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화. 인생은 투쟁이다
두 사람 모두 이 말을 듣고 크게 기뻐했고, 고청운은 급히 물었다.
“방금 전에 이 훈도께서 우리는 오전에만 수업을 듣고 오후에는 자유 활동을 할 수 있다고 하셨는데, 그럼 오전에는 어떤 스승님의 가르침을 받는 건가요?”
방금 전에 하겸죽이 거인이 교유와 교수를 맡는다고 말했고, 평소에는 각자 할 일을 하기 때문에 매일 수재에게 수업을 해줄 수는 없다고 했다. 그들은 평소에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오지만, 급여와 복지를 누렸다.
‘대학 교수보다 대우가 좋은 것 같잖아.’
고청운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곳에도 교수라는 직무가 있을 줄 몰랐고, 교유의 직책은 훈도와 함께 현학의 관리와 과업을 맡는 것으로 정8품에 해당했다. 이들은 문표(*門標: 궁궐, 병영에 드나드는 것을 허락하여 주던 표)를 받은 교육 소속 생원이었지만, 교수는 종8품에 속하며 주로 교육 소속 생원이었다.
적어도 모두 품급이 있는 벼슬을 하고 있었다. 비록 위로 올라가는 길은 비교적 어려웠지만, 품급이 없이 평생 관리를 하며 벼슬에 오를 기회가 거의 없는 관리들과 달리 최소한의 희망은 있었다. 물론 운이 따라줘야 했지만.
‘반드시 수재가 되어야 한다!’
게다가 상위권이어야만 늠생이 되어 관부의 보살핌을 받을 수 있었다. 비록 많은 돈을 받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게 어딘가!
만약 가능하다면 그는 거인이 되고 싶었다. 거인이 되면 본현의 교수처럼 매달 한두 번 수업을 하고 평소엔 할 일을 하면 되었다. 이는 매우 좋은 직위처럼 보였다. 개처럼 정신없이 바쁘게 살던 전생의 말단 공무원보다 훨씬 좋았다.
고청운은 큰 포부가 없는 게 아니었다. 만약 가능하다면, 그는 진사가 되고 싶었다. 세 번 연속 급제 같은 것을 하면 역사에는 반드시 자신의 기록이 필히 남겨지리라.
허나 이런 생각은 꿈만 같았다. 고대의 시험은 전생의 수능보다도 운이 따라줘야 했으니까.
“사실 우리를 가르치는 스승님들이 바로 그 수재들이야. 그들은 학정으로 우리를 가르치고 녹봉을 받아. 만약 교유와 교수가 와서 가르치면 우리도 가서 수업을 들을 수 있어.”
하겸죽이 답했다.
“그럼 그 스승님들은 어때?”
조문헌이 물었다.
“어떤 분은 잘 가르치시고, 어떤 분은 교유, 교수들보다도 더 잘 가르쳐주셔.”
하겸죽은 작은 목소리로 말했는데,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분들의 녹봉은 수업 횟수로 계산된 거라서, 돈을 벌고 싶은 대다수의 수재들은 기꺼이 가르치길 원해.”
그러면 스승이 너무 자주 바뀌는 게 아닌가? 사서오경의 내용을 생각해보면 스승님에 따라 경의에 대한 이해가 다를 수 있었다. 고청운은 모르는 문제를 다시 물어봐도, 결국 그 문제는 미궁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는 사실 현학에서 혼자서 공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가장 큰 장점은 이곳에는 스승들이 많아서 많이 물을 수 있고, 아무 때나 물을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반년 동안 10냥을 써서 가정교사를 고용해, 의문이 있는 점을 해결하는 것과 같았다. 그저 이곳에는 스승들이 많고 시간이 짧다는 차이만 있을 뿐.
특히, 거인의 가르침은 인맥이나 돈이 없는 사람은 그런 분을 모시고 싶어도 모시지 못했다. 동생과 거인의 차이를 생각해보면, 현학을 들어가는데도 인맥이 필요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렇게 좋은 점이 많은데 아무나 들어가게 할 수 있나?
고청운이 지금 가지고 있는 유일한 의혹은 유 현령이 어째서 그 둘을 추천했냐는 것이었다. 정말 갑작스럽게 생각난 것이었을까? 무엇이 됐든, 그들의 운이 좋아도 너무 좋았다.
아무튼, 현학에 입학한 건 잘 한 일이었다.
비록 현학에서는 두 사람이 같은 방에서 묵었지만, 조문헌에게는 딱히 이렇다 할 단점이 없었고, 이미 잘 아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각자 독립적인 공간이 있었다. 심지어 그는 속으로 씻는 문제도 생각해 보았는데, 현학의 욕실은 개별적인 공간이어서 다행이었다.
* * *
과연 그 후 한 달동안 고청운과 조문헌은 매우 빠른 속도로 현학의 생활에 녹아들었고, 다 같이 공부하면서 문제를 논의하며 서로 수확이 있다고 여겼다. 처음에는 고청운의 나이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의구심을 품었지만, 몇 번의 교류와 토론 끝에 그의 진가를 알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이 의구심을 갖는 것을 고청운은 개의치 않아했다. 시간이 지나면 다들 자신의 수준을 알게 될 테니. 게다가 이곳은 그들이 현학에 입학하기 전에 참가했던, 수준이 천차만별이었던 모임보다 훨씬 나았고, 더욱 체계적이었다.
평화롭게 현학 생활을 보내던 어느 날, 유 현령이 내린 통지가 고요한 현학을 어수선하게 만들었다.
그 시기, 한동안 현 각지의 남성들은 시간이 될 때마다 강의 부두에 와서 일을 해야 했다. 수도(水道)를 정리하고 개통시켜야 하는데, 일이 막중하고 힘들어서 많은 인력을 필요로 했다. 그리하여 벼 수확을 거두는 바쁜 농번기를 제외하고는, 평소에 몇백 명이 현장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며칠 동안만 일을 하고 돌아가야 했기 때문에 인력이 빈번하게 교체되어 재무 인력, 즉 장방은 매우 큰 압박을 받았다.
그래서 유 현령이 현학의 학생들에게 나가서 셈하는 것을 돕도록 한 것이다. 보수는 1일 3식 제공에 20문이었다.
현학의 대부분의 수재들은 별로 가고 싶지 않아했다. 이건 그들의 공부할 시간을 낭비하는 게 아닌가? 돈이 아무리 없어도 이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집에서 책만 베껴도 이것보다는 많이 벌었다.
고청운은 이 말을 듣고 매우 적극적인 자세로, 바로 이 훈도를 찾아가서 참가 신청을 했다.
이 훈도는 그의 작은 체구를 보았다. 비록 자세는 꼿꼿했지만 그가 아이라는 사실을 감출 수는 없었다.
그가 고청운의 자질을 의심을 하고 있을 때, 옆에서 참가 신청을 돕고 있던 수재가 입을 열어 웃으며 말했다.
“대인, 청운이가 어린 것만 보지 마십시오. 어리지만 산학을 엄청 잘합니다. 현 전체에서 청운이를 비할 자가 없지요.”
이 훈도는 그 말을 듣자마자 무언가를 깨닫고는 웃으며 말했다.
“올해 산학에 능통한 동생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게 바로 너라니!”
고청운이 멋쩍게 웃으며 답했다.
“대인과 스승님, 과찬이십니다. 소인은 듣던 만큼 그리 대단하지 않습니다. 모두 저를 잘 봐준 덕분이지요.”
속으로는 조금 답답했다. 한동안 키가 자랐다고 생각했는데 왜 다들 모르는 거지? 사람들은 항상 나이와 키를 가지고 문제 삼았다.
두 사람은 그를 보고 웃기 시작했다.
* * *
결국, 현학에서는 도움을 줄 학생 다섯 명을 선발했는데,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일이 있다는 핑계로 가버려서 다른 사람들로 대체할 수밖에 없었다.
고청운은 줄곧 현장에 나갔다. 매일 같이 아침 일찍 나가서 밤늦게 돌아오는 모습이 퍽 바빠 보였다.
하겸죽은 그것을 보고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참지 못하고 물었다.
“청운아, 내년에 바로 원시를 봐야 하는데, 지금 매일 같이 나가서 일을 하면 시험에 영향이 있을 거야. 그럼 본말전도(*本末顚倒: 일이 처음과 나중이 뒤바뀜) 된 격이 아니야?”
고청운은 무언가를 말하려다가 멈추고 다시 생각하다가 변명을 했다.
“저는 일을 하면서 제가 배운 산학이 유용한 것인지 알고 싶었어요. 평소 가서 일하는 건 사실 그리 바쁜 일도 아니고요. 아침, 점심 때 잠깐, 저녁에 일을 마무리 지을 때만 바쁘고 다른 때는 일이 적은 편이에요. 우리 장방들에게는 휴식할 수 있는 방을 별도로 주는데, 방 안에서 공부를 할 수도 있으니 딱히 시간을 낭비하는 건 아니에요.”
고청운은 사실 진짜 이유를 밝히지 않았다. 이 역시 그의 잔꾀였다. 고대에 온 후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본현의 정영계층(*精英阶层: 엘리트 계층)과 교류하면서 고청운은 자신에게 가장 부족한 점을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그가 다른 사람들보다 사서오경 등 경의에 대한 이해 속도가 늦다는 것이었다.
그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한 구절 정도 되는 문장에는 문장부호도, 띄어쓰기도 없어서 여러 가지 뜻으로 해석이 되어 주석만 해도 여러 개가 있었다. <시경> 한 권을 가지고 역사상 많은 사람들이 여러 판본으로 해석을 했고, 이 모든 것들을 일일이 알고 있어야 했다. 고대 사람들에겐 이것이 지극히 정상적인 것으로, 성현과 대화하고 성현의 지식을 배운다고 여겼다.
하지만 그는 과거를 한 번 시도해본다고만 여겼고, 근본적으로 줄곧 이 책들을 연구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공부하는 태도에 차이가 있었다. 그리고 이는 확실히 그의 단점이었는데, 전생의 기억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대부분의 경우, 그는 스승님이 강해하는 경의의 뜻을 빠르게 이해할 수 없었고, 오히려 혼자서 계속해서 머리를 굴릴 데 어떻게 답해야 할지 깨달았다.
이럴 때면 그는 자신의 지능이 다른 사람들보다 많이 낮은 건 아닌지 의심이 들곤 했다. 몇 년 동안 다져놓은 튼튼한 기초와 중시하는 공부 방법이 맞지 않았다면 이미 일찍이 다른 사람들에게 뒤쳐졌을 것이다.
고청운은 답답했다. 만약 전생에서 컴퓨터 전공이 아니라 한어언문학 전공이었다면 조금 낫지 않았을까?
현학에서 친구를 사귀는 것도 급과 모임을 가려야 했다. 가장 환영 받는 건 두 부류의 사람이었는데, 하나는 범생이었고 또 하나는 가정환경이 좋은 자였다.
인생은 줄곧 투쟁하는 과정이었다. 태어난 것 자체가 다른 정자를 이긴 것이었고, 집안의 관심과 사랑을 받았고, 자신의 작은 목숨을 부지하며 형제들을 이겼다. 그래서 현학에서 다른 이들보다 나으려면 반드시 자신의 특색 혹은 특기가 있어야 했다.
시부나 경의는 그가 잘 하지 못했으니, 산학에 중점을 두어야 했다.
어느 정도의 명성만 있으면 중시 받지 못하는 산학이라고 할지라도, 그의 특기가 될 수 있었다. 사서오경을 이해하는 건 중등 수준이어서 엄청 떨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전생에서 언젠가 이런 말을 본 적이 있었다.
주임 시험관은 과거 명단에 명성이 높은 사람을 앞에 두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렇게 하면 일어나는 논쟁이 매우 적고 다른 응시생들도 이의 없이 오히려 당연스럽게 여긴다는 것이었다.
반대로, 만약 평소에 성적이 평범하거나 안 좋았던 사람이 명단 앞부분에 있으면 모두 의심을 한다고 했다. ‘이 녀석 주임 시험관에게 무슨 짓을 한 거야? 시험문제가 노출된 거 아닌가?’ 하며 말이다.
이런 여론은 그저 시험관들이 골머리를 앓게 했다. 왜냐하면 장원 급제 한 사람의 문장을 밖에 떡 하니 붙여 놓는다고 해도, 여전히 어떤 이는 자신이 쓴 것보다 못하다고 느끼기 때문이었다.
과거 시험은 너무 주관성이 강해서, 주임 시험관의 선호를 잘 아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현학에서 수재들은 매일 일정 시간 동안 자신이 얻은 정보를 교류하는 시간을 가졌다. 다음 시험관은 누구인지, 뭐 대충 그런 내용들이었다. 이런 것들이 유용한지에 대해선 차치하고, 적어도 이를 통해 다들 이런 인식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지금 글을 잘 지어서 이름을 떨치는 대신, 다른 식으로 이름을 날리려고 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는 그가 배운 지식의 실제 응용 여부도 알고 싶었다. 나중에 그의 지위가 높아지면, 아라비아 숫자를 들여올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비록 지금 중국이 사용하고 있는 산주(算筹)도 매우 사용하기 좋지만, 아라비아 숫자의 간결함을 따라갈 수는 없었다. 그가 아라비아 숫자에 익숙한 탓일지도 몰랐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