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화. 새집 (2)
어느날 고청운의 시문을 본 방인소가 탄식을 했다.
“노부(老夫)가 왜 학생의 시문을 꼼꼼히 보는지 아는가?”
고청운은 고개를 저으며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물었다.
“스승님, 학생은 시문이 앞으로 관리가 되고 나라를 다스리는데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고 여기는데, 왜 모두 시문을 이토록 중히 여길까요? 시문에 뛰어난 재능이 없어도 만약 학생이 진사가 되면 스승님처럼 공부(工部) 관련 부문에서 일을 하면 되는데, 그럼 시문이 필요 없지 않나요?”
그는 정말 답답했다. 비록 시문으로 한 사람의 문채를 볼 수 있는 건 사실이지만, 관리는 문채가 뛰어나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실제 능력이 더 중요하지 않은가?
방인소는 그의 이마를 누르는 시늉을 하며 고개를 내젓고는 웃었다.
“너는 무엇이 문인사대부(文人士大夫)인지 아느냐? 공부만 하고 관직을 지내지 않은 이를 ‘사인(士人)’이라고 하고, 관직을 지냈으나 공부를 하지 않은 무관과 의관은 이에 속하지 않는다. 공부도 하고 관직을 지낸 어느 정도의 명성도 있고 업적도 있는 이들을 비로소 사대부라고 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천생적으로 끼리끼리 어울리는데, 다른 사람들이 어울리고 싶어도 못 어울리지. 그런데 네가 그들 무리가 되면 관직에서 일처리 하는데 상당히 쉽다고 느낄 것이다. 문인 간 교제를 하는 방식은 무엇이지? 바로 서로에게 시를 선물하는 것 아니냐!”
고청운이 큰 깨달음을 얻는 모습을 보고 이어 말했다.
"이건 상황에 따라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다. 경성에 가면 자연스레 알게 될 거다. 많은 모임에서 시 짓기는 필수니까. 현학에서 공부에 전념하여 문회에는 별로 참석을 하지 않았다고 들었다. 그건 잘 한 일이다. 현학에서는 굳이 모임에 나갈 필요는 없다. 하지만 앞으로 관리가 되면 사람들과 반드시 어울려야 하고, 가끔은 높으신 분이 초대를 하기도 할 텐데 그때도 응하지 않을 수가 있겠느냐? 또 윗분께서 좋은 시구가 떠오르지 않을 때, 나서서 도와드려야 할 때도 있지 않겠느냐?"
그가 하는 말을 듣고 생각해보니 정말 그랬다. 관직에 있으면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없을 때가 많았다. 전생에서 일개 말단 공무원일 때 고위급 공무원이 오면 차를 내오라고 하면 차를 내왔고 술을 따르라고 하면 술을 따랐다. 그렇게 시키는데 안 할 수가 없지 않은가? 비록 공무원이기 때문에 윗사람들에게 마음대로 해고할 권한은 없었지만, 아랫사람들을 괴롭히는 데는 별의 별 수법이 동원되었다.
“경성 인구가 얼마나 되는지 아느냐?”
방인소가 또 물었다.
고청운은 이에 고개를 내저었다. 북송 시대 수도로 지정되었을 때 이미 백 만 명이 넘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몇 십 만 명이 있다! 경성은 다른 건 몰라도 사람하고 관리는 수도 없이 많다. 이렇게 되니 매번 명절 때마다 선물을 해야 하는 곳이 자연스레 많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경성은 커서 살기 힘들지. 타인과 관계를 유지하려면 희생해야하는 것들이 있다. 만약 시문이 뛰어나면 바로 시를 지어 선물하면 되니, 선물비용을 많이 줄일 수 있는데, 그렇지 않으면 돈을 쓸 수밖에. 물론 일반인의 시문은 대충 봐줄만 한 정도면 되고, 짓는 시마다 명작이 아니어도 된다. 만약 매우 뛰어난 시문이라면 그 값어치가 천금인데, 그 정도의 시문을 지을 인재는 매우 드물지.”
이야기하다가 경성에서 있던 나날들이 떠올랐는지 방인소는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노부의 시문 역시 처음에는 뛰어난 편이 아니었다. 그래서 돈을 쓸 수밖에 없었는데, 나중에 점점 궁핍해지다가 보니까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그제야 시문을 파고들기 시작했지. 어느 정도 시문 실력이 쌓이니 나중에 쓰는 돈이 적어졌다. 그렇지 않았다면 네가 보고 있는 노부의 집은 이런 모양이 아니었겠지.”
이야기를 마친 후 그는 또 다른 상황에 대해 말해주었다. 이런 불문율은 당송시대 이후부터 줄곧 내려져 왔는데, 고청운은 원대처럼 이족의 공격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문인사대부들이 이런 전통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는 것이라고 여겼다.
그는 그저 알았다는 표시로 고개를 끄덕였지만 내심 살짝 불안했다. 스승님의 말씀대로라면 시문은 자신을 대하는 타인의 태도를 결정지을만한 기호인 것이었다. 만약 시문 실력이 별로라면 앞으로 일을 아무리 잘해도 다른 사람들은 자신을 경시할 것이며, 그저 일이나 좀 하는 능리(*能吏: 능한 벼슬아치) 정도로 여길 것이다. 관(官)과 리(吏)의 차이를 생각해보면 이 차이가 얼마나 큰 건지 알 수 있었다.
문인 간의 교제에서 서로 시문을 선물하는 일은 극히 드물지 않은 일이었다. 그는 이것을 현대에서 두 영업매니저가 만났을 때 명함을 교환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생각했다.
생각이 이렇게 미치자 고청운은 시문을 중히 여기기 시작했다.
“관직에서 일을 잘하기만 하면 되거나, 진사에 붙었다고 끝이 아니다. 신경 써야 할 부분들이 상당히 많지. 노부가 앞으로 일일이 설명해줄 것이야. 아직 향시도 치르지 않았으니 이런 이야기를 하기엔 너무 이른 것 같구나.”
고청운 역시 그렇다고 여겼다. 아직 거인도 안 되었는데 이런 일을 걱정하기엔 너무 일렀다. 나중에 진사가 되고 생각해도 늦지 않았다.
“자, 그럼 이제 책론에 대해서 이야기 하겠다. 이 책론은 송나라 사람이 쓴 것인데 매우 잘 쓴 것이다. 어디가 잘 쓴 걸까? 이 부분을 한 번 보거라. 이 짧은 몇 마디 말 안에 관점을 표명했고 관용과 한계를 잘 설명했지 않으냐. 책론 전체는 600백자 정도 밖에 되지 않지만……”
조용한 책방에서 방인소의 낮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고, 그가 가르치는 내용들은 이해하기 쉬웠다. 고청운은 영양을 갈구하는 어린 나무처럼 이 모든 것을 바로 바로 받아들였다. 그는 자신이 더욱 더 단단해지고 강해지길 바랐다.
이런 날이 한두 달쯤 지났을 무렵, 방자명은 잘못된 낌새를 느끼고 염탐을 하러 왔다.
“백부님이랑 너무 잘 지내는 것 같아서. 그리고 네 시문 실력이 좀 는 것 같아.”
고청운은 속으로 어이없어 했다. 진사가 직접 가르치고 그렇게 많은 책을 외우면서 수많은 경험과 기교를 전수받았는데 실력이 늘지 않을 리가 있는가? 비록 방자명의 책론과 비교하면 실력이 천천히 늘고 있긴 했다.
하지만 그는 방인소와의 약조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았다. 아직 집에서 결정을 못 내린 것도 있고 잘못하면 처자의 명성에 누가 되기 때문에 그저 이렇게만 말했다.
“자명 사형도 알다시피 대인께서는 줄곧 제게 참 잘해주셨지요.”
방자명은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고개를 저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답했다.
“시문이 많이 는 걸 보니 나도 좀 긴장되네. 내일부터 백부님께 가르침을 받으러 가야겠어.”
방자명은 전에는 항상 자신의 아버지께 질문을 했었다.
“좋아요. 같이 가면 되겠네요. 내년이면 향시를 치르니 시간을 아껴야 해요. 그저 보수파 시험관에게 걸리지 않기를 바랄 뿐이에요. 안 그러면 시문과 경의 비중이 늘어날 테고 그럼 난 재수 옴 붙겠죠.”
고청운은 산학, 책론 그리고 율법에서 점수를 얻으려고 했다.
조용히 공부를 하는 날들이 천천히 흘렀다.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 외에도 매일 한 시진씩 화본을 썼다. 계속해서 수선기 연재만 진행했고, 다른 일은 받지 않았다.
그동안 고청운은 현성에 우물과 매우 큰 계화나무가 딸린 저택을 은자 60냥을 넘게 주고 샀다. 조옥당이 산 저택 가격과 비슷했는데, 이마저도 조금 싸게 산 것이었다.
자신의 집이 생기자 고청운은 서둘러 현학에서 이사를 나왔다. 비록 200평방이 조금 넘는 집에 우물 크기도 작았지만, 침실 네 칸, 부엌 한 칸 그리고 창고가 있었고, 주변에는 전부 수재, 소리(小吏), 향곤(乡绅) 등과 같은 중산계급의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게다가 부아(府衙)와 가까웠고 포졸들이 자주 순찰을 돌았기 때문에 치안도 매우 좋았다.
집 근처에는 상점이 없어서 대체적으로 매우 조용했고 공부하는데 적합했기 때문에 그는 이 집을 매우 좋아했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그는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집문서를 받았을 때 마음이 안정되는 것을 느꼈다. 이는 항상 안정감 없이 떠도는 느낌을 받았던 평소와는 매우 다른 느낌이었다.
집이 생긴 그는 매우 기뻤지만 조옥당과 고청명은 8월에 치른 원시에 여전히 낙방하고 말았다. 고청명은 시험지에 적은 답안을 기억나는 대로 고청운에게 일러주었고, 그는 고청명이 답을 꽤 잘 풀었다고 여겼다. 하지만 또 다시 낙방할 거라곤 예상치 못했다.
이미 충격에 익숙해진 것인지 고청명은 처음처럼 풀이 죽기는커녕 여전히 자신에 가득 차 있었다.
특히 이제 곧 있으면 아버지가 될 것이었기 때문에 낙방의 번뇌를 뒤로 제쳐둔 채 모든 관심을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기에게 쏟았다.
고청운은 이 모습을 보고 더 이상 위로의 말을 건네지 않았다.
하지만 내년에 고청량 역시 시험을 치러야 했다. 그는 올해 이미 16살이었는데, 큰할아버지는 그의 학습능력은 평범해도 머리를 똑똑한 편이라고 하였다. 그렇지만 공부를 열심히 안 하는 게 문제였다. 내년에 시험을 치러야 했는데 현시라도 붙으면 처갓집에 떳떳해 질 수 있었다.
본래 한 10년 정도 공부를 하면 고대에서 수재가 되는 일은 그래도 쉬운 일이라고 여겼던 고청운은 이런 현실을 보고 모든 사람에게 다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떤 사람은 운이 없어서 간발의 차이로 낙방하곤 했다. 길가에 자리를 펴고 서신 대필을 하는 늙은 동생들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조금 더 노력을 해야만 했다.
이런 생각들을 하자 고청운은 계속해서 공부에 몰입했다. 비록 공부하는 과정은 꽤나 지겨웠고 힘들었으며, 어떤 지식들은 유용한지조차 알 수 없었고 난해하기만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행운이라고 여겼다. 지금까지 과거 시험 과정은 줄곧 순탄했고, 별로 고통 받은 적도 없었다. 그리고 지금은 진사를 스승으로 모셨으니 든든한 뒷배경까지 갖게 된 것이 아닌가.
게다가 집안 점포의 임차비와 절인 달걀 수입도 점점 늘어나고 토지는 면세가 되어 지금은 경제적 압박도 많이 줄었다. 그리고 그동안 집안에서는 그가 향시를 치른 후 돈을 모아서 논을 사자는 의견을 모았다. 논을 사게 되면 수확을 더 많이 거둘 수 있었다.
저도 모르는 사이 또 다시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8월이 되었고, 고청운은 이미 16세가 되었다.
8월 초의 어느 날, 그는 집에서 풍성한 아침밥을 먹은 후 책가방을 매고 짐을 가지고 집안의 우마차에 몸을 실었다. 우마차를 탄 고청운은 도강의 부두에 가서 배를 타고 8월 초아흐레날 치러지는 향시를 보러 군성에 갔다.
본래 그는 이번에는 혼자 갈 요량이었다. 이미 장성한 몸으로 부모님을 동행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이제는 몇 년 전처럼 가족 모두가 안전을 걱정할 만큼 어린 나이도 아니었다. 그리고 그가 집에 돌아온 며칠 동안 아버지는 너무 기쁜 나머지 한밤중에 일어나 그가 잠을 잘 자고 있는지 보러 왔다가 결국 고뿔에 걸리고 말았다. 기침을 몇 번 했을 뿐인데 혹시 그에게 옮길세라 모두 근처에도 가지도 못하게 했다. 그래서 고대하는 얌전히 약을 마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고청운의 이런 결정은 가족 전체의 반대에 부딪쳤다. 만일 병이라도 나면 어쩌려고? 따라가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하니 모두 크게 걱정했다. 이번 시험은 시험장 안에서 9일 내내 있어야 했는데, 고대하는 마지막에 아들이 걸어 나올 힘도 없을까봐 걱정했다.
고청운이 그 말을 듣고 잠시 생각해보니, 어쩌면 자신을 돌봐줄 누군가가 동행하는 편이 좋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