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화. 임양부(临阳府) (2)
세 아버지는 신분이 달라도 할 이야기가 있었다.
고대하는 조옥당의 아버지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조(赵) 형의 과감한 행동, 대단하십니다. 한동안 힘드셨지만, 가업을 세웠고 아이의 공부 뒷바라지도 하시잖아요. 우리 집이 이곳으로 이주했을 때, 장사꾼을 모집한다고 해서 저도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아이가 어리기도 하고 집안 어르신이 위험하다고 반대하셨어요. 그분들은 무서웠던 거죠. 그때는 세상이 혼란스러웠으니까요. 농사일만 한다면 집은 안전했지만, 별 볼 일 없지요. 배가 겨우 부르는 것 말고는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일 년 내내 일해도 아이 책 몇 권을 사기도 힘든걸요.”
고대하가 과찬하며 자신을 폄하하자, 조옥당의 아버지는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각기 어려움이 있지요. 저랑 같이 장사하던 사람 중에 없어진 사람이 몇이나 되는지……. 이윤이 큰 만큼 위험도 큽니다. 농사를 지으면 안정적이긴 하나 큰돈을 벌 수 없죠. 하지만 가족이 걱정할 필요가 없으니 그것 또한 복 아니겠습니까.”
고대하가 공감했다.
“옳은 말씀이십니다.”
이어서 세 아버지는 고청운, 조옥당, 하겸죽, 조문헌을 칭찬했다.
아이들은 얼굴을 가리며 자리를 피했다.
‘정말 수치스럽다! 저 사람들은 날 칭찬하는 건가? 조 아저씨, 정말 저를 제대로 알고 하는 말씀이신가요?’
조문헌의 표정은 어두웠고, 한동안 말이 없었다.
* * *
도화진에서 가족이 배웅할 때, 조문헌의 어머니도 왔다. 고청운은 그날 조문헌의 어머니를 처음 봤다. 나이는 30대 초반쯤 되어보였고, 피부는 하얗고 부드러워 보였다. 머리에는 싸리나무 비녀를 꽂았고, 베로 만든 치마 차림이었다. 온화한 조문헌의 어머니는 조문헌을 보내기 무척 아쉬워하며 여러 당부를 했다. 그리고 조옥당의 어머니께 감사의 말을 전했다.
조문헌의 어머니와 조옥당의 어머니는 관계가 좋았다. 길을 떠나기 전, 조문헌은 홀로 남아 있을 어머니 생각에 계속 뒤를 돌아보았다.
* * *
조문헌은 어머니와 아버지가 떠올라서 표정이 어두워졌다. 고청운은 조옥당에게 눈짓했다.
조옥당은 고개를 내젓고 응하지 않았다.
하겸죽은 보따리에서 대나무 피리를 꺼내어 연주하기 시작했다.
고청운은 피리 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고대의 서생들은 정말 전부 금기서화(*琴棋书画:옛 중국 사대부가 갖추어야할 아취, 칠현금, 바둑 등을 말함)에 능하고 문무에 출중하여, 군사상의 책략으로 나라를 평안케 하고 학문과 지식으로 나라를 다스릴 수 있었구나. 정말로 대단하다! 모두 특기와 취미를 가지고 있는데, 그럼 난?’
전생을 떠올려 봐도 마땅한 특기와 취미를 떠올려볼 수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 예체능을 취미로 배울 때, 전생의 고청운은 학교에서 책을 씹어 먹고 있었고 대학 생활비를 도대체 어디서 벌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래서 학교를 다니는 동안 특기라고 할 만 걸 배우지 못했고, 취업을 한 뒤에도 배울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의 강점은 어디에 있는가?
한참 고민한 전생의 고청운은 그냥 교사가 되면 괜찮다고 여겼다. 대학교에 다닌 4년간 과외를 해서 생활비를 충당하곤 했다. 과외는 전단지 배포, 교내 아르바이트보다 계속할 만했다. 그리고 과외하다 보니, 대학가의 학부모 모임에서 이름을 날리게 되어 시급을 높게 불러도 서로 모셔가려고 했다.
속을 썩이는 아이를 만나기 쉽다는 점이 과외의 유일한 단점이었다. 하지만 전생의 고청운은 돈을 벌기 위해서 참았다. 학부모는 고청운의 인내심에 대해서 호평했다.
‘이 강점을 고대의 지식인과 교류하는 데 쓸 수 있을까?’
고청운은 생각했다.
‘수재에 합격한 후에는 재미있는 일을 찾자. 지금은 딴생각하지 말고.’
하겸죽이 피리 연주를 마치자, 모두 칭찬했다.
하겸죽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갑자기 영감을 받아서요. 피리를 불고 싶어서 분 건데, 방해가 되었네요.”
“괜찮아요. 피리 소리가 듣기 좋았어요.”
고청운은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빠른 곡조를 들으니 기분이 좋아졌어요.”
그는 조옥당을 쳐다보았다.
조옥당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했다.
“그러게. 들으니까 기분이 좋아졌네.”
그들은 다시 웃고 떠들기 시작했다.
* * *
일각(*一刻: 약 15분) 정도 기다리니 사람들이 다 모였고, 상대(商队)도 출발할 준비를 했다. 상대의 배치에 따라서 쭉 대열을 섰다. 표국(*鏢局: 고대 중국의 운송·보험·경비 업체) 사람들이 앞장섰고, 상대가 그 뒤를 따랐다. 우마차, 나귀달구지, 부시를 보러 가는 사람의 행렬이 이어졌다.
도보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기분이 매우 좋은 듯했고 말이 많았다. 하지만 달구지에 탄 사람들은 가끔 큰소리로 한마디 건넬 뿐, 대체로 입을 다물었다.
뒤에도 표국 차량이 하나 있었다. 그래야 돈을 들인 만큼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할 수 있었다.
* * *
달구지가 출발한 후, 고청운은 하겸죽의 달구지에 누워서 얇은 이불을 덮고 잠을 보충할 계획이었다. 하겸죽의 아버지는 고대하와 같은 달구지에 있었다.
하겸죽은 고청운의 행동을 보고 놀랍다는 듯이 물었다.
“이렇게 흔들리는 우마차에서도 잠이 오니?”
고청운은 하겸죽을 흘겨보며 말했다.
“잠이 안 올 건 또 뭐죠? 아버지께서 요 몇 년 동안 관부에서 강제 부역을 하고 있을 때, 항상 이 길을 고치고 있었다고 해요. 그러니 이 길은 비교적 넓고 평평한 편이라서 전보다 가기 훨씬 수월하대요.”
그는 지금 황제가 좋은 황제라고 생각했다. 다른 시대에서 거슬러온 황제에게 배워서 먼저 길을 고치다니. 이전 조대나 다른 조대 황제들처럼 궁전이나 현아를 고치라고 하지 않았다.
하겸죽은 고청운의 말에 설득 당했다.
하겸죽은 갑자기 기어서 고청운에게 다가가더니, 귓속말했다.
“청운아, 조문헌이 최근 많이 변한 것 같지 않아?”
고청운은 가까이 다가온 하겸죽이 편치 않았다. 그래서 하겸죽의 머리를 밀치고 대답했다.
“그런 것 같네요. 전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는 것 같아요. 옥당 사형이 그러는데, 요즘 밤에도 등에 불을 밝히고 열심히 공부한대요.”
하겸죽은 고개를 세차게 끄덕거리며 말했다.
“맞아, 스승님이 질문하면 대답을 엄청 빨리하고, 전에는 걸을 때 턱을 치켜세웠는데 지금은 턱이 내려왔어."
고청운은 피식 웃더니 하겸죽의 어깨를 때렸다.
“너무 자세히 관찰한 거 아니에요?”
항상 온화한 하겸죽도 이렇게 이러쿵저러쿵 할 때가 있다니. 하지만 그는 하겸죽이 조문헌과 살짝 작은 갈등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당연하지.”
하겸죽이 말했다.
“입당했을 때, 널 무시하다가 조금 지나니 공부를 잘한다는 걸 안 거야. 네가 산학도 잘하는 걸 깨닫긴 했지만, 이번 현시에서 안수를 빼앗길지는 생각지도 못 했겠지. 그때, 명단 아래서 도저히 믿을 수 없다고 했어. 그 모습을 보니, 동정심이 일더라. 걔는 줄곧 현안수가 자기일 거라고 생각했거든.”
“지금은 문헌 사형이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고 있으니, 저보다 부시를 잘 볼지도 모르죠.”
고청운은 조문헌의 천부적인 재능을 잘 알고 있었다. 문장 하나를 외우는데 자신은 10분이나 걸렸지만 그는 3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고청운은 그가 글자를 잘 못 쓴다고 생각했다. 자화자찬이 아니라, 그가 쓴 글자는 자신이 쓴 것보다 정갈하지 않았다.
하겸죽은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그건 봐야 아는 거지.”
하겸죽은 책 한 권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고청운은 잠시 지켜보다가 말했다.
“흔들리는 우마차에서 책을 보면 눈에 안 좋아요. 젊은 나이에 눈 나빠지고 싶어요?”
‘그런데 고대에도 근시인 사람이 있나?’
이 시대엔 모두 붓으로 글자를 썼는데, 글씨도 큼지막하고 전자제품도 없었다. 아무튼 아직 근시인 사람을 보지 못했으나, 돋보기를 쓰는 사람을 보긴 보았다.
놀란 하겸죽이 말했다.
“이것 때문에 눈이 잘 안 보인다고?”
고청운은 확신하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입으로는 다르게 말했다.
“아마도요? 누가 아나요. 누군가 연구한 건 아니지만, 확실히 안 좋긴 안 좋아요. 두통이 오기도 쉽고, 시간이 그렇게 부족하지도 않으니 그냥 암기를 하는 게 낫죠.”
“암기를 하면 방해가 될까 봐.”
“괜찮아요. 자장가 삼으면 되죠.”
고청운은 눈을 감고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았다.
잠시 후, 하겸죽이 낮은 음성으로 글을 읽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청운은 흔들리는 달구지에서 서서히 잠들었다.
대아와 하상춘이 혼인을 약속한 후, 고청운과 하겸죽의 관계는 자연스레 더욱 좋아졌다.
한숨 잔 고청운이 일어나니, 달구지는 이미 멈춰있었고, 사람들은 점심을 먹고 있었다.
마른 식량을 먹은 상대(商队)는 식사 시간이 끝난 후, 흩어진 사람들을 모두 불러 모아 다시 출발했다.
고청운은 더는 수면을 취하지 않고, 하겸죽과 하겸죽의 아버지가 단둘이서 있도록 자리를 피했다. 우마차에서 내린 고청운은 고대하를 향해 뛰어갔다.
“저도 우마차 몰아보고 싶어요.”
“이걸 배워서 뭐 하려고? 장난치지 말거라.”
고대하가 웃으며 말했다.
“혹시 모르는 일이니까요. 아버지, 가르쳐 주세요.”
고청운은 어렵사리 기회가 생겼을 때 당연히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는 현대에서 운전면허를 따는 것과 같았다. 남자가 운전을 못 하면 어떡하나? 만약 긴급한 상황에 처하면 어떡하나? 무엇이든 조금씩 할 줄 알아야 생존할 수 있었다.
고대하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 듯 천천히 설명했다. 물론 고청운에게 우마차를 맡기지는 않았다.
* * *
역전에서 밤을 보냈다. 이번 조대에서는 백성이 비용을 내면 역전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 비용은 역전을 지키는 인력에게 녹봉을 주는 데 쓰였다.
역전은 훌륭했고 깨끗한 편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공동 주택에 머물렀고, 달구지를 비롯한 화물은 전문가에게 맡겼다. 소는 술집에 뒀는데, 역전 사람이 먹이를 주곤 했다.
고청운과 고대하는 돈을 아끼기 위해서 조문헌과 같은 방을 빌렸다. 침상이 두 개뿐인 방은 좁아서 몸을 움직이기가 불편했다.
하지만 세 사람은 개의치 않았다. 공동 주택에 묵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고청운과 고대하는 한 침상에서 자고, 조문헌은 홀로 잤다.
오랜만에 고대하와 같은 침상에서 자는 터라 고청운은 적응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고대하의 숨소리를 들으니, 고청운도 서서히 잠들었다.
이런 환경에서는 불평을 할 기회조차 없었다.
다음 날 아침, 상대의 관사가 오후쯤이면 부성에 도착한다고 말했다.
모두가 이 소식을 듣고 매우 기뻐했다. 특히 고청운은 고대 교통수단이 사람 피를 말리는 정도를 다시금 느꼈다. 집을 떠나니 모든 게 불편했다. 부시를 보는데도 이렇게 멀리 떠나야하는데 나중에 군성에 가서 원시를 보려면 얼마나 더 힘이 들까!
고대에서 수재의 몸값은 정말 높았다. 세 군데에서 시험을 봐야 하니 돈이 많이 들 수밖에 없었다.
‘거의 대부분 길 위에 쏟은 돈이겠지’
의식주를 제외하고도 돈이 안 드는 곳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