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대생활 (69)화 (69/504)

69화. 부학 (1)

고청운이 집을 떠날 때쯤, 배웅을 하러 가족들이 한둘씩 모이기 시작했다. 그와 고하 사이에는 간밤에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굴었다. 고하의 얼굴이 살짝 창백한 것 외에는 눈이 부은 흔적도 별로 없었고, 둘은 평소처럼 서로를 대했다. 다른 점은 그녀의 웃음이 더욱 밝아졌다는 것인데, 전처럼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음울한 기색을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노진씨와 소진씨가 한편에서 고청운에게 여러 가지 당부의 말을 건넸고, 다른 한쪽에서는 고청명이 같은 일을 겪고 있었다. 

그렇다. 이번에 고청운이 부학에 공부를 하러 가는데, 부학 규정상 서동을 한 명 데리고 갈 수 있었다. 그래서 논의를 거친 끝에 고청명이 ‘서동’의 신분으로 고청운을 따라 가기로 했다. 

하 수재 밑에서 공부를 못 하는 건 아니었다. 그저 지금 고청운이 이미 수재가 되었으니 그의 수준은 하 수재와 비슷하게 된 것이었고, 일대다와 일대일 중에서 어떤 게 더 효과가 좋은지는 말하지 않아도 모두 알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고백산이 고청명에게 부성으로 가라고 하는 뜻에는 시야를 넓히라는 분부가 포함되어 있었다. 만약 부학에서 서동도 학당에서 수업을 들을 수 있다면, 수업을 하는 이는 거인이므로 거인의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건 매우 운이 좋은 것이었다. 

좌우지간 도화진에는 거인이 하나도 없었다. 

두 가족은 뜻이 바로 맞았다. 고계산은 사실 고청운처럼 어린 아이를 멀리 떠나보내는 것을 불안해했는데, 이제 고청명이 같이 가니 서로 돌볼 수 있는 사실에 매우 기뻐했다. 

일거양득이라고 할 수 있었다. 

고계산은 옆에서 기다리다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재촉했다. 

“이 이상 서두르지 않으면 곧 배가 떠나겠구나.”

그제야 노진씨와 소진씨는 고청운의 손을 놔두고, 안타까운 듯 그가 우마차에 타는 것을 지켜보았다. 

반대편에서 고청운 역시 조심스럽게 올라탔고, 우마차에는 그들의 짐으로 가득 차서 앉을 자리조차 없었다. 그는 고계산과 함께 앞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은 가족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전자야, 청명이를 잘 보살펴줘야 한다.”

도 씨가 손을 흔들면서 큰 소리로 외쳤다. 

고청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청명은 그 말을 듣고 겸연쩍은 듯 말했다. 

“우리 어머니 말씀 안 들어도 돼. 왜 네가 나를 보살피니? 내가 너보다 나이가 몇 살이나 더 많은데.”

고청운은 팔을 내려놓았다. 그 말을 듣고서는 흘겨보며 말했다.“하지만 바깥 경험은 내가 더 많은 걸요. 좌우지간 부학에 가면 가장 먼저 부학의 규칙부터 익히자고요. 해도 되는 일들과 해선 안 되는 일들을 알아야 다른 걸 계획하니까.”

“걱정 마. 전자야. 꼭 그럴게.”

고청명은 그 말에 매우 동의했다. 

두 사람은 서로를 쳐다보며 웃었다. 

고계산이 그때 이렇게 당부했다. 

“형제 둘이서 서로 의지하면서 잘 보살펴 주어야 한다.”

두 사람 모두 그 말에 대답했다. 

우마차가 흔들리자, 고청운에게 또 다시 졸음이 쏟아졌다. 조금 후, 달구지의 흔들림과 상관없이 잠에 들었다. 

부두에 도착하니 상선이 이미 한편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고청운이 주위를 둘러보니 방자명은 이미 와 있었고, 그의 가족들이 옆에 서 있었다. 방자명과 왕 씨는 주위의 이목을 끄는 인물들이었다. 

우마차가 막 멈춰 섰는데, 고대하가 나타났다. 그는 작은 길을 걸어왔고, 노진씨가 가게에 남아서 장사를 했다. 그는 물건을 배 위로 나르는 것을 도우려고 온 것이었다. 

“아버지, 건강한 사내가 셋이나 있는데 직접 짐 나르면 되지, 아버지가 꼭 나서야겠어요?” 

고청운이 불만을 터트렸다. 

고대하는 그저 웃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른 말 말고 어서 하자꾸나. 방씨 집안은 짐을 모두 옮겼단다. 이제 우리만 남았구나.”

고계산이 진지하게 말했다. 

고청운은 우마차에서 내려서 고민하다가 방자명이 있는 데 가서 방 거인, 왕 씨 등 사람들에게 일일이 예를 올렸다. 방자뢰도 있었는데, 언뜻 보기에 말썽을 부리지 않고 얌전한 것 같았다. 

방 거인은 고청운이 예를 올리는 것을 보고 한 마디 했다. 

“훌륭하구나. 부학에 가서 공부를 열심히 하거라. 세월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

왕 씨의 태도는 매우 온화했다.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지난번에 현성에 왔을 때 왜 밥 먹으러 안 왔니? 문방이 이미 갔다고 그러더구나.”

고청운은 그 말을 듣자마자 계면쩍어 하면서 웃으며 답했다. 

“자명 사형이 집에 없다는 말을 듣고 초대장만 두고 갔습니다. 정말 실례가 많았습니다.”

“자명과 어렵게 인연이 되었지. 그 아이는 어렸을 때부터 벗이라곤 없었는데 이젠 청운이 있고 둘이 이야기도 잘 통하니 마음을 한결 많이 놓았단다. 부학에서 잘 지내야 한다. 이제부터 그렇게 예를 차리지 말고 내 조카라고 생각하고 가끔 시간이 나면 집으로 보러 오렴. 난 보통 집에서 하는 일이 없으니.”

왕 씨가 매우 친절하게 이야기 했고, 고청운은 예쁨을 많이 받는다고 느꼈다. 

왕 씨는 표정이 변하지 않은 채, 그녀 뒤에서 유모(*帷帽: 너울. 여자들이 얼굴을 가리기 위하여 머리에 쓰는 물건)를 쓰고 있는 태가 고운 소녀를 소개해주었다. 

“이 아이는 자명의 친누이란다.”

지금 시대에서 대가문의 미혼 아가씨는 길을 나설 때 모두 유모를 써야 했다. 하지만 결혼을 하면 유모를 쓰지 않아도 됐다. 

“방저저를 뵙습니다.”

고청운은 얼른 예를 행했다. 

소녀는 한 발자국 앞으로 나와 답례를 하며 말했다. 

“사제(*舍弟: 남에게 동생을 겸손하게 이르는 말)가 가끔 철이 없을 때가 있으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청아한 소리가 매우 듣기 좋았다. 

고청운은 그저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방자명은 옆에서 그 말을 듣고 매우 불만스러운 듯 ‘흥’하며 가슴팍 앞에 팔짱을 꼈다. 

방씨 집안사람들은 그의 태도에도 아랑곳 하지 않았다. 

“저분들은 집안의 어떤 분들이시니?”

왕 씨는 멀지 않은 곳에서 짐을 나르고 있는 고계산 등을 보며 물었다. 

고청운이 자신의 친가족들이라 말하자, 왕 씨는 얼른 하인에게 가서 도와주라고 명했다. 

조금 후에 고계산과 고대하가 건너왔고, 방 거인은 주동적으로 그들에게 말을 걸었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화제들이었다. 

고청운은 자신의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부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았다. 손과 발을 어떻게 두어야 할지도 몰랐다. 

잠시 뒤에 다른 승객들이 하나 둘씩 배에 타기 시작했고, 선주는 이미 갑판에서 기다리며 시선은 이쪽을 향하고 있었다. 고청운과 나머지 네 사람은 그제야 가족들과 이별을 고하고 배에 올랐다. 

이번에 방자명을 따라온 어린 머슴은 지난 번 군성에 간 지기(知棋)라는 매우 영민한 16~17 정도 먹은 아이였다. 이번에는 방 집사도 동행했는데, 그는 방자명을 도와 수속을 밟고 나서 정착하는 것을 본 후, 다시 임산현으로 돌아올 예정이었다. 

배가 군성과 반대 방향을 향한 채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마차를 타고 육로로 가면 하루 반이라는 시간이 걸렸는데, 배를 타면 시간이 조금 줄어들었다. 지금은 아침 8시인데, 저녁이 되어야 임양부에 도착한다는 말을 들었다. 

고청운 무리는 2인 1실을 사용했다. 고청명과 방 집사가 방에 들어갔는데, 고청명은 매우 흥분하여 혼자서 이리 저리 쏘다녔다. 

고청운과 방자명은 방에 들어가지 않고 갑판에 서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필경 며칠 동안 얼굴을 마주하지 못했으니, 그간 쌓인 이야깃거리들이 많았다. 

고청운은 며칠간 집안이 시끌벅적했던 것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다행히 가족들이 막아서 망정이지 아니면 조용히 책을 볼 수도 없는 지경이었다. 

방자명 역시 그에 대해 할 말이 많은 것 같았다. 

두 사람은 이야기를 하다가 어쩌다가 장수원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이번에 장수원은 부학에 가나요, 안 가나요? 양 학정을 스승으로 모셨으니 우리 임양부로 안 돌아오고 월양부의 부학에서 공부를 하는 걸까요? 아니면 아버지가 부임한 곳으로 가서 공부를 할까요?”

고청운은 정말 궁금해서 이 문제를 물어보았다. 

“그 사람은 월양부 부학에서 공부를 한다네. 우리랑 같이 안 하고.”

방자명이 입을 삐쭉거렸다.

고청운은 대답을 했다. 자신이었어도 월양부에서 공부했을 것이다. 스승님과 가까운 곳에 있으니 가르침을 청하기 쉬웠다. 

“방 형은 그걸 어떻게 알았나요?”

고청운이 매우 의아해하며 물었다. 

“얼마 전에 북산현에 가서 뭐 했는지 알아? 그의 집에 다녀왔어.”

어쩌면 방자명은 오랫동안 마음속에만 담았을지도 모르는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 집과 장씨 집안은 대대로 교분이 있는 집안이야. 장수원의 아버지와 우리 아버지는 나란히 수재, 거인에 합격했고, 두 분께서는 꽤 깊은 연이 있었지. 좋은 친구에다가 나이도 같아서 한 번은 술을 드시고 서로 사돈을 맺기로 했어. 당시 신표(*信標: 뒷날에 보고 증거가 되게 하기 위하여 서로 주고받는 물건)도 교환했는데, 그때 연령이 적합한 건 우리 누이와 장수원이었지. 장수원은 우리 누이보다 두 살이 많아서 모두들 그 둘이 배필이라고 생각했지. 그런데 장 백부가 다음 해 회시에 급제했지만 우리 아버지는…… 청운도 알지? 그때부터 두 집안의 혼사는 다시는 언급되지 않았고, 우리 아버지도 물어볼 엄두를 내지 못했어.”

고청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방 거인은 여러 차례 시험에 응시했지만 계속 낙방했고, 장수원의 아버지는 육품의 동지(同知)가 되어 두 집안의 격차는 전보다 더 커지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일이 너무나도 익숙하게 느껴졌다. 마치 어디에서 본 것처럼. 역시 예술의 원천은 삶이어라. 그가 아는 사람 중에 이런 일을 겪은 사람이 있을 거라고 생각지도 못했다. 

고청운은 나중에 책임지지 못할 일을 저지를지도 모르니 술을 마시지 말자고 스스로를 다시 상기시켰다. 

이때 방자명은 계속해서 말하고 있었다. 

“지금 누이는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고 있는데, 그쪽 집에서 별다른 말을 안 하니 우리 어머니가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우리 보고 가서 물어보라고 하셨던 거야. 한 마디면 되는 일이고, 그럼 우리도 계획을 세울 테니까. 필경 여인의 청춘은 한 순간이니까.”

방자명이 기분 나쁜 말투로 말했다. 

고청운도 그 말을 듣고 깊게 공감하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게요. 혼사를 치를 거면 빨리 똑바로 이야기해서 날짜를 정하면 되고, 안 되면 더 일찍 말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래야 누님에게 해가 안 되잖아요.”

방자명은 그의 손을 붙잡고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며 말했다. 

“우리 어머니도 바로 그 뜻이야. 이번에 장수원이 ‘소삼원’이 되어 그의 아버지가 와서 같이 제사를 지냈는데, 우리가 급하게 가서 축하를 한 게 바로 이 일 때문이야.”

고청운이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방자명이 줄곧 장수원을 아니꼽게 본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었다. 

“그럼 그쪽 집에서는 뭐라고 하던가요?"

고청운은 막 부두에서 보았던 소녀를 떠올렸다. 장수원과 잘 어울리는데? 아니 잠시만, 그런데 친누이인데 방자명과 그는 왜 둘 다 14살인 거지? 장수원은 올해 16이었다.

“장 백부께서 동의하셨어. 조금 지난 후 다시 정하자고 하셨지. 이 혼사를 정식으로 정한 후, 우리 누이도 조금 더 크고 장수원이 거인에 합격하면 혼인을 시키자고.”

방자명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는 비록 장수원을 아니꼽게 보았지만 사실 둘은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였고, 장수원이 조금 잘난 체하는 것 말고는 사실 여러 훌륭한 자질을 두루 갖추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적어도 학식이 뛰어났는데, 이번에 ‘소삼원’이 되면서 그것이 완벽하게 증명되었다. 

전에는 그가 정말 아니꼬웠지만 이제 곧 매형이 된다고 생각하니 한결 나아졌다. 물론 여전히 아니꼬운 면은 있었지만. 

고청운 역시 그의 이런 변화를 발견하고 속으로 웃었다. 하지만 장씨 집안이 이렇게 오랫동안 미루다가 선뜻 혼인을 맺자고 한 일에 대해서 참지 못하고 물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오랫동안 말이 없었대요?”

고청운은 입을 열자마자 바로 후회했다. 필경 이제 곧 사돈이 되는데, 이렇게 물으면 안 좋은 게 아닌가. 

“듣기로는 할머니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다가 지금은 놓으셨다고 해.”

방자명 역시 이쪽 일을 알고 있는 듯 했다. 

고청운은 그 말을 듣고 더 이상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분명 그는 자세한 상황을 잘 알지 못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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