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대생활 (68)화 (68/504)

68화. 고하 (2) 

“그럼 누이 그냥 내려놓으면 될 것 같아. 방씨 집안과 우리 집안은 격차가 너무 커. 둘 다 수재라고 같은 격인 게 아니야. 나는 그보다 2살이 어리긴 하지만, 그는 나보다 성적이 좋고, 아버지는 거인이야. 소문으로는 가족 중에 경성에서 벼슬을 하는 사람이 있는데, 좌우지간 나중에 그가 나보다 거인이나 진사가 될 확률은 몇 배가 된다고. 그 집의 문만 해도 우리 집 전체 재산을 합친 것보다도 비싸.”

고하는 놀라서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보았다. 

고청운은 무표정으로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방씨 집안 집에 몇 번 가봤는데, 정말 현실이 그래. 일반적인 수재 집안도 아니고 보통 부잣집도 아니야.”

“하지만 둘은 좋은 친구잖아……”

고하가 말을 더듬었다. 얼굴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고청운은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만약 고하가 그와 같은 교육을 받았더라면, 현실을 알고 이런 마음을 품지도 않았을 것이다. 혹은 그녀가 며칠 동안 저녁의 논의 내용을 들었더라면, 총명한 그녀에게 이런 문제가 생기지 않았을 것이었다. 

“계급이 비슷한 사람만 친구가 될 수 있는 건 아니지. 게다가 우리 둘 사이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어. 전에 내가 그의 사촌 동생을 구한 적이 있는데 또 현학에서 만났고, 또 이야기도 잘 통해서 잘 지낼 수 있는 거야. 그의 집에는 경성에서 벼슬을 하는 사람도 있고, 아버지는 본현의 교유이기도 하셔. 전에 누이에게 이야기를 한 적이 없으니, 누이가 잘 모르는 것도 당연한 일이야.”

고청운이 다시 한번 강조했고, 그는 고하가 깨달을 것이라고 믿었다. 

“전자야, 알겠어. 내가 정말 멍청한 질문을 했구나.”

고하가 마음을 진정시키고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내가 그동안 쓸데없는 생각을 했구나. 걱정 마. 이제 정신 차렸어. 불가능한 것을 깨달았으니 더 이상 그러지 않을 거야. 아름다운 꿈에서 이제 깨어났으니 다시 삶을 살아야지.” 

고청운은 고개를 숙인 채 끄덕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머니께서 들으면 화내실 테니 이거에 대해선 말 하지 마.”

고하는 그의 손을 잡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고청운이 고개를 끄덕였고 드디어 입을 열었다. 

“누이, 걱정 마. 말 안 할 거야.” 

고하가 자리를 떠나기를 기다렸다가 고청운은 오늘 밤의 일을 떠올리고는 말이 안 된다고 여겼다. 

여자아이들이 잘생긴 방자명에게 쉽게 빠지는 건 알고 있었지만, 고하 역시 그를 좋아하게 될 줄은 몰랐다. 만약 여자가 첫 단추를 잘못 뀄다가 망하는 시대가 아니었더라면, 그는 고하에게 사랑을 쫓아보라고, 설령 나중에 결혼을 못하더라도 어울리는지 한번 보라고 적극 격려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고대였고, 그는 그녀에게 현실을 알려주고 그런 생각을 잔인하게 깨부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녀가 진짜 포기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좌우지간 이날 밤부터 그의 고하에 대한 감정은 다시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방자명에게 그 어떤 감정도 느끼지 못했다. 이건 자신이 이젠 전혀 남자를 좋아하지 않거나 아니면 시간이 흐르면서 남성적인 심리를 갖추는데 성공했다는 뜻이 아닐까?

그는 복잡한 마음을 안고 떨어지는 별들과 함께 천천히 잠에 들었다. 

그가 깨었을 때는 아직 날이 밝지 않을 때였다. 새벽 서너 시 정도 되어 보였는데, 더 이상 잠이 오지 않았다. 어쩌면 오늘 부성에 가야 하는 연유 때문인지도 몰랐다. 간밤에 계속 악몽을 꾸어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잠에서 몇 번씩 깨어 뒤척이다가 지금은 아예 일어났다. 

하늘에는 여전히 조각달이 걸려 있었는데, 어렴풋한 빛이 시야를 밝혀주고 있었다. 달빛이 인간세상을 비추고 있었다. 

고청운은 기름등을 켜지 않은 채 겉옷을 걸치고 방문을 나섰다. 정원에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는데, 조각달 외에는 별 몇 개만 간신히 자신의 존재를 알렸고, 귀에는 시끄러운 벌레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는 지금 홀로 깨어있는 줄 알았는데, 고하 역시 일찍 일어나 정원에 서 있는 줄 생각지 못했다. 나무 아래 서 있는 모습이 익숙한 그림자가 아니었다면 깜짝 놀라서 기절했을지도 몰랐다.

고하 역시 그를 보고 천천히 나무 그림자 아래서 걸어 나왔다. 

달빛 아래서 두 사람은 서로를 쳐다보았다. 거리가 약간 있어서 얼굴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흐릿했다. 

“누이, 왜 안 자고 있어? 아직도 내가 어제 한 이야기 생각하는 거야?”

고청운이 작은 소리로 물었다. 

“아니, 그 일을 생각하고 있지 않아.”

운 듯한 고하의 잠긴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이, 울었어? 정말 방자명한테 그렇게 큰 호감을 갖고 있는 거야?”

그가 눈살을 찌푸렸다. 

“아니, 그 분이랑은 전혀 상관없는 일이야."

“그럼 왜 안 자고 있는데?”

고하는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다. 

달빛이 너무 좋아서일까. 오랫동안 마음속에 꽁꽁 숨겨왔던 문제를 꺼내기 좋은 지금의 분위기 때문일까. 아니면 지금 복수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일까. 

아무튼 그는 충동적으로 줄곧 마음 속 깊은 곳에 묻어 두었던 문제를 입 밖으로 꺼냈다! 

만약 이 가시를 뽑아내지 않으면 이 둘은 앞으로도 진정한 남매가 될 수 없고, 그는 영원히 그녀에게 경각심을 가지고 있을 것이었다. 

“누이, 내가 두 살 때 이왜자랑 동시에 병이 났던 일 기억해? 나는 그때부터 기억이 있어.”

청천벽력과도 같은 이 말에 조용히 서 있던 고하의 다리에 힘이 풀리더니 땅에 쓰러지고 말았다. 

고청운은 그런 반응에 놀랐지만 침착하게 탄식했다. 

“보아하니 둘 다 잊지 않고 있었나봐." 

이제 말을 꺼냈을 뿐인데, 고하는 벌써부터 이런 반응을 보였다. 

그가 기억하는 건 매우 정상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고작 네 살인 고하 역시 이 일을 마음속에 기억하고 있는지는 몰랐다. 만약 기억하는 게 아니라면 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겠지. 

고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땅에 엎어져서 엉엉 울기 시작했다. 깡마른 어깨가 들썩였다. 

고청운은 그런 그녀를 보면서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오랫동안 시간을 함께 보낸 가족이기에, 그는 그녀를 부축해서 일으키고는 문을 열고서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가족들을 모두 깨울 셈이야?”

고하는 그 말을 듣고 울음을 뚝 그쳤다. 

두 사람은 집을 나선 후 뱅골보리수 아래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고씨 집은 마을 끝자락에 있었고, 가장 가까운 이웃사촌도 제법 거리가 있었기 때문에 누가 들을 염려가 없었다. 

“전자야……”

고하가 갑자기 그를 안고서는 또 다시 엉엉 울기 시작했다. 

고청운은 등을 꼿꼿이 세우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를 위로하지도 않았다.

“미안해…… 그때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모르겠어. 아마도 누군가 네가 없으면 아버지 어머니가 날 예뻐할 거라고 말했던 모양이야. 그래서 그런 짓을 한 거고. 어렸을 때는 잘못을 한 줄 몰랐는데 나중에 철이 들고 나서는 그렇게 무서운 짓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어. 엉엉…… 잠이 안 올 때면 그 일이 떠올랐어. 누군가 알까봐 무서웠고, 언젠가 내가 참지 못하고 토해낼까봐 두려웠어. 그런데 청운이 네가 이미 알고 있었다니, 그런데도 줄곧 내게 그리 잘해주다니…… 전자야, 후회해. 아버지랑 어머니가 널 너무 예뻐해서, 그리고 네가 태어나서 대왜자가 죽은 줄 알았어. 그때는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몰라. 그리고 내가 왜 그랬는지도 모르겠어. 엉엉…… 전자야, 나 정말 후회해.”

고하는 말을 하는 도중에 계속해서 울먹였고, 어떤 말들은 앞뒤 순서 없이 뒤죽박죽이었다. 

고청운이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고하는 그를 꼭 안았다. 고청운은 그녀의 눈물이 자신이 안에 입은 옷 어깨 쪽까지 적시는 게 느껴졌다. 심정은 더욱 복잡해졌는데, 그녀를 어떻게 위로해야할지 그리고 이 말들을 믿어야할지도 몰랐다. 

“누이, 울지 마. 그때 누이도 어려서 무엇이 맞고 틀린 건지 잘 몰랐잖아. 그리고 누군가 그렇게 시켰다고 해도 이제 더 이상 누이 탓을 하지 않아. 그저 당시에 몸이 안 좋아서 아버지 어머지의 모든 관심이 내게 쏠려 누이를 소홀히 한 게 한이 될 뿐이야. 누이도 그렇게 어려서 무엇이 옳고 그런지 몰랐을 텐데 누이에게 그 일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려줄 사람이 없었잖아. 그런데 누이는 그동안 내게 정말 잘 해주었잖아. 그게 보상이라면 보상이니 이제 더 이상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돼. 앞으로 그냥 누이가 잘 살면 그걸로 된 거야.”

고하가 밥을 지을 때 달걀이나 고기 몇 점을 숨겨서 다른 동생들에게 주지 않고, 공부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자신에게 몰래 남겨주었던 일을 떠올렸다. 그리고 같이 닭을 돌보자고 했을 때, 자신에게 일을 시키지 않으려고 그렇게 바쁜데도 모든 일을 혼자서 다 하고 닭까지 돌보았던 일도 생각이 났다. 

고청운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오늘 밤 고하의 눈물의 고백을 듣고 나니 그녀에 대해 품었던 악감정이 이미 눈 녹듯이 사라져버렸다. 어쩌면 같은 일로 그가 경계심을 품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당사자 역시 잘 지내지 못하고 줄곧 속앓이를 하고 있었고 진정으로 참회를 하고 있을 줄이야. 

게다가 그녀는 당시 너무나도 어렸다. 어쩌면 본능대로 행동한 것일지도 몰랐다. 또 어쩌면 누군가 농으로 뱉은 말들을 철없는 어린아이가 곧이곧대로 믿은 것일 수도 있었다. 현대에서 너무나도 많은 뉴스를 보았고, 고청운도 비슷한 일을 보았지만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되어서 힘든 것이었다. 이는 그가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한 이유이기도 했다. 그는 네 살짜리 아이를 상대로 그 어떤 판단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이렇게 이 일이 일단락되었다고 여겼다. 게다가 앞으로 이 일을 평생 떠올리며 살고 싶지 않았다. 생각만 해도 너무 피곤했다. 

게다가 그와 고하는 매우 친밀한 혈연관계였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왕래할 사이였다. 

이 일이 이미 수면 위로 떠올랐으니, 어떤 식으로든 마무리를 지어야 했다.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든지 상관없이 결론을 내야 했다. 

“전자야…… 네 문제가 아니야. 내가 너무 악랄해서 그래. 내가 잘못했어. 누가 내게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내 잘못이야……"

고청운의 말을 들은 고하는 더욱 큰 소리로 울먹였다. 

“누이, 울지 마. 그러다가 사람들이 깨면 어쩌려고. 누이, 앞으로 우리 노력해서 더욱 잘 살아보자. 난 누이가 잘 살 거라고 믿어.”

고청운은 드디어 손을 내밀어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방자명 일은 내 탓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리고 마음에 담아두지도 말고.” 

“전자야, 걱정 마. 너의 용서에 비하면 방자명 일은 아무 것도 아니야. 그저 외모에 잠깐 현혹된 거지. 마을에서 그와 같은 사람을 본 적이 없으니까.”

고하는 그를 놓아주고 힘껏 눈물을 닦으며 웃었다. 소녀의 마음은 열정으로 가득해서 가끔 어떤 소녀들은 감정을 위해 미친 짓을 하곤 했다. 지금은 다행이었다. 고하가 깨달았다면 그것으로 다행이었다. 

고하가 울음을 멈추고 나서야 몰래 다시 집으로 들어갔고, 각자 방으로 돌아가기 전에 고청운이 한마디 덧붙였다. 

“누이, 내일 아침 뜨거운 달걀로 눈가에 대는 거 잊지 마. 붓기가 좀 가라앉을 거야.”

“알겠어.”

고하가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잠긴 목소리로 답했다. 

왠지 이 일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나니 온몸이 가벼워진 것 같았다. 고하가 나중에 이 일을 다시 꺼낸다고 해도, 적어도 지금으로써는 마음이 매우 가벼웠다. 물론, 지금은 고연에 대한 감정이 고하에 대한 감정보다 깊었고, 앞으로 고하와 어떤 남매가 될지는 두고 봐야 할 일이었다. 

고청운은 다시 돌아가 잠을 잤는데, 잠든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버지가 잠을 깨웠고 이때도 아직 날이 밝지 않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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