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화. 방인소
방자명은 그 말을 듣고 흥미를 가지며 부채를 접고 급히 물었다.
“그럼 우리 백부님의 관심을 어떻게 끌 생각이야?"
고청운이 미소를 지었다.
“그건 일단 비밀로 해두죠.”
방자명은 순간 멈칫했다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3년 상을 치르는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우리 백부님께 와서 제자로 받아달라고 했는지 알아? 제자로 받는 건 고사하고 가르침을 달라는 것도 모른 척하셨어. 알고 지내던 집안은 가르침은 주었지만 한 번도 제자를 받겠다고 한 적은 없으셨지. 그런 뜻도 없어 보이시고.”
고청운은 그 말을 들으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때 가서 다시 이야기 하죠. 지금 생각해봤자 소용이 없는 일이니까요. 만약 자명 사형의 백부님이 나를 보고 별로라고 생각하시면 그냥 씻고 자면 그만이죠.”
이어 두 사람은 다른 일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참, 최근 일침황량(一枕黄粱)의 새로운 소설 봤니?”
두 사람은 경의에서 시문을 이야기했다가 다시 책론을 이야기했다가 저도 모르게 갑자기 화본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고청운은 순간 멈칫하더니 얼른 찻잔을 들어서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가 또 왜요?”
“그가 쓴 <이림수선기(李林修仙记)를 4권까지 봤는데, 아직도 5권이 안 나와서. 보통 한 달에 한 권을 내는데, 벌써 3일이나 지났는데 안 나오니까 마음이 너무 조급하네. 일침황량이 더 이상 안 쓰는 건 아니겠지? 그럼 이림은 어떻게 되는 거야. 도대체 축기(筑基)를 할 수 있는 건지, 원수에게 발각되면 영향을 받는 건 아닌지? 집에 무슨 일이 있으셔서 글을 쓸 수 없는 걸까? 이미 바깥에도 물어봤는데 부성 쪽에도 새로 나온 게 없다고 하더라고.”
방자명이 매우 답답해하며 말을 쏟아냈다.
“집에 무슨 일이 있어서 글을 못 쓰고 있는 거겠죠. 그분이 쓴 화본 말고도 볼 게 많은데 안 봐도 그만 아닌가요. 다른 사람이 쓴 걸 보면 되죠.”
고청운이 마른기침을 하며 답했다.
방자명의 입에서 축기가 나오다니. 왜 이렇게 이상한 것일까?
“너한테 말로 설명이 잘 안되네. 최근 유행에 뒤떨어진 거 아냐? 그가 쓴 소설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몰라. 장생불로가 가능하고 안에는 온갖 재미있는 법보가 나와. 이야기에는 기복이 있는데 한 번 보기 시작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볼 걸?”
방자명은 ‘공동의 화제’가 없다는 듯한 모양이었다.
“아버지께 발각되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만약 화본을 보는 걸 아신다면……”
“그럴 일 없어. 평소처럼 공부를 하다가 가끔 시간 날 때 보는 걸.”
방자명은 다시 본래의 표정을 지으면서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며 엄숙한 척 했다.
고청운은 속으로 웃었다.
<이림수선기>는 그가 쓴 것이었다. 처음에는 단편소설을 썼는데, 쓰다 보니 더 이상 무엇을 써야할지 몰랐다. 재미있는 소재란 소재는 다 고갈된 것 같았다. 그래서 이전에 봤던 수선소설(修仙小说)을 떠올린 후 하림에게 물어 어떤 금기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실험적으로 쓰기 시작했다.
장편소설인데다가 소설만 전문적으로 쓰는 건 또 아니라서 시간이 날 때마다 짬짬이 쓰는 수밖에 없었다. 전생에서 봤던 소설 내용이 기억이 안 났고 그저 수련 단계에는 연기(练气), 축기(筑基), 결단(结丹), 원영(元婴), 화신(化神) 다섯 단계만 있는 것만 기억했다. 그래서 하나하나 다 자신이 설정하고 고민을 해야 했기 때문에 한 달에 5만 자밖에 쓸 수 없었다.
1권은 손으로 베낀 책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그런데 3권부터 화본이 갑자기 유명해지더니 사람들이 서로 읽으려고 해서 베끼는 족족 팔려버렸다.
사실 사람들이 지금 보는 소설들은 전부 사랑 타령하는 비슷한 내용들뿐이었는데, 고청운이 쓰는 건 다른 내용이었다. 안에는 각양각색의 기능의 다양한 법보가 나오며, 다양한 미색을 갖춘 미녀 그리고 대단한 위력의 법술이 나왔기 때문에 일반 화본보다 흡입력이 강할 수밖에 없었다.
서점 주인은 이런 상황을 보고 앞의 3권을 인쇄판으로 냈고, 월양군 전체에서 판매하기 시작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잘 팔렸다.
지금 시대에 잘 맞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과 달리 소설은 크게 유행했다. 그조차도 의외였지만 돈을 벌 수 있으니 계속 써내려갈 요량이었다. 다행히 하림은 그와 직접 연락을 했고, 그 역시 공부를 한 사람이기 때문에 독자의 입장에 서서 이런 저런 건의를 해줄 수 있었다. 그래서 그가 쓰는 내용은 이곳의 주요 사상에 더욱 부합할 수 있었다.
적어도 주인공은 마구잡이로 살생을 해서는 안 됐다. 그렇게 되면 관부의 금서로 지정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이로 인해 고청운의 원고료는 상승했다. 전에는 1,000자 당 100문을 받았지만, 인쇄 후에는 1,000자 당 400문을 받았다. 이렇게 계산해보면 원고료는 5냥에서 20냥으로 오른 것이었다. 거기다 책이 잘 팔리면 구정 때 홍포를 준다고 했다.
돈은 많이 받았지만 고청운은 소탐대실을 할 위인이 아니었다. 하림도 그에게 연락을 하긴 했지만, 그가 모든 시간을 화본에 쓰도록 종용하지는 않았다. 여전히 공부가 가장 중요했고, 시간이 날 때 쓰는 정도였다.
전에는 현학으로 학적을 옮기는 일 때문에 다섯 번째 책 집필이 늦어져서 며칠 전에서야 하림에게 원고를 넘겼다.
지금까지 고청운은 이미 은자 55냥을 벌었고, 그는 심히 만족했다. 이제야 그에게 맞는 돈줄을 찾았기 때문에 계속해서 써내려가고 싶었다. 올해 3월 고씨 집안은 드디어 모든 빚을 청산했고, 이제는 오래된 집 대신 기와집을 지을 계획이 있었다.
방자명이 <이림수선기>를 좋아한다는 소리는 정말 뜻밖의 일이었다. 애초에 자신이 저자라고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그 사실을 밝히는 일이 더욱 어려워졌다.
두 사람은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다가 헤어졌다.
* * *
한 달 후, 고청운은 현학에서 방자명의 백부인 방인소(方仁霄) 대인을 보았다. 그는 50세가 다 되었지만, 실제 나이보다 대여섯 살 어려 보였다. 길쭉한 몸매에 평범한 외모를 지녔는데 피부는 까무잡잡했다. 그에게서는 농후한 문인의 기질을 느낄 수 있었는데, 그렇지 않았다면 고청운 역시 그를 그저 평범한 농민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고청운은 처음 그를 1년 전에 보았을 때를 떠올렸다. 비록 그때 얼굴을 제대로 보진 못했지만 지금처럼 까맣지는 않았는데, 지난 1년 동안 밭일만 하다 온 건가?
그는 현학에서 수업 5개를 맡고 있었는데, 주로 책론을 가르쳤다. 하지만 그에게 경의나 산학 등에 대한 질문을 하는 것도 가능했다. 그는 전체 현학에서 학식이 가장 높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부학에서 공부하던 수재들은 모두 현학으로 학적을 옮기고 싶어 했고, 이웃 현에서도 이곳으로 와서 공부를 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령께서 일찍이 더 이상 학생을 받지 말라고 했다. 그래서 본현의 수재나 거인만 현학에서 공부할 가능성이 있었다.
한 달 간 자세히 알아본 결과, 그가 바로 고청운이 찾아 헤맸던 스승님이었다. 하지만 그를 스승으로 모시는 건 지금으로써는 매우 어려운 일 같아 보였다.
방씨 집안에는 방인소와 방인례(方仁礼) 형제 둘 밖에 없었는데, 방인소는 올해 49세로 방자명의 아버지인 방인례보다 15살이 많았다.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셨는데, 방인례의 어머니는 계모였다. 방 노태야는 장자가 장성하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아내를 얻었다.
고청운이 관찰한 결과, 두 형제에게는 이렇다 할 큰 갈등이 없었다.
이것은 매우 정상적인 일이었다. 유일하게 비정상적인 일은 그에게 아들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고대에 오래 있을수록 고청운은 아들이 없는 집안은 극히 드물다는 것을 깨달았다. 특히 방인소처럼 돈과 명예를 다 거머쥐고 있었지만, 그의 부인 연씨 가문은 크게 내세울 게 없었다.
물론 처음에는 집안 사정이 비슷했지만 나중에 재난이 발생한 후 몰락하여 지금은 지역에 200묘 정도의 땅을 가지고 있는 소지주에 불과했다.
듣기로는 연 씨가 딸을 낳은 후 몸이 상해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이 되었다는데, 방인소 역시 첩실을 받아들일 생각 없이 줄곧 그녀 옆을 지켰다고 한다. 물론 노태야는 이를 달갑게 여기지 않아 옆에서 줄곧 그런 이야기를 했지만 결국 성공하지 못했다.
이토록 정이 많고 의리가 있는 사람이라니. 고청운은 이에 탄복했다. 하지만 방자명이 당시 왜 그렇게 난처해했는지도 이해할 것 같았다.
방인소에게는 아들이 없지만 대를 이어야 했는데, 친동생에게 아들 둘이 있었지만 하나는 적자, 하나는 서자였기 때문에 그 누가 대를 이어도 적합하지 않았다. 물론 족인 중에는 적합한 이가 있겠지만, 노태야가 생전에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이런 상태로 흘러온 것이었다.
고청운은 어떻게 이토록 은밀한 집안 사정을 알고 있던 것일까? 물론 그가 자주 방씨 집안에 가서 방인소를 귀찮게 굴다가 집안사람의 입을 통해 그 이야기를 전해들은 것이었다.
현학에서 방인소를 처음 알았을 때만 해도 고청운은 어떻게 하면 그와 연결될 수 있을지 알지 못했다. 그래서 그의 수업 때마다 항상 문제를 들고 가서 가르침을 받고자 했는데, 산학, 율법, 책론, 경의 어떤 과목이든 상관없이 방인소는 매우 상세하게 답변을 해주었다. 가끔은 답이 간단해서 고청운이 스스로 답안을 찾아야 할 때도 있었다.
그러기를 몇 번 반복하니 방인소가 자신을 기억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래도 고청운은 제자를 받는지 물어볼 엄두가 나지 않아 산학 문제를 묻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어려우면 바로 물었는데, 방인소가 이런 점에서 큰 흥미를 느낄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그가 수학에 관심이 있는 모습을 보고 고청운은 마음을 놓았다. 그는 점점 더 어려운 문제를 물어보았고, 방인소에게 더욱 깊은 인상을 남겼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방인소는 몸이 하나였고 다른 의도를 가지고 있는 건 고청운 뿐만이 아니었다. 그래서 둘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은 지극히 제한적이었다.
두 달 후, 고청운과 방인소는 여전히 얼굴만 아는 상황이었다. 매번 그가 수업을 할 때, 앞뒤로 사람들이 잔뜩 몰려 있었기 때문에 단 둘이 이야기 할 시간은커녕 항상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있었기 때문에 사적인 문제를 물어보기 어려웠다.
하지만 결국 이러다가는 안 되겠다고 느끼면서 조금 더 뻔뻔해져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래서 방자명을 보러 간다는 명목으로 방씨 노저택에 드나들기 시작했다.
그렇다. 방씨 집안의 노저택이었다. 방인소는 현성에 있는 저택에 기거하지 않고 대신 방가촌(方家村)에 거주했다. 게다가 방인소는 3년 상을 치르는 동안 직접 농사를 짓기도 했는데, 비료를 주는 일부터 물을 대는 일까지 전부 다 직접 했다. 고청운은 그를 스승으로 모시고 싶은 마음에 직접 찾아간 것이므로, 그가 농사일을 지을 때 그도 같이 따라서 밭일을 했다. 그가 잡초를 뽑을 때는 고청운 역시 함께 풀을 뽑았다. 좌우지간 방인소가 하는 일이라면 전부 다 도왔다.
이 외에도 방인소는 곡물을 수확한 후 쟁기로 밭을 갈았다. 집에 있는 멀쩡한 소를 놔두고 사람 힘으로 끌려고 하니 고청운은 어찌할 도리 없이 돕는 수밖에 없었다. 종종 너무 피곤한 나머지 땀이 등을 따라 줄줄 흘렀고, 어깨와 등이 시큰거리면서 아팠다.
그 후 고청운은 방인소가 무언가를 하면서 기록하는 모습을 종종 보았다.
고청운은 그가 무언가를 하고 있노라 추측했지만 묻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