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대생활 (58)화 (58/504)

58화. 기다리다

그날 밤은 별 다른 말없이 지나갔다. 다음 날 고대하는 날품을 팔러갔고, 고청운은 부근에 있는 책방에 책을 빌리러 갔고, 책을 베껴서 돈을 벌 준비를 했다. 

이제 원시도 쳤으니 부자 둘은 의논하여 중방에서 하방으로 옮겼다. 비록 하방은 길가와 더 가까워 비교적 시끄러웠고 방 크기도 3분의 1이나 작아졌지만, 그래도 방을 통째로 쓰는 거라서 묵을 만했다. 가장 중요한 건 숙박비가 하루에 300문으로 낮아졌기 때문에, 고청운은 자신이 책을 빨리 베끼면 숙박비를 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단편 화본(*话本: 통속적인 글로 쓰여진 소설) 세 권을 빌렸다. 베끼는 비용은 한 권당 200문이었고 <삼자경> 한 권도 있었는데 안에 쓰여 있는 어떤 거인의 주석도 같이 베껴야 했기 때문에 가격은 300문으로 측정되었다. 

객잔으로 돌아와 그는 가장 먼저 <삼자경>을 베꼈다. 주석으로 달린 거인의 이해와 자신의 이해가 거의 같은 것을 보고 고청운은 어쩐지 안심했다.

그는 화본을 베끼기 전에, 한 번 먼저 읽어 보다가 깜짝 놀랐다. 

“지금 이런 유형의 화본이 인기를 끄는 건가?”

모두 재자가인(*才子佳人: 재주 있는 젊은 남자와 아름다운 여자)의 이야기였는데, 독자들이 읽으면서 질리지도 않나?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내용도 거의 비슷했는데, 비슷하다 못해 심각한 수준인데도 이렇게 인기를 끌다니, 정말 독자들의 취향을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보니 고청운에게는 어느 생각이 떠올랐다. 지금 원시를 쳤으니, 이제 남은 시간은 기다리는 일밖에 없었다. 그러니 책을 베끼는 것보다 이 시간을 제대로 활용해서 단편소설을 쓰는 걸로 취미생활과 새로운 돈 버는 방법을 삼을 수 있을지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사실 책을 베끼는 일에는 창의성이 필요하지 않았고, 오래 하다 보면 질리곤 했다. 돈은 처음 시작했을 때보다 조금 많이 받았지만, 온 정신을 집중해야 했다. 한 글자라도 틀리면 안 되기 때문에 조금 베끼다가 잠시 쉬기를 반복했다. 

‘한번 도전 해볼까?’

그래서 고청운은 이 네 권의 책을 베끼고 난 후, 매일 해야 할 일을 하고나서 남은 시간에 화본을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만일에 대비하여, 그는 화본을 한 권 더 빌려 베꼈고, 책을 베끼고 남은 시간에 화본의 줄거리를 구상했다. 지금 화본은 짧은 편이었는데, 길면 만 자, 짧으면 천 자 정도였다. 물론 장편소설도 구상해보았지만, 장편소설을 쓰려면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해서 고청운의 요구에 부합하지 않았다. 

중간에 그는 이미 회복이 다 된 조문헌을 보러 갔었다. 조문헌의 기분이 담담한 것이, 예비시험 결과에 대한 태도를 찾아 볼 수 없었다. 그 역시 자신이 시험을 잘 봤다 못 봤다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고청운 부자에게 조문헌은 크게 감격했다. 

고청운은 손을 내저으며 웃었다. 

“어머니께서 조삼을 붙여줘서 다행이지, 아니면 지금 우리가 돌봐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네요. 그런데 우리도 사람 보살피는 법을 몰라서, 지금처럼 편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조문헌은 바삐 움직이는 조삼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제 말 좀 들어요. 이번에 돌아가서 오금희(*五禽戏: 중국 후한(後漢)의 화타가 창안한 건강 도인술) 같은 걸 배우도록 해요. 이제 건강을 제대로 챙겨야죠. 앞으로 향시도 봐야 되는데, 그거야말로 체력을 요하는 일이니까요.”

고청운이 진심을 담아 말했다. 

그는 조문헌이 전처럼 대충 흘러들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가 잠시 생각하다가 정중하게 고개를 끄덕일 줄 몰랐다.

“그럴게. 이번에는 정말 큰 깨달음을 얻었어.”

고청운은 깜짝 놀랐다. 그의 담담한 표정에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읽어낼 수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응시생들 간의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한 후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떠났다. 

조문헌은 이번에 크게 앓고 나서 성격조차도 변한 것 같았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알 수 없었다. 

고청운은 더 이상 다른 사람 일에 신경 쓰지 않고 다시 화본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그는 조금 막장인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큰 집안의 아들이 가문이 몰락하여 약혼녀에게 파혼을 당하고 예비 장인어른이 와서 굴욕을 주었으나, 주인공이 분발하여 나중에 진사가 되고, 높은 관리의 사위가 되어 미인을 얻는다는 이야기였다. 

어쩔 수 없었다. 그가 생각해 낼 수 있는 건 전생 인터넷에서 보았던 흔한 줄거리뿐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필력이 좋으면 이런 이야기로도 시장을 확보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가 5일이라는 시간을 들여 4천자를 쓴 후, 원고를 아버지에게 보여드렸을 때 고대하는 매우 놀랐다. 

“요 며칠 동안 이런 걸 쓴 게냐?”

고대하는 며칠 동안 아들이 방에 처박혀서 무언가를 적는 걸 보았는데, 책을 베끼는 줄로만 알았지 화본을 쓰는 줄 생각지도 못했다. 

하지만 아들의 나이를 떠올리고 고대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했다. 그는 원고를 펼쳐서 보기 시작했고, 모르는 글자가 있으면 고청운에게 묻기도 했다. 

반 시진이 채 되기도 전에 고대하는 원고를 전부 읽었다. 

“아버지, 어땠어요?”

고청운은 기대를 품은 채 물었다. 

“잘 썼구나. 눈에 잘 들어와.”

고대하는 심경이 복잡했다. 

아들이 이런 글을 쓰는 건 본분에 어긋나는 일이었지만, 또 이 정도로 쓸 수 있는 것을 보니 마음속으로는 괜히 자랑스러웠다. 아무튼, 심경이 복잡했다. 

하지만 이미 다 썼으니 버리기도 뭐했다. 아들이 동생에 합격한 이후, 고대하는 아들에게 잔소리 할 이유를 찾지 못하는 것 같았다. 

“대신 책방에 가져다주마.” 

고대하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아들이 직접 가게 하지 않기로 했다. 자신이 생각하기에 가장 체면이 서는 장삼으로 갈아입은 다음, 원고를 들고 길을 나섰다. 

남아있는 고청운은 기대로 마음이 부풀어 올랐다. 

점심이 다 된 시간에 고대하가 돌아왔다. 그는 매우 기쁜 얼굴로 들어오자마자 말했다. 

“전자야, 팔았단다. 들어가자마자 앞부분 원고를 보여주고 나서 흥정을 하기 시작했지. 그리고 얼추 가격이 맞아떨어졌을 때 전문을 보여주니 최종 가격을 정했단다. 아들아, 얼마인지 한번 맞춰 보거라.”

고청운은 눈썹을 치켜세우며 아버지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말했다. 

“설마 은자 10냥이요?”

고대하는 깜짝 놀라서 그를 흘겨보고서는 큰 소리로 답했다. 

“그렇게 많을 리가 없지 않느냐? 그렇게 많으면 진작 많은 사람들이 화본을 썼겠지.”

고청운도 웃었다. 그도 자신이 한 말이 실정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실 그는 일찍이 가격을 물어본 적이 있었다. 만약 신인이 쓴 화본이라면, 일반적으로 서점은 매우 낮은 가격에 받았다. 인기가 있는 명가들이 1,000자당 은자 1냥을 받았는데, 길게 쓸수록 더 낮은 가격이 책정되었다. 

“1냥은 아니겠죠?” 

1,000자당 250문도 수용할 만했다. 이는 기본적으로 신인 중에서 중등 정도의 가격인데, 책방 주인들도 가격이 너무 낮으면 화본을 쓰려는 서생이 없어지고, 팔 수 있는 새 화본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렇게 되면 책방이 돈을 벌고 인기를 끄는데 불리했다. 

하늘 아래 가장 많은 건, 글자를 온전히 익히지 못했지만 화본 정도는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낙백서생이거나 사서정도만 깨친 사람들, 글자를 아는 상인이나 향신(*乡绅: 퇴직 관리로서 그 지방에서 학문과 덕망이 높은 사람)등으로 문화 수준이 높지 않아서 과거를 보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화본을 보는 걸로 시간을 때웠다. 

“은자 한 냥 반이란다. 책방 주인이 네가 읽기 쉽게 썼고, 안에 어려운 글자도, 잘 모르는 고사도 거의 없다고 하더라구나. 아무튼 대다수의 사람들이 쉽게 알아볼 수 있는데, 줄거리도 탄탄하니 매우 재미있다며 조금 더 쳐 주었다. 시간이 날 때 더 써서 책방에 가져다주면 계속 받고 가격도 더 비싸게 쳐준다고 했단다.”

고대하는 마지막 말을 할 때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고청운도 역시 놀랐다. 그는 자신의 꾸밈없는 줄거리가 주인의 마음에 들 줄 생각지 못했다. 고대하의 표정을 보자마자 팔린 건 알았지만, 이렇게 많은 돈을 받을 줄은 짐작하지 못했다. 그렇다, 그에게는 이미 많은 돈이었다. 이 나이가 되도록 한 번에 이렇게 많은 돈을 번 것은 처음이었다. 

그는 이제 매우 만족스러웠다. 이 길을 계속 가도 되겠구나. 책을 베끼는 것보다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서사능력과 필력을 기를 수 있을 터였다. 게다가 많이 쓸수록 더 많은 인기를 끈다면, 버는 돈 역시 많아질 것이었다. 비록 자산을 축적하지는 못하더라도 기본적인 생활을 할 수 있으니, 가족에게 손을 벌리지 않아도 되었다. 

또한 보아하니 지금 쓰는 필명으로 계속 글을 쓰는 편이 좋을 듯했다.

“아들아, 시간이 날 때 좀 써도 되지만, 그래도 여기에 빠지면 안 된다.”

고대하가 생각하다가 결국 경고를 했다. 

고청운이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이번에 그가 수재가 되면 계속해서 과거의 길을 가게 되고, 그는 거인을 넘어 진사가 되고 싶으니 지금 생각하는 것도 그저 생각일 뿐이었다. 

거인과 진사는 매우 큰 차이가 있었고, 앞으로 벼슬에 오르지 않더라도 고향에서의 영향력은 거인보다도 컸다. 

다음 날이 명단이 붙는 날이라서, 고청운과 고대하는 이날 아무 것도 하지 않다가 내순객잔(来顺客栈)에 가서 기다리기로 했다. 그곳이 명단이 붙는 곳에서 더 가까이 있었다. 

고청운이 내순객잔에 갔을 때, 아는 얼굴들이 모두 2층의 대청에서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창문과 가까운 매우 좋은 자리였는데, 다른 자리에는 모르는 동생들이 앉아 있었고 모두 초초하고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이곳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억지로라도 불안함을 누를 수 있는 이들이었고, 조급한 사람들은 벌써 벽 아래에 가서 기다리고 있었다. 

고청운이 겨우 참을 수 있었던 것은 주위 사람들이 모두 벽으로 갔기 때문이었다. 

고대하가 가서 한 번 보고는, 아들이 인파 사이에 끼어드는 걸 매우 걱정스러워했다. 

고청운 역시 자신의 몸에 자신이 없었기에 지금 그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은 기다리는 일이었다. 

이때, 그가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멍하게 있는데, 찻잔 위의 도안을 자세히 보다가 큰 관심을 갖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각자 할 일을 하고 있었고, 서로 하는 말도 앞뒤가 이어지지 않아, 더 이상 이야기를 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아서 결국 침묵하게 되었다. 

고청운이 시선을 옆으로 돌려 자세히 보니 방자명의 준수한 얼굴은 무표정이었다. 그리고 장수원 쪽을 보니, 그는 전혀 초조해하는 것 같지 않았다. 

하겸죽의 온화한 표정 역시 온데간데없었고, 그는 눈살을 찌푸린 채 손가락으로 탁자를 가볍게 치고 있었다. 

조문헌도 무표정으로 시선을 아래로 향하고 있었는데, 그저 두 다리를 가볍게 떠는 것에서 그의 불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고청운은 참지 못하고 마른기침을 했다. 한 번 켁켁거리니 나머지 세 사람의 주의력을 성공적으로 끌어 들였다. 

“문헌 사형, 조삼이 사형의 이름을 찾을 수 있어요? 글을 모르지 않나요?”

고청운은 사실 속으로 깜짝 놀랐다. 그는 그저 목이 말라서 그냥 기침을 한 것뿐이었는데, 눈 세 쌍이 그를 바라볼 줄 몰랐다. 그래서 아무 말이나 찾아서 했다. 

조문헌은 그를 흘깃 보고서는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이미 그 아이에게 글을 가르쳐 줬어. 적어도 내 이름과 적관 정도는 볼 수 있지.”

고청운은 ‘아’ 하고 소리를 냈고,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그때, 밖에서 누군가 큰 소리로 외쳤다. 

“명단이 나왔어요! 다들 가서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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