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화. 달콤한 잠
고청운은 날이 막 밝은 것을 보았지만, 일어나서 몸을 좀 움직였다. 손발이 약간 저린 느낌이 들었다. 그는 종을 울려서 변소에 가겠다는 뜻을 밝혔고, 아역이 그의 뒤를 따라갔다. 그는 자신이 지금 근시가 아니라 모든 게 뚜렷하게 보이는 것이 통탄스러웠다. 그렇게 어렵게 볼 일을 보았다.
호방에 돌아온 후에야 그는 참고 있던 숨을 쉬었다. 호리병의 차가운 물로 얼굴과 몸을 닦은 후,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 다시 천천히 물을 작게 한 모금씩 마신 후 입에 머금었다가 삼키는 것을 반복했다.
그리고 아역이 아침으로 가져다준 채소 포자 두 개와 소병 하나를 먹었다.
다 먹은 후 고청운은 답안을 옮겨 적는 작업을 시작했고, 오전 10시 정도까지 계속 했다. 그리고 고청운은 드디어 모든 시험지를 다 풀었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진지하게 검토를 마친 후 시험지와 답안지 숫자가 맞고, 격식이 올바른 것을 확인하고, 피해야 하는 글자를 피한 것까지 확인하고 나서 안도했다.
맞은편에 있는 장수원을 흘낏 쳐다보니, 그도 답안을 모두 작성한 듯했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지만 거리가 있어서 고청운은 그의 표정을 볼 수 없었다.
정오가 되어 아역들이 시험지를 걷기 시작했고, 첫 번째 시험은 이렇게 끝이 났다.
점심을 먹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번째 시험지를 나누어주기 시작했다.
두 번째 시험의 내용은 고청운을 놀라게 했다. 안에 산학의 비중은 고작 20%밖에 되지 않았는데, 경의는 30%, 잡문은 30%를 차지했고, 10%를 차지하는 시 짓기 외 나머지 비중은 법률 지식에 관한 것이었다!
‘아니, 거인 때나 법률 지식을 본다고 하지 않았나? 수재에 합격해야 율법을 배운다고 하지 않았나? 왜 원시부터 법률지식을 시험 보는 거지?’
고청운은 먼저 놀랐다가 바로 속으로 매우 좋아했다.
‘헤헤, 이미 율법서를 한 번 훑어보았으니, 이건 점수를 거저 주는 문제 아냐?’
재빨리 한 번 훑어보니 과연 안의 내용은 그가 이미 본 것이었고, 빈칸 채우기 문제와 외워 쓰는 문제일 뿐, 사례를 직접 판단하는 문제는 없었다. 비록 어떤 내용들은 잘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자세히 생각해보면 그래도 답을 할 수 있는 내용들이었다.
그러고 나서 산학을 대충 보았는데, 자신이 모두 다 풀 수 있는 문제였다.
약 30점정도 되는 문제를 풀고 나서, 고청운은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입꼬리가 올라간 채로 또 다른 문제를 살펴보았다.
‘음, 경의에서 두 문제는 잘 모르겠고, 잡문을 쓸 줄 알고, 시 짓기…… 시 짓기도 어떻게든 지어낼 수는 있겠군.’
고청운은 차분한 상태로 먼저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산술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저녁밥을 먹을 때쯤 고청운은 이미 산술문제, 율법문제와 잡문을 모두 풀었는데, 손과 다리가 저렸다. 자신이 줄곧 문제 푸는 것에 몰두하느라 움직이는 것을 까먹은 사실을 깨닫고는 그는 감히 더 이상 앉아 있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밥을 먹고 나서 말리려고 놔둔 시험지를 거둔 후, 호방 안을 천천히 걸었다.
손발을 좀 움직이고 나니, 고청운은 그제야 몸이 편해진 것 같았다.
이날 밤, 그는 시험장의 긴장된 분위기가 많이 풀린 것을 느꼈다. 밤새도록 뒤척이는 사람들이 있어서 침상에서 끼익거리는 소리가 났고, 또 코고는 이도 있고, 밤새도록 화장실을 들락날락거리는 이도 있었다. 몇몇 사람들은 설사를 하는 것 같았는데, 조용한 환경에서 어쩔 수 없이 유쾌하지 않은 소리를 들은 그는 온몸에서 오한을 느꼈다.
고청운은 얼른 미리 준비해둔 솜으로 귀를 틀어막았고, 그제야 마음이 조금 편해진 것 같았다.
건너편을 보니 장수원도 너무 덥다고 느꼈는지 웃통을 벗기 시작했다.
‘세상에, 몸이 저토록 하얗다니!’
고청운은 땀이 나는 것도 상관하지 않고 얼른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다행히 그의 수면 질은 줄곧 좋은 편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이런 환경에서 잠들지 못하리라. 비록 각자만의 공간이 있었지만 전생에서 춘절 때 탔던 기차만도 못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잠들기 전에 그는 대략적인 시구를 떠올렸는데, 이렇게 생각해두면 내일 시를 지을 때 훨씬 수월했다.
고청운은 침상에 누워서 시구를 구상하다가 결국 점점 더 흥이 나서 하마터면 잠에 못 들 뻔했다. 그래서 그는 놀란 나머지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머릿속을 비워내기로 했다.
셋째 날 아침, 고청운은 붓을 들고 휘갈기며 겨우 경의 문제를 써낸 후 얼른 옮겨 적었다. 시험 시간이 오후 신(申)에 이르렀을 때, 그는 이번에는 시험지를 먼저 제출하는 대신 천천히 검토하기로 했다.
그는 옮겨 적는 동안 간혹 어떤 응시생이 사병에게 들려나가는 것을 발견했다. 대부분 머리가 하얗게 센 나이든 동생이었는데, 아마 이 압박감을 견디지 못했거나 더위를 먹어서 들려나가는 것 같았다. 정말 못 움직이는 이들 몇 명을 제외하고는 나머지는 모두 시험장으로 돌아오려고 안간힘을 썼다.
고청운은 그저 냉정한 눈으로 이를 방관했는데, 만약 이번에 붙지 못한 채로 줄곧 낙방하면 그들의 현재가 자신의 미래가 될 것 같아서 마음속은 두려움으로 한가득이었다.
고대에서 과거는 정말 사람을 미치게 할 수 있었다. 단순히 과거 환경만 해도 사람을 두렵게 만들었는데, 환경은 현시와 부시보다 훨씬 더 열악했고, 시험장 안에서 삼일 내내 있어야 했는데, 적응을 못하는 이들이 있을 수도 있었다.
사전에 시험장 규정을 알았기에 고청운은 7월 달에 먼저 집에 돌아가서 방에서 3일 내내 두문불출하며 가족들에게 밥을 가져다 달라고 했다. 또, 가족들에게 자신에게 말을 걸지 말라고 했다가 정말 미쳐버리는 줄 알았다. 하지만 효과가 좋은 건 사실이었다. 적어도 지금 적응을 잘 하고 있었고, 정신도 매우 맑았다.
그래서 부정당한 수단으로 공명을 얻었거나 운이 극히 좋았던 사람 외에 수재, 거인과 진사에 합격한 사람들은 거의 고대 사회의 두뇌 인사였고, 중압감을 감수할 수 있는 최소한의 능력을 갖췄다고 할 수 있었다.
만약 과거의 내용이 사람들의 사상을 제한하려는 게 아니었다면, 진사에 합격한 사람들은 각 방면에서 가장 뛰어난 무리였을 것이다.
고청운은 모든 문제를 다 풀었고, 마지막으로 시 짓기 문제가 남아 있었다. 어젯밤에 미리 준비를 했기 때문에, 이번에 그는 시를 빨리 지어냈고, 신중하게 퇴고를 했다. 이제 살짝 손보기만 하면 완성이었다.
시험지를 모두 마무리 한 뒤 고청운은 여러 번 검토를 했다. 그 중에서 경의 문제 두 개에 확신이 서질 않았지만 나머지는 큰 문제가 없는 것 같았다. 물론, 이 역시 그의 착각일 수도 있었다.
그는 시험지를 먼저 낼 계획이 없었다. 사실 그는 소수의 몇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마지막에 시험지를 제출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드디어 시험지를 제출하는 시간이 되었다. 고청운은 제자리에 앉아서 시험지를 걷으러 오는 사람이 오기를 기다리면서 물건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 * *
줄을 서서 시험장을 나가던 그 순간, 고청운은 그저 온몸으로 피로감을 느끼는 동시에 해방감을 느꼈다. 그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기묘한 경지에 이른 것 같았다.
만약 이번에 원시를 통과하면, 자신은 진정한 수재가 되는 것이었다. 고대에서 드디어 공명을 얻을 수 있었는데, 비록 가장 낮은 직급이었지만 그래도 드디어 ‘사’자 계층에 진입하는 것에 큰 의미가 있었다.
8년 동안 어렵고 힘들게 공부한 시간이 결실을 맺는 것이었다.
시험장 밖에는 기다리는 사람들로 바글바글했고, 사람들 얼굴에는 조급함과 기대가 서려 있었다. 시끌벅적한 소리 때문에 고청운의 머리는 깨질 것만 같았다.
햇볕이 이렇게 내리쬐니 갑자기 너무 피곤해져서 몸이 탈탈 털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고청운은 키가 너무 작아서 사람들 무리에 거의 깔리게 되어, 결국 손을 머리 위에 들고 흔들 수밖에 없었다. 한참 동안 그러고 있으니 고대하가 그를 찾아서 부축하여 길을 걷게 했다. 두 사람은 도처에서 가마를 찾기 시작했는데, 다른 이들이 나오는 건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소 마차가 도로를 가득 메웠지만, 경험 많은 아역들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길이 빠르게 뚫리기 시작했다.
사전에 고대하가 마차를 찾으려고 했는데도 찾을 수 없었으니, 이제 와서 찾는 건 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결국, 고대하는 아예 직접 고청운을 업고 걷기 시작했다.
고청운은 발버둥 치다가 고대하에게 한 소리를 듣고 말았다.
그는 고대하의 등에 엎드려 있었는데, 책 상자까지 짊어지고 있어서 너무 불편했다. 그런데 사실 지금 직접 걸어서 객잔까지 가라고 하면, 정말 걷다가 길에 누워서 휴식을 취해야 할지도 몰랐다.
“아버지, 정말 고생이 많으세요.”
고청운이 가볍게 말했다.
“힘들 거 없다. 넌 벼 한 포대보다도 가볍단다. 여전히 너무 말랐구나."
어렵사리 객잔에 돌아간 후, 고청운은 침상에 누워 다시는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 별로 먹고 싶지 않아요. 먼저 잠 좀 자고 싶어요.”
고청운은 옷을 벗고 속옷 바지만 입은 상태로 눈을 감고 싶었다. 굳이 옷을 벗은 건, 입고 있던 옷에 쉰내가 가득해서 냄새만 맡아도 토할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안 된다. 먼저 고기죽 좀 먹고 나서 자렴. 보니까 살이 쏙 빠졌던데, 분명 시험장에서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잠도 못자서 그런 것 같구나. 지금 먼저 조금 먹지 않으면, 나중에 속도 버린다.”
고대하는 그가 원하는 대로 두지 않고 직접 일으켜 앉혀서 먹을 걸 먹였다.
고청운은 이번에는 철 든 아이처럼 굴지 않고 침상에 기대서 고대하가 먹을 걸 떠먹여 주도록 가만히 두었다. 한참동안 그렇게 먹고 나서야 기운이 조금 도는 것 같았고, 그제야 직접 그릇을 달라고 해서 스스로 먹으면서 이런 말을 했다.
“아버지, 이제 많이 좋아진 것 같아요. 몸에 기운이 도는 듯한 느낌이에요. 객잔에 말해서 물 좀 가져다 달라고 해주세요. 씻은 다음에 다시 자고 싶어요.”
고대하는 바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사람을 부르러 밖으로 나갔다.
다행히 객잔에서는 준비를 세심하게 해두었다. 고기죽과 뜨거운 물은 미리 준비되어 있어서 고청운은 배를 채운 후, 배가 부를 때 씻으면 안 된다는 몸보신 상식 같은 걸 고려할 새도 없이 바로 뜨거운 물에 몸을 담갔다. 몸이 너무 편한 나머지 그대로 잠들 뻔 했다.
* * *
그가 달콤하게 잠을 잔 후, 일어나보니 다음 날 정오였다.
그가 눈을 뜨니 온몸이 편해진 것을 느꼈다. 지난 3일 간의 광경을 떠올리니, 그저 꿈을 한바탕 꾼 것 같았다. 지극히 현실적이지 않은 느낌이었지만 답을 알고 싶은 마음이 또 너무나도 강렬해서, 고청운은 침상에서 일어나 바로 옷을 갈아입었다.
고대하는 그가 일어났을 때부터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그가 씻고 나오자 탁자에는 이미 채소요리와 고기죽이 올려져있었다.
“아버지, 아버지도 좀 드셨어요?”
고청운은 매우 상쾌한 듯 물었다.
“먹었단다. 얼른 먹으렴. 어제 그래도 자기 전에 죽을 좀 먹어서 그렇지 안 그랬으면 오늘 일어났을 때 엄청 허기가 졌을 게다.”
고대하는 너무나도 다행이라는 듯, 자상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다른 이에게 시험 응시생을 어떻게 돌봐야 하는지 특별히 가르침을 받았다. 안 그랬으면 아들이 너무 졸려하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아파서 얼른 자게 했을 것이다.
고청운은 헤헤 웃으며 채소요리를 한 젓가락 집어서 먹었다. 신선한 맛이 좋아서 저도 모르게 웃으며 말했다.
“시험장 음식은 대충 대충 만든 거라서 매번 저한테 가져다주었을 때 모두 식어 있었어요. 그래도 다행히 그 사이에 상하진 않았나 봐요. 먹고 배가 아픈 적이 없었거든요.”
“그래도 넌 상태가 좋은 편이란다. 그래도 지금 일어났잖아. 그리고 어제 스스로 밥도 먹고 씻고 잠자리에 들었고. 오늘 오전에 네 동창 몇 명을 보러 갔는데, 아직도 자고 있더구나. 조문헌 같은 경우에는 병이 나서 오자마자 토하고 설사하고 난리도 아니었다고 하네. 너는 작을 때는 건강하지 않았지만 크면서 점점 건강해지고 있어 다행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