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화. 밭일
방에 가니 역시나 고청명이 이미 음식을 다 차려놓은 상태였다.
“또 생선이네. 배를 탄 후에 생선만 몇 번 먹었는지 모르겠어요. 맛있긴 한데 요리사가 전문 요리사가 아니니 대충 익히기만 하고 생강이랑 소금을 별로 안 넣어서 비린내가 너무 많이 나요.”
고청운이 젓가락을 들며 탄식했다.
“비린내가 난다고? 강에서 잡은 거라서 비린내가 약하던데, 왜 나는 냄새가 안 나지? 이제 좀 살만하다고 까다로워진 게냐. 어렸을 때는 흙냄새 나는 드렁허리도 자주 먹었는걸? 내가 잡은 작은 물고기를 집에 가져가서 탕으로 끓여 먹었던 거 기억 안나?"
고청명이 그에 동조하지 않으며 말했다.
“그건 우리 누이랑 어머니가 요리를 잘하셔서 많이 먹은 거예요.”
고청운은 약간 심기가 불편했다. 오늘 기분이 너무 좋아서 고청명과 가볍게 투닥거릴 할 의향이 있기도 했다.
“이번에 돌아가서 형 어머니한테 내 빨래한 일 말하면 안 돼요. 안 그럼 나한테 분명 뭐라고 하실 거니까.”
고청운은 고청명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다가 그의 얼굴이 빨개지고 자세에도 별 다른 변화가 없는 것을 보고나서야 안심했다.
“걱정 마. 말 안 할 거야.”
고청명 역시 집안의 풍파를 일으키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었기에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고청운은 얼른 생선살을 집어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형, 내년에 시험 볼 거예요?”
지금은 10월 초였는데, 내년 2월이 바로 일 년에 한 번 있는 현시였다.
고청명은 잠시 고민을 하더니 머뭇거리며 말했다.
“보고 싶으면서도 안 보고 싶기도 하고. 솔직히 말해서 네 옆에 한 달 동안 있으면서 배운 게 지난 두 달 동안 배운 것보다 많은 것 같아. 부학에서 조금 더 오래 있고 싶다가 부시에 한 번에 합격하고 싶어. 다시 생각 좀 해 볼게.”
물론 더 사적인 이유는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전과 달리 지금은 사촌 동생과 한 방에서 동거동락했기 때문에 서로가 무엇을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 기간 동안 그는 사촌 동생을 매우 대단하게 여겼다. 어렸을 적부터 갖췄던 자제력과 마치 무언가에 쫓기는 것 마냥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전심을 다해 노력을 했다.
고청명은 그렇게 하기 어려웠다.
공부할 때는 열심히 공부했고, 놀 때는 또 열심히 놀았다. 고청명이 부학의 다른 수재들을 관찰한 결과, 대부분의 수재들은 자신의 사촌 동생처럼 학습 계획을 철저하게 세우지 않았다.
사실 그는 사촌동생과 같은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고청운은 방자명처럼 책 한 권을 몇 번 훑어보면 이해하고 다시 몇 번 더 읽으면 팔, 구십을 기억하는 편이 아니었다. 고청운이 외우는 속도는 보통 사람보다 아주 조금 더 빠르고, 더 확실하게 기억하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가끔 그는 사촌동생이 방자명보다 더 잘 기억한다고 여겼다. 가끔 그에게 어떤 문제를 물어보면 사촌동생은 자주 이런 식으로 답했다.
“형, 이 문제는 내 <역경> 책 4쪽 상단에 있는 필기를 보면 돼요.”
방자명은 일반인이 범접할 수 없는 수준이었지만, 고청명은 사촌동생과 같은 일반인이 이 정도로 공부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는 자신이 그런 사람이 아닌 걸 알았기에 고청운을 더욱 더 대단하게 여겼다.
물론 고청운은 고청명의 생각을 알 수 없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먹는 데 집중했다.
그리고 고청운이 말한 대로 물결을 따라 갔기 때문에, 오후에 임산현에 도착했다.
* * *
방자명과 고별을 한 후, 고청운과 고청명 두 사람은 책 상자를 짊어지고 고씨 집안의 작은 가게로 걸어갔다.
“할머니, 숙부, 우리 돌아왔어요!”
고청운은 문에 들어서자마자 노진씨와 고이하가 물건을 정리하는 모습을 보고 급히 인사했다.
뒤에 있던 고청명도 인사를 했다.
노진씨와 고이하는 두 사람을 보고 매우 기뻐하며 밥을 먹었는지 물었다.
두 사람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책 상자를 내려놓고, 소매를 걷어붙이고 탁자를 닦기 시작했다. 일손이 많으면 일도 금방 끝나는 법이었다.
고청운이 찜통을 열어보고 텅 빈 것을 발견했다. 앞의 두 집은 여전히 영업을 하고 있었는데, 저희 가게는 다 팔린 것을 보고 바로 물었다.
“할머니, 정말 그 생선 포자를 만드신 거예요?”
“그렇단다. 잘 팔려. 네가 말한 대로 고기도 좀 넣어서 두 개를 3문에 파니까 모두 두 개씩 사 먹더구나. 다른 맛 포자도 잘 팔린단다.”
포자 이야기를 하자 노진씨의 두 눈이 반짝거렸다.
고청운은 그 말을 듣고 매우 기뻐했다.
이에 고이하가 웃으며 말했다.
“요 며칠 지켜보니 우리가 주전부리만 팔면 그렇게 자리를 많이 차지하지도 않고 탁자랑 의자도 몇 장 덜 놓을 수도 있더구나. 그래서 점포를 나누어서 반을 세를 줄까한다. 부두에는 사람이 점점 더 많아지는데, 우리가 하루 종일 이곳을 지키고 있을 수가 없으니, 그냥 놀게 하는 게 너무 아깝더구나.”
고청명은 이 말을 듣고 찬성했다.
“숙부 생각 참 좋은데요? 우리 집 옆 가게도 점포를 둘로 나누어서 세를 주었는데, 나누어도 충분하더라고요.”
“그것을 보고 생각해낸 거란다.”
고이하는 누군가 자신의 의견에 찬성하자 더 기쁘게 웃었다.
고청운은 별 다른 의견이 없었다.
노진씨는 바로 이웃 가게에 가서 보고 왔다. 여전히 사람들을 충분히 수용할 만큼 넉넉하다고 여겼다.
“그럼 후원은 어떡하지?”
“후원도 둘로 나누어요. 좌우지간 우리는 평소에 이곳에 없으니 묵을 방 몇 개만 있으면 되어요. 다른 사람에게 대신 봐달라고 하면 되어요.”
고이하는 일찍이 그런 생각을 해봤다는 듯 자랑스럽게 말했다.
“오늘 저녁 네 아버지와 논의해보자꾸나.”
잠시 동안 네 사람은 묵묵히 정리를 하며 돌아갈 준비를 했다. 오늘은 우마차를 가져오지 않았기 때문에 걸어서 집에 돌아가야 했다.
노진씨와 고이하는 산의 작은 길을 따라 귀가했고, 고청운 역시 같이 가려고 했지만 고청명이 진에서 살 물건이 있다면서 동의하지 않았다.
고청운은 다른 생각이 있는 듯 그와 동행하는데 동의했다.
그래서 노진씨는 고이하더러 고청운의 책 상자를 짊어지게 하고서는, 진에서 돼지고기와 등뼈를 사오라고 당부하며 고청운이 거절도 못하게 동전을 쥐어주었다.
“형, 말해 봐요. 어제 몰래 나가서 사려고 한 물건이 뭐예요? 정말 진에서 살 물건이 있어서 이쪽으로 오자고 한 거예요?”
노진씨와 고이하와 거리가 멀어졌을 때, 고청운이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고청명의 눈이 반짝거렸고 귓불이 빨개졌다. 그리고 고청운을 쳐다보지 않았다.
고청운은 씩 웃으며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다. 사실 일찍이 마음속에 품은 답이 있었다.
과연 진에 도착하자마자 고청명은 조옥당의 집에 간다고 말했다.
고청운은 왜냐고 묻지 않고 먼저 고기를 사서 진 입구에서 기다린다고 말했다.
잠시 뒤, 고청명이 얼굴이 빨개져서 흥분한 채로 뛰어왔는데, 고청운은 그저 속으로 웃기만 할뿐 대놓고 놀릴 생각은 하지 못했다.
“청운아, 고기를 왜 그리 많이 샀어? 두 근만 산다고 하지 않았어?”
고청명은 습관적으로 손을 내밀어서 물건을 건네받으려고 했다.
“푸줏간 주인이 너무 열정적이라서 조금 더 많이 샀어요. 넉넉히 두 개로 나누어 샀으니 하나는 형이 집 갈 때 가져가도록 해요.”
고청운은 씁쓸하게 웃으며 그의 도움을 거절했다. 지금은 책 상자도 짊어지고 있지 않은 상태였다.
고청운은 답답했다. 그는 이제 다시는 진에 와서 물건을 사고 싶지 않았다. 모두 그를 너무 친절하게 대했는데, 문제는 그가 아주 가끔 왔기 때문에 모든 사람의 이목을 끈다는 것이었다.
고청명 역시 더 이상 묻지 않고 바로 응했다.
두 사람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가면 갈수록 걸음이 빨라졌는데, 조금도 피곤한 줄 몰랐다.
* * *
이번에는 마침 늦벼를 수확할 시기에 집에 돌아왔기 때문에 고청운 역시 일손을 돕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가족들은 본래 동의하지 않았다가 고청운이 강하게 요구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손발을 들어 동의했다.
고대하는 인내심을 가지고 낫을 사용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몇 번이나 손 다치지 않게 조심하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고청운은 그 말을 들으며 계속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 역시 자신의 손을 보호해야 하는 중요성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고청운은 자신이 이미 12살이었고, 곧 13살이 되니 전처럼 여자아이와 같이 집안일을 하고 아이를 보는 것보다는 농사일을 조금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역시나 그는 자신의 능력을 과신했다. 현대에서도 밭일을 해본 적이 없는 그가 환생해서 농촌에서 태어났지만, 남들이 일하는 것만 봤지 직접 일을 해본 적은 없었다.
일가족은 먼저 낫으로 벼를 조금 조금씩 베었다가 다시 물벼를 타작 마당에 가져가서 말리곤 했다.
고청운은 낫으로 베기만 하면 되었지만 어머니와 숙모, 심지어 고하보다도 못했다. 고하는 그보다 2살 차이밖에 안 났지만 이미 밭일을 한지 2년이 넘었기 때문에 수확을 할 때 전혀 망설임 없이 능숙하게 벼를 베어냈고, 그보다 훨씬 속도가 빨랐다.
고청운은 잠시 일을 하다가 일어서서 허리를 피면서 머리 위에 솟아 있는 태양을 바라보았다. 땀이 등 뒤로 흐르는 게 느껴졌고 옷이 땀에 절면서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그는 쓰고 있는 모자를 들고 힘껏 부채질 했지만 여전히 너무 덥게만 느껴졌다.
10월이 되었는데도 햇빛은 매우 강렬했다. 지금은 모두 비가 내리기 전에 수확을 하려고, 쉬는 시간도 아끼고 일분일초를 다퉈가며 하루 종일 밭일을 했다. 대부분의 끼니도 밭에서 해결했다.
“전자야, 얼른 집에 돌아가렴. 이 일은 네가 할 수 없는 일이다.”
노진씨는 일을 할 때 줄곧 고청운을 주시하다가 그가 서있는 모습을 보고 바로 입을 열었다.
“조금 더 베다가 들어갈 테니 그리 걱정하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고청운은 자신의 한계가 어딘지 알고 싶었다. 마음속으로 이전의 옳은 결정을 다행으로 여겼다. 농사일은 정말 고된 것이었다.
“어머니, 신경 쓰지 마세요. 농사일이 얼마나 힘든지 알아야 공부를 더 열심히 하지요.”
고대하는 더 멀리 생각하며 자신의 어머니를 말렸다.
나중에 아들이 벼슬에 오르려면 적어도 밭 걷는 일 정도는 알아야지. 농업과 양잠업도 모르고 어떻게 벼슬을 할 수 있겠나?
‘너무 피곤하다!’
고청운은 그리 생각하며 잠시 쉬었다가, 가족들이 열심히 일을 하는 모습을 보고 미안해서 다시 허리를 굽혀 바삐 일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시 피곤함을 느껴서 허리를 폈다.
손바닥도 화끈거리면서 아팠다.
몇 번 베지도 않았는데 몸이 이미 못 견디는 것 같았다. 물벼에 있는 잔가시에 손등과 얼굴이 간지러웠고 살짝 아프기도 했다.
“둘째 누이, 언제 돌아왔어?"
고청운이 고개를 푹 숙인 채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데, 고하가 앞에서 돌아오는 거을 보았다.
원래는 한 사람이 한 열을 베어야 했지만, 그가 베는 속도가 너무 느린 탓에 혼자서 멀리 뒤쳐져 있었고 다른 가족들은 일찍이 저 멀리 앞으로 나아가 있었다.
그들 밭을 지나가던 마을 사람들이 그를 보면서 웃었는데, 몇 명은 그를 도우려다가 거절을 당했다.
“넌 너무 느려. 내가 벨 테니 넌 얼른 쉬렴. 학문을 하는 사람이니 이런 일을 하면 안 되지. 큰할아버지도 농사일을 한 적이 없으신 걸.”
고하는 말을 하면서 허리를 숙여 능숙하게 벼를 베어내기 시작했다.
고청운은 복잡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누이 부탁해.”
마음속으로는 후회가 일었다. 애초에 그 일을 입 밖으로 꺼내지 말 걸 그랬나? 지금 아무렇지도 않은 것 얼굴을 마주하니 좀 난처한 면이 있었다. 하지만 어쩌면 시간이 흐르면 다 익숙해질지도 몰랐다.
고하는 일어나서 땀을 닦으며 웃는 얼굴로 말했다.
“난 이미 적응이 된 일이라서.”
고청운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잠시 쉬다가, 결국 다시 돌아와 허리를 굽힌 채로 천천히 일을 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