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대생활 (32)화 (32/504)

32화. 안수(案首) (2)

“청운이가 안수가 될 줄은 몰랐네요. 자, 청운아, 오늘은 한 잔 마셔야지! 축하해!”

조문헌은 술잔을 높이 들고 고청운을 쳐다봤다. 

고청운이 웃으며 답했다. 

“저는 운이 좋아서 그런 거죠. 마침 제가 잘하는 게 나왔으니까요. 다음 원시에서 나오는 경의는 더 심오하고 어려우니까 지금처럼 잘 보지는 못할 거예요.”

조문헌은 잔을 들고 있는 손을 내저으며 다시 물었다. 

“어쨌든 이제 안수잖아. 이 술 마실 거야, 안 마실 거야? 사내가 어찌 술을 안 마실 수가 있어.”

고청운은 고개를 내저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안 마실래요. 아직 이도 다 갈음하지 않은 걸요. 안 마셔요.”

고청운은 평생 술을 자제하기로 마음먹었다. 

‘혹시라도 이상한 말을 할지도 모르니 절대로 술을 마셔서는 안 돼.’ 

고청명이 씩 웃으며 말했다. 

“이 아이는 털도 다 안 났는데 술은 무슨 술이에요? 제가 대신 마시죠!”

고청명은 자신의 잔으로 조문헌의 잔을 부딪친 후 술을 마셨다. 

조문헌은 고청명의 행동에 혀를 차며 일어나서 사방을 둘러보았다. 술잔을 빤히 쳐다보는 하겸죽, 절인 달걀을 보며 멍청한 미소를 짓는 조옥당에게 무슨 말하기도 애매해서 자리에 앉았다.

이 일은 그냥 이렇게 넘어갔다. 

하겸죽은 홧김에 술을 마시고 있었다. 하겸죽은 성적이 좋은 편이나, 고청운과 조문헌에 비하면 부족했다. 그래서 기쁘면서도 답답했다. 하지만 어쨌든 붙었으니 대체로는 기뻤다. 

조옥당은 줄곧 입을 헤벌쭉 벌리고 웃었다. 기뻐서 축하한단 말을 반복했다. 

같은 식탁에서 밥을 먹었지만, 기분은 제각기였다. 

술 두 병을 나눠 마신 조문헌, 하겸죽, 조옥당은 얼굴이 빨개졌다. 그들은 밥을 다 먹은 후, 돌아갈 채비를 했다. 

고청운은 모두 취기가 거의 없는 것을 보고 안심했다. 

고청운은 술에 취한 사람이 가장 싫었다. 

그들이 이용한 식당엔 장삼 차림의 지식인이 많았다. 이 술집은 현지에서 중급에 속했고, 가격 대비 요리가 훌륭한 편이었다. 

이번에는 조옥당이 돈을 냈다. 

고청운은 살짝 답답했다. 남자의 주머니에 돈이 없으면 밖에서 허리를 꼿꼿이 세우기 힘들었다. 

그는 어쨌든 이번 생에선 남자로 태어났고 앞으로 자주 사람들과 모임을 가질 텐데 계속 다른 이에게 돈을 내라고 할 수는 없었다. 받기만 하고 주는 게 없으면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인색하다고 여겨 자신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스스로도 계속 얻어먹기만 하는 것이 미안하게 느껴졌다. 

* * *

고청운은 오전에 보았던 명단 앞을 지나갔다. 본현에서는 이미 어느 정도의 인지도를 갖게 되었기 때문에 그가 지나갈 때 많은 응시생이 고청운에게 인사했다. 물론 조문헌에게도 그랬다. 그의 인지도는 고청운보다 높았는데, 그는 작년에 이미 현시를 통과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그는 고작 14살이었다. 

고청운은 호기심, 시기심, 악의, 호의를 따지지 않고 웃으며 인사했다. 

모두 안부 몇 마디를 나누고 금방 자리를 뜨고 싶어 하는 것 같아 놓아주었다. 그저 나중에 시간을 내서 모이기로 약속을 했다. 

겨우 다른 사람들에게서 벗어난 후, 다섯 사람은 천천히 큰길을 걷고 있었다. 이미 오후가 훌쩍 넘은 시간이었는데도 여전히 합격자 명단 앞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 * *

“하하, 내가 무슨 약속을 잡았는지 아니?”

별원에 도착하자, 조옥당이 부끄러워하며 입을 열었다. 

‘방금 전에 스물 남짓의 서생이 옥당 사형을 붙들고 이야기했었지.’

“모두 알다시피 진에는 없고 현에만 있는 바로 그곳…….”

조옥당이 애매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모두 갈 거야, 말 거야? 오늘밤 분명 많은 사람들이 모일 텐데 말이지. 시험을 잘 본 사람은 축하하러, 못 본 사람들은 기분을 풀러 가자. 오늘밤은 엄청 시끌벅적할 거라고.”

고청운은 심장이 쿵 떨어지는 것 같았다. 

‘세상에, 내가 생각하는 그곳은 아니겠지?’

고청운은 두리번거렸다. 

‘이렇게 어린 나이에 벌써 그런 곳에 가고 싶어 한다고?’

“안 가요.”

얼굴이 새빨개진 하겸죽이 고개를 연신 내저었다. 

“저도 안 가요.”

조문헌은 눈살을 찌푸리며 단호하게 말했다. 

“아직은 축하할 때가 아닌 걸요. 4월에 부시를 봐야하니, 어서 공부하고 싶어요.”

고청명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우리 같은 사람이 그런 곳에 갈 수 있나요? 가면 우리 할아버지가 내 다리를 분지를 거예요. 정말 그러고도 남아요.”

“만약 할아버지가 모르신다면 가고 싶다는 얘기예요?”

고청운이 고청명의 팔을 세게 때렸다. 

“물론 아니지. 난 돈이 없는 걸…….” 

고청명은 팔을 감싸며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시원찮은 반응에 실망한 조옥당은 차분해졌다. 민망함에 얼굴이 새빨개진 조옥당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네. 아직 시험이 남았구나. 수재가 되지 않으면 성공한 게 아니지. 다들 희망이라도 있지, 난 꼴찌라서 하마터면 시험에 못 붙을 뻔 했어. 앞으로의 시험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으니, 딴 짓하지 말고 힘내야겠다.” 

모두 여기까지 이야기하고 물건을 대충 챙긴 후에 해산했다. 어제 와서 하룻밤만 묵었기 때문에 물건이 많지 않아서 금방 정리하고 집에 갈 준비를 했다. 

고청운은 학당에 가지 않고 혼자 복습해도 됐지만 하 수재 밑에서 공부하기로 결정했다. 아직 배우지 못한 게 많았기 때문이었다.

* * *

진(镇)에서 집으로 가는 길, 고청운과 고청명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들 기뻐하겠지. 그런데 육촌형은 합격하지 못했으니…….’

고청운은 난처했다.

그는 육촌형에게 위로의 말이라도 건네야 하는 게 아닌가 하고 고심을 하고 있는데, 고청명이 가까이 와서 작은 소리로 말했다. 

“청운아, 조문헌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음, 너는 그 사람이랑 교류하는 게 어렵지 않아?”

놀란 고청운은 고청명을 쳐다봤다. 

고청명은 고청운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말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해. 마음이 좀 좁은 거 같아서 같이 있으면 조금 피곤하네. 어떤 농담은 할 수조차 없고, 겉으로는 말이 잘 통하는 척하지만 사실상 방어하는 편이고. 아무튼 나는 하겸죽이 교류하기에 더 편한 것 같아.”

조옥당은? 두 사람이 말 할 필요조차 없었다. 

“하여튼 그 사람과 철천지원수가 될 필요는 없으니, 아무쪼록 동창으로서 겉으로만 잘 지내려고.”

고청운 역시 공감했다. 공부를 하면서 만나는 모든 이와 친구가 될 수는 없었다. 상대방이 자신을 해치지만 않는다면 다른 일은 신경 쓰지 않는 게 좋았다. 

“아무튼 그 사람이랑 교류할 때 조금 신경 쓰도록 해. 오늘 밥 먹을 때, 태도가 상당히…….” 

고청명이 불만스러운 듯 이야기를 시작하였고, 고청운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다.

* * *

집 앞의 나무 아래, 마을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고청운을 본 누군가가 외쳤다. 

“작은 수재 돌아왔니!”

사람들이 순식간에 어수선해졌다. 

고대하는 웃으며 말했다. 

“아직 수재가 아니라오, 수재가 아니야. 그렇게 함부로 말하면 큰일나오. 관부에서 알면 벌을 내릴 걸세.”

“나중에 분명 수재가 될 거니까 거의 그런 셈이죠!”

고씨 집안의 삼방(*三房: 삼남의 가정)의 큰어머니가 고집을 부렸다. 삼방의 큰어머니는 줄곧 웃었고, 노진씨를 향해 말했다. 

“전자는 정말 출세했네요. 앞으로 복을 누릴 일만 남았어요. 전자가 끔찍하게 효도를 잘하니까. 지금부터 이제 몇 년 고생하면 끝이에요, 끝!”

노진씨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삼방의 큰어머니의 손을 잡고 말했다. 

“요 몇 년 동안 우리 정말 고생했네. 새해에도 새 옷을 지어 입지 못했지. 그건 다 우리 손자 뒷바라지하느라 그런 거지. 농가에서 지식인 하나를 길러내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다 먹고 입는 걸 아끼고 또 아껴야 가능하지!”

“이해해요, 이해해.”

삼방의 큰어머니가 손수건을 꺼내어 노진씨에게 건넸다.

“이제 고생 끝이잖아요. 이 현안수는 우리 임산현에서 가장 어리기도 하죠? 앞으로 부시도 붙으면 우리 현에서 가장 어린 동생(童生) 되어요. 걱정 마세요. 전자가 수재가 되면 고씨 가족이 모두 은자를 내서 뒷바라지해줘야 하고말고요!”

“그건 모르겠네. 현시는 그저 전자가 운이 조금 좋은 거지, 부시는 어떻게 될지 모르네.”

이성을 찾은 노진씨가 삼방의 큰어머니에게 손수건을 돌려줬다. 노진씨는 자신의 손수건을 꺼내어 눈을 닦았다. 

“우리 가족 모두 힘들게 살다가 이제 숨통이 트이려고 하는데 돈을 어떻게 내라고 하나.”

“그건 신경 쓰지 마세요. 남자들의 일이니 다시 이야기하죠.”

삼방의 큰어머니는 단호했다. 

이 말을 들은 소진씨는 속으로 기뻐했다. 

고청운은 천천히 집으로 걸어가던 길에 마을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현시 관련된 이야기를 하다가, 모두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고백산이 오고 나서야 해방될 수 있었다. 

* * *

고청운과 고백산은 서재에 들어갔다. 

고백산은 고청명이 합격하지 못했는데도 매우 기뻐했다. 

고백산은 한동안 고청운을 칭찬하더니 진지하게 이야기했다. 

“이제 중요한 건 부시다. 부시를 통과하면 내년에 원시를 볼 수 있다. 원시는 3년간 두 번 보는데, 내년에 통과하면 수재가 되지. 수재는 다른 차원의 신분이다. 당장은 이야기하지 않으마. 내일부터 하 수재한테 가서 공부해라. 아직 경의를 잘 못한다고 들었다. 부시에 배우지 못한 부분이 나올 수 있으니 오만해서는 안 된다. 형은 신경 쓰지 말거라. 이번 낙방이 그 아이에게 좋게 작용할 거야. 이제 차분해진 걸 보니, 하 수재의 방법이 옳다는 걸 알았구나. 나가서 한번 겪어봐야 세상 물정을 알지.”

고백산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고백산은 부시를 보았던 경험을 이야기했다. 그가 수차례 한 이야기였지만, 고청운은 여전히 열심히 들었다. 

* * *

저녁에는 가족들이 다함께 모여 모두 함께 기뻐하였고, 저녁밥 역시 예외적으로 매우 풍성했다.

고청운은 밥을 먹으며 가족과 한참 이야기했고, 그때서야 고청운이 현성에 있을 때 이정(*里正: 리(里)의 행정업무 담당자)이 집에 와서 소식을 전달했다는 걸 들었다. 

“예비 매형이 선물을 주러 왔었어요.”

이아가 웃으며 말했다. 대아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언니는 아직 형부 보기가 쑥스러운가 봐요.”

모두 웃기 시작했다. 혼인을 약속한 부부는 만날 수 있지만, 그 자리에 여자 쪽의 가족이 있어야 가능했다. 물론, 외부인이 보지 않는 곳에서 두 사람이 몰래 만날 수도 있었다. 

그때, 고청운이 물었다. 

“할아버지, 소의 체력이 된다면 우마차로 다른 사람의 물건을 옮기는 일을 하거나 현에 달걀을 가져다줄 때 사람을 몇 명 태우고 차비를 받으면 어때요?”

현에 가려면 다른 마을을 거쳐야 했다. 고청운이 오늘 귀갓길에 유심히 살펴보니, 모두 광주리와 같은 짐을 들고 걸었다. 그래서 매우 힘들어 보였는데, 우마차는 드물게 지나갔다.

몇 년 전보다는 생계가 나아진 사람이 꽤 있고, 그들의 주머니에는 돈이 있었다. 그러므로 우마차를 타려고 몇 문 정도는 치르는 사람이 있을 터였다. 어차피 오고가는 길이니까 운송비를 받으면 득이었다. 

“모두 한 고향 사람인데 돈을 받아도 되겠니?”

고대하가 반응했다. 마을에는 소가 세 마리밖에 없었다. 한 집의 소는 늙었고, 한 집의 소는 너무 작았으며, 고씨 집안의 소가 가장 쓸모 있었다.

“안 될게 뭐가 있겠느냐? 어차피 밖에 나가 소에게 풀을 먹어야 하잖니. 그런데 힘든 일하는 시기에는 소금과 쌀겨도 먹여야 되는데, 공짜로 태워줄 순 없지. 그렇지 않으면 애꿎은 소만 고생시키는 거니까. 하지만, 돈을 받으면 말이 달라지지.”

가계와 연관된 일을 논하니, 머리가 바빠진 노진씨의 말이 빨라졌다. 

“그렇게 하도록 하지! 어차피 소를 아무 일 없이 놀릴 때가 있으니, 너무 무거운 것만 안 끌게 하면 되겠군.”

“그럼, 누가 우마차를 끌죠?”

이 씨가 간만에 입을 열었다. 이건 보수가 짭짤한 일이었다. 그다지 힘들지 않은데 수익은 쏠쏠하고, 딴 주머니를 차도 다른 사람이 알 수 없었다. 

노진씨가 예리한 눈빛으로 쳐다보자, 이 씨는 움츠러들었다. 

노진씨는 만족하며 웃었다. 

깊은 생각에 잠겼던 고계산이 말했다. 

“내가 하지. 큰애랑 둘째는 모두 집에서 일하고. 우마차를 만들어서 청운이와 청명이를 태우고 진에 가겠소. 이젠 걸어 다니지 않아도 되겠네.”

“할아버지, 전 괜찮아요. 걷는 것도 좋은 걸요.”

고청운은 거절했다. 

일은 이렇게 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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