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화. 방 대인
이번 장례를 치르는 곳은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향가 저택이었는데, 방씨 가문이 있는 마을은 그리 멀지 않았다. 우마차를 타면 이각이면 도착했다.
방가 마을에 들어가자마자 바로 하얀 벽에 검은 기와인 사합원이 보였다. 대문이 열려있고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는데, 멀리서 스님들의 목탁소리나 염불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이런 저런 소리들도 같이 들려와서 더욱 소란스럽게 느껴졌다.
그들이 우마차를 세울 때, 마을의 빈 터에는 온갖 우마차와 마차로 가득 찬 것을 발견했다. 고청운은 유 현령도 보았는데, 이때 그는 이미 문에서 나왔고, 나오자마자 마차를 타고 그곳을 떠났다.
그는 대부분의 사람들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이들은 아마 임산현에서 다 한 자리 하는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았다.
하인의 안내를 받고 세 사람은 빈소에 들었다.
빈소에서 다시 만난 방자명은 상복을 입고 있었는데, 몰라볼 정도로 살이 빠져서 얼굴이 매우 창백했다. 그의 옆에 있던 방 거인과 왕 씨 역시 마찬가지였고, 매우 피곤해 보였다. 이 외에도 마흔 몇 살로 보이는 남자가 매우 슬퍼하면서 한 구석에서 무릎을 꿇은 채로 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있었기 때문에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었지만, 그가 있는 자리로 볼 때 아마도 방자명의 백부인 것 같았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세 사람들은 일가족에게 이 말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죽음은 언제나 엄숙한 것이었고, 이 말 외에는 어떻게 가족들을 위로해야 할지 몰랐다.
방자명은 세 사람을 보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기를 나눌만한 장소가 아니었기에, 세 사람은 간단하게 몇 마디 전한 후 남아서 밥을 먹고 자리를 떠났다.
돌아가는 길에 세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현성에 도착할 때쯤이 되어서야 하겸죽이 물었다.
“언제 임양부로 돌아가니?"
“이미 이틀 동안 휴가를 냈어요. 내일 돌아가려고 하는데, 오늘 자고 갈게요.”
고청운은 고민하다가 집에 가지 않기로 결정했다. 지금은 이미 저녁시간이었고, 그는 오늘 오후에야 임산현에 도착했다.
“왠지 그럴 것 같았어.”
하겸죽은 당연히 응했다. 두 사람은 거의 반 년 동안 보지 못했다. 평소에 서신으로 소식은 주고받았지만 많은 일들을 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옆에 있던 조문헌의 표정이 어두웠다. 그는 올해 8월 향시를 치렀는데 얼마 전 낙방 소식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 고청운과 하겸죽이 이런 저런 위로를 했지만, 결국은 그가 스스로 헤쳐 나와야 하는 문제였다.
저녁에 하겸죽과 같이 잠을 청했다. 두 사람은 한 침상에서 자지 않았다. 하겸죽의 방 안에는 서동이 자는 침상이 하나 더 있었는데, 그에게는 서동이 없었고 마침 청운에게 알맞은 크기였다.
“사형, 그동안 문헌 사형은 쭉 지금과 같은 상태였나요?”
고청운은 얇은 이불을 덮은 상태로 물었다.
“그래, 하루 종일 한 마디도 하지 않아서 너무 답답해. 낙방 한 번 한 거 가지고, 어휴, 사람 일이라는 게 매사 순조로울 수가 있나. 아직 젊으니까 3년 뒤에 또 보면 되지. 그런데 저렇게 울상이니 이제 별로 말도 하고 싶지 않아.”
하겸죽이 답답한 듯 말했다.
고청운은 조문헌이 옆에 있는 사람들까지 부정적으로 만드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들이 그를 조금 내버려 두다 보면 조금 후에 또 알아서 정상으로 회복이 되었다. 반대로, 온갖 방법으로 그를 위로하려고 하면 점점 더 우울해 했다.
몇 년 동안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그들은 이 점을 잘 알게 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참, 오늘 빈소를 보니 자명 사형의 백부는 5품인 것 같아요.”
“맞아, 공부(*工部: 중국의 중앙 행정관청인 6부의 하나)의 낭중(郎中)으로 정5품이야. 이번 상 때문에 나중에 기용될 수 있을지 모르겠네. 방씨 집안이 현지에서는 명망이 있는 집안인 건 사실이지만, 사실 대부분은 방 대인이 일으켜 세운 거잖아. 방 대인 말고는 방 거인 밖에 뛰어난 사람이 없고, 집안의 다른 사람들은 다들 평범한 사람들이지. 게다가 그의 집안은 이전 조대에서 큰일은 겪어서 사람이 많은 편이 아니야.”
하겸죽은 현학에서 지낸 시간이 조금 길었고 이정에게도 물을 수 있었기 때문에 각 집안에 대한 소식을 매우 잘 알고 있었다. 고청운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지만, 방자명이 그의 좋은 벗인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은 그에게 방자명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고청운은 방씨 집안에 대해서 적당히 알고 있었지만 별로 개의치 않았다. 하지만 오늘 방자명 할아버지 장례를 보고 이 질문을 하게 된 것이었다.
“집에 진사, 거인, 수재가 한 명씩 있다니 집안사람들 머리가 정말 비상하네요!"
고청운이 감탄했다.
“아무래도 공부를 하던 집안이라서 그렇겠지. 이전 조대 당시에도 현지에서는 공부를 하는 집안이었어. 물론 거인까지 보고 붙지 못한 사람들이 더 많지만. 그런데 새로운 조대가 설립되면서 방 대인은 바로 두 번의 시험을 거쳐 진사가 되었지. 당시 서른도 안 된 나이었다고 해. 하지만 십 몇 년에 과거는 정말 쉬웠대. 지금 내 실력이면 거인이 되고도 남았을 거야.”
하겸죽이 매우 부러워하면서 말했다.
“얼토당토하지 않은 소리 하지 말아요. 그나저나 방 대인이 임산현으로 돌아가서 3년 동안 묘를 지키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요? 우리에게 영향을 미칠까요?”
고청운의 머릿속에 번뜩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가서 갑자기 이렇게 물었다.
하겸죽은 그 말을 듣고 한참 후에 답을 했다.
“교유가 다시 그를 청해 수업을 하겠지.”
조정은 교육과 학습기관 창설을 장려했다. 이전 조대처럼 부모상을 당한 관원이 현학 혹은 부학에서 가르치는 것을 장려했고 일정한 보조금을 주었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집에만 있는 것을 장려하지 않았다.
그것은 인재를 낭비하는 것이었다. 물론 가르치는 일은 일 년 후에야 가능했다.
채식을 하고 아이를 낳거나 혼인을 할 수 없고 나랏일을 하지 못하는 등과 같은 규정은 여전히 있었지만, 조정은 모두 효를 행하는 행위를 장려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효도는 자신을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건강을 망쳐서는 안 되었는데, 그렇게 해야만 먼저 세상을 등진 조상님을 편하게 쉬게 해드리는 것이라고 여겼다.
이 역시 시대를 거슬러 온 황제의 작품인 것을 보지 않고도 알 수 있었다.
고청운은 이 시대의 도리를 알게 될수록 그 황제의 대단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정말 일부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아마 집에 가까운 현학에 가겠죠. 그렇게 되면 수업을 해주는 진사가 생기겠네요.”
고청운은 그 생각을 하자마자 부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하겸죽은 그 말을 듣고 바로 반박했다.
“그럴 리가. 현학에서 떨어질 만한 콩고물이 있는 것도 아닌데?"
고청운은 뒤척이며 말했다.
“그런 게 없어도 마을 사람들에게 이득이 되는 일이면 올 거예요. 그런데 누가 알겠어요? 방 대인께서는 아예 그런 생각조차 안하고 계실지.”
만약 잘 가르치면 그는 방자명의 입김을 빌어 현학으로 옮겨 공부를 할 예정이었다.
현학에서 부학으로 가는 건 어려운 일이었지만, 부학에서 현학으로 가는 건 매우 쉬운 일이었다.
지금 그는 부학에서 오랫동안 공부했지만 수업을 하는 교수들에게 배워도 딱히 특별한 것을 느끼지 못했다. 교수들의 연령이 높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항상 말에는 산학과 율법을 무시하는 투가 있었고, 향시 책론에서 비중이 높아지는데 불만이 있었다. 그리고 이들은 조정이 성현의 길을 벗어나 그릇된 길을 가고 있다고 믿었다.
고청운은 자신이 그들에게서 경의의 대한 이해 정도만 배울 수 있고, 그가 앞으로 가야 하는 길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산학과 율법을 멸시했는데, 마침 고청운은 이 두 과목에서 뛰어난 두각을 나타냈다. 그들은 구구절절 회유의 말로 모든 정력을 경학과 시문에 두어야 한다고 했기 때문에 고청운을 종종 어찌할 도리 없이 만들곤 했다.
앞으로 사상가나 학문가가 되고 싶지 않은데, 경학을 열심히 파봤자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그는 명확한 목표를 갖고 있었다. 그 목표는, 거인 혹은 진사에 합격해서 이 세계에서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관리가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능력껏 최선을 다해 좋은 관리가 될 것이었다. 그래서 경학 같은 건 그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다. 오히려 그는 산학에서 자신감을 얻었고, 율법과 책론이 조금 더 실질적인 내용이라고 여겼다.
그는 스승들이 실제 벼슬에 올랐을 때 알고 있으면 좋을 불문율이나 현재 조정의 형세,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거인이 되려면 주의해야 하는 문제 같은 것들을 이야기 해주기를 바랐지만 그런 것들을 들을 수가 없었다. 아마 지금 듣는 귀가 많아서 감히 엄두를 못 내는 것이겠지?
그래서 고청운의 눈은 지금 이 시점에 나타난 방 대인의 존재 때문에 반짝였다. 하지만 방 대인의 신분은 진사였기 때문에 방자명이 자신의 벗이라고 한들 큰 역할은 하지 못할 것이다. 그는 임산현 전체에 방 대인의 제자가 되고 싶은 사람이 수없이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돋보일 수 있을까?
수재에 합격한 이후 자신은 나이도 어리니 스승을 찾는 건 식은 죽 먹기라고 여겼다. 하지만 그를 제자로 받고자 하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나중에 그가 자세히 관찰한 결과, 거인들은 너무나도 바빴고 젊은 거인들은 제자를 받고 싶지 않아했다. 그리고 연세가 있으신 분들은 정력부족으로 가문 혹은 친척들의 아이를 봐주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바빴다.
결국 자신이 진짜 천재가 아닌 연유 때문인 게 분명했다. 막 부학에서 공부를 시작했을 때 교수 한두 명이 자신에게 어느 정도 관심을 가졌지만, 그를 가르쳤던 스승들은 모두 그가 그저 자제력이 매우 강해서 각고의 노력으로 공부해서 얻은 결과란 것을 알게 되었다. 부학에서 타고난 자질이 그보다 뛰어난 이는 한 둘이 아니었다.
고청운이 침상에서 누워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데, 그때 하겸죽이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만약 방 대인이 정말 현학으로 오시게 되면, 그럼 너도 돌아와.”
그가 건의했다. 이에 고청운이 웃으며 답했다.
“안 그래도 그 생각을 하던 참이에요.”
어둠 속에서 생각이 통한 것을 안 둘은 그저 웃기만 했다.
“참, 올해 장수원이 향시를 치렀다는 이야기를 못 들었네요. 왜 치르지 않았는지 알고 계세요?”
고청운이 또 물었다. 이런 영재 관련 소식은 항상 주시하고 있었다. 아직 거인에 합격하지 않은 수재라면, 모두가 경쟁 상대였다.
“아직 자신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닐까. 혹시 알아, 해원(解元)이 되고 나중에 회원(会元)과 장원(状元)이 되면 연중육원(连中六元)이 되는 것이니 역사에 이름을 길이 남기고도 남지.”
하겸죽은 깊이 생각하지 않으며 추측한 것을 이야기했다.
고청운은 그 말을 듣고 어쩌면 그런 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방자명처럼 일찍이 수재가 되고 싶었지만 더 높은 점수로 합격하기 위해 시험을 늦게 봤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석차에 상관없이 그저 명단에만 오르면 되었던 그와는 달랐다.
‘이게 바로 차원이 다르다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