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화. 초대장
다음 날 이른 아침, 이슬이 나뭇잎에서 막 사라졌을 무렵 고청운은 이미 진에 도착했다. 그는 먼저 하 수재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간 김에 그의 집에서 여는 연회에 참석하기로 했다.
그런데 사숙 문 앞에 이르렀을 때, 이미 누군가가 줄을 서고 있는 것을 보았다.
“고 공자님, 오셨군요!"
문방(*门房: 문지기)이 고청운을 발견하고서는 바로 인사를 건넸다.
“네, 스승님을 뵈러 왔어요. 아니, 그런데 어찌 하 아저씨가 문을 지키고 계세요?”
고청운이 인사에 화답하며 물었다. 그가 자주 드나들던 문이었기 때문에 모두 익숙했는데, 하 아저씨는 하 수재 가문의 집사였고 본래는 그의 아들이 문을 지키고 있었다.
“요 며칠 동안 어르신을 찾으러 오는 사람들이 비교적 많아서,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을까봐 문을 지키고 서 있습니다.”
하 아저씨가 활짝 웃으며 답했다.
고청운은 저편에서 기다리고 있는 인파를 보다가 다시 그들 옆에 있는 아이들을 보고 어찌 된 일인지 깨달았다.
“스승님께서 손님들을 접대하고 계신다니 그럼 조금 기다리겠습니다. 사제는 안에 있나요?”
고청운은 하 아저씨가 들어가서 알리려는 행동을 저지하며 물었다.
그는 하지의 만두 같이 둥근 얼굴을 본지 오래 되어 꽤 보고 싶었다.
“작은 도련님과 노부인께서는 도산사에 가셔서 오늘 안 계십니다.”
고청운이 그 말을 듣고 아쉬워하고 있을 때, 마침 부자 둘이 밖으로 나왔다. 하 아저씨는 안도하며 고청운을 안으로 들여보냈다.
“저 사람은 왜 바로 들어가는 거죠?”
그러자 줄곧 이곳을 주시하던 사람이 바로 물었다.
“이분은 우리 집 어르신의 학생입니다. 이곳에 오는 건 집에 돌아온 셈이니 언제든지 들어갈 수 있지요.”
등 뒤에서 들려오는 하 아저씨의 대답을 듣고 고청운은 참지 못하고 웃었다.
하 수재가 있는 곳에 도달했을 때, 그는 차를 마시고 있었다.
예를 갖춘 후 고청운이 물었다.
“스승님, 학생을 또 받으시려고요?”
하 수재는 그를 보더니 크게 기뻐하며 수염을 만졌다. 항상 엄숙하던 얼굴에는 웃음꽃이 피었고, 기쁨이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너희들의 신분이 상승하니 나 역시 같이 덕을 보는구나.”
하 수재는 차를 한 모금 더 마시고 고개를 내저었다.
“너희들이 잘난 것을 내 덕이라고 할 수 없지. 하지만 네가 이렇게 재능이 많은 아인걸 몰랐다. 조문헌이 수재가 되었다면 놀라지 않고 그가 운이 좋은 거라고 생각했겠지만, 너의 명차가 앞 순위인 것은 아무래도 운이 조금 따라준 것 같구나.”
“스승님, 정말 운이 조금 좋았어요. 시험 전에 율법 책을 본 적이 있어서 답을 맞힐 수 있었습니다.”
고청운은 하 수재가 자신에게 운이 좋다고 말한 것을 개의치 않았다.
“조정 개혁 시기에 네게 맞는 문제가 출제 되었으니 확실히 운이 좋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운이 따라주는 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지. 심지어 실력보다도 중요할 때가 있단다.”
하 수재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물론, 이건 네 기초가 탄탄하고 평소에 노력했기에 가능한 일이지. 그렇지 않으면 운이 따라준다고 해도 눈 뜬 장님이었을 게다. 맞다, 이번에 부학에 가면 더욱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한다. 이렇게 젊은 나이에 향시를 보지 않은 건 정말 아까운 일이야.”
고청운은 가르침을 받듯이 이에 응했다.
“부학에 입학하면 육예(六艺)를 배워도 좋다. 그림을 조금만 가르치는 현학과는 달리 부학에서는 이런 것들을 모두 가르치니 기회를 소중히 해야 한다. 배워두면 다른 사람과 교류하는데도 도움이 되니, 이건 반드시 배워두어야 해.”
고청운은 그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기뻐하며 말했다.
“스승님, 그럼 반드시 배워두겠습니다.”
그는 마음속으로 정말 크게 기뻐했다. 문회에 참석할 때 누군가가 시를 읊고 보통 옆에서 고금으로 반주를 해주었는데, 고금을 만끽하는 모습이 그저 부럽기 짝이 없었다.
항상 옆에 있던 하겸죽이나 방자명 같은 동창들은 모두 특기를 하나씩 가지고 있었다. 하겸죽은 퉁소를 불 줄 알았고, 방자명은 금을 탈 줄 알았다. 이런 연대에서 지식인이 되어 다룰 수 있는 예능이 없다면 다른 사람과 교류하기가 어려웠다. 현에서는 아무래도 소수의 사람만이 예능을 갖추고 있었고 모두 예비 시험 준비에 매진했기에 상관이 없었지만, 부성에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 둘 정도의 예능을 다를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지도 몰랐다.
고청운은 자신 역시 기예(技艺)를 하나 정도 다룰 수 있었으면 했다. 엄청난 실력을 뽐낼 정도는 아니어도, 가끔 마음을 가다듬거나 기분을 노래하는 정도여도 참 좋을 것 같았다.
물론, 고청운은 서예를 자신의 특기로 뽐냈다. 하지만 서예 실력을 기르려면 이름 난 스승 아래서 각고의 노력, 기회와 대량의 시간을 들여야 했다. 그의 글자체와 서예는 큰 간격이 있었다. 지금은 그저 또래 사람들과 견줄 수 있는 수준이었다.
“내가 그토록 많은 학생들을 가르쳐 봤지만, 너희 셋이 가장 총기가 넘쳤지. 앞으로 너희들과 같은 영특한 아이를 만나기는 어렵겠구나.”
하 수재는 현재 사숙의 학생들과 방금 전에 만났던 아이들을 떠올리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지금은 고청운이 입을 열만한 순간이 아니었다.
필경 새로운 조대가 세워진 이래로 올해 임산현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수재가 나왔는데, 이 네 명의 수재는 모두 상당히 젊었다. 그리고 그들 네 명 이외의 현의 두 명의 수재는 이미 서른 살을 훌쩍 넘긴 연령이었다.
“사제 하지는 언제 시험을 보러 가나요?”
고청운은 궁금한 마음을 안고 물었다.
“그 아이는 이제 겨우 열 살이 되는데 아직 오경을 다 배우지 않았으니, 조급할 게 없다. 아마 적어도 2, 3년은 기다려야 시험을 볼 준비가 될 것 같구나.”
하 수재가 손자를 언급할 때 얼굴에 바로 미소가 일었다.
“하지는 총명한 자질을 갖춘 데다가 열심히 하기까지 하니 조급할 필요가 없지요. 시험을 보면 분명 한 번에 통과할 거예요.”
고청운 역시 나이가 조금 더 들었을 때 시험을 보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원시를 치르던 3일은 정말 고역이었으니까.
하 수재 역시 이에 매우 동의하며 고청운을 바라보고 물었다.
“차를 안 마시는 게냐? 이 차는 내가 아껴둔 찻잎으로 우린 차란다.”
고청운은 바로 찻잔을 들어 한 모금을 마셨다. 씁쓸함 속에 달콤함이 있었는데, 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저는 여전히 그냥 물이 좋네요."
하 수재는 미소를 짓고 그의 이마를 살짝 치는 척 하며 말했다.
“너란 아이는 여전히 너무나도 착실하구나.”
고청운은 미소를 지은 채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하 수재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조금 더 나누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 * *
사숙을 빠져나온 고청운은 조문헌, 조옥당, 하겸죽 집 순으로 들려서 초대장을 전달해주었다. 허나 우연히도 조문헌과 하겸죽은 고청운과 같은 날 술잔치를 하기로 날을 정해서 세 사람은 서로의 집에 축하하러 갈 수 없었지만, 모두 이를 개의치 않았다.
하지만 고청운은 이 둘과 함께 다음 날 아침 같이 현아에 가서 신분 문서를 신청하기로 약속했다. 셋 다 하 수재의 학생이었기에 그는 함께 자리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많은 스승들이 이런 달콤한 부담감을 감내하고 싶어 했다.
조옥당 집에 가니 그는 고청운이 손에 들고 있는 초대장을 보고 낯빛이 어두워지더니 한 마디 했다.
“또 술잔치에 초대하려는 건 아니겠지?”
고청운은 이미 상황을 알았기에 웃으며 말했다.
“물론이죠. 사형이 생각하신대로예요. 그 날 몇 탕을 뛰셔야겠어요.”
“꼭 갈게.”
조옥당은 초대장을 열어보며 의아한 듯 물었다.
“정말 이상하네. 요 며칠 동안 좋은 날이 그날 밖에 없다고는 하지만, 왜 세 사람은 꼭 같은 날 술잔치를 벌이려는 거야?”
친한 사람들을 어렵게 하려는 수작은 아닌가.
“우연이에요. 사전에 상의를 안 하기도 했고, 이제 와서 시간을 바꾸기도 그렇네요. 모두 너무 기뻐서 그런 거겠죠?”
집안 식구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떠올린 고청운은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았다.
그는 또 조옥당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최근 자신의 근황을 말한 후에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지막으로 갈 곳은 누이집이었다.
하 의원의 집은 전형적인 사합원으로 1묘정도 크기였다. 안채와 사랑채 사이의 마당에는 각종 푸른 채소와 가지가 자라고 있었다. 특히 푸른 채소가 딱 봐도 싱싱해 보이는 것이 매우 신선해보였다.
하씨네 약포는 진의 큰길가에 있었는데, 이곳은 거주하는 집이었다.
고청운이 오니 집안의 고요함이 깨졌다.
하씨네 남정네들은 모두 일을 하러 나갔고, 집에는 아낙들만 있었다. 하지만 하 의원의 아내 조 씨는 고청운을 보고 매우 기뻐했다. 그는 매우 온화한 부인이었고, 나긋나긋하게 말을 했다.
“아주머니.”
고청운은 예를 갖춘 후 초대장을 큰누이에게 주었고, 큰누이는 그것을 받아 다시 조 씨에게 건네주었다.
조 씨는 초대장을 펼쳐본 후 반드시 고씨 집안에 가서 축하인사를 하겠다는 말을 전한 후 계속해서 고청운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나는 자리는 아니었다. 이전에 대아가 혼인을 했을 때 고청운은 한 번 온 적이 있었기에 초대 관련해서도 서로 주고받을 말들이 있었다. 두 사람은 한참동안 인사치레를 하고 조 씨는 그제야 대아에게 고청운을 우상방으로 데려가게 시켰다.
고청운은 이곳저곳 둘러보다가 큰누이 부부 둘이 우상방에 거주하는 것을 깨달았다. 그곳은 방이 네 개가 있었는데, 안락하게 배치가 되어 있었다.
대아는 고청운의 손을 잡아당겨 자세히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살이 쏙 빠졌구나.”
고청운이 볼을 볼록하게 내밀며 말했다.
“그건 누이 착각이야!”
그는 대아를 자세히 보았다. 그녀는 이전보다 더 하얘졌는데 미간에 근심이 없는 것을 보아하니 매우 잘 지내는 것 같았다.
“말 하는 것 하고는.”
대아가 그의 이마에 손을 갖다 대고서는 시험 과정에 대해 자세히 물었다.
고청운은 중점만 골라서 이야기 한 후 마지막에 물었다.
“누이의 형님이 계시지 않아? 왜 그분은 안 보여? 회임하지 않으셨어? 아이는 낳은 거야?”
작년에 큰누이가 혼인할 때 배가 불러있었던 것이 기억이 났다.
“사내아이를 낳으셨어. 지금 방에 계시는데, 아직도 네가 어린 줄 아니. 다른 집 여식솔을 마음대로 볼 수 있게?”
대아가 진노하며 말했다.
고청운은 순간 당황했다. 시골에서 따질 게 그렇게 많던가? 하긴 이곳은 진이였으니 신경 쓰는 게 더욱 많을지도 몰랐다.
둘은 또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고청운은 대아가 지금 집에서 그저 베를 짜고, 바느질을 하고 집안일만 하고 농사일을 안 하는 것을 알았다. 집안의 땅을 모두 다른 사람에게 세를 주었기 때문에 제때 세만 받으면 그만이었다.
지금은 시간이 나면 하상춘이 그녀에게 글을 알려주었고, 부부 둘은 매우 잘 지냈다. 그녀는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여전히 부끄러운 기색을 보였다.
그런 모습을 보고 고청운은 마음을 놓으면서 속으로 몰래 계산을 해보았다. 큰누이가 혼인을 한 지 5개월이 넘었지만 아직 회임을 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런데 현대에서는 결혼한 지 몇 년은 되어야 아이를 갖는 것을 떠올리고서는 묻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제 막 혼인을 한 지 반년이 채 되지 않았는데 자신이 조급해봤자였다.
고청운은 마지막에 술잔치에 꼭 오라고 당부를 했다. 그날 제사도 지내며 수재가 된 일은 가보에 적기로 했고, 세 자매의 정식 이름도 위에 적기로 한 일을 일러주었다.
“정식 이름을?”
대아는 그 말을 듣고 매우 놀랐다.
고청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큰할아버지께서 이제 우리도 무슨 농사와 면학의 집안이니 예를 갖추어 행해야 한다고 하셨어. 그래서 누이들도 정식 이름을 불러야 한다면서 혹시 어떤 의견이 있는지 내게 물어보라고 하셨지. 생각해보신다고.”
그 일을 위해 자신이 한 일은 굳이 언급하지 않았다.
대아는 그 말을 듣고 아무 말이 없었다.
“매형이 혹시 지어준 이름이 있다면 내게 말해줘. 매형이 지은 이름으로 올릴게.”
고청운이 추측하며 말을 꺼냈다.
대아는 그 말을 듣고 얼굴이 붉어지더니 두 손으로 옷깃을 잡으며 말했다.
“그럼 큰할아버지께 내 이름에 연꽃 연(莲)자를 넣어달라고 말씀 드려줘.”
“고연? 정말 예쁘다.”
고청운은 감탄을 했지만, 큰누이의 얼굴이 점점 빨개지는 것을 보고 더 이상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이미 정오가 되었고, 고계산이 이미 모든 일 다 보고 자신을 기다릴 것이 걱정되어 하씨네 가문에서 밥을 먹고 가라고 하는 것을 거절하고서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