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화. 장부 (2)
“그나저나 보름 전에 군성에 있는 외숙부댁에 가야 한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런데 더 오래 묵지 않고 벌써 돌아왔어요?”
이 이야기를 꺼내니 방자명의 얼굴이 어두워지며 어찌 할 도리가 없다는 듯 말했다.
“군성에 한 번 가려면 얼마나 힘이 드는지. 내년에 한 번 가는 것도 생각만 하면 마음이 답답해져. 알다시피 가는 길 내내 먼지랑 울퉁불퉁한 길 때문에 고생이잖아. 나는 본래 건강한 줄만 알았는데 길에서 3일을 보내니 뼈가 다 부러지는 것 같았어. 가는 길 내내 잘 먹지도 못하고 자지도 못하니까 도착해서 살이 쏙 빠져서 우리 외숙모가 마음 아파하시더라고.”
방자명이 왜 이런 불평을 하는지 고청운 역시 이해를 할 수 있었다. 그는 부성에 갈 때 이미 고대 교통이 명줄을 해칠 정도로 엉망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 이미 수리한 길이 그러니 수리하지 않은 길은 얼마나 울퉁불퉁할지 도통 알 수 없었다. 이는 고무가 없어서 생기는 가장 큰 폐단이었다.
“우리 외숙부께서 병이 나셨는데 어머니가 가실 시간이 없어서 내가 대신 다녀왔던 거야.”
방자명은 그저 간단하게 설명했다.
“네가 구한 어린 아이 기억나? 그 아이가 바로 내 사촌동생인데 벌써 3살이 넘었어. 하얗고 보드라운 것이 참 사랑스러워. 돌아올 때 그 아이가 매우 아쉬워했지.”
고청운은 이 어린 아이에 대해 깊은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토록 사랑스럽고 뽀얀 어린 아이라니. 특히 자신이 구한 아이라서 더더욱 관심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방자명에게 더 이상 생명의 은인 같은 말을 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그가 없었어도 방씨 가문은 사람을 잡을 수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사람을 구한 공은 조옥당에게 있었고, 방씨 가문은 이미 감사를 표시를 하여 인정을 모두 되갚았다.
두 사람은 공부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고, 고청운은 그에게 질문을 했다. 반 시진이 지나서야 논의가 끝났다.
고청운은 자신이 어려운 난제 몇 개를 해결한 것에 만족했다. 방자명에게는 거인인 아버지가 있었고, 그보다 학문이 훨씬 뛰어났다. 하지만 고청운의 어떤 관점은 비교적 신기하면서도 유연했기 때문에, 방자명에게 문득 깨달음을 줄 때가 있어서, 두 사람은 같이 논의 하는 것을 좋아했다.
해가 지는 모습을 보고서는 두 사람은 급하게 식당에 저녁을 먹으러 갔다.
방자명은 현학에서 홀로 방을 쓰고 있었지만, 이곳에 머무는 일은 드물었다. 평소에는 집에서 묵었는데, 가까우니 그 역시 당연한 일이었다.
고청운도 만약 자신에게 거인인 아버지가 있으면 자주 집에 돌아가서 아버지께 가르침을 청하는 것이 수재에게 가르침을 청하는 것보다 낫다고 여겼다. 하지만 아쉽게도 방 거인은 계속해서 경서 공부에 열중하는 듯 했고, 방자명의 얘기를 들어보면 아들인 자신조차 그를 보는 일이 매우 드문 것 같았다.
고청운은 이 부자가 교류하는 방식을 이해할 수 없었다. 진사가 되기 위해 부자의 정을 쌓을 시간조차 없다니. 그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 * *
사흘 후 어느 오후, 고청운은 침실 물건을 정리하고 있었다. 내일은 쉬는 날이었으므로 집에 한 번 다녀와야 했다. 그는 한동안 현장에서 일을 해서 이미 두 달 넘게 집에 가지 못했다. 비록 아버지와 숙부는 현장에서 볼 수 있었지만, 다른 가족들을 보지는 못했으니까.
조문헌은 이번에는 현학에 남아서 공부를 하겠다고 집에 돌아가지 않았다. 현학의 가장 큰 장점은 책을 빌릴 수 있는 작은 공간이 있다는 것이었는데, 그 안에는 사서오경 외에도 여러 책이 있었다. 어떤 책은 조정에서 하달한 것이었고, 어떤 책은 돈이 있는 상인이나 권력 있는 높은 사람이 기증한 것이었다.
현학에서는 매번 한 권의 책을 한 달 동안 빌릴 수 있었다. 하지만 ‘책은 빌리지 않으면 안 읽게 된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고청운은 모두 현학에서 빌린 책이면 다들 열심히 읽는 것을 발견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그처럼 읽은 다음에 소장을 위해 한 권을 통째로 베끼기도 했다.
고청운은 이곳에 온 세 달여 남짓 되는 시간 동안, 자신에게 도움이 될 것 같은 책 다섯 권을 베꼈다. 그는 현학에서 공부하느라 내는 학비가 매우 값어치 있다고 생각했다. 책을 베낀 것만 해도 이미 본전은 찾은 셈이었다.
“문헌 사형, 편지를 쓰면 제가 집에 전달해 드릴게요. 집에 오질 않으니 어머니께서 분명 걱정하고 계실 거예요.”
고청운은 책 상자를 짊어지고 가져갈 게 없는지 주위를 한 번 둘러보면서 다시 한번 말했다. 그는 읽고 있던 책을 내려놓고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괜찮아, 지난번에 집에 갔을 때 이번에는 집에 안 돌아간다고 말씀 드렸어.”
고청운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이 모자가 문제가 있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조문헌은 줄곧 자신에게 집안일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고, 그 역시 원인을 알 수 없었다.
‘그만 두자, 다른 사람 일인데 개입하지 말아야지.’
가끔 그 온화한 부인이 혼자 집에 있을 모습을 상상하다가, 열심히 공부를 하는 조문헌을 보면 정말 집집마다 말 못할 사정이 있는 것 같았다.
하겸죽이 진으로 돌아갈 때, 고청운은 하 수재에게 들러 자신의 공부 상황을 보고했다.
고청운이 현장을 도우러 간 이야기를 듣고, 하 수재는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이 일이 이미 현령의 귀에 들어가 칭찬을 받았다는 이야기에 대놓고 반대를 할 수 없어서 돌려서 말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원시를 준비하는 일이고, 원시만 합격하면 하고 싶은 대로 하거라.”
고청운은 그의 뜻을 헤아렸다. 하지만 두 사람의 관념이 달랐고, 그와 논쟁을 할 수는 없어서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앞으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사실 정말 앞으로는 그럴 일이 없었다. 이제부터는 시험을 준비하는데 전력질주를 해야 했다.
고청운이 자리를 떠난 후, 그제야 조 씨가 서가 뒤에서 나왔다.
“어떻소? 이 제자 참 괜찮지요? 신중하고 조급해하지도 않고, 현학에 간지 3개월이 되었지만 나쁜 물이 들지도 않았고, 허영심과 자기연민, 그리고 열등감도 없소. 자제력이 있는 자인 게지.”
하 수재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득의양양한 눈으로 말했다.
“이런 사람만 마음을 잡고 공부를 할 수 있지. 게다가 목표도 매우 명확해서 해야 할 일과 해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알고 있소. 솔직히 오랫동안 가르치면서 이 아이와 같은 마음가짐을 가진 아이를 거의 본적이 없소. 이 아이가 처음 글씨를 써 내릴 때부터 알아봤지.”
“……”
조 씨는 아무 말 없이 깊은 생각에 잠겼다.
“이런 사람은 나중에 엄청 큰 벼슬에 오를 수는 없어도 힘들게 살지는 않지. 아들처럼 수재가 되지 못해도 자기 밥그릇은 찾아먹은 것 처럼. 어떻소?”
조 씨는 그 말을 듣고 바로 반응하며 그를 흘겨보았다.
“부군께서 말씀하신 게 다 맞지요. 허나 그를 따르면 배는 곪지 않겠지만 부귀영화를 누리지는 못하지요. 내가 금지옥엽으로 키운 손녀딸을 그런 집안에 시집을 보낸다니 그게 말이 되나요? 눈뜨고 손녀딸이 고생하는 꼴은 못 봐요.”
“혼수가 있지 않소?”
하 수재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혼수가 있으면 뭐하나요? 혼자서 쓸 수 있나요? 어른들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나요? 우리 손녀딸이 혼수로 평생 그 집 식구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 건 아닌가요? 게다가 시골 사람들은 평생 아껴 쓰는 게 몸에 배여 있는 사람들인데, 어울릴 수 있겠어요? 부군은 사내라서 알 수 없습니다.”
조 씨는 한숨을 쉬면서 계속 말을 이었다.
“고청운이 좋은 아이인 걸 알죠. 그런데 좋은 집안 출신이 아니니, 그런 집에서 자란 아이가 어떤 아이인지 우리가 알 턱이 있나요? 그런 사례를 많이 보시지 않으셨습니까?"
이번에는 하 수재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조 씨는 만족스러운 듯 웃다가 다시 자제했다.
“아무튼 저는 달갑지가 않네요. 제가 어렸을 때 자매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생각만 해도 마음이 안 좋아요."
어렸을 때 농촌 지식인 집안으로 시집간 여동생만 생각하면 조 씨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분명 아내의 혼수로 젊은 나이에 동생이 되었는데 마지막에 아무 것도 이룬 게 없었고, 수재마저도 합격하지 못했다. 그런데 아내의 혼수가 적은 탓을 하면서 시험을 보러 갔다가 다른 계집을 집에 들였던 것이었다. 정말 역겨운 일이었는데, 마지막에 병을 얻어 세상을 등져서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여동생이 지금 어떻게 하루하루를 인내하고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두 사람은 모두 수재의 딸이었는데, 너무 다른 삶을 살아왔다. 그런 그녀가 어떻게 손녀딸에게 그런 삶을 살게 할 수 있겠는가? 생각만 해도 안 될 일이었다.
하 수재는 그 말을 듣고 잠자코 있었다. 미래의 일은 그 누구도 짐작할 수 없었다. 그 역시 자신의 사람 보는 눈에 한 치의 오차가 없다고 보장할 수 없었고, 이는 손녀의 혼인에 결부되는 일이라서 너무 자기주장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모두가 동의해야 혼인을 맺을 수 있었다.
* * *
고청운은 물론 그들의 대화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었다. 그는 하 수재에게 인사를 고한 후, 사숙에서 조옥당과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다. 고청명 수업이 끝난 후 같이 집에 가자는 약속을 하고 나서야, 집에 가져갈 물건을 조금 살 요량으로 시장에 갔다.
서점을 지나갈 때, 그는 하 주인이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하 주인, 무슨 일 있으신가요?”
고청운은 깜짝 놀라면서 서점에 발을 들였다.
하 주인은 여전히 실실 웃으며 서가를 가르키며 웃었다.
“소공자께서는 현학에서 돌아오시는 길인가요? 마침 가게에 책이 새로 들어와서 먼저 알려드리고 싶었습니다.”
고청운은 그 말을 듣고 웃으며 말했다.
“좋아요, 다음에 꼭 보러 올게요.”
“소공자께서 장부 셈을 잘 하신다면서요?”
하 주인이 또 물었다.
“아니요, 그저 숫자 셈을 하는 정도지요. 장부 기록을 잘 하는 건 아닙니다.”
고청운은 손을 연신 내저으며 놀란 듯 물었다.
“그러고 보니 하 주인의 소식은 정말 능하군요. 제 이런 일도 들으셨다니요?”
하 주인이 허허 웃으며 답했다.
“현성 크기가 고작 이 정도니, 무슨 작은 일도 다 귀에 들리는 법이지요. 신기한 일은 아닙니다.”
고청운도 이해한다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게 계산해야 할 것들이 있는데, 요 며칠 동안 시간이 있으면 도와주실 수 있나요?”
하 주인이 드디어 목적을 입 밖으로 내뱉고는 가게 안을 둘러보고, 다른 이가 주의를 하지 않은 틈을 타서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당연히 보수도 드리겠습니다. 제 조카놈이 잘 배우지를 못해서 장부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았지 뭡니까. 제가 다시 셈해야 되는데, 너무 바빠서요. 그래서 소공자의 일을 전해듣고 나서 도움을 청할 생각을 했지요. 걱정 마셔요. 그리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은 아닙니다. 소공자의 속도라면 내일 하루면 다 끝낼 수 있어요. 제가 한 번 훑어 봤는데, 그리 복잡한 건 아니더라고요.”
고청운은 그 말을 듣고서는 이번에는 정말 깜짝 놀랐다.
이게 무슨 일이지? 갑자기 그에게 장부를 셈해달라니?
그는 연신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건 안 되는 일입니다. 제가 잘 못하기도 하고 분명 실수를 할 거예요. 할 수는 있지만 할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방금 전에 스승님을 뵈었는데 제가 원시 준비에 전력을 다하지 않는다고 혼이 났습니다. 그래서 그 뼈아픈 가르침을 되새기면서 이번에는 정말 시험 준비에 전력을 다하려고 하던 참이에요.”
그는 말을 마친 후 미안한 표정으로 하 주인을 쳐다보았다.
하 주인의 통통한 얼굴에 실망한 기색이 가득했다. 하지만 바로 실망한 기색을 감추고는 웃으며 답했다.
“하 수재 말씀이 옳지요. 열심히 공부해서 원시 준비를 제대로 해야 하는 게 본래의 목표지요. 이런 일로 소공자를 방해하려고 했던 제가 송구합니다.”
고청운은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저는 하 주인께서 챙겨주시려고 한 것 다 잘 압니다. 그런데 지금은 바로 시간이 없네요. 생각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두 사람은 한참동안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