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화. 장부 (1)
하겸죽이 천장을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다들 친척인데 그저 다들 돈돈돈거리니, 그저 쓸 돈만 있으면 되는 게 아닌가? 청운아, 평소에 나는 우리 외숙모가 참 좋은 분이라고 생각했어. 나한테도 매우 잘해주셨고. 지금 정혼까지 한 마당에······”
뒷말은 집안일이라서 하겸죽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그저 허리춤에 있는 염낭을 꺼내서 손으로 염낭에 수놓아진 청죽을 만질 뿐이었다.
고청운은 무언가를 깨닫고는 잠시 생각하다가 묻지 않기로 결정했다.
‘물을 필요가 있나? 분명 혼수나 예물 같은 일로 언쟁을 벌인 거겠지.’
상대방 집에서 하겸죽네 예물이 너무 적다고 생각했다거나, 아니면 여자 쪽 혼수가 너무 간소하여 하겸죽의 어머니가 불만을 가졌다든가, 둘 중 하나였다.
게다가 상대는 자신의 외숙부네였으니.
고청운은 그런 생각을 하다가 자신의 큰누이를 떠올렸다. 이번에 고이하가 가져온 소식에 따르면 큰누이의 혼인 날짜는 이미 정해졌다. 내년 모내기를 한 후로 날짜를 정했다.
큰누이는 내년에 고작 17살이었는데 혼인을 해야 했다. 현지에서는 대부분 18살이 되어서야 혼인을 했기 때문에, 고청운은 누이가 18살이 될 때까지 미룰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특히, 큰 가문의 여식들은 보통 18살이 되어야 시집을 갔다.
하지만 하상춘이 이미 19살인 것을 생각하면, 하씨네 가문이 조급한 것도 당연지사였다. 모두 남자가 20살이 되면 다 큰 청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20살이 되었는데도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은 극소수였다.
“사형, 옥당 사형이 곧 혼인을 할 것 같은데 청첩장을 받으셨나요?”
“아직. 그렇게 빠르지는 않을 걸? 혼인하는 게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하겸죽은 고개를 저으며 침상에서 일어나 구김이 없을 때까지 의복을 정돈하다가 입을 열었다.
“순식간에 모두 혼인을 할 나이가 되었구나. 너만 올해 아직 11살이라서 혼인할 때가 되지 않아, 걱정이 없군.”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웃으며 말했다.
“아니면, 조문헌처럼 거인이 되고 나서 혼인을 하도록 해. 그때가 되면 분명 영웅을 알아보는 혜안을 가진 자가 있을 것이고 정말 많은 사람들이 소중한 딸을 두 사람에게 시집보내려고 하겠지.”
고청운이 크게 웃으며 반 정도 자란 치아를 드러내며 웃다.
“그게 바로 우리 같은 가난한 집 출신들이 벼슬길에 오르는 가장 좋은 길이 아니던가요? 지주인 장인어른을 찾으면 모든 게 있고, 운이 좋으면 관리의 서녀를 들일 수도 있겠죠. 물론 전제는 재능이 있어야 하고, 젊을 때 급제를 해야 한다는 건데, 서른 마흔이 되어 급제를 하면 아가씨들처럼 몸값이 확 떨어지니까요.”
두 사람의 관계는 이 며칠 동안 갑자기 가까워져서, 가끔 이런 농을 치기도 했다.
고청운은 그와 잠깐 이야기를 나누며, 그동안 놓쳤던 현학에서의 이야기를 따라잡았다.
하겸죽은 특별히 신신당부했다.
“조문헌과 방자명의 관계는 아직 호전되지 않았으니, 말할 때 조심하도록 해.”
하겸죽은 말을 하고 나서 기분이 훨씬 좋아져, 자신의 거처로 돌아갈 채비를 했다. 그는 나가면서 고청운의 방문을 반쯤 닫았다.
고청운은 그가 나간 후에 잠깐 생각을 하다가 계속해서 필기를 베꼈다.
일각도 채 되지 않아, 문 밖에서 누군가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고청운은 손에 들고 있던 붓을 내려두고 접었던 옷깃을 다시 내린 후, 밖으로 나갔다. 문 밖에 나가보니 흰색과 푸른색이 섞인 옷을 입은 준수한 소년이 서 있었는데, 뒤에 푸릇푸릇한 배경이 받쳐져 있으니 더욱 더 기품이 있어보였다.
“방 형!”
고청운은 이미 반달이 넘도록 그를 못 보았기 때문에, 방자명을 보고 매우 기뻐하며 밖으로 나왔다.
“청운아!”
방자명의 입꼬리가 올라갔고, 보아하니 기분이 좋아보였다.
두 사람은 서로 인사를 나눈 후, 고청운은 그제야 그를 방 안으로 드는 것을 청했다.
방자명은 이미 수차례 고청운을 찾아왔었다. 그래서 고청운의 침실 겸 책방을 대충 둘러보기만 했는데, 이불과 베개는 가지런히 잘 놓여있었고, 책상에 놓인 책과 문방사우는 딱 봐도 잘 정리한 흔적이 있었다. 병풍의 반대편 방 역시 조문헌이 정리하려고 시도한 흔적이 남아있긴 했지만, 여전히 지저분해 보였다.
고청운은 그의 시선을 따라 반대편을 보고서는 저도 모르게 웃었다.
“문헌 사형이 공부하는데 너무 열중해서 이런 것들을 잘 못해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하는 게 습관이 되어 있고요.”
현학에서 매일 갈아입은 옷 빨래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스스로 옷을 빨았다.
조문헌과 고청운은 각각 전자와 후자였고, 고청운은 그 정도 시간을 낭비하는 것을 개의치 않아했다.
기숙학교를 다니고 군사훈련에 참가한 적이 있는 사람에게 정돈을 하고 옷을 빠는 건 그저 작은 일이었다. 하지만 집에서 금이야 옥이야 떠받들며 자란 도련님 출신 지식인에게 이런 일은 나중에 아내가 하는 일이었다. 지금 아내가 없으면, 옷을 모아서 집으로 가져가 다른 사람에게 시키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몇몇 가난한 집안 출신은 고청운처럼 스스로 옷을 빨았다.
방자명은 이해한다는 듯 웃으며 고청운 반대편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드디어 돌아왔네. 살이 탄 것 좀 봐. 현장에서 한 일들은 다 들었어. 어쩐지 산학을 그렇게 잘 하더라니. 아버지 말씀을 들으니 장부도 깔끔하게 정리를 잘해서 현존 대인께서 보자마자 이해를 하셨다던데?”
고청운이 미소를 지었고, 소매를 걷으며 맞은편에 앉았다.
방자명은 작년 그와 조옥당이 도산사에서 구한 아이의 친척으로, 고씨 집안에 사례품을 전달하러 왔었다. 당시 그는 12살에 이미 동생이었는데, 가기 전에 집주소를 말해주며 무슨 일이 있을 때, 고청운이 현성의 자신의 집에 찾아와도 좋다고 했다.
고청운은 본래 그들이 다시 교류할 일이 없다고 여겼는데, 현학에 오자마자 그가 이곳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고청운은 그보다 두 살이 어렸다. 이는 현학에서 가장 어린 나이인 편이었고, 고청운이 전에 도움을 준 일이 있어서 방자명은 주동적으로 그와 교류를 하면서 사이가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다.
고청운은 다른 사람의 입으로 현학 교수가 바로 방자명의 아버지이고, 교유처럼 거인 출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고청운은 그와 조문헌이 현학에 들어올 수 있었던 이유에, 방 거인의 입김이 조금이나마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이는 그가 한참동안 곰곰이 생각해본 다음 얻은 결론이었고, 방자명이 일부러 자신에게 일러주지 않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큰 가문 출신의 아이는 눈치가 매우 빨라서 고청운과 같은 단순한 사람은 대응할 수 없었다.
하지만 천천히 교류하면서 고청운은 각자의 출신 배경이 다르지만 서로 말이 잘 통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공통분모가 있었는데, 둘 다 시를 짓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고청운은 능력이 받쳐주지 않아 시 짓기를 못했다. 그는 매번 시를 지어야 할 때마다 온몸이 괴로워졌다. 방자명 역시 시 짓기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보다는 훨씬 잘 지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보니 두 사람은 좋은 친구가 되어 자주 공부 관련 논의를 했다.
고청운은 방자명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방자명이야말로 진짜 천재였다. 그는 생각이 민첩하며 조문헌보다 기억력이 훨씬 좋고, 인간관계를 잘 처리할 줄 알았다. 그는 어린 티가 나지 않았다. 다만 사람에게 벽을 친다는 느낌이 없지 않아, 약간 고고한 느낌이 살짝 있긴 했지만.
‘고대의 어린 아이는 정말 대단하다니까!’
“현존 대인께서는 왜 장부를 보실 생각을 한 걸까요?”
고청운은 정신을 차렸다. 매우 답답한 마음이었다.
방자명의 아버지는 서른 몇 살밖에 되지 않았는데, 이는 거인치고는 매우 젊은 나이였다. 그는 현학에서 교수로 이름이 걸려 있었는데, 이전 조대 때는 거인이 되어 벼슬길에 오르면 작은 벼슬이든 큰 벼슬이든 더 이상 진사가 되지 못했지만, 지금은 계속해서 진사 시험을 치를 수 있었다.
이번 조대 규정에 따르면 현학의 교수, 학정, 교유 등 관직을 맡게 돼도 계속해서 과거시험에 응할 수 있었다.
고청운은 이는 아마 말단 인재가 너무 적은 이유라고 생각했다. 만약 모두 벼슬길에 오르지 않고 계속해서 시험을 보려고 하면, 조정에서는 다음 인재를 어떻게 양성하는가? 게다가 이전 조대의 전생에서 넘어온 황제는 수재와 거인들이 아문(*衙门: 관아)에 가서 단련을 하고 실전 경험을 쌓은 후에 과거에 계속 응시하는 것을 적극 장려했다.
‘전생에서 건너온 황제폐하, 감사합니다!’
고청운은 정말 감사한 마음이었다.
방 거인은 힘들게 공부에 들이는 시간이 많았기 때문에, 현학에 오는 시간이 적었던 것이었다.
“물론 봐야지. 안 그럼 돈이 어디에 들어가는지 어떻게 아니? 현존 대인이 실무를 모르는 분도 아니고, 지금 조정도 점점 더 실무를 중요시 하는 걸. 게다가 나중에 현령이 되려면 책 두 권을 통달해야 해. 하나는 농서고, 하나는 산학 관련 책이지. 농사를 모르는데 어떻게 농경업을 하라고 할 수 있겠어? 산학을 못하면 아래 관리들에게 기만을 당해 흙으로 만든 보살 취급을 당할 거야.”
방자명은 매우 찬성하는 듯 했다.
방자명은 유 현령의 지지자였고, 유 현령이 본현에서 하는 모든 일은 좋은 일이며 현에 큰 이득이 된다고 믿었다. 그는 백성을 진정으로 생각하는 좋은 관리이며, 앞으로 자신이 진사가 되면 유 현령과 같이 현을 다스리고 싶다는 말을 했다.
고청운은 그 말을 듣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건 나한테 딱 맞는 일이잖아?’
하지만 전제는 과거시험 내용 역시 산학의 비중이 커져야 자신에게 이득이 되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그러고 싶어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자신이 급제하지 못한다고 해도 만약 진사들이 정말 이 책 두 권을 공부해야 한다면 아둔한 관리가 나올 확률은 적어지므,로 임산현에 몹쓸 관리가 올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럼 우리가 수재 시험을 볼 때는 산학의 비중이 높아지지 않을까요?”
고청운이 황급히 물었다. 그는 이런 정보를 얻을 곳이 없었고, 방씨 가문처럼 큰 벼슬을 하는 사람이 있는 가족만 이런 정보를 접할 수 있었다.
“청운이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지만, 나는 잘 모르겠네.”
방자명은 그가 눈을 반짝이는 모습을 보며 저도 모르게 웃었다. 고청운이 마음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는 단숨에 꿰뚫어 볼 수 있었다.
고청운은 그 말을 듣고 바로 풀이 죽었다.
“걱정 마. 수재가 되지 못해도 현아에서 서리 정도는 할 수 있으니까.”
방자명은 일어나면서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웃었다.
“그리고 현존 대인께서 말씀하셨지. 산학에 이토록 능하고, 장부도 잘 만드니 지금 서리를 해도 부족함이 없다고.”
비록 모두가 과거의 길을 걸으려고 했지만, 마지막까지 갈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매년 2~300명의 진사만 선발할 뿐인데, 전국 각지의 지식인은 차고 넘치니 정말 경쟁이 매우 치열했다. 그래서 수재가 된 이들은 사숙을 열어 학생들을 가르치거나, 현아에 가서 일을 했다.
현아에서 서리라는 직위를 찾는 것도 수용할만한 것이었다. 이는 현대 재정국 국장 정도 되는 자리로, 본현에서는 이미 상당한 지위가 있는 위치였다.
하지만 이런 직위 역시 많지가 않고, 사람은 많아서 경쟁이 치열했다. 비록 육방의 자리는 현령이 배정 하는 것이었지만 현령이 막 부임을 하면 현지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쉽사리 원래 서리를 하던 사람들을 자르지 않았다. 사람이 쓰기 편하면 계속해서 서리직을 맡겼고, 서리는 현지인으로 현지의 상황을 잘 알았기 때문에 결국 현아의 어떤 직위를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 대물림 되어 대대손손 작은 관리를 맡았다. 비록 엄청 영광스러운 벼슬은 아니었지만 일반 백성들 앞에서는 위신이 서는 동시에 가문의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그래서 외부인이 이 체계에 들어오려면 반드시 인맥이 필요했다. 인맥이 없으면 현에 수재가 그토록 많은데 굳이 누군가를 채용할 이유가 없지 않는가?
지금 고청운은 막 동생에 합격했는데 현령이 그가 서리를 할 수 있다고 말을 했다면, 그는 고청운의 산학방면의 성적을 매우 좋게 본 것이었다.
방자명이 이렇게 말해도 고청운은 화를 내지 않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길지 어떻게 알겠어요. 하다가 정말 붙지 못하면 이 역시 하나의 길이지요. 저 같은 농사일을 짓는 집 출신에게는 이미 크게 출세를 한 셈이고요. 앞으로 나이가 들어도 아들에게 계속하라고 해도 되니까요, 헤헤.”
“청운이는 참, 할 말 못 할 말이 있지. 이런 말을 막 하면 안 돼. 만약……”
방자명이 놀라서 극구 말렸다.
고청운은 바로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