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화. 향시 (1)
본래 고이하가 자진해서 따라간다고 하려던 참이었는데, 고청량이 자신이 가겠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이에 모두 고민하다가 동의했다. 이전에도 형인 고청명이 과거를 보러 고청량이 따라가서 그를 돌봤다. 그래서 군성을 두 번이나 가 본 적이 있었다. 고이하는 집을 떠나 먼 곳을 가본 적이 없었다.
고청운은 누가 가든 상관이 없었다. 그저 고청량이 흥분한 모습을 보고 동의했다. 최근 몇 년 동안 고백산은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마을 일을 보아야 했고, 고청명은 공부에 전념해야 했고, 고신하는 말주변이 없는 과묵한 인물이었으므로, 언제부턴가 큰할아버지의 가게를 고청량이 전부 도맡아 관리하는 걸 고청운은 알고 있었다.
고청량은 올해 17세가 되었다. 사람 좋은 넉살 좋은 얼굴로 고청명처럼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곤 했다. 항상 웃고 있는 듯 했지만, 믿고 일을 맡길 만큼 듬직했고, 형인 고청명에 따르면 매번 일처리를 빈틈없이 한다고 했다.
"청운아, 다른 생각 말고 객잔에서 복습하는데 집중해. 다른 잡일들은 청량에게 맡기고."
고청량은 헤헤 웃으며 두루주머니에서 사탕 하나를 꺼내 입에 넣었다.
모두 이 광경에 시선이 갈 수밖에 없었다. 이 나이 먹도록 아직도 사탕을 먹다니.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사탕을 먹었는데도 이가 멀쩡한 걸 보면 치아 관리는 잘 한 셈이었다.
이번에 고청운이 시험을 보러 군성으로 떠날 때, 거의 마을 전체 사람들이 배웅을 나왔다. 만약 고씨 집안에서 한사코 돈을 거절하지 않았다면 마을 사람들은 모두 그에게 돈을 주었을 것이다.
우마차에 앉아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눌 때, 기대에 가득 찬 얼굴들을 보니 갑자기 큰 압박감이 느껴졌다. 특히 족인들은 따뜻함과 희망이 가득한 모습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청운아, 생각 많이 하지 말아. 최선을 다해 보면 그만이야."
고청량은 그의 기분을 알아차리고는 손등을 두드렸다.
고청운은 그를 쳐다보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할아버지는 등을 지고 서서 몇 마디 격려의 말을 건넸다.
고청운은 가족들에게 걱정을 시키고 싶지 않아서 미소를 지어보였다.
* * *
8월 초이튿날, 고청운, 하겸죽, 조문헌 그리고 방자명 네 사람은 함께 군성에 갔다. 이번에는 돈이 부족하진 않았지만 객잔에 묵지 않을 예정이었다. 시험시간만 9일이 되는데다가 방이 올라오는 걸 기다리려고 시험 며칠 전에 도착했기 때문에 넉넉잡아 한 달도 모자랐다. 시간이 너무 길었기 때문에 네 사람은 상의 끝에 과거 시험장 부근에 작디작은 사합원을 하나 얻었는데, 이 사합원의 구조는 현성에 있는 저택 구조와 비슷했다. 우물이 조금 더 크고 푸르른 대나무 몇 그루와 계수나무 한 그루가 있다는 점만 달랐다.
이 사합원은 과거 응시생에게만 임대하는 곳으로, 안에는 필요한 가구가 전부 갖춰져 있었기 때문에 바로 몸만 들어가서 살 수가 있었다. 방자명이 데리고 온 사람이 여럿이나 되어 세 칸을 차지했고, 나머지 세 사람은 방 두 칸을 나누어썼다.
논의한 끝에 방자명이 데리고 온 머슴이 음식을 하기로 했고, 식비와 사합원 임대비는 네 명이서 나누어 내기로 했다. 이렇게 합치면 객잔에서 묵는 것보다 조금 더 저렴했고, 사합원의 환경이 조금 더 조용했다. 방자명이 사람을 보내 미리 빌리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알맞은 곳을 빌리지 못했을 것이다.
고청운은 고청량과 같은 방에 묵었다. 그는 큰 침상에서 잤고, 고청량은 그보다 작은 침상에서 잤다.
"청운아, 요 며칠은 전하고 좀 다른 것 같아. 향시를 쳐야 해서 그런 건가?"
고청운이 조심스레 책을 정리하고 있을 때, 고청량이 묻는 말을 들었다.
"아니, 어떻게 다른데요?"
고청운은 뒤를 돌아보며 이상하다는 듯 그를 쳐다보았다.
"아무튼 좀 달라. 조금 더 자신감이 넘치고, 총기가 있어 보여."
고청량이 그를 자세히 살펴보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마음대로 생각해요."
고청운은 그를 흘겨보았다. 자신은 언제나 같은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하지만 자신감이 더 넘치는 건 사실이었다. 지금 일 년 전보다 더 많은 내용을 배웠기 때문에 향시에 꽤 자신이 있었다.
방인소의 지도를 받으면서 경의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고, 시 짓기 역시도 전처럼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 책론 쓰는 법도 알았다. 사용하는 어휘가 화려하지 않았고 인용하는 고전 경구가 많지는 않았기 때문에 지금은 소박한 느낌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스승님을 모셔도 그의 사고를 따라가려면 각고의 노력이 필요했다. 방인소는 견문이 넓고 기억력이 강했기 때문에 가끔씩 어떤 문제를 이야기하다가 화제가 급전환되었고, 내용도 점점 더 심화되어 일정한 지식이 없다면 그가 하고 있는 이야기조차 알아듣기 어려웠다.
그래서 고청운은 지난 일 년 간 매일 밤 스승님께서 내주신 과제를 끝내고 난 후에도 계속해서 다른 책을 통해 지식을 축적했다.
다음 날 아침, 향시 수속을 마친 후 고청운의 일행들은 묵고 있는 사합원으로 돌아갔다.
모두 방금 전의 광경을 보고 마음이 뒤숭숭해졌다. 그들과 같은 날 수속을 밟은 수재만 해도 이미 몇 백명이 되었는데, 아침부터 점심까지 기다려서 겨우 마무리 되었다. 그들은 그래도 일찍 간 편이었는데,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밤까지 기다려야 했을 것이다.
"정말 사람이 많네."
하겸죽이 감탄했다.
"많을 수밖에 없지요. 우리 부만 해도 수재가 이백 명이 넘게 있는데, 시험에 응시하지 않는 사람을 제외해도 이미 2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군 전체에는 열 개의 부가 있고, 어떤 부는 우리 부보다 규모가 크고요. 이렇게 계산해보면 응시인원은 2,000명이 넘어요. 기본적으로 조금이라도 마음과 움직일 여력이 있는 사람들은 전부 몰려든 것이지요."
고청운 역시 탄식했다.
다른 이들은 이 말을 듣고 속으로 계산해보고 나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좌우지간 향시는 매우 짜증이 나는 일이야. 안에서 9일이나 머물러야 하다니. 지난번에 이틀을 남겨두었을 때가 되니까 이제 정신이 멍해지면서 그냥 느낌 가는대로 문제를 풀게 되더라고. 그리고 마지막 날에는 가져간 속이 빈 찐빵에 이미 곰팡이가 나서 미음을 끓여서 먹는 수밖에 없었는데, 미음에서 이상한 냄새가 났어. 그리고 시험장에서 나오고 나서 조삼의 몸에 쓰러졌지."
조문헌이 3년 전 일을 떠올리며 불평불만을 했다. 얼굴에 착잡함이 서리면서 창백해졌는데, 마음속에 아쉬움이 남은 모양이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듣고 머리털이 주뼛 서는 기분이었다.
원시를 치른 3일도 충분히 힘겨웠는데, 이번에는 9일 동안 시험장에 묵어야 하다니.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문헌 사형, 지난번에는 몇 명이나 등용되었나요?"
고청운이 물었다. 전에 눈여겨 본 적이 있지만 지금 다시 한번 더 확인하고 싶었다.
규정에 따르면 성마다 시험 등용 인원이 정해져 있었고, 이는 각 성의 문풍의 우열, 인구 수, 세금에 따라 정해졌다. 보통 큰 성에는 백 명을 넘게 등용했고, 그보다 작은 성에서는 백여 명, 그리고 더 작은 곳에서는 일흔 명 정도, 가장 작은 성에서는 사오십 명을 등용했다.
월양군의 등용 정원은 오십 명에서 팔십 명이었는데, 상황에 따라 정해졌다.
"지난 번 정방(正榜)에서 일흔 명이 등용되었고, 부방(副榜)에서는 사십 명이 등용되었어."
조문헌은 이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하겸죽이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사십 명이라고 해도 우리가 부방에 올라가긴 어렵다고 봐야지. 올라가고 싶은 생각도 없고."
모두 말이 없었다. 소위 정방이라는 것은 정통 거인 출신이 되는 것이었고, 부방은 일흔 명 합격자 이후의 응시생 중에서 사십 명을 뽑은 것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거인이 아니었고, 거인의 대우를 받지도 못했다. 하지만 부방에 올라가면 자신의 등수를 구체적으로 알게 되어 실제 실력을 알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어쩌면 3년 후에 정방에 이름을 올릴 수 있을지도 몰랐다.
이는 현대의 '시드 선수'와 비슷했다.
부방의 또 한 가지 장점은 경성에 가서 국자감(*国子监: 수나라에서 청나라까지 국가가 거인, 공생, 감생을 교육시키기 위하여 지은 학교)에 입학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국자감에는 대학자가 많았고 그에 따라 교육수준이 높았다. 또한 만약 거인에 합격하지 못했지만 부방에 두 번 연속 이름이 올랐다면 바로 회시에 참가할 자격이 주어졌다. 그리고 합격하기만 하면 진사 출신이 되었고, 정통 거인과 별 다를 바가 없었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사실 다들 잘 알고 있었다. 부방은 조정에서 권세가 있는 관리들의 자제에게 주어지는 혜택이었기 때문에 가난한 집안 출신이 부방에 이름을 올리는 일은 거의 없었다. 부방에 이름이 올라간 다른 이들보다 훨씬 뛰어난, 조정에 반드시 필요한 인재면 몰라도. 하지만 과거 시험지에는 온갖 가능성이 있었고, 이를 예측하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장수원, 방자명 같은 이들도 누리지 못하는 혜택이었기 때문에 고청운과 같은 집안 출신 응시생들에게 부방은 오르지도 못하는 나무와 같았다.
그래서 그들은 앞에서 70등에 들고 싶어 했다. 어쩌면 올해 정원이 조금 더 늘어날지도 몰랐지만, 이전보다 정원이 줄어드는 일이 가장 두려웠다.
2~3천 명 중에서 몇 십 명만 뽑는데다가, 3년 마다 수재가 2번이나 배출되니 과거 시험 경쟁은 나날이 치열해졌다. 어쩐지 누구는 꼬부랑 할아비가 되도록 못 붙더라니.
향시의 주/부 시험관들은 조정에서 직접 파견한 흠차대신(*钦差大臣: 하부에 파견된 전권 위임의 상급 간부)이었다. 그들은 모두 한림, 진사 출신이었는데, 이 둘 외에도 네 명의 시험관이 더 있었다. 이들은 보통 해당 군에서 민정·군정을 순찰하던 대신이거나 총독 등을 맡은 대신들이었고, 이 밖에도 다른 관리들이 있었다. 시험지를 채점할 때 관부는 전체 군의 대학자들 혹은 3품 이상의 고급 관리들을 불러 들여 부정행위의 가능성을 줄였다. 그래서 부방에는 가끔 학문이 우수한 수재 한둘을 올려서 공평성을 증명했다.
그들은 사합원으로 돌아가 방자명의 하인이 차린 점심을 먹었다. 고청운은 소화를 시킬 겸 우물가에서 산책을 하고 있는데, 방자명이 그를 찾아왔다.
"나머지 두 분은요?"
고청운은 그의 뒤를 보았으나 하겸죽과 조문헌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지금 오수를 취하고 있어. 오늘 반나절 동안 매우 바삐 지냈지."
방자명이 대답을 했다.
두 사람은 대나무를 빙빙 돌며 산책을 하시 시작했다. 계화수의 은은한 향을 맡은 고청운은 이제 약 반 달 정도가 지나면 계화꽃이 전부 만개하여 더욱 자욱한 향을 맡게 될 것이라고 혼자 추측해보았다. 이곳은 시험장과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저택은 수재에게 빌려주었고, 그래서 이 골목에 있는 저택에는 시험생들의 사랑을 받는 계화수 여러 그루가 심어져 있었다.
고청운 역시 계화나무에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얼마 후에 큰누이가 조카들을 데리고 돌아와. 이제 3년 상을 다 치렀지만 백부님께서 아직 다시 기용되지 않으셔서 와서 뵙고 가려는 거야."
방자명이 말을 마친 후 복잡한 표정으로 고청운을 바라보았다.
고청운은 표정을 보자마자 그가 이미 내막을 알았다는 것을 깨닫고는 약간의 난처함을 느꼈다. 특히 아무 것도 정해진 게 없어서 더욱 그랬다.
머리를 긁적거리며 얼른 화제를 돌렸다.
"스승님께서 이미 벗에게 서신을 보내셨지요. 조금 후면 기용 관련 소식이 있지 않을까요?"
하지만 그는 방인소가 기용과 관련하여 조금도 조급함을 보이지 않는다고 여겼다. 전에 집에서 3년간 부모상을 치르는 동안 외부와 규칙적으로 소통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기분이 별로 안 좋아 보이더니 서신을 자주 주고받았다. 그러더니 최근 한 달 동안은 갑자기 서신 왕래를 끊었다.
그런데도 방인소의 기분은 오히려 더 나아진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