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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생활 (76)화 (76/504)

76화. 세시 (2)

이각이 지난 후, 그들은 드디어 객잔을 찾았다. 

그들이 짐을 모두 내려놓자 고청운은 객잔에서 심부름을 하는 아이에게 끓여놓은 생강탕과 양고기탕을 가져오라고 일렀다. 

모두 생강탕을 한 그릇씩 마시고 나니, 몸이 훨씬 편해진 걸 느끼고 그제야 양고기탕을 천천히 마시기 시작했다. 

“탕 맛이 훌륭하군. 청운 자네는 안 먹나? 청명이는 어딜 간 겐가?”

하 수재가 칭찬하며 말했다. 

고청운은 고개를 내저으며 자기 그릇을 내려두며 답했다. 

“우리는 배가 안 고파요. 형한테 대신 처리해달라고 부탁한 일이 있어요.”

“자네들도 하루 종일 고생했으니 얼른 부학에 가서 쉬게나. 내일 세시를 봐야하는데 우리도 별 문제 없으니 일찍 쉬면 되네.”

하 수재가 성급하게 그를 쫓아냈다. 

이때 마침 고청명이 돌아왔고 뒤에는 약동(药童)이 뒤따라 들어왔다. 

“스승님 말씀보다는 의원님의 말씀을 들어야지요. 조 의원님, 이렇게 추운 날 번거롭게 진료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고청운은 온 사람에게 인사를 건넸다. 이는 그가 자주 왕래를 하고 있는 조 의원으로, 뛰어난 의술을 가지고 있었다. 

조 의원은 고개를 내저으며 미소를 지었다. 

“별 일도 아니죠. 의원일이 이렇습니다. 항상 있는 일입니다.”

말을 마치고 조 의원은 세 사람의 맥을 짚었다. 예상대로 조문헌과 하겸죽에게는 별 큰 문제가 없었고, 하 수재 역시 연령대가 높긴 했지만 큰 문제가 없어서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탕약을 조제해주었다. 약을 달이는 방법을 일일이 설명해주고서는 고청명이 그를 배웅했다. 

전에 자주 병치레를 했던 조문헌은 약을 달일 줄 안다며 자신 있게 약을 달이러 갔다. 

하 수재는 이미 날이 어두워진 것을 보고 다시 한번 독촉을 했다. 고청운은 조문헌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가 몇 마디를 건넨 후 그제야 자리를 떠났다. 

하겸죽이 아래층까지 따라와서 그들을 배웅했는데, 그 자리에서 그에게 은자를 주려고 했다. 

고청운은 기분 나빠하며 연신 거절하고 말했다. 

“스승님께서 힘들게 이곳까지 오셨는데, 제가 객잔 숙박비를 내는 게 어때서요? 이제 저도 돈을 버니까 스승님을 공경할 기회를 주시지요.”

하겸죽 역시 그의 말에 순순히 물어나지 않았다. 

“스승님은 그렇다 해도 나랑 조문헌은? 반드시 받아야 해.”

“제가 얻어먹은 밥이 몇 끼인데요? 제가 언제 돈을 준 적이 있나요. 아무튼 이 돈을 받을 수 없어요. 그래봤자 사흘인데요.”

고청운 역시 결코 물러서지 않았고 고청명이 옆에서 거들었다. 

하겸죽은 어찌 할 도리 없이 다시 은자를 집어넣었다. 

고청운은 숙사로 돌아와서 고청명에게 물었다. 

“형, 조 의원이 뭐라고 했어요? 형 동상은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 거래요?”

고청운은 항상 단련을 했고, 손을 비벼서 뺨에 가져다 대고 몸도 자주 주물러 주어서 혈액순환이 잘 되었다. 아침에는 차가운 물로 세수를 했기 때문에 줄곧 동상에 걸린 적이 없었다. 그래서 이런 어려움을 알지 못했지만 동상은 기본적으로 낫기 힘들다는 소리를 들어서 알고 있었다. 

“뭐, 고치기 어렵다고 하시지. 천천히 증상을 완화하는 수밖에 없다면서 약을 한 병 주셨어.”

“그래서 형한테 미리 미리 동상 안 걸리게 조치를 취하라니까 게을러서 안 하더니 이제 또 재발한 거 봐요. 흥, 이게 바로 내 말을 듣지 않은 결과예요.” 

고청운은 그의 손과 귀 역시 동상에 걸린 것을 보고 더 이상 잔소리를 하지 않았다. 

“약을 제때 바르는 거 잊지 말고요.”

사실 고청명도 후회막심이었기 때문에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저녁을 먹기 시작했다. 

겨울이 온 후 고청운과 고청명은 같이 목탄을 사서 숙사에 두었다. 식당에서 가져오는 밥과 요리는 차가웠다. 식당에서 먹어도 따뜻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예 그냥 가져와서 불에 데워 먹었다. 

사람의 지혜는 끝이 없었다. 고청운이 발명할 필요도 없이 그는 근처 대장장이간에서 사온 숯 그릇 위에 이미 받침대가 있었고, 밖에는 구멍이 뚫린 상자 모양의 것을 덮개가 불이 나거나 다른 물건이 떨어지는 것을 방지했다. 받침대의 높이는 조절이 가능했고 위에는 옷을 말리는 데 쓰였다. 작은 냄비를 위에 올려두고서는 천천히 탕을 끓일 수 있었기 때문에 밥과 요리를 데우는 건 일도 아니었다. 

오늘 고청운은 그들이 늦게 돌아와서 식당에 밥과 요리가 없을 것을 미리 생각해두었기 때문에 고기와 쌀을 사와서 천천히 쪘다. 한 시진 정도가 지나자 고기죽이 끓여졌고, 돌아왔을 때는 딱 먹기 좋은 상태였다. 

방자명은 이때 문을 닫고 다가오면서 물었다. 

“다들 짐 다 풀었니?”

“네, 다 잘 풀었어요. 자명 사형도 죽 먹을래요?”

고청운이 물었다. 이 시기는 정말 너무 추웠기 때문에 방자명은 외숙의 집에서 머물렀다. 그 집은 하루 종일 목탄불을 때웠다. 

“괜찮아. 막 외숙댁에서 돌아오는 길이야. 이미 저녁을 먹었어. 시험장 내에 난로가 있긴 하다고 들었는데, 따뜻할지는 모르겠네.”

방자명이 내일 세시를 언급했다. 

“결국 자기가 알아서 따뜻하게 입어야죠. 이곳은 남방이라서 먹이라도 갈리지 북방 같으면 아마 물도 다 얼어버렸을 거예요.”

고청명은 매우 흥미로워하며 물었다. 

“청운아, 그럼 북방에서는 겨울에 책을 보기만 하고 글을 쓸 필요는 없는 거야?”

“그건 아닐 거예요. 북방에도 집을 따뜻하게 하는 난로가 있어서 집안이 비교적 따뜻한 편이래요.”

“이미 집에 돌아가고도 남았을 때인데 이런 날씨에 남아서 세시를 봐야 하다니.”

방자명이 투덜거렸다. 

두 사람이 고기죽을 먹은 후 고청운은 목탄재로 그릇을 씻었다. 최근 고청명은 손도 동상에 걸려서 고청운이 이런 일을 도맡아 했다. 지금은 날이 추워서 겉옷을 자주 바꿔 입지 않았기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번거로운 일들이 많았을 것이다. 

현대의 편리함이 그리웠다. 특히 세탁기가 많이 그리웠다. 

세 사람은 또 잠깐 이야기를 나누다가, 방자명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고청운은 방에서 걸음을 걷다가 일기를 다 쓴 후에, 양초를 입김으로 불어서 끄고 잠자리에 들었다. 

* * *

세시를 치르는 날이 되었다. 해가 나올 정도로 날씨가 좋았다. 비록 온도가 여전히 너무 낮았지만 다들 한시름 던 느낌이었다. 

응시인원은 총 이백 여 명으로 사람이 너무 많아서 부학의 학사에서는 전부 수용이 불가능해서, 연령대가 높은 수재들은 화로가 있는 실내에서 시험을 치렀고, 고청운 같이 어린 연령대의 수재들은 축국장에서 시험을 치르는 수밖에 없었다. 

고청운은 일찍이 이를 짐작하고 있었다. 어제 아역이 축국장에 의자와 탁자를 두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이제 기정사실이 되었다. 

남방의 겨울은 비교적 음울해도 해가 나오고 비바람이 불지 않으면 사실 겨울을 지내기 그렇게 힘든 편은 아니었다. 고청운은 자신이 실외에서 시험을 치를 수 있을 정도는 된다고 생각했다. 

수재들은 각자 손난로를 움켜쥐고 놓지 않은 채로 시험 번호패를 들고 자신의 자리를 찾아서 앉은 후, 시험지를 나누어 주기를 기다렸다. 

이번에는 몸수색을 할 필요가 없었다. 모두 다 같이 앉아 있었기 때문에 모든 게 잘 보였다. 주위에는 아역과 포괄들이 눈에 불을 켜고 지켜보고 있었다. 게다가 수재들의 서동과 가족들이 멀지 않은 곳에서 시험 치는 곳을 볼 수 있었기 때문에, 고단수가 아니고서는 이렇게 많은 눈을 피해서 부정행위를 하기 어려웠다. 

생각이 있는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분명 현장에서 부정행위를 하지 않는 게 당연했다. 만일 잡히기라도 하면 공명이 제명되고 가문에 먹칠을 하게 되는 꼴로, 가문 사람들 전체가 고개를 들고 다니지 못했다. 

시험지 분배, 문제 풀이, 시험지 제출. 

다들 오랜 시간 동안의 시험 응시 경험이 있었다. 특히 이미 여러 차례 시험을 치른 수재들은 조금도 다른 일에 신경 쓰지 않고 바로 고개를 숙이고 문제를 슥슥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고청운은 시험지를 받고나서 문제를 보다가 이 문제들과 원시 문제들이 거의 비슷한 것을 발견했다. 그저 경의 문제 비중이 늘어났을 뿐, 전체적으로 문제 수는 훨씬 적었고 대부분 상식적인 내용이었다. 이 중에서 열 문제 정도만 어려웠다. 

보아하니 세시의 목적은 수재들이 공부하는 상태를 유지하려는 것이었다. 수재가 되었다고 전부 다 잊어버리고 공부조차 안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고청운은 묵을 갈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반 시진이면 다 쓸 수 있는데, 만약 앞으로도 세시가 이 정도 난이도라면 더욱 걱정할 필요가 없겠다.’

학정마다 추구하는 것이 달랐는데, 학정은 3년에 한 번씩 교체되었다. 앞으로 학정이 어떻게 출제할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앞으로 2년 동안 양 학정은 이렇게 출제를 할 터였다.

그는 문제를 풀기 시작했는데 매우 순조롭게 풀어나갔다. 특히 시 짓기 부분에서는 속도가 더욱 빨랐는데, 전에 눈(雪)에 관련된 시구를 이미 외워둔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반 시진 후, 고청운은 시험지를 제출했다. 이때 이미 절반 정도의 사람들이 먼저 시험지를 제출한 상태였다. 시험이 끝날 때까지 앞으로 한 시진이 더 있었다. 

고청명이 바로 오더니 그와 손난로를 바꾼 후 계속해서 물었다. 

“청운아, 어땠어? 괜찮아? 많이 어려웠어?"

고청운은 주위의 서동과 부모들이 들으려고 귀를 쫑긋 세우는 것을 보고 말했다. 

“학사 가서 이야기해요.”

가는 동안 방자명이 매우 빠르게 시험지를 제출한 사실을 알았다. 지금 정도면 이미 침상에 있을 터였다.

고청운은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그 역시 문제를 빠르게 다 풀었지만, 잘못된 부분이 있을까봐 몇 번이나 검토한 뒤에 시험지를 제출했다. 필경 그는 이 성적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비록 평범한 사람도 너무 게으르지 않으면 3등급은 유지하고 아무리 못해도 4등급은 한다고 하지만, 그래봤자 학정이 모두가 보는 앞에서 곤장 몇 대만 칠뿐 그래도 수재라는 공명을 유지할 수 있었다. 

5등급이라고 해도 지금 부학의 수재는 모두 증광생 이상이지만, 아래로 한 등급이 떨어져도 여전히 수재는 수재였다. 

그래서 부학의 수재들은 세시에 대한 압박이 별로 없었다. 

신분을 유지하고 싶은 42명의 늠선생들만 압박이 있었다. 물론 이 중에서 가정 형편이 좋은 이들은 이런 보조금을 전혀 개의치 않았다. 하지만 보조금이 있는 건 매우 체면이 서는 일이었기 때문에 돈보다도 체면을 중시했다. 

고청운은 늠생이라는 신분을 유지하고 싶었다. 그러면 내년 현시 때 다른 이에게 보증을 서주면서 수입을 얻을 수 있었다. 게다가 1, 2등급이 되면 학부에서 상여금을 주기도 했다. 

“시험지를 전부 풀어서 냈으니 수재 공명 정도는 분명 유지가 될 텐데, 구체적인 등수는 봐야 알 것 같아요.”

학사로 가는 길에서 고청운이 하는 말을 듣고 고청명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맞다. 아까 나 시험 볼 때 형은 생강탕을 끓였어요?”

고청운이 다시 물었다. 

“다 끓였고, 이따 거의 다 되면 생강탕 한 그릇 가져다줄게. 솜옷으로 싸서 가지고 오면 금세 식지 않을 거야.” 

고청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학사 입구에서 기다렸는데, 하 수재는 조금 늦게 나왔다. 

그리고 그들이 도착하고 나서 조금 후에 조문헌과 하겸죽도 나왔다.

세 사람은 작은 소리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지나가는 수없이 많은 젊은 수재들을 보았다. 알고 보니 대부분은 자신의 스승님이나 아버지, 심지어 할아버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었다. 

한 가문에 수재 둘. 집안 어른이 수재인 사람들은 이를 매우 자랑스러워하는 것이 얼굴에도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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