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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생활 (44)화 (44/504)

44화. 작대기

고청운은 현장에 막 왔을 때, 현아 호방의 서리가 시키는 일을 그저 말없이 했다. 

얼마 후, 그는 60세가 다 된, 나이든 서리의 성격을 파악했다. 이 사람은 그저 공을 세우는 것보다는 그저 허물없이 살기를 바라는 부류였다. 만약 아랫사람이 공을 세우고 싶다면, 그것을 도와 다 같이 누리게 하겠지만, 잘못은 온전히 혼자서 감당해야 할 것이었다. 

이곳에서 고청운은 이 서판도 보았다. 본래 그는 어떤 태도로 고청운을 대해야 할지 몰랐지만, 결국 매우 반갑게 대하면서 이전 일을 사과했다. 고청운은 그의 유연성 있는 태도로부터 배운 것이 많았다. 

고청운은 현장에서 일한지 며칠 만에 적응을 했고, 나이 든 서리의 도움을 받아 간단한 기장 방법을 빠르게 습득했다. 물론, 대다수의 상황에서는 그 역시 주산을 사용했는데, 이곳에 오면 어쩔 수 없이 주산을 배워야만 했다. 

현장의 장부는 매우 복잡했다. 복역을 할 때처럼 인력이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계속 교체 되었다. 복역 시에는 복역비용을 주지 않고 그저 재료, 관리 인력의 급여, 식비 등만 기록하면 되었기 때문에 나이 든 서리는 두 서판을 데리고 그 일을 어떻게든 할 수 있었다. 

허나 지금은 그런 상황이 못 되었다. 인력 유동성이 너무 커서 그들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고, 매번 이 인력에게 지급할 돈을 계산하는 일은 매우 골치 아픈 일이었다. 가끔은 실수를 하기도 했는데, 어떤 이들은 그저 반나절이나 며칠만 일을 하고 떠나서, 실수해도 어쩔 수 없었다. 

게다가 유 현령은 마을 사람들의 농사일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억지로 그들을 현장에 남겨두지 않았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 간다고 하면 반드시 결산을 해주어야 했고, 가끔은 양측에서 ‘일을 한 날짜 수’를 가지고 옥신각신하기도 했다. 

마을 사람들은 수가 많아서 대세였고, 그들은 서리를 무서워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모두 이번에 부임한 유 현령이 좋은 관리라고 칭했기 때문이었다. 

고청운은 이곳에서 자신의 아버지와 숙부도 보았는데, 두 사람은 그를 보고 매우 기뻐했다. 고청운은 현학에서 너무 바쁘게 지내고 있어서 이미 십 며칠 동안 집에 돌아가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후, 고청운은 자신의 생각을 먼저 고대하에게 말 한 후, 두 사람이 다시 말을 보충하여 그 생각을 나이 든 서리에게 전달했다. 

나이 든 서리는 고청운을 매우 좋아하는 것이 확실했다. 그는 고청운이 다른 수재처럼 자신을 업신여겨서 본체만체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아무리 바빠도 인내심을 갖고 고청운이 말하는 방법을 주의 깊게 들었다. 

“그러니까 일을 하러 온 사람들이 반나절 동안 일을 했으면 작대기 하나를 주고, 갈 때 그 작대기를 가져와서 결산을 하게 하라는 것이죠? 그렇게 하면 작대기 수만 세면 그들이 며칠 동안 일을 했는지 알고, 이름을 기억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나이 든 서리의 눈이 반짝거렸다. 그는 혼자서 잠시 생각하더니, 자신의 수하들을 보고 물었다. 

“너희들은 이 방법을 어떻게 생각하나?”

나이 든 서리는 매번 비슷한 이름을 넘길 때마다 두통이 오는 것 같았다. 마을 하나에 이대랑(李大郎)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여럿 있을 수 있었는데, 이제 이름으로 그들을 상대하지 않아도 된다니, 정말 잘 된 일이었다!

“좋습니다. 이제껏 이런 생각을 왜 못해봤을까요?”

이 서판은 아쉽다는 말투로 매우 기쁘게 말했다. 

또 다른 사람도 잠시 동안 고민하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고청운은 이미 일찍이 어떤 사람이 이런 방법을 고안해냈지만, 고대 교통이 불편하여 정보가 매우 느리게 퍼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정보가 퍼진다고 해도 사람들은 이런 소식보다는 모두 다른 일을 가지고 이러쿵저러쿵하기를 좋아했기 때문에, 고청운이 지금 이런 ‘새로운’ 방법을 떠올린 것이라고 여기게 된 것이다. 

고청운은 나이 든 서리에게 다른 현학의 사람들을 불러 모아달라고 청을 했고, 다 같이 모여서 이 방도를 어떻게 개선할지 논의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다른 작대기를 가져와서 우리를 속이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작대기는 돈을 의미했고, 만약 장부가 맞지 않으면 자신이 책을 잡히게 될 것이므로 고청운은 이런 문제가 일어나는 것을 가장 우려했다. 

“그런 일은 없을 걸세.”

이 일이 언급되자 나이 든 서리는 매우 자신 있게 말했다. 

“막대기를 둘로 나눠서 우리가 반을 가지고 있다가, 맞춰보면 되지. 그때 가서 맞지 않으면…… 하하.”

나이 든 서리가 냉소를 지었다. 

고청운은 깜짝 놀랐다. 그렇게 한다면 사람들이 관부를 속이려는 대담한 행위를 할 수 있을까? 음, 그럴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 일은 그렇게 정해졌고, 몇 명이서 다시 전체 방도를 개선했다. 

사람을 시켜 공방에다가 같은 재질의 작대기를 주문했다. 그리고 각기 다른 길이를 통해 일한 시간을 나타냈다. 매일 일한 시간이 길어서 급여가 많을수록 작대기가 길었다. 

그렇게 몇 번이나 심사숙고한 끝에 이를 실제로 이행하기 시작했는데, 역시 업무 효율성이 대대적으로 향상되었다. 

이틀 후, 모두 이런 과정에 익숙해졌다. 고청운이 그들의 업무량을 대폭 줄여주었고, 마을 사람들도 이런 방식이 간단하다고 생각하고 막대기만 잘 간수하면 되었다. 

이 일 덕분에 나이 든 서리는 유 현령 앞에 얼굴을 비추게 되었고, 고청운의 이름이 다시 한 번 유 현령의 귀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 외에도 그는 보답으로 고대하를 막중한 체력 노동에서 해방시키고는, 일을 관리하는 업무를 맡게 하여 보다 수월하게 일을 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로 인해 고대하의 매일 급여는 8문에서 10문으로 오르게 되었다. 

고대하는 이를 보고서는 기한이 다 되었는데도 집에 돌아가지 않고 계속해서 일을 했다. 그리고 고이하가 참지 못하고 그를 찾아왔을 때, 고청운은 숙부에게도 보다 가벼운 일을 찾아 주었다. 

권력이 있는데 왜 사용을 하지 않는가? 고청운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이 공적인 이름으로 사리사욕을 채운다고 하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 않았다. 좌우지간 그는 매일같이 틀어박힌 채로 일을 안 할 때는 공부를 했고, 일을 해야 할 때는 일을 열심히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기본적으로 장부를 다루는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나이 든 서리는 그가 능숙해진 것을 보고, 유 현령에게 고청운만 이곳에 남기고 다른 사람들은 더 이상 부르지 않아도 된다고 보고를 올렸다. 

현학의 사람들도 더 이상 가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안도하며 고청운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졌다. 

그리고 나이 든 서리도 현아로 돌아가 일을 보고, 서판 하나와 사람 둘을 현장에 남겨두었다. 

이 서판도 나이 든 서리를 따라 현아로 돌아갔고, 이에 고청운은 한시름 놓았다. 일하는 동안 그는 이 서판을 볼 때마다 달갑지 않았지만, 그런 것을 내색해서는 안 되었다. 이제 이 서판이 떠나니 호흡하는 공기마저도 신선하게 느껴졌다. 

일이 계속 됨에 따라, 고청운에게 떨어지는 식사도 점점 풍성해졌다. 막 일을 시작했을 때는 다른 사람들처럼 호빵, 포자, 죽을 먹었는데, 나중에는 아역들과 함께 매일 고기 두 점과 채소를 먹을 수 있게 되어 현학에서보다도 더 잘 먹으며 지내게 되었다. 

고청운은 가끔 고대하와 고이하를 불러와서 자신의 몫인 고기를 반씩 나누어 주었고, 셋이서 좋은 시간을 보냈다. 

* * *

두 달 후, 시간이 흘러 10월 달이 되었다. 부두는 날씨가 추워지기 전에 수리가 되었고, 이제 이 길을 아는 배가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고청운은 유 현령이 부성에 보고를 할 것이며, 관부가 통지만 하면 이 소식이 빠르게 퍼질 것이라고 여겼다. 게다가 이 도강은 대운하로 흘러가기 때문에, 결국 경성에 다다를 수 있는 길목이었다. 비록 여정이 살짝 길긴 하지만 오르락내리락 하지 않으므로, 육지로 가는 것보다 배로 가는 게 훨씬 편리했다. 앞으로 이쪽이 번화하게 될 것이라는 건 자명한 일이었다. 

모두 앞으로 시험을 볼 때, 배를 타고 군성과 경성을 갈 수 있다고 생각할 때마다 현학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유 현령의 깊은 안목과 능력에 감사를 했고, 그를 존경하는 이들이 점점 늘어났다. 

고청운도 드디어 낮에 일을 하러 나가지 않아도 되었다. 그는 하겸죽과 조문헌의 필기를 빌려 그동안 수업 때 빠진 부분을 메꿔나가기 시작했다. 

“이게 정말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니? 얼굴도 새카맣게 탔구나.”

하겸죽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고청운은 필기를 베끼면서 고개도 들지 않고 답했다. 

“괜찮아요. 사내자식이 검든 하얗든 무슨 상관이에요? 그리고 해를 덜 쐬면 다시 하얘질 텐데요, 뭐.”

비록 그는 안에서 장부를 기록했지만, 가끔 밖에 나가는 일이 있어서 해를 자주 쐬었고, 그래서 얼굴이 확실히 타긴 했다. 그는 두 달 동안 정말 키가 컸다는 사실을 깨달았는데 아마 많이 먹기도 했고, 고기를 먹은 연유라고 생각했다. 

“키가 조금 큰 것 같네. 머리가 겸죽의 목까지 닿아.”

조문헌은 고청운이 이번에 장부 기록을 하면서 느낀 소회를 한참동안 훑어보았는데, 과거와 상관이 없는 내용인 것을 보고 내려놓았다. 

“정말요? 이번에는 착각이 아닌가 보네요.”

고청운은 매우 기뻐하며 조문헌을 쳐다보았다. 

조문헌은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키가 안 크는 사람이 어디 있나? 이게 그렇게까지 대수로운 일인가?

세 사람은 한참동안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고, 조문헌은 다른 사람을 찾아 이야기를 나누러 밖에 나갔다. 

“부두도 다 지었는데, 상선들이 어찌 알고서 이쪽으로 꺾을지 모르겠네. 청운아, 듣자하니 부두 부근에 땅을 3묘 샀다면서?”

하겸죽은 조문헌이 나간 후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고청운은 쓰던 것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이상하다는 듯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어떻게 알았어요? 소식에 너무 능한 거 아닌가요?"

하겸죽은 스스럼없이 눈을 흘기며 말했다. 

“우리 족숙께서 이정이셔. 땅을 살 때 그 분을 거쳐야 할 걸?”

고청운은 크게 깨달은 듯 붓을 들지 않은 손을 들고 머리를 치며 말했다. 

“잊고 있었네요. 그런데 이정님께서 알려주신 거예요?”

“얘기하다보니 너희 집안이 운이 정말 너무 좋다며 말씀해주셨어.”

하겸죽이 부채로 가볍게 자신의 손바닥을 두드리며 말했다. 

“이 부두가 다 지어지면 사람이 많아질 테니, 그때 건물을 지어 가게를 하면 되겠네.”

“우리 집은 세를 놓고 싶은 것 같아요. 장사에 소질이 없거든요.”

고청운은 다시 고개를 숙였다. 먹물이 부족해서 다시 물을 넣어서 먹을 갈기 시작했다. 

“아이고, 부두에 배가 오면 노동자들이 올 거야. 그럼 부두에서 간단하게 먹을 것 장사만 해도 불티나게 팔릴 텐데, 농사일을 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사형도 세상 물정을 잘 아는지 몰랐어요.”

고청운은 매우 깜짝 놀랐다. 그는 하겸죽과 줄곧 공부 이야기 아니면 동창들에 대해서 이야기 했고, 돈 관련 문제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었다. 심지어 그는 하겸죽이 돈 이야기 하는 것을 속되다고 생각해서 꺼려할 줄 알았다. 

“사람이 이 세상을 사는데, 의식주 어디 돈이 안 필요한 곳이 있어? 우리 집도 돈이 없으면 너희 집처럼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지.”

하겸죽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고청운은 그가 오늘 기분이 별로 안 좋은 것을 보고는 바로 물었다. 

“무슨 일이에요? 오늘 기분이 별로인가요?”

자신이 요즘 들어 너무 바빠서, 상대방의 기분을 살피지 못해 이제야 하겸죽이 평소 같지 않다는 것을 발견한 것일까?

“휴.” 

고청운이 그렇게 물으니 하겸죽은 또 한숨을 쉬면서 침상에 널브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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