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하 이정이 부르다
며칠 후, 고대하의 복역이 끝났다. 그는 너무 피곤한 나머지 집에서 며칠 쉰 후 다시 가려고 했는데, 이제부터 일하는 것에 대해선 복역비용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비록 많지는 않은 돈이었지만 집과 가까웠고 점심을 해결할 수 있었기 때문에, 현지에서는 꽤 인기가 많았다. 그래서 농사일을 쉬고 있는 사람들이 일을 하러 많이들 갔다.
고이하도 복역 일을 가려 했다. 농사일이 바쁜 시기가 아니었기 때문에 집안의 논밭은 고계산과 고대하가 보살피면 되었다.
결국 집안에서 논의를 하여 고이하가 며칠 일을 한 다음 다시 고대하가 일을 하도록 정했다. 이렇게 둘이 번갈아가면서 일을 하면 일이 힘들어도 숨을 돌릴 시간이 있기 때문에, 피곤해서 쓰러질 정도로 힘들지는 않을 것이었다.
마을사람은 돈이 몹시 부족하지 않은 이상, 모두 고씨 집안과 같은 방식을 취했다. 만약 일을 무리하게 하다가 병이라도 들면 벌어온 복역비용은 병을 보는데도 모자랐다.
그렇게 번갈아 복역을 하던 어느 날, 집에 돌아온 고대하가 전한 이야기가 고씨 집안의 분노를 일으켰다.
“그때 이 서판이 저한테 말했을 때는 정말 화가 났어요. 그런데 또 별 수가 없었지요. 일반 백성이 관리랑 싸워서는 안 되었고, 겉으로는 우리를 괴롭히지 않고 그저 우리에게 판 물건을 다시 사가려고 한 것뿐이니까요. 게다가 가격도 1~2냥을 더 주려고 해서 당장은 우리가 손해를 보는 건 아니었지요.”
고대하는 이 일을 이야기 할 때 여전히 화가 나 보였다.
모두 이 말을 듣고 마음이 좋지 않았다.
사건은 이랬다. 이제 한 달밖에 안 되었는데, 그들이 산 땅의 가격이 올랐던 것이다. 그러자 이 서판이 잽싸게 고대하에게 그 땅을 팔라 하였다. 이 서판이 어째서 그들을 괴롭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고대하는 덕분에 이득을 얻게 되었으므로 1~2냥 더 번 것으로 크게 감사함을 표시해야 했다.
아마도 그 역시 이 점을 노리고 행동을 취한 것임이 틀림없었다.
그들이 그에게 어떻게 할 수 없으므로, 고대하는 그저 이를 악물고 둘러대며 못 판다고 밖에 할 수 없었다.
“만약 아버지께서 저한테 전자가 동생에 합격했다는 것을 말씀해주시지 않으셨으면, 그 인간은 포기하지 않았을 겁니다.”
고대하는 정말 다행이라는 듯 말했다.
“딱 알맞을 때 그 소식을 알려주셨고, 그래서 그 사람이 조금 꺼림칙했던 것 같아요.”
이 서판은 아마 고청운이 과거에 급제한 후, 자신을 찾아 끝장을 볼 수도 있다는 생각에 한발 물러난 것 같았다. 비록 이 서판은 현지에서 어느 정도의 영향력이 있었지만, 만약 고청운이 수재가 되면 분명 맞서서는 안 될게 뻔했다. 그때 고청운이 조금이라도 힘을 쓰고 인맥을 찾으면, 언제든지 장관현아호방(掌管县衙户房)의 서리가 되어 자신의 상사가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현아에는 삼반오방(三班六房)이 있는데, 이곳의 육방은 경성의 육부(六部)와 대응되는 것으로, 각각 리(吏), 호(户), 예(礼), 병(兵), 형(刑), 공(工)이었다. 이중 호방은 토지, 호구, 부세, 재정 등을 관리하는 곳으로 이 서판은 그저 호방의 한 판사원(办事员)일 뿐이었다.
“그러니까, 전자야. 반드시 힘을 내야 한다. 나는 이제 깨달았다. 우리는 운이 좋아서 돈을 벌었지만, 만약 지켜주는 사람이 없으면 화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지금은 하 수재가 스승인데다가 우리랑 친척관계고, 너희 큰할아버지까지 있어서 본전에다가 1~2냥을 얹어준 것이다. 만약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든 핑계를 대서 거의 후려치기를 했을 테지.”
백성이 관리와 싸워도 이기기 어렵다는 게, 사회의 기저에 깔려있었기에 이런 일이 생긴 것이었다. 너무 과한 일만 아니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두 참는 방법을 선택했고, 기껏 해봤자 자신이 능력이 생겼을 때 복수하는 게 다였다.
고청운은 살짝 놀랐다. 이 서판이라는 사람은 뒤늦게 이 땅의 값이 오를 것이라고 여겨, 조금이라도 더 빨리, 더 많이 이득을 취하기 위해 땅을 가진 사람들 중, 만만한 상대를 골라 땅을 내놓으라고 한 것이었다.
고되게 일을 해서 살이 쏙 빠진 고대하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조심스럽게 알아보니 우리처럼 땅을 산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그런데 왜 하필 우리 땅을 노린 건지 모르겠어요. 이렇게 많은 사람들 중에서 우리만 만만해보였던 걸까요?”
고청운은 더욱 놀라면서 자책을 했다.
“아버지, 제가 당시에 생각이 짧아서 땅을 사서 돈 벌 생각만 했지, 이 땅을 함부로 사면 안 된다는 걸 몰랐네요.”
고백산이 애초에 땅을 사고 싶지 않아했던 게 이런 데까지 생각이 미쳐서 일까?
모두 나이가 들면 지혜가 쌓인다고 했다. 고청운은 전에 속으로 그가 너무 고집이 세고 보는 눈이 없다고 비난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가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를 잘 알고 있을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평소에 호형호제했던 이 서판이 등에 칼을 꽂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이 일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는 집안 어른들만 자리했다. 어린 아이들과 여자 아이들은 모두 집밖으로 쫓겨났다.
모두 제자리에 앉아, 무거운 분위기를 유지했다. 모두 이 소식을 듣고, 이 일에 대해 기뻐해야할지 슬퍼해야할지 몰랐다. 땅값이 올라 본전을 건졌고 땅을 빼앗으려는 상대방도 알아서 포기했다는 점은 기뻤는데, 기뻐하자니 이 일을 통해 그들이 너무 힘이 없다는 사실이 명백히 드러났다.
이때, 항상 자기주장을 하던 노진씨도 그저 아무 말 없이 고계산이라는 집안의 가장을 쳐다보았다.
“네 잘못이 아니다. 누가 이렇게 될 줄 알았겠느냐? 우리도 생각조차 못 한걸.”
고계산은 한숨을 쉬며 고청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돈이 사람의 마음을 현혹시키는 것이니 자책하지 않아도 된다. 앞으로 공부를 열심히 하면 이런 인간들이 우리를 괴롭히지 못할 게야.”
고청운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지만 마음속으로는 그래도 충격을 받았다.
바로 이때, 밖에서 고청안이 꺄르르 웃는 소리가 들렸다. 그저 한없이 천진난만하고 단순한 기쁨이 느껴지는 웃음소리였다.
몇 사람이 눈빛을 교환하더니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좌우지간 이 난관은 이렇게 지나갔다. 그들의 수입이 한 단계 더 오를 수도 있었다. 정말 안 되면 하 수재에게 청을 올려서라도 그런 사람들을 맞서면 되는 일이었다. 비록 여전히 손해는 조금 보겠지만.
하지만 고청운이 공부를 하지 않았다면 하 수재를 알 기회조차 없었을 것이다. 고백산조차 그들을 지킬 수 없었다.
이 때 이후, 가족들은 고청운 공부 뒷바라지를 계속해야겠다고 굳게 마음을 먹었다. 반드시 그가 과거에 합격 할 때까지 뒷바라지를 해야 했다. 가끔 쓴 소리를 하던 이 씨마저도 더 이상 그런 말들을 하지 않았다.
일가족에게 전례 없는 화목함이 찾아왔다.
* * *
고청운은 집에서 혼자 공부를 시작했고, 가끔 동창들과 모여서 정보를 교류하거나 하 수재를 찾아가 가르침을 받았다. 계획한 공부를 다 하고 나면 책을 베꼈고, 오후에는 시간을 내서 소를 방목하러 가야했다. 이때 책을 가지고 산 언덕바지에서 책을 보거나 암기를 하고, 소는 가끔씩만 돌보았다.
오전에는 보통 고계산이 소를 방목하였고, 오후에는 그와 삼아가 방목했다. 그의 차례가 되면 남동생 고청안을 데리고 갈 때가 있었는데, 어린 아이가 집에서 닭과 개를 쫓으며 난리를 피워 누이들이 마음을 놓고 베를 짤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고청안은 이제 겨우 두 살이라서 힘이 넘쳤다. 다행히 소흑이가 있기를 망정이지, 아니면 이곳저곳 쏘다니느라 문제였을 것이다. 소흑이는 대단했다. 이미 개로 따지면 중년의 나이에 이르렀지만 그래도 아이를 보는 데는 일가견이 있었다.
이 외에도 고청운은 누이들에게 계속해서 글을 가르쳐주었다. 하씨 집안 사정을 보고 고청운도 만약 가능하다면 의학 공부를 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물론 제대로 배울 수는 없겠지만 흔히 볼 수 있는 질병을 몇 가지 볼 수 있다면 생활하는데 충분할 것이었다.
지금 도화진에는 산파 말고는 여의원이라고는 거의 없었다. 여자들은 여성학정 질환을 얻고도 의원을 보기 부끄러워서 그저 끙끙 앓으며 참기만 했다. 만약 대아가 의술을 배운다면 많이 누리면서 살게 될 것이었다.
좌우지간 하상춘 역시 세상 물정에 어두운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반대하지 않고, 대아에게 의약지식을 조금 가르쳐줄 것이었다. 그래서 지금 대아가 유일하게 해야 할 일은 글을 한 자라도 더 익히는 것이었다. 설령 의술을 배우지 못한다고 해도, 글을 조금 배우면 남편과 할 이야기가 더 많아질 터였다.
대아는 동생의 말을 듣고 생각을 하더니, 이후 공부에 대한 열정이 불타올라 이아와 삼아도 같이 열심히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 * *
이런 날들이 줄곧 7월까지 계속 되었는데, 이정이 갑자기 그를 불러서 고청운은 매우 깜짝 놀랐다.
하 이정은 육십이 다 되는 노인이었지만, 몸이 튼튼하고 정신은 매우 건강했다. 그는 매우 반갑게 고청운을 맞이하며 말했다.
“왜 내가 모두를 불러 들였는지 알겠느냐?”
고청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누이가 이미 혼기를 잡고 내년 봄에 출가를 할 계획이었지만, 이렇게 되면 고씨 집안과 하씨 집안은 모종의 관계가 생기는 것이었다. 하지만 도화진에는 하씨 가족 사람들이 많아서 친밀한 관계가 아니고서는 가까이 지내지 않았다.
그래서 아마 누이의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지금은 조문헌도 자신의 옆에 서 있으니까.
“얼마 전 스승님께서 집에서 공부하는 일을 말씀하신 적이 있다. 이번에 나는 운이 좋게도 현존 대인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갑자기 그분께서 너와 조문헌을 언급하셔서 상황을 대략 말씀드렸단다. 그랬더니 대인께서는 너희 둘에게 관심이 생겨서 내일 사시 일각에 와서 뵈라고 하셨다.”
이 말을 마친 후, 하 이정은 찻잔을 들고 한 모금 마셨다.
고청운과 조문헌은 이 말을 듣고 매우 놀라서 서로를 쳐다보았다. 유현존은 본현의 현령이었다. 본현의 부모관(*父母官: 지방 관리, 백성의 부모라는 뜻)이 자신들을 한 번 보고 싶어 한다니?
비록 그들은 동생이었지만, 현령의 진사 혹은 동진사 앞에서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하 이정에게 감사를 표한 후, 두 사람은 이정의 저택을 떠나 유 현령이 자신들을 보고 싶어 하는 이유에 대해서 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런 저런 말을 해봐도 딱히 그렇다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 * *
다음 날 이른 아침, 두 사람은 가장 좋은 의복을 입고 깨끗하게 단정을 한 후 고씨 집안의 우마차를 타고 현성에 갔다.
하 이정이 알려준 대로, 그들은 현아 후원에 있는 문 앞에서 한 문방(门房)이 현존 대인에게 가서 자신들이 왔다는 이야기를 드리러 간 것을 기다렸다.
고청운은 문방이 능숙하게 고대하가 건넨 홍포(红包)를 아무런 표정의 변화 없이 받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현령을 보는 것은 이토록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유 현령이 먼저 보고자 했는데도 문방에게조차 관례적으로 뇌물을 해야 하니 말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어떤 이가 나와서 그들을 데리고 안에 들어갔다.
그들을 데려다주었던 고대하는 들어갈 수가 없어서 문 앞에서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