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화. 흩어지다
“벌써 누군가가 혼담을 꺼낸 거야?”
하겸죽은 막 자신의 어깨에 닿을 만큼 큰 고청운을 보면서 그가 얼마 전에 이를 갈음했다고 자랑한 모습을 떠올리며 웃음을 겨우 참았다.
“그러게요. 한 두 사람이 온 게 아니에요. 다행히 우리 할머니가 사주를 봤는데, 일찍 결혼하면 좋지 않다고 해서 모두 거절해버렸어요.”
고청운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매파의 열정을 잠재울 수는 없었다. 그녀의 관심은 이아에게로 쏠렸으나, 이아는 13살 밖에 되지 않아서 소진씨는 너무 이르다며 놓아주지 않았다.
“그럼 사형들은요? 혼인하기 바로 적합한 나이이니, 저보다 더 환영받겠지요?”
이번에는 고청운이 1등이 아니었다. 1등은 이웃 현에 있는 장수원(张修远), 2등은 예상외로 조문헌, 20등이 하겸죽, 그리고 그는 4등이었다.
이 결과를 보고 그는 살짝 놀라기도 했고 실망도 했지만, 그래도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어서 충격이 크진 않았다.
부시는 현시와 비교했을 때, 난이도가 매우 높았기 때문에 이미 동생에 합격한 것만으로도 만족했다. 반드시 부안수가 될 필요가 없었고 매번 1등이 되려고 하는 건 매우 피곤한 일이었다.
이것은 그가 전생에서 오랜 시간동안 공부를 하면서 깨달은 것이었다.
고청운의 질문에 하겸죽은 얼굴을 붉히며 부채질을 세게 하면서 부끄러운 듯 말했다.
“나는 오래 전부터 약혼녀가 있었어. 내년에 합격하면 혼인을 할 거야.”
고청운은 그가 부성에서 돌아온 후, 부채를 자꾸만 장식품마냥 손에 쥐고 있는 것을 보았다. 사람의 기력을 끌어올려준다나 뭐라나, 어쩐지 부성의 길가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부채를 들고 있더라니.
“그럼 만약에······”
고청운은 조건반사적으로 만약 합격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 건지 생각했지만, 생각하자마자 입을 다물고 이야기를 다른 방식으로 천천히 계속 말했다.
“그럼 만약에 상대편이 기다릴 수 없다고 하면······”
마음속으로는 자책을 했지만 너무 흥분된 마음에 항상 가지고 있는 신중함마저 놓은 채 이런 불길한 말을 내뱉었다.
“그 아이는 우리 외숙부댁 사촌여동생이야. 그래서 이야기하기 편하지.”
하겸죽이 살짝 웃었다.
“그럼 사형은요?”
고청운은 급히 뒤돌아 조문헌을 보았다.
조문헌은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답했다.
“수재에 합격하지 못하면 절대로 혼인 생각은 하지 않을 거야. 여자에 빠지면 심지가 약해지기 마련이니까.”
고청운과 하겸죽은 서로를 쳐다보며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도저히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비록 조문헌은 이번에 1등은 하지 못했지만, 그의 얼굴색을 보니 매우 기뻐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또 이렇게 찬물을 끼얹는 말을 하다니?
‘찬물 끼얹기 대마왕! 화제의 종결자!’
“패기 있으시네요!”
고청운은 엄지를 들고서 감탄했다. 그는 주위를 살펴보고 또 물었다.
“옥당 사형은 아직 안 오셨나요? 정말 너무 상심한 끝에 나오고 싶지 않은 걸까요?”
이번에 네 명이 시험에 응시했는데, 오직 조옥당만 빈손으로 돌아왔다. 시험 결과가 나온 이후, 조옥당은 이틀 동안 사숙에 오지 않았다.
하겸죽과 조문헌은 고개를 저었다. 그들도 알지 못했다.
‘그래, 그럼 낙방한 것 때문에 안 오는 게로군.’
그들은 모두 이해할 수 있었다. 만약 자신이 낙방했으면 분명 마음이 매우 안 좋았을 것이다. 특히 나머지 세 명은 다 붙었는데, 자신만 낙방했다면 이곳에 슬픔을 느끼려고 온 격밖에 더 되나?
“그럼 조금 후에 청명 형이 오는 걸 기다렸다가 다시 봐야겠어요. 형은 이미 옥당 사형을 보러 갔어요.”
고청운은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조금 후에 고청명이 돌아왔다.
“걱정할 필요 없어요. 이미 마음의 준비를 했었더라고요. 원래 우울해 했었는데, 부모님이 정해주신 낭자가 엄청 마음에 들어서 지금 집에서 바쁘게 지내고 있어요.”
고청명은 매우 부러운 듯한 표정을 지었다. 누가 몰래 자신의 미래 아내가 어떤 모습일지 상상해보지 않았겠는가? 허나 그런 건 딱히 부러워할만한 것은 아니었는데, 보통 혼담은 가족이 정했기 때문에 그들은 그저 기다렸다가 통보를 받는 식이었기 때문이었다.
세 사람은 순간 멈칫하다가 어찌할 바를 몰랐다. 한창 걱정하고 있는데, 장가를 든다니!
잠시 뒤, 하 수재는 평소처럼 수업을 하러 왔다가 세 사람이 웃고 있는 걸 보고 줄곧 엄숙한 표정을 짓고 있던 표정이 잠시 풀렸는데, 고개를 돌려 고청명을 보더니 또 굳은 표정을 했다.
하 수재는 먼저 고청명의 어제 숙제를 검사했다. 고청명이 답을 하자,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방금 전에 그가 이해를 잘 못한 부분을 강해해준 후 오늘의 숙제를 내주었다.
그리고 나서 나머지 세 명에게 수업을 해주었다.
“이제 동생이 되었으니 원시 준비를 해야 한다. 원시에는 새로운 내용이 두 개가 추가 되는데, 하나는 내가 전에 말했던 산학이다. 이 과목은 셋 다 잘 배우고 있으니 걱정이 없구나.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잡문이다.”
하 수재는 잡문을 중점적으로 강의하기 시작했다.
고청운은 그제야 사실 이때 잡문은 관리가 평소에 사용하는 편, 표, 론, 찬 등 문장체로, 이는 현대의 응용문과 공문 습작과 같았고, 관리가 반드시 지니고 있어야 하는 특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고청운은 자연스럽게 제갈공명의 유명한 <출사표>을 떠올렸는데, 이 역시 잡문의 일종이리라.
수재가 되면 벼슬에 오를 자격이 되었다. 순검 혹은 말입류의 전사 같은 9품인 작은 벼슬이었지만, 잡문 문장체를 잘 익혀야 일을 수월히 할 수 있으니, 원시 때 반드시 시험을 봐야했다.
고청운은 갑자기 고대의 과거 시험이 사실 제멋대로 설계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시험에는 넘어야 할 고개가 많았지만, 합리적인 부분이 많았고, 모두 근거가 있어 공부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사람들은 나라에서 필요한 인재 상에 맞춰 자기 자신을 그런 인재로 양성했다.
이는 마치 현대의 수능처럼,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은 수능에 따라 변경되고, 수능에서 보지 않으면 그 과목은 학생들의 시간표에서 서서히 사라지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지금의 과거 시험도 그랬다.
하 수재의 수업을 들은 후 고청운은 깨달은 바가 있었다. 그는 수업이 끝난 후, 하 수재의 책방에서 문장체와 관련이 있는 책을 빌려서 베꼈다. 이렇게 베끼면 따로 사러갈 필요가 없었다.
* * *
이렇게 며칠이 지나자 하 수재는 가르쳐야 할 내용은 모두 가르쳤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이건 탁상지론에 불과하여 구체적인 것은 실제로 벼슬에 오르거나 관리가 되어 일하면서 천천히 체득을 하게 되는 것이었다.
하 수재는 제자들을 훑어보다가 마른기침을 했다.
“오만하지 말거라. 내년 8월에 원시가 너희들을 기다리고 있다. 지금 나는 너희들과 한 가지 일을 논의하려고 한다. 이제 내 아래에서 배울 만큼 배웠으니 집안일이 바쁜 사람은 돌아가서 혼자 공부를 하다가 모르는 문제가 있으면 가져와서 물어보면 내가 설명해주면 된다. 이전처럼 학당에 하루 종일 있지 않아도 좋다.”
그들은 이 말을 듣고 모두 깜짝 놀랐다.
“이제 동생이 되었으니 정식으로 지식인이 된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다른 지식인들과 교류를 할 수 있지. 수재라고 해서 가르침을 거절하거나 그러진 않을 거다. 특히 사서오경의 경의에 대한 이해는 사람마다 다르니, 더 많은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구하고 교류를 하거라. 문회(文会)에 참석하면 실력을 향상시키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나는 그저 나이 든 수재일 뿐이라서 가끔은 나의 지식이 부족하다고 느낀다.”
그는 여기까지 말하고 나서, 세 사람을 자세히 보고서는 또 경고하듯 말했다.
“하지만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이상한 문회, 그러니까 엄숙하지 않은 문회에 가서는 안 된다. 거긴 멀쩡한 사람들도 나쁘게 물드는 곳이다. 아직 나이가 어리니 분별하는데 주의해야 해. 기억해라, 삶은 너희들의 인생이고, 앞으로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지닌 앞날이 있지만, 스스로 그르쳐서는 안 된다.”
세 사람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고 고개를 끄덕거리며 약조했다. 셋 다 엄숙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고청운은 이제 매일 같이 하 수재 사숙에 오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듣고 나서 망연자실한 기분이 들었다. 그는 수재가 될 때까지 줄곧 이곳에 있을 줄 알았는데 지금부터 매일 오지 않아도 된다니.
하 수재는 말을 마치고 자리를 떠났고, 세 사람은 그곳에 남아서 의논을 하고 탁자 위에 있는 책을 보면서 하 수재가 말한 대로 하기로 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일 년 동안 이곳에서 공부하고 두 번의 시험을 치렀지만, 고청운은 여전히 일부 경의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다고 느꼈다. 하지만 하 수재한테 물었을 때 그는 상세히 이야기해주지 않고 아예 모른다고 답했다.
하 수재의 스승은 이미 세상을 떠났다. 그 역시 향간의 수재에 불과했다. 하 수재가 수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에게 진정한 재간이 있었기 때문이고, 또 그가 이전 조대 때 합격했기 때문이었다. 또 다른 이유는 모두가 다 아는 이유였는데, 새로운 조대가 세워지면서 글을 아는 사람이 적어서 쉽게 붙을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쯤 되니 그는 그들을 가르치는 일이 힘에 부친다고 느꼈고, 그들 세 명이 이해하지 못하는 내용이 있었지만 답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이런 느낌은 매우 고통스러웠지만, 이런 작은 지역에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는 일이었다.
“방금 전에 스승님께서 이런 건의를 해주셨어요. 가능하면 현에 가서 공부하는 게 어떻겠냐고 하시더라고요. 그곳에서는 교유(教谕)가 가르치고 있으니 적어도 지식수준이 우리보다는 훨씬 높겠지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고청운이 먼저 입을 뗐다. 교유는 거인(擧人)이었다.
“꼭 교유가 가르치는 게 아닐지도 몰라. 어쩌면 학정(学正)이나 교수일 수도있겠지만 실력은 훌륭하겠지. 그런데 현학은 보통 수재에 합격한 후에야 들어갈 수 있어.”
하겸죽은 현학 상황에 대해서 조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을 찾으면 동생도 들어갈 수 있지.”
그의 말투는 애매모호했지만 고청운과 조문헌은 모두 알아들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쳐다보면서 자신이 어떤 관계를 통해 현학에 들어갈 수 있는 생각해보았다.
고청운은 정말 현학에 가서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그곳의 학비가 어느 정도 되는지 알지 못했다. 나라에서 주는 늠선(廪膳) 수재 외에는 다른 수재들은 일정 비용을 내야 했기 때문에 동생은 말할 것도 없었다.
하겸죽이 말을 마치고 난 후, 세 사람은 각자 생각에 잠긴 채로 천천히 물건을 정리했다.
그들은 매월 초하룻날과 정월대보름에 진에서 두 번씩 모이기로 했고, 연락을 유지하며 각자 공부하는 상황을 교류하기로 약속했다. 그리고 만약 다른 사람이 문회 초대를 받으면 같이 갈 수 있는지 물어보기로 했다.
이 날 집에 돌아가기 전에 고청운은 서점에서 가서 책 몇 권을 가져와서 베껴서 돈을 벌 준비를 했다.
그는 현시와 부시에 응시하느라 이미 3개월 동안 책을 베끼지 않아서 모아두었던 돈이 바닥이 났다. 그래서 필요한 물건이 있을 때마다 할머니께 손을 내밀어야 했는데, 그것이 불편했다.
그가 전보다 글씨를 잘 써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삼자경> 한 권을 베끼면 작년보다 두 배의 돈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