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화. 세시 (1)
고청운은 수업 내내 스승이 가르치는 대로 퉁소를 불었다. 먼저 소리를 낼 때는 구멍을 막지 말고 바로 불었고, 불어서 소리가 날 때쯤에는 구멍을 순서대로 막으면서 다 막을 때까지 불었다.
처음에 제대로 소리를 내는 법을 배우는 게 어려운 부분이었다. 이 난관만 헤쳐 나가면 그 다음부터는 조금 수월한 편이었다.
그렇게 반 시진이 지났는데, 고청운은 퉁소를 부는 일이 큰 폐활량이 필요하다고 여겼고, 자신에게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는 동안 구 스승은 학생들을 돌아가며 지도해주었고, 그렇게 수업이 끝이 났다.
며칠 후 고청운은 방자명으로부터 구 스승이 옥금을 잘 다룬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옥금은 가격대가 조금 높은 편이라서 그는 본래 옥금을 배울 생각이 없었다. 가장 기본적인 옥금도 최소 십몇 냥을 주어야 살 수 있으니, 명금은 부르는 게 값이었다.
스승의 퉁소 소리를 들은 고청운은 그가 진정한 실력자라고 생각했다. 수업을 몇 번 듣는 동안 본래 퉁소를 불 줄 알았던 사람들은 알아서 불고 있었고, 그와 같은 초보자들은 한 편에 모여 앉아서 처음부터 배웠다.
부학에는 여분의 금(琴) 몇 개가 있었는데, 학생들이 무료로 사용할 수 있었다. 비록 좋은 금이 아니었지만 고청운이 배울 정도는 되었다.
퉁소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매일같이 연습을 했는데, 옆 편에 살고 있는 방자명은 그가 부는 퉁소 소리를 자주 듣다가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아서 자주 뛰쳐나와 지도를 해주곤 했다.
이 날은 지도를 받고 고청운은 매우 감격하며 말했다.
“자명 사형, 지도해주어서 고마워요. 감사의 뜻으로 제가 다시 한 곡 불러드릴게요.”
방자명은 그 말을 듣고 얼굴색이 변해서 손을 저어가며 거절했다.
“아니, 아니, 감사하지 않아도 돼. 퉁소에 너무 열정적이네. 매일 그렇게 불어대면 볼이 아플 텐데?”
“안 아파요. 매일 조금씩만 부니까 괜찮아요.”
고청운은 조금도 개의치 않아하며 계속 말했다.
“걱정 마요. 저는 이미 점점 입문 단계로 접어들었으니, 매일 밥 먹은 다음에 축국장에 가서 조금 불다 오면 자명 사형에게 방해가 되지 않을 거예요.”
“내게 방해가 되는 걸 알고 있었군.”
방자명이 그를 흘겨보았다.
고청명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 시간에 아직도 있을 줄 몰랐거든요. 오후에 또 나간 줄 알았지요.”
최근 며칠 동안 오후만 되면 방자명의 그림자조차 볼 수 없었다. 그는 황언성을 따라 외출을 했기 때문에, 혼자 남은 고청명은 마음 놓고 방에서 퉁소를 불었던 것이었다.
방자명은 그보다 훨씬 더 다양한 활동을 했다. 가끔 아버지의 벗도 찾아뵈어야 했고, 친척집도 들르고 종종 문회에 참석하기도 했다. 그전보다 공부에 들이는 시간은 훨씬 적었지만 성적은 더 좋은 편이었다.
고청운은 일찍이 그런 것에 신경을 쓰지 않기로 작정했다. 아니면 부학에 있는 내내 충격을 받을 테니까.
“이제 곧 세시(岁试)니 좀 방에 붙어서 공부를 하려고.”
방자명은 부채질을 하면서 진지하게 답했다.
세시가 언급되자 고청운은 바로 이해가 되었다. 그러고보니 최근에는 외박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줄어들었다.
퉁소 부는 건 순조롭게 진행이 되었고, 금은 배운지 얼마 되지 않아 곡을 연주할 실력이 아직 못 되었지만 고청운은 이미 꽤 만족스러워 했다. 주로 모든 정력을 공부에 쏟았고 퉁소에 들이는 시간이 금에 들이는 시간보다 많았기 때문에 지금은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이미 상당한 성취감을 느끼고 있었다.
곧 세시가 다가와서 그는 공부에 더 많은 시간을 들였다. ‘구걸하는 이는 개에게 물리는 걸 두려워하지만, 수재는 세시를 두려워 한다’ 는 이 옛말이 정말 참으로 맞는 말이었다. 일 년 중 과거 고시 외 수재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세시였다.
“세시는 6등급으로 나누어요. 1등급부터 6등급까지 줄을 세우고 비는 자리가 있으면 순차적으로 채워지는데, 1,2등급에게는 모두 상을 주고 3등급은 평소처럼 대하고 4등급에게는 질책을, 5등급에게는 한 등급을 내림 당하고, 부생은 부학을 떠나고 6등급은 출혁(黜革)을 당합니다.”
훈도는 분명 이렇게 말했었다.
고청운은 처음에 세시가 부학과 현학에서 공부하는 수재를 대상으로 하는 시험으로 알고 있었는데, 전체 임양부의 수재를 대상으로 하는 시험인 것을 이제야 알았다. 이는 즉 하 수재와 같은 사람들도 시험을 쳐야 한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하 수재 같은 사람들은 돈만 조금 주면 시험에 거의 통과했고 3등급 수준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들은 향시에 참가할 의향이 없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알면서도 모르는 척 봐주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이제 나이가 들어서 머리가 전처럼 신통하지 않은 수재들이, 시험에서 낙방했다고 출혁을 당하게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래서 수재가 예순이 넘으면 세시를 치르지 않아도 된다는 암묵적인 규정이 생겼다.
하 수재는 아직 예순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토록 한기가 도는 추운 날씨에도 시험을 보러 와야 했다.
세시는 학정이 주관하는 시험으로, 양 학정은 매우 진지한 사람이었다. 그는 모든 수재가 직접 시험장에 와서 시험을 치르도록 요구했고, 정말 거동이 불편하거나 병으로 쓰러진 이들 역시 현지 교유의 증명이 있어야 휴가를 신청 할 수 있었다.
* * *
섣달 그믐날이 오기 전에 양 학정은 드디어 돌아와서 임양부 전체 수재들을 대상으로 세시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부학에서 세시가 거행되었기 때문에 임양부 다섯 개 현의 수재들은 모두 부학에 집결해야 했다.
하겸죽의 편지를 받은 후, 고청운은 얼른 부학 근처의 객잔에 방 세 칸을 예약한 후 세시 전날 고청명과 우마차 한 대를 타고 부두에 가서 기다렸다.
앞으로 2주 뒷면 섣달 그믐날이었고 날씨가 매우 추웠다. 비록 눈이 내리지는 않았지만 아침에 너무 일찍 일어나 밖을 한 바퀴 돌고나면 손가락이 꽁꽁 얼어서 빨갛게 부을 정도였다. 이 시기에는 고청운조차 나가서 뛸 엄두조차 내지 못했는데, 지금 날씨는 후대보다 훨씬 추웠기 때문에 실내에서 왔다 갔다 하다가 가끔 팔 굽혀 펴기를 하는 정도로 몸을 풀었다.
고청명의 동상이 재발한 일은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다. 동상을 사전 방지하기 위해서 특별히 의원에게 진료를 받고 분부대로 계수 껍질, 마른 생강 등 약재를 다져서 동상이 걸리기 쉬운 부위에 매일 이각씩 붙이기도 했는데!
평소에 될 때마다 생강편으로 이전에 동상에 걸렸던 부위도 자주 문질렀는데도 고청명은 다시 동상에 걸리고 만 것이었다.
고청운과 고청명이 얼어죽을 것 같다고 느꼈을 때, 배가 드디어 도착했다.
고청운은 하 수재의 몰골을 보고 정말 깜짝 놀랐다. 그는 매우 두꺼운 솜옷을 입고 있었고 머리에는 솜모자도 쓰고 있었다. 그런데도 너무 추워서 입술이 퍼렇게 질린 상태였다.
고청운은 얼른 다가가 스승을 부축하며 물었다.
“스승님, 괜찮으세요?"
그는 급하게 자신의 소매에 있던 동 재질의 손난로를 스승님의 손에 쥐어드렸다.
이 시대 때 손난로는 약간 부유한 사람이 사용하던 물건으로 가격이 살짝 있는 편이었다. 손을 따뜻하게 할 때 쓰는 작은 난로 같은 경우에는 타원형으로 안에는 목탄 혹은 약간의 온기가 있는 재를 넣었는데, 난로 겉에는 난로 주머니도 있어 매우 정교한 느낌이 들었다. 고청운과 고청명은 모두 넓은 소매인 대포(大袍)를 입었기 때문에 손난로를 소매에 집어넣고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걱정 말거라. 내가 겨울에는 외출을 하지 않아서 바로 적응을 못하는 것이야.”
하 수재는 보온용 손덮개로 덮고 있던 손으로 뜨거운 손난로를 건네받는 순간 따뜻함을 느끼고 그제야 좀 살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의 옆에 있는 하겸죽과 조문헌 역시 온몸을 무장하고 있어서 덩치가 매우 커보였다.
“얼른 객잔으로 돌아가서 뜨거운 물 한 사발을 하고 싶구나.”
고청운은 하겸죽과 조문헌과 인사를 나눌 새 없이 급히 하 수재를 부축하여 우마차에 올랐다.
그러고 나서 뒤돌아보니 세 사람이서 짐을 싣는 것을 보았는데, 모두 솜이불 같은 것들이었다.
길바닥에 행인이 많아서 우마차는 매우 천천히 움직였다. 고청운이 물었다.
“다들 너무 추워하는 것 같은데요? 배 위에 목탄이 없었나요? 내일 바로 세시인데 왜들 이리 늦게 왔어요. 다른 사람들은 다들 일찍 왔던데요. 만약 자명 사형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부학 근처 객잔조차 예약을 못했을 거예요."
하겸죽 역시 앓는 소리를 했다.
“소식이 너무 늦게 왔어. 원래 당숙 집에서 묵으려고 했는데, 서신을 보내 물으니 얼마 전에 군성에 갔다가 춘절 때 돌아온다는 사실을 알았지.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너에게 서신을 보낸 거야. 날씨가 너무 추운 것을 보고 학정 대인께서 내년 봄 꽃 필 때쯤 세시를 치르게 하실 줄 알았는데, 시험을 먼저 치르고 춘절을 맞이할 계획이셨던 거지. 소식을 들은 다음에 먼저 집에 소식을 알렸어. 수로가 있기에 망정이지, 육지로 왔으면 훨씬 더 번거로웠을 거야. 하긴 지금도 번거롭긴 매한가지네. 배가 이틀 뒤에나 오거든.”
“육지로 왔으면 이 늙은이는 그냥 죽었을 거다.”
하 수재가 이제야 정신이 돌아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양 대인이라는 양반도 참…… 만약 수재 몇 명에게 무슨 일라도 생기면 탄핵을 당할지도 모르는데 신중하지 않으시구나.”
“그래도 규칙 내에서 정하신 걸요.”
고청운은 그의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율법에서는 수재가 매년 세시를 응시해야 한다고 명시했고, 지금 춘절 전에 세시를 치르는 것도 좋은 선택은 아니었지만 이미 다른 부는 일찍 다 세시를 치러서 우리가 마지막이에요.”
하 수재는 그 말을 듣고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탄식했다.
“힘이 없으니 하라는 대로 하는 수밖에.”
“하지만 배를 타니 정말 춥더라. 배를 탈 때는 정신없이 타는 바람에 어떤 사람들은 목탄을 가지고 타는 걸 잊어버려서 우리 스승님이 조금 나누어주고 그랬어.”
조문헌이 뒤이어 말을 보충했다. 보지 못한 몇 달 동안 얼굴에 드디어 살이 조금 붙어있었는데, 배를 타서 그런지 피로해보였다.
“스승님은 항상 약한 자를 도와주고 싶어 하시고 또 기꺼이 그렇게 하시니까요.”
고청운이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하겸죽과 다른 이들이 그의 말에 동의했다.
“몇 달 못 본 동안 청산유수가 되었군.”
하겸죽이 웃으며 말했다.
고청운은 그저 웃기만 할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을 잘 하나요? 하긴 청운이는 부학에서 사람들과 사이가 좋아요.”
고청명이 자랑스럽게 말했다.
사람들이 또 다시 웃었다.
“조삼은 왜 안 왔어요?”
고청운은 화제를 전환하였다. 왜 시중드는 사람 없이 세 명이서 왔는지 궁금해 했다. 특히 하 수재에게 시중을 드는 사람이 없다니.
조금 후에 물어본 다음에 사모님이 친정에 가면서 사내들을 모두 데려간 사실을 알았다. 게다가 하겸죽과 조문헌이 있으니 사실 하인이 없어도 괜찮았다.
“약한 감기에 걸려서 올 수가 없었어. 아마 다 낫는 데까지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
조문헌은 살짝 얼굴을 찌푸리며 고청운의 관심 어린 표정을 보며 말했다.
“지금 감기에 많이 걸릴 때지요. 올 겨울은 유난히 더 추운 것 같아요.”
고청운이 감탄하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