사실 호실 자체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호실과 변소가 너무 가까운 것이 문제였다! 호실과 변소 사이에는 방 한 칸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는데, 이를 깨달은 고청운은 벌써부터 욕을 하고 싶었다. 이게 바로 그 유명한 똥호실이구나! 이렇게 재수가 없을 줄은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