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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생활 (82)화 (82/504)

82화. 잠재력

얼마 후 방인소는 무자위(*낮은 곳의 물을 보다 높은 지대의 논과 밭으로 자아올리는 농기구)를 설계하기 시작했다. 

이는 농민들에게 매우 좋은 일이었기 때문에 고청운 역시 기쁜 마음으로 그 작업에 참여했다. 현대에서 얻은 정보 덕분에 무자위에 대한 대략적인 인상이 남아 있었고, 몇 마디 얹으면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다. 

이런 식으로 차근차근 가까워진 결과, 이듬 해 청명절이 되었을 때는 처음에는 문제를 들은 척 만 척하다가 간략하게 답해주던 방인소가 최선을 다해 답변을 해주게 되었다. 이와 동시에 고청운은 자신의 학식이 많이 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서 교수 혹은 방인소의 수업이 있을 때만 현학에 얼굴을 내비추었다. 

그는 그저 매일 현학의 숙사에 가서 잠만 잘 뿐 아침에 눈을 뜨면 바로 방가촌으로 갔다. 현성에서부터 방가촌까지는 걸어서 반 시진 정도가 걸렸는데, 다른 계절은 걸을 만했지만 겨울에는 정말 너무 추웠다. 하지만 도화진으로 수업을 다녔던 경험이 있는 고청운은 조금도 힘든 줄 몰랐다. 

어디 가서 이렇게 답변을 잘 해주는 스승을 찾는단 말인가? 처음에는 십 몇 명이나 되는 이들이 그처럼 일손이 되었지만, 마지막까지 남은 건 오직 그뿐이었다. 

다른 이들은 일을 돕지 않아도 방인소가 답변을 해주는 것을 깨닫고는 서서히 일을 점점 놓게 되었다. 고청운처럼 행동하는 이들 중에는 부잣집 가문 자제도 있었는데, 고생의 ‘ㄱ’자도 모르고 곱게 자란 이들이라서 도저히 농사일을 견뎌낼 재간이 없었다. 그래서 어쩌면 방인소가 모두를 시험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하면서도 농사일을 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처럼 농사짓는 집안 출신들도 있었고, 집에서 농사일을 거들었던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다른 수재들의 비웃음과 조롱, 그리고 다른 시선을 견디지 못하고 점점 위축되다가 자취를 감추었다. 

고청운은 조금 더 낯짝이 두꺼웠다. 다른 사람들이 면전에 대고 쥐방울만한 게 발랑 까졌다고 이야기 할 때도 아무렇지 않았다. 오히려 만면 미소를 짓고서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아무도 더 이상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게 되었고, 그는 방인소 뒤에서 더욱 기고만장하게 행동할 수 있었다. 

이날은 고청운이 방가촌에서 현성으로 돌아오던 길에 문틈에서 하겸죽이 남기고 간 서신을 발견했다. 서신을 읽은 뒤에서야 조문헌이 현성에 왔고 때마침 주루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사실을 깨달았다. 

시간을 보니 만날 시간이 다 되어 얼른 몸을 씻고서는 온통 흙투성이였던 장삼을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씻고 옷을 갈아입은 고청운은 고개를 숙여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며칠 전 생일이 지났고, 이제 15살이 되었다. 이미 자랄 곳은 전부 자랐고, 자신의 몸에 대해도 매우 익숙했다. 성장기가 절정에 이르면 어느 아침에 정식으로 성년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매우 이상한 점은, 그는 자신의 마음이 고요하다고 느꼈다. 마치 그 어느 순간을 조용히 기다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는 옷을 갈아입고 거울 앞에 섰다. 이전 조대가 매우 번성했던 덕분에 이곳의 거울은 깔끔하게 잘 비추었다. 비록 전생만큼은 아니었지만 이미 사람 전체가 잘 비춰지는 것만 해도 훌륭했다. 가격이 조금 있는 탓에 아직 널리 보급되지는 않았다. 

아마 키가 그새 조금 더 큰 것 같았다. 고청운은 자신의 키에 꽤나 만족하고 있었는데, 반 년 사이 6~7센치미터가 자랐다. 

준비를 마친 고청운은 빠른 걸음으로 주루에 갔고, 주인이 이끄는 방으로 가서 문을 밀고 들어가니 모두 모여 있었다. 

“옥당 사형도 왔는데, 하 사형은 왜 미리 알려주지 않은 거죠?”

고청운이 투덜거리며 조옥당의 어깨를 두드렸다. 

하겸죽은 접은 부채를 흔들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조옥당은 크게 웃었다. 흥분에 가득 찬 눈빛이었다. 

“겸죽이 길에서 발견하고는 끌려 올라온 거야.”

고청운은 시선을 돌려 유일하게 빈자리를 보고 바로 말했다.

“현성에 물건 사러 온 건가요?” 

고청명은 곧 20살이었고, 조옥당의 여동생은 17살이 되었다.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었기 때문에 조옥당의 아버지가 매우 서운해 하는데도 불구하고 딸을 시집보내려고 혼삿날을 정했다. 

지금 조옥당은 아마 예단을 사는 중이었을 것이다. 

고청운은 고청명의 혼사가 정해진 것을 안 다음 평소와는 달리 흥분을 주체할 수 없었다. 

“정말 청운이에게는 숨길 수 있는 게 없네. 매일 방가촌에 얼굴을 내미느라 정신이 없는 사람이 아직도 내 동생과 청명의 혼사를 기억하고 있을 줄이야.”

조옥당은 매우 놀라워하며 매우 과장된 표정을 지었다. 

고청운의 끈질긴 행동에 대해 그들은 매우 잘 알고 있었고, 반년 동안 만날 때마다 그것을 가지고 가끔씩 놀리곤 했다. 

“성공만 할 수 있다면 뭔들 못하겠어요. 지금 제겐 끈질기게 매달릴 기회조차 없네요.”

줄곧 쥐죽은 듯 가만히 있던 조문헌이 씁쓸하게 말하며 고청운에게 시선을 던졌다. 

“그러니까 건강을 잘 보살폈어야죠!”

이제 고청운이 한 마디 했다. 처음에는 조문헌의 관계를 고려하여 조심스럽게 굴었지만, 너무 자기연민에 빠진 것을 보고 오냐오냐하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하니 자기연민에 빠지는 횟수가 점차 줄어들었고 오히려 사이가 더 좋아졌다. 

이에 고청운은 더욱 어이가 없었다. 

“그거에 대해서 질투는 하지 않아. 청운이 힘들게 노력해서 얻은 거니까. 처음에 나랑 조문헌도 청운이를 따라 행동했지만, 그때 방 대인은 우리를 차별 없이 대해주셨는데 청운이만 끝까지 남았지. 내가 방 대인이어도 청운이에게 조금 더 잘해줄 것 같아. 어디 가서 이런 노동력을 찾겠어? 품삯을 줄 필요도 없는데.” 

하겸죽은 부채를 들고 웃으며 말했다. 

모두 그의 부채를 보았다. 이제 막 3월이 되어 아직 날이 차가운데, 부채질을 하고 있다니! 풍채가 좋은 건 모두 이런 연유 때문이리라! 멋있으려면 조금 독해야 하는 건 당연했다. 

조문헌은 몸이 좋지 않았는데, 밭에서 일한지 한 시진도 안 되었을 때 이미 상당히 덥고 피곤한 상태였다. 계속 일을 하려고 고집을 부렸지만 고청운이 그의 안색이 창백하고 식은땀이 줄줄 흐르는 것을 보고서는 방가촌의 낭중(郎中)을 불러 진료를 하게 하니 더위를 먹은 것이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다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 뒤로도 일을 하겠다고 고집을 부렸지만, 체력은 의지만 가지고 향상시킬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결국 쓰러지고 나서야 방인소가 사람을 시켜 그를 현학까지 이송한 후에야 마음을 접었다. 

하겸죽 역시 이런 수고와 냉대를 견딜 수 없었다. 게다가 그들은 방인소의 의중을 추측할 수 있었다. 방인소는 농사에 관심이 있고 산학을 잘 하는 이를 원했는데, 그는 그쪽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고, 만약 앞으로 진사가 된다고 해도 예부(礼部)쪽에 더욱 흥미가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하겸죽은 며칠 동안 따라서 일을 하다가 더 이상 견디지 못했다. 희망이 보이지 않았고, 방인소는 이 열 몇 명을 본 체 만 체 했기 때문에 그들은 발걸음을 돌리게 되었다. 

하겸죽이 말을 끝내자 모두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것을 보고 고청운에게 말했다. 

“우리는 이미 좋아하는 음식들을 주문했어. 청운이 좋아하는 절인 달걀과 생선찜도 주문했는데, 또 주문할 게 있니?”

고청운은 이곳에서 자주 밥을 먹었기 때문에 어떤 요리가 있는지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벽에 걸려 있는 대나무 패를 볼 필요조차 없었다. 

“뼛국을 추가로 주문하죠. 요즘 잘 때마다 종아리에 자꾸 쥐가 나서 잠에서 깨곤 해요. 어쩌면 더 키가 크려고 그러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래서 키가 더 클 수 있도록 뼛국으로 몸보신 좀 해야겠어요. 그리고 이제는 절인 달걀을 안 먹어요. 짠 걸 많이 먹으면 키가 잘 안 크니까요."

그는 종을 울려서 소이에게 주문을 받게 한 후 물을 따르게 했다. 고개를 들어보니 나머지 세 사람이 눈을 크게 뜨고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것을 보았다. 

“무슨 일이죠? 왜 다들 그렇게 저를 보고 있나요?”

“다들 여자들이 크면서 많이 변한다고 하던데, 너도 그럴 줄 몰랐네. 우리가 청운이 크는 걸 두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고, 눈썹에 아직도 작은 점이 남아있지 않았더라면, 5년 전과 너무 달라서 지금은 길에서 못 알아볼 것 같아.”

하겸죽이 탄식하며 말을 내뱉었다. 

고청운의 입꼬리가 그 말을 듣고 올라갔다. 

조옥당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좌우지간 이제 청운의 키가 너희와 비슷하고, 나보다는 살짝 작네. 나도 이따가 뼛국을 조금 마셔야겠어. 어쩌면 키가 더 클지도 모르는데, 청운이에게 따라잡혀서는 안 되지.” 

그는 아버지를 닮아서 신체가 건장했다. 

하겸죽과 조문헌이 아무 말 하지 않고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전에는 겸죽이 가장 잘생긴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청운이 가장 잘생긴 모양이야. 아까 자세히 보니, 청운이 걸어오는 길에 옆에서 여러 처자들이 몰래 훔쳐보고 있더라고.” 

조옥당은 옆에서 그의 팔을 만지작거리면서 말했다. 

“밭일을 해서 만들어진 근육 좀 봐. 만약 피부가 까무잡잡하지 않았더라면 더 많은 처자들이 좋아했겠지. 청운아, 살이 더 타지 않도록 신경 좀 써.”

청운은 몸서리를 치더니, 조옥당을 손을 세게 쳤다. 

조옥당은 아무렇지도 않았고, 그가 말을 끝내자 세 사람이 웃으며 이상한 눈빛을 고청운에게 내던졌다.

고청운은 그들을 흘겨보며 도통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고, 소이가 음식들을 하나하나 옮겨서 올려두었고, 고청운은 국을 떠서 먹기 시작했다. 

네 사람이 국을 먹는 동안 잠깐 정적이 흘렀다. 

그들이 살이 탔다고 한 건 사실이었다. 살을 타지 않게 노력은 했지만, 강한 햇볕을 쬐며 일을 했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고청운의 피부는 하겸죽보다 두 배는 까맸다. 그는 처음 곡식을 수확할 때까지만 해도 얼마 못 버틸 줄 알았는데, 자신은 생각했던 것보다 강했다. 

지난 번 집에서 곡식을 수확할 때는 몸이 너무 지쳐서 반나절 일하고서는 더 이상 하지 못했는데, 방가촌에서는 끝까지 버틸 수 있었다. 

정말 어떤 경지에 도달한 게 틀림없었다. 잠재력은 극한 상황에서 발현될 수 있었다. 그는 방인소의 제자가 너무 되고 싶어서 반드시 끝까지 버텨야 한다고 스스로를 격려했다. 

모두 국을 다 마시고 나서 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들은 술을 잘 안 마셨는데, 이는 청운이 술을 거의 입에 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보니 간만에 모여도 술을 안 마시게 되었다. 

밥을 먹다가 조문헌이 그제야 자신의 일을 털어놓았다. 본래 혼사를 정하려고 했고, 혼인 대상은 현성의 임가네의 딸이었다. 이번에는 그들을 집에 초대하여 축하주를 대접하려고 온 것이었다. 

혼인할 처자가 이미 18살이 되어, 이번 혼사는 조금 급하게 진행되었다. 모든 일을 준비하는데 3개월 밖에 걸리지 않았고, 다음 달 초면 정식으로 혼인을 했다. 

“임씨 집안이요? 훌륭하죠. 현성에서의 지위가 방씨 가문과 비슷하니까요. 관직에 있는 족인도 있고요.”

청운이 웃으며 말했다. 조문헌의 혼사는 파란만장했다. 준비하는 동안 어머니와의 다툼이 끊이지 않았다고 들었다. 

가끔 조삼이 그들에게 가서 조문헌에게 말 좀 잘 해달라고 했지만, 이건 집안일이었기에 함부로 개입할 수가 없어서 그저 잠자코 상황만 지켜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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