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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생활 (74)화 (74/504)

74화. 퉁소

점심 휴식 시간이 되고나서 고청운은 더 이상 밭일을 하겠다는 말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이런 체험은 오전으로 족했다. 그리고 손과 얼굴에 이미 작게 오돌토돌한 것이 나면서 너무 간지러워서 흉이 질까봐 걱정이 되기도 했는데, 긁을 엄두조차 나지 않아서 차가운 물로 씻을 수밖에 없었다. 

소진씨는 그것을 보고 더욱 고청운이 밭일을 못하도록 적극적으로 말렸다. 

노진씨는 그가 도움이 되기는커녕 걸리적거린다고 한 소리 했다. 

고청운 역시 자신이 도움이 되지 않는 걸 느꼈다. 아마 구석으로 몰리지 않으면 잠재력을 발휘하기엔 어려운 모양이었다. 농사일은 정말 몸이 고된 일이라서 얌전히 돌아가서 공부나 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때부터 며칠 동안 그는 닭과 돼지를 돌보고 원자 빗질 등 가벼운 잡일들을 도와주었고, 공부할 만큼 넉넉한 시간적 여유도 생겼다. 

* * *

열흘 후 방자명에게서 연락이 왔다. 외숙이 이미 군성에서 부성으로 돌아왔다며 조금 더 일정을 앞당길 수 있냐는 것이었다. 

물론 고청운은 이에 흔쾌히 응했다. 

가족들에게 이야기 한 뒤 고청운은 고청명, 방자명과 함께 사흘 먼저 부성으로 돌아갔고, 고청운은 방자명을 따라 그의 외숙을 뵈러 갔다. 

방자명 외숙댁인 왕씨 집안의 저택은 부성 서쪽에 있는 행화항(杏花巷)에 위치해 있었는데,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다들 어느 정도 집안에 재산이 있는 중산층이었다. 골목의 바닥조차도 청석판(青石板)으로 포장되어 있었고 길의 양 옆에는 하얀 벽 검은 기와로 이루어진 집들이 즐비해 있었다. 반듯한 외양에 가끔 어느 집에서 튀어나온 건지 모르겠는 나뭇가지가 삐죽 나와 있어 골목 전체에 생동감을 심어주었다. 

두 사람은 먼저 방자명의 외숙모에게 문안 인사를 드렸다. 

왕씨 외숙모는 성정이 온화한 중년부인으로 수려한 용모를 지녔다. 고청운에게도 매우 잘해주었는데, 그가 자신의 아들을 구했던 것을 알고는 줄곧 웃는 얼굴로 그를 대했다. 

지금 그녀의 품안에 안겨 있는 아이는 고작 4살이었는데 이미 상당히 뚜렷한 이목구비를 지니고 있었다. 그 아이는 곤히 잠들어 있었는데 살짝 붉은 뺨, 이마의 땀 흔적과 풀어져 있는 옷으로 놀다 지쳐서 잠든 것을 미뤄 짐작할 수 있었다. 유모는 옆에서 서 있었다. 

두 사람은 혹여 아이를 깨울까봐 오래 머물지 않고 서둘러 인사를 드린 후 방자명의 외숙을 뵈러 갔다. 

외숙은 왕금(王锦)이라는 자로, 왕 씨와 꽤 비슷하게 생겼다. 본래 용모가 준수한 중년 남자였겠지만 복부가 마치 회임 5개월은 된 듯 했고 전체적으로 몸에 살집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뚱뚱한데도 보기 좋았다. 온화한 성격의 소유자로 항상 웃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의 앞에서 저도 모르게 경계심을 풀었고, 조금도 긴장하지 않았다. 

그는 고청운에게 매우 잘 해주면서 몇 년 전 인신매매범을 잡은 사건을 언급하며 그때 도와준 것에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고청운은 매우 부끄러워하며 답했다. 

“제게 이미 여러 번 감사하다고 하셨는걸요. 전에 주신 사례품과 인사로 이미 충분한 것 같습니다.

“허허, 당연히 그래야지요.”

왕금은 웃으면서 자신의 배를 만졌다. 

“그럼 이제 서로 다들 잘 아는 사이니 거추장스러운 예의는 고사하겠습니다. 청운, 자네는 언제부터 장부를 볼 수 있나?”

고청운도 조금이라도 빨리 일을 시작하고 싶었다. 앞으로 사흘 동안은 수업을 들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바로 답했다. 

“만약 가능하다면, 지금 바로라도 가능합니다.”

행동이 빠른 왕금은 그 말을 듣자마자 먼저 방자명에게 말했다. 

“저택 내부에 대해 잘 알고 있으니 혼자서 둘러보고 있으려무나. 나는 청운이를 데리고 옆에 가보마.”

본래 약간의 무료함을 느끼고 있었던 방자명은 그 말을 듣자마자 바로 고청운에게 인사를 한 후 자리를 떠났다. 

왕금은 서둘러 왼편에 있는 방으로 고청운을 데리고 갔다. 안의 공간은 퍽 큰 편이었는데 작은 수염이 난 중년 남자 한 명이 이미 주판을 굴리고 있었다. 큰 탁자 몇 개 위에는 이미 수없이 많은 장부가 놓여 있었는데 순서대로 장부를 하나하나 나눈 것이었다. 

“이 장거, 내 일손을 하나 데리고 왔소.”

왕금은 문에 들어서자마자 웃으며 고청운을 이 장거에게 소개해주었다. 

왕금은 고청운에게 이 장거가 소유하고 있는 여러 면포 도매상 중 한 곳의 주인으로 장방(账房) 출신이기에 이전의 본업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일러 주었다. 

이 장거는 고청운이 수재라는 말을 듣고 잘난 체 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바로 그의 앞에 와서 예를 갖췄다. 

고청운 역시 급히 예를 갖추며 말했다. 

“계산이 그리 숙련된 편이 아니니 많은 가르침 부탁드립니다.”

이 장거는 고청운의 겸손한 태도를 보고 굳었던 얼굴이 풀어졌다. 

왕금은 옆에서 웃으며 둘이 궁합이 잘 맞는 것을 보고 말했다. 

“그럼 옆에서 방해하지 않겠소. 필요한 게 있으면 집사에게 도움을 청하고, 집사가 결정할 수 없는 일은 다시 내게 물어보시오. 나머지 면포 도매상의 세 장거들도 이곳으로 올 테니 대조할 장부는 그들과 함께 맞춰보면 되오.”

“동가(*東家: 머물러 있는 집의 주인)께서는 조심히 가시지요.”

이 장거는 급히 그를 배웅했다. 

그러고 고청운은 바로 이 장거를 따라 일을 하기 시작했다. 

왕금에게는 총 네 개의 면포 도매상이 있었는데, 군성과 부성에 각각 두 곳이 있었다. 처음에는 부성에 하나만 열었지만 점점 장사가 잘 되어 군성에도 분점을 내게 된 것이었다. 그러다 관부에게 찍히게 되었다. 혹은 경쟁 상대가 신고를 한 건지도 몰랐다. 관부는 그를 상적에 등록할 심산이었지만 결국 인맥을 통해서 정해진 기한 내에 수정을 하면 상적에 등록하지 않아도 되었다. 

고청운은 이 장거가 하는 말을 듣고 장사는 정말 만만치 않다고 느꼈다. 너무 장사가 잘 되어도 강제로 상적에 등록될 수가 있다니. 원래 상적에 등록할 생각이었다면 몰라도 말이다.

사실 상인 호적을 갖고 있어도 과거에 응시할 수 있었지만, 관직에 오르면 알게 모르게 차별이 존재했다. 벼슬이나 부자가 되는 건 상적과 관련이 없었고 뒷배경이 탄탄하다면 모를까 종종 억울하게 누명을 쓰는 건 자주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탄탄한 뒷배경을 갖고 있는 황상(*皇商: 궁의 내무부에 속해 궁의 물품을 조달하는 등 상업을 전담하는 상인)들은 일반 관원들보다 훨씬 더 나은 삶을 살았기 때문에, 좋은지 나쁜지는 결국 구체적인 상황을 봐야했다. 

왕금의 조상들은 관직을 지냈고 벼슬을 지내는 자들도 있는데다가 가문 소유의 땅이 천 묘도 넘게 있었기 때문에 상적으로 등록되는 걸 진심으로 원치 않아 했다. 오래된 관념에서는 여전히 지방 향신의 사회적 지위가 더욱 높았고 뭇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고청운과 이 장거는 점포 네 곳의 장부만 계산하면 되었다. 올해 장부만 보면 되었기에 주어진 시간이 넉넉하지 않을 뿐, 사실 작업량 자체는 정말 많은 편이 아니었다. 

고청운은 혼자서 가게 하나의 장부를 다 보아야 했다. 그는 나이 든 서리로부터 배운 모든 지식을 총동원하여 일을 하다가 가끔 이 장거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사실 이렇게 장부를 보는 일은 별로 어려울 게 없었다. 

이 장거 역시 그가 똑똑하다고 여겼다. 수재공이 아니랄까봐 배우는 속도가 정말 빨랐다. 

고청운은 약간 난처했다. 이게 만약 경의였다면 배우는 속도가 빠르지 않았을 것이었다. 

그는 속으로 자신은 실전에 강한 인재인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삼일 후, 그는 오전에는 부학에서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오후에는 왕씨 집안에 가서 일을 하다가 저녁 일고여덟시쯤에서야 부학으로 돌아와 쉬기 시작했다. 수업 외 다른 활동은 모두 멈췄다. 다행히 5일만 지나면 이런 날들은 곧 끝이었다. 그와 이 장거는 장부를 세 번이나 반복해서 본 다음 의문이 있는 부분을 객잔 주인과 맞춰 본 다음 기본적으로 틀린 부분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왕금에게 보고를 했다. 

왕금은 크게 기뻐했다. 장부 정리는 예상했던 시간보다 며칠이나 덜 걸렸다. 

고청운은 십 몇 냥의 은자를 받을 때 8일 동안 이만큼이나 벌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이토록 쉽게 벌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얼마 전 늦벼를 벨 때의 어려움을 생각했다. 집 안에 10묘의 물논에서 거두는 벼를 전부 내다 팔아도 10냥 정도밖에 벌지 못했다. 이건 세금을 포함하지 않은 금액이었는데, 사람 쓰는 비용, 비료 비용, 씨앗에 들어가는 비용 등등이 일체 포함되지 않았다. 

비록 고청운이 받은 돈은 특수상황이라서 평균 비용보다 높은 편이라 항상 이렇게 많이 받는다고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뭐가 되었든 고청운은 매우 기뻤다. 그는 전에 진에서 하 주인이 조카 대신 장부를 계산해달라고 했던 일을 떠올리며 만약 그 일도 이 정도면 누워서 떡 먹기라고 생각했다. 

부학으로 돌아간 후 고청운은 방자명을 양고기 국수를 잘하는 집으로 데려가서 제대로 된 한 끼를 먹였다. 양고기는 돼지고기보다 훨씬 더 비쌌기 때문에 고청운도 십 몇 년 동안 양고기를 먹어본 게 손에 꼽았다. 

부학에서의 일상은 전처럼 흘러갔는데, 유일하게 다른 점은 퉁소 수업 담당 선생님이 드디어 돌아오셨다는 것이었다. 고청운은 얼른 가서 수업 신청을 했다. 

퉁소를 배우는데 비용은 매우 적었다. 그와 고청명은 가게에서 중간 정도되는 가격의 퉁소를 골랐는데, 300문밖에 되지 않았다. 그들의 경제적 상황을 고려했을 때 이 정도가 적합했다. 

그들에게 퉁소를 가르치는 스승은 성이 구(欧)씨인 서른 몇 살의 수재였다. 길쭉한 몸매에 항상 나막신을 신고 넓은 소매를 휘날리며 이리 저리 움직이는 모습이 퍽 멋있었다. 심미관이 조금 독특한 것 말고는. 

그는 붉은 색 옷을 입는 것을 좋아했다. 비록 스승은 꽤 잘생긴 편이었지만 고청운은 옷 색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이 세상의 모든 붉은 색을 전부 수집해서 입고 다니는 것 같았다. 

그래서 학생들의 화제는 또 하나 늘어났다. 그들은 만나자 마자 서로에게 물었다. 

오늘 스승님께서는 어떤 홍(红)색을 입고 나오실까? 

이 사람은 왜 이렇게 붉은 색에 집착을 하는 걸까? 아무리 잘생겼어도 그러면 안 되지!

하지만 이는 스승의 사생활이니 그들이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 

다행히 구 스승의 퉁소 실력은 매우 훌륭했다. 고청운은 진심으로 그의 퉁소 소리가 방자명이나 하겸죽의 소리보다 좋다고 느꼈다. 특히 소리가 멀리 가는 느낌이, 듣고 있으면 마음이 괴로웠다. 

고청운의 퉁소 실력은 딱히 이렇다 할 천부적인 재능 없이 평범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고청운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는 마음을 다스리고 기품을 함양하고자 퉁소를 배우는 것이기 때문에 뛰어난 수준까지는 바라지 않았다. 그저 곡 한 수 정도만 부를 줄 알면 된다고 생각했다. 관악기에는 꽤 많은 공통점이 있다고 들었다. 고청운은 자신이 퉁소를 불 줄 알면 이제 피리도 문제없이 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손가락도 짧고 몸도 왜소한데 가지고 있는 퉁소가 너무 길어서 적합하지 않구나. 조금 더 짧은 퉁소를 사면 될 것 같다.”

구 스승은 첫 수업 때 돌려 말하지 않고 직언을 했다. 

같이 수업을 듣고 있던 다른 수재들이 그 말을 듣고 웃기 시작했는데,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스승님, 고 형은 키가 작은 게 아니라 아직 어린 아이인걸요. 그렇게 강요하시면 안 됩니다.”

고청운은 새빨간 얼굴을 하고 서둘러 물었다. 

“그런데 스승님, 길이가 짧은 퉁소는 음색에 영향을 미치지 않나요?”

또 자신의 키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기다니, 정말 답답했다. 

“그렇지 않다.”

그는 대답을 한 뒤 먼저 어떻게 퉁소를 잡는지, 구멍을 어떤 손가락으로 막아야 하는지 알려주며 덧붙였다. 

“처음 배우는 사람은 먼저 구멍을 지정된 손가락으로 정확하게 막는 법을 숙지해야 한다. 두 팔과 손목이 편한 게 우선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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