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 임양부(临阳府) (1)
다음 날, 고청운은 사숙에 공부하러 갔고, 고청명도 순조롭게 갑반에 합류했다.
사숙에서 교류하니, 공부 외에도 각자 얻는 게 있었다. 그래서 하 수재 사숙에 오는 이들이 점점 많아졌다. 고청운, 조문헌, 하겸죽, 조옥당이 현시에 붙은 후 하 수재 사숙의 인지도가 높아진 탓도 있었다. 도화진에는 수재가 세 명밖에 없었다. 동생(童生)은 몇 명 있지만, 딱히 특별한 게 없었다.
이제 네 명의 젊은 동생이 하 수재의 사숙에서 나왔으니, 모두 하 수재가 학생들을 잘 가르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들은 하 수재를 답답하게 했다. 그가 전에 가르쳤던 제자들 성적이 안 좋았던 것은 이전 제자들의 공부 시간이 너무 짧았고, 몇 글자만 익힌 다음에 집에 가서는 공부를 꾸준히 못했기 때문이었다. 지금의 4인방은 10년 만에 처음으로 다음 시험을 볼 수 있게 된 첫 학생들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내막을 모르고 있던 사람들은 어쨌든 첫 번째로 하 수재의 사숙을 선택하게 되었다.
한편, 아직 아무런 수확을 얻지 못한 이 수재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이 수재의 제자 두 명도 이번에 현시에 응했으나 한 명도 합격하지 못했다. 하지만 몇몇 사람들은 여전히 하 수재보다 이 수재가 젊기에 학식이 낫다고 평판했다.
* * *
시간이 흘러 4월 초가 되었다. 부시를 보는 날은 4월 15일이었다.
지부 주지(主持)가 주임 시험관을 맡았다. 고청운, 조문헌, 하겸죽, 조옥당은 임양부(临阳府)에 가서 시험을 봐야했다. 도화진에서 임양부까지 걸어가면 이틀이 걸렸고, 우마차로 가면 최소 하루 반나절이 걸렸다. 밤에 묵을 곳을 찾아야 했는데, 임양부는 멀어서 모두 가는 길을 잘 알지 못했다. 그래서 묵는 곳을 찾지 못할까봐 일찍 출발해야 했다.
고씨 집안사람들은 고청운이 동창들과 길을 나서는 것에 대해 마음을 놓지 못했다. 조문헌, 하겸죽, 조옥당의 부모도 마찬가지였다. 부모의 눈에 자식은 여전히 아이인지라, 먼 곳에 어른 없이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모두 4월 10일에 출발하기로 논의했는데, 그전에 할 일이 있었다.
현에서 부성(*府城: 부(府)의 수도)에 가는 상대(*商队: 교통이 발달하지 않은 지방에서, 낙타나 말에 짐을 싣고 떼를 지어 먼 곳으로 다니면서 특산물을 교역하는 상인의 집단)가 있는지 알아봐야 했다. 그들과 함께하면 비교적 안전했기 때문이었다.
조옥당의 아버지는 아는 사람에게 연락하여 4월 10일에 출발하는 상대를 찾았다. 그들은 꼭두새벽에 현의 성문 앞에서 기다린다고 했다.
* * *
고청운, 조문헌, 하겸죽, 조옥당의 가족을 실은 세 우마차가 출발했다. 조씨 집안의 우마차에 조문헌, 조옥당, 조옥당의 아버지, 하씨 집안의 우마차에는 하겸죽, 하겸죽의 아버지, 하겸죽의 족숙(*族叔:성과 본이 같은 사람들 가운데 유복친 안에 들지 않는 아저씨뻘이 되는 사람), 그리고 고청운이 타고 있었다. 고씨 집안 우마차에는 고대하만 타고 있었는데, 조씨 집안과 하씨 집안의 우마차에는 지붕이 있었고, 고씨 집안의 우마차에만 지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고대하는 소를 산 지 얼마 안 되어서, 교육은 시켰지만 사고가 날까봐 걱정이었다. 그래서 의논 끝에 고청운을 하씨 집안 우마차에 태우기로 했던 것이다. 그리고 고씨 집안 우마차에는 두 집안의 짐을 싣고 갔다.
* * *
새벽하늘에 별이 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현성에 도착했을 때, 약속 장소에 상대(商队)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모두 숨을 돌리며 우마차에서 내렸다. 기온이 쌀쌀해서 몸을 움직이는 편이 나았다.
특히 고청운은 일찍 일어나서 단련하는 습관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급히 나갈 채비를 하느라 아침밥을 먹지 못할 뻔했고, 몸을 실컷 움직일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지금 몸이 뻐근하고 불편했다.
고청운은 몸을 쭉 펴고 손발을 흔든 다음, 땅에 있는 돌멩이를 몇 개 집어 던졌다. 인신매매 사건 후, 고청운은 돌 던지기를 더 좋아하게 됐다.
조옥당은 고청운의 동작에 매료되어, 돌을 집어서 멀지않은 곳에 있는 큰 바위를 겨냥하여 던지기 시작했다. 고청운과 조옥당은 그렇게 은근슬쩍 경쟁했다.
아버지들이 멀리서 고청운과 조옥당을 보고 있었다.
“저 나이를 먹고도 아직도 아이 같군요.”
조옥당의 아버지가 말했다. 조옥당의 아버지는 키가 크고 건실한 사내로, 목소리가 묵직하고 기운이 괄괄했다.
“아이들이 다 그렇죠. 우리 집 아이는 어렸을 때부터 돌 던지며 노는 걸 좋아했습니다. 그리고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도요. 그래서 지금은 전보다 뼈가 튼튼해졌답니다.”
고대하가 웃으며 말했다.
“도산사의 사부님이 저렇게 하라고 말씀하셨답니다. 그 당시에 청운이는 어렸는데, 그걸 기억했더라지 뭡니까. 신경을 안 쓰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아버지들은 그들의 아들이 인신매매범에게서 아이를 구한 사실을 떠올리며 자랑스러워했다. 고대하와 조옥당의 아버지는 마음이 더욱 가까워진 것 같았다.
“그래서 무공을 수련하는 걸 막지 않았습니다. 건강해야 진짜 좋은 거니까요.”
조옥당의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겸죽의 아버지도 깊이 공감했다.
“맞습니다. 건강한 게 진짜 좋은 거죠.”
하겸죽의 아버지는 유감스러운 표정이었다. 하겸죽은 미중년인 아버지를 많이 닮았지만 문약(*文弱: 글에만 열중하여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나약함)하고 침착하여 일 처리도 천천히 했다.
조옥당의 아버지는 하겸죽의 아버지를 쳐다보며 말했다.
“만약 예전이었으면 저도 상대를 꾸려서 부성에 갔을 텐데요. 그랬으면 다른 사람을 번거롭게 하지 않아도 될 텐데……. 지금은 길도 익숙지가 않으니 말입니다. 홍정(洪正) 5년, 부성에 갈 때 길에서 칼을 맞았는데 바닥이 온통 피로 흥건했습니다. 하마터면 명줄을 놓을 뻔했죠. 아이 어미가 하도 울어서 눈이 멀 지경이었습니다. 이후 죽어도 물건을 팔러 먼 길을 못 떠나게 하더라고요. 변변치 않게 살아도, 제가 위험한 꼴은 못 보겠다고요.”
조옥당의 아버지가 불만했다. 상인답게 말주변이 아주 좋았다. 좋은 입담으로 재미지게 해서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었다.
“다행히 연줄이 조금 있어서 부성의 상인에게 화물을 살 수 있었죠. 비록 전처럼 많이 벌지는 못했지만 먹고 살만큼은 되어서 처자식을 건사할 수 있었습니다.”
조옥당의 아버지는 아쉬워하면서도 자랑스러워했다.
“가장 중요한 건 가족의 평안이니 말입니다.”
“아이고, 아버지, 그런 말은 왜 하는 거예요? 한참 지난 일 가지고.”
어느새 다가온 조옥당이 멋쩍어해 하며 말했다.
고청운은 조옥당의 아버지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그런데 조옥당은 조금 난처해 했다.
“이런 이야기하면 안 되는 게냐? 이야기 안 하면, 전에 애비가 얼마나 고생고생하며 장사했는지 모르지 않느냐. 그때 천하가 새로 생겨서 어떤 지역은 여전히 혼란스러웠는데, 우리 같은 장사꾼들은 미천한 목숨으로 고군분투한 게야. 애비가 없었으면 네가 지금 같은 생활을 누릴 수 있겠느냐?”
조옥당의 아버지가 노려보자 조옥당은 말할 엄두를 못 냈다.
“그래서 네게 열심히 공부하라는 것이야. 너를 위해 좋은 환경을 만들었으니, 나도 노태야(*老太爷: 타인의 아버지에 대한 경칭) 소리 좀 들어보자꾸나!”
조옥당의 아버지는 한동안 꾸짖었다.
“저는 이정(里正)의 아버지가 가장 부럽습니다. 어딜 가든 노태야 소리를 들으니, 참 체면이 서는 삶을 살고 있지요.”
조옥당의 아버지가 부러워했다.
얼굴이 살짝 붉어진 조옥당은 고개를 숙이고 입을 삐죽거렸다.
“아드님께서는 분명 전시(*殿试: 과거 제도 중 최고의 시험으로, 궁전의 대전에서 거행하며 황제가 친히 주지함)에 급제할 겁니다. 어린 나이에 현시에 통과했으니 천부적인 재능이지요. 꾸준히 공부하면 차근차근 위로 올라갈 겁니다.”
하겸죽의 아버지는 확고했다.
고대하도 동의했다.
조옥당의 아버지는 미소를 지으며 연신 손을 내저었다.
“아이 칭찬은 그만 하시죠. 아직 형편이 없습니다. 저도 허구한 날 과거 시험을 보고 싶었는데 참았죠.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니, 제가 계속 공부를 시킬 겁니다.”
고청운은 조옥당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빙그레 웃었다. 조옥당의 부모는 슬하 2남 3녀를 두었다. 현지 출신이지만 어마어마한 온역(*溫疫: 봄철에 유행하는 급성 전염병으로 주로 열병을 통틀어 말함)이 닥쳐서 도망을 쳤다. 그때 불행히도 조옥당의 형과 막내 여동생이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조옥당과 누이 둘이 남았는데, 그 중 한 명은 시집간 지 2년이 되었고, 여동생은 열세 살이었다.
외아들이 되어버린 조옥당은 군인이 되고 싶었으나 부모가 허락하지 않았다.
그 이야기를 들은 고청운은 고대의 불안전함과 생명의 취약성을 다시금 느꼈다.
하겸죽의 아버지는 지식인이었지만 시험을 보지 않았다. 고청운은 이 점이 이상했는데, 하겸죽의 아버지가 심질(*心疾: 기쁘거나 슬픈 일로 커다란 심적 충격을 받을 경우에 까무러치는 병)을 앓는다는 걸 듣고 이해했다.
‘심질? 심장병이잖아?’
그런 질병이 있다면 과거 시험을 보기엔 적합하지 않다. 크게 기뻐하고 슬퍼하며 심경의 기복이 클 테니까. 시험장의 압박은 일반인도 견딜 수 없었다.
“그럼, 이번에는 아버지께서 돌봐주시겠네요.”
고청운이 묻자 하겸죽이 탄식했다.
“어머니가 말렸는데도 아버지가 부성에 벗을 보러 간다며 따라오셨어. 절대로 내 과거 시험에는 개입하지 않으시겠대. 부성에 도착하자마자 흩어지자고 하시네. 아버지는 벗에게 가고, 족숙님과 함께 묵지 않는대.”
고청운은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지금 누가 누구를 돌보는 거야?’
하겸죽의 족숙은 바로 하지의 아버지였다. 그들은 몇 년 전에 부성에 와서 부흥 했는데, 아마 서점을 하는 것 같았다. 그 서점에 투자하는 사람은 진에 있는 서점에 투자하는 사람과 같은 이인듯 했다.
이는 고청운이 학당에서 이야기를 듣다가 도출해낸 것이었다. 고청운은 가끔 을반에서 미적거리며 아이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을반의 아이들이 모르는 문제에 대해서 물으면, 고청운은 인내심을 가지고 대답해주었다.
그렇게 차츰차츰 익숙해졌다. 을반의 아이들은 모두 진에 살았는데, 어리다고 무시할 게 아니었다. 그들은 아무데나 막 돌아다니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고, 갑반의 가정환경도 마구 퍼트렸다.
을반의 아이들은 고청운의 집안 상황도 똑똑히 알고 있었다. 좌우지간 갑반 4인방은 작은 사숙에서 이름을 날리는 인물들이었고, 을반 아이들의 목표이기도 했다.
하겸죽의 집안 상황은 확실히 좋은 편이었다. 수백 묘의 땅을 소유했는데, 구체적으로 얼마나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더불어 현성에 점포가 있어서 매년 임대료를 받았다. 또한 하겸죽에게는 여덟 살짜리 남동생과 일에 관여하지 않는 할머니가 있었다. 집안의 대소사는 하겸죽의 어머니가 강경하게 처리했다.
“족숙님이야말로 진짜 나를 보살피러 오신 분이지.”
하겸죽이 웃으며 말했다.
천하가 다시 정해진 지 17년이 되었고, 사지가 멀쩡한 떠돌이도 구석진 관부에 가서 땅을 나누어 달라고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몸을 팔아 노비가 되려는 자는 극히 드물었다. 큰 가문, 자산이 어느 정도 있는 작은 가문, 모두가 가리지 않고 노비를 살 수가 없었기에, 돈을 주고 사람을 고용했다.
하겸죽의 족숙은 하인이 아니고, 도우러 온 사람이기에 매달 돈을 줘야 했다. 하지만 하겸죽의 족숙은 보수를 덜 받더라도 가족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고, 외부인보다 핏줄을 믿었다.
‘내가 벼슬했을 때, 곁에서 일하는 사람이 핏줄일 수 있겠구나.’
고청운은 새삼스레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