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대생활 (29)화 (29/504)

29화. 현시(縣試) (3)

현령이 고청운의 시험지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고청운은 전혀 긴장하지 않았다. 

그러나 고청운은 고개를 들어 현령 대인의 안색이 어떤지 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수험생의 나이는 천차만별이었다. 열한두 살인 사람은 고청운을 제외하고 두 명이었다. 

고청운은 자신의 나이 또래로 보이는 두 명을 몇 번 쳐다봤다. 

‘이 나이에 시험을 보다니. 분명 실력이 있는 거겠지? 상당히 오만해 보이던데. 하인인지, 가족인지 모르겠으나 곁에 여럿을 끼고 있었어. 옷만 봐도 나와 같은 계층이 아닌 것 같아. 친근하게 다가가서 대화할 마음이 싹 가시네.

점심때가 되자, 하나둘씩 시험지를 내기 시작했다. 고청운도 시험지를 냈다. 호실에 가만히 앉아있자니 너무 추웠고, 차가워진 찐빵을 먹고 싶지 않았다. 

시험장을 나간 고청운은 동창과 약속한대로 기다리지 않고 별원으로 갔다.

별원에는 조문헌과 하겸죽이 먼저 도착해 있었다. 그들은 고청운을 보자 웃음을 터트렸다. 

한 시진 후, 조옥당과 고청명도 돌아왔다. 별원이 시끌벅적해졌다. 서로 답을 맞춰보진 말자고 미리 약속해뒀기 때문에 시험과 관련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모두 시험을 잘 봤는지 밝은 기색이었다.

둘째 날은 묵의(*墨义: 과거에서 경서의 뜻을 필답하던 과목)를 보았다. 소위 묵의는 경서의 뜻을 간단히 적으면 됐다. 응시생은 사서오경의 구절, 구절의 뜻, 다음 구절, 주석을 썼다. 고청운은 전생에서 풀었던 해석 문제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즉, 이것 또한 기억력을 시험하는 문제였다.

고청운은 순조롭게 답을 작성했고, 시험지를 제출하기 전에 맞은편의 소년을 흘겨봤다.

셋째 날은 첩경과 묵의를 같이 봤는데, 범위가 더 넓었고 난이도도 높았다. 

그래도 고청운을 무너뜨릴 정도는 아니었다. 이번에는 맞은편의 소년이 고청운을 기분 나쁘게 쳐다보지 않았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소년은 낭패에 빠져서 고청운을 신경 쓸 여유가 없어 보였다.

넷째 날은 경의(经义)를 보았다. 소위 경의는 경서의 뜻을 위주로 전개되는 의논으로써, 경문의 핵심이었다. 통속적으로 표현하면, 사서오경의 한 구절을 제목으로 삼아 작문하는데, 이는 독후감과 비슷했다. 경전의 고사(故事)를 인용하면 가산점이 부여됐다. 

이는 고청운의 약점이었으나 하 수재 슬하에서 1년 정도 공부한 후 달라졌다. 간단한 경의로는 고청운을 무너뜨릴 수 없었다. 좌우지간 이건 그저 현시이기 때문에, 난이도가 나중에 볼 시험보다 높을 리가 없었다. 

네 번째 고시에는 시를 짓는 재능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건 현시에서 중요한 부분이 아니었고, 그저 기본적으로 단정하게 문장을 지을 수 있을 정도면 되었다. 물론 출중하면 가산점이 있긴 하였다.

고청운이 문장을 뛰어나게 짓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이미 당나라와 송나라 느낌으로 지을 수 있는 문장은 다 지은 상태였다.

좌우지간 고청운은 제목을 보고 안도했다. 봄날과 관련이 있는 시 한 수를 지어야 했는데, 이미 일찍이 준비를 해놓았기 때문이었다. 

시험 보기 전에 그는 춘하추동, 흔히 보는 화초, 이상과 기개 등 자주 출제되는 제목으로 모조리 시를 써놓았다. 잘 쓰는 건 고사하고, 적어도 압운(*押韻: 시가에서, 시행의 일정한 자리에 같은 운을 규칙적으로 다는 일)이 되어야 했는데, 하 수재가 한번 봐주었으니 어렵지 않게 통과할 것이었다. 물론 자신의 수준이 있는지라 우수한 성적은 바라는 건 불가능했다. 

기억력이 이렇게 안 좋다니. 전생에서 외웠던 시구를 쓰려고 하니 한 두 마디밖에 떠오르지 않아 시를 지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베끼는 시는 반드시 자신의 신분, 배경, 학식 등과 부합해야 했다. 만약 수준이 맞지 않으면 더 이상 문인들의 세상에 발을 들여놓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그렇게 하는 것은 양심에 매우 찔리는 일이었으므로 궁지에 몰리지 않는 이상 고청운은 절대로 그런 짓을 하지 않을 것이었다. 만약 그랬다간 평생 동안 좌불안석으로 살테니 말이다.

그러니 그는 일찍이 이 방법을 머릿속에서 지우고 나름대로 열심히 시구를 짓기 시작했다. 

넷째 날 시험을 마치고 고청운의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별 탈 없이 무난하게 합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6~7년 동안 공부에 쏟아 부은 시간과 노력이 헛수고가 아니었다. 전생에서 수능을 볼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이번 현시를 통해, 집안에서 경제적 지원을 해주며 본인이 외우는 것과 글자 연습을 열심히 하고 여기에 운이 조금 따라와 주면, 고대의 현시는 어렵지 않게 합격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 수재 역시 일찍이 말한 적이 있었다. 동생에 합격하려면 두 가지를 심사했는데, 첫 번째가 바로 사서오경을 외우는 것이었다. 심지어 달달 외우지 않고 합격할 정도로만 외우면 되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글자를 어떻게 쓰는지 보았다. 

고청운은 이 두 가지 전부 자신이 있었기에 올해 시험에 응시한 것이었다. 

시험을 모두 치르고 나서야 동창들과 이야기를 나눌 여유가 생겼다. 그들은 가장 먼저 이번 시험 내용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시험 범위가 너무 좁게 나왔어. 책을 몇 번 밖에 못 봐서 다 세세하게 못 외웠는데 말이야.”

조옥당이 불평했다.

“나도 그래요. 셋째 날에는 배운지 얼마 안 되어 못 외운 내용도 있었어요.”

고청명 역시 매우 답답해하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글자 몇 개도 잘 못 쓴 거 같은데 현관이 어떻게 평가하실지 모르겠네요.”

둘은 한참동안 불만을 쏟아내다가 나머지 세 사람은 그저 묵묵히 물건을 정리하고 있는 것을 보고 무언가가 잘못 되었다는 것을 느끼고는 황급히 물었다. 

“다른 사람들은, 시험 어땠어요?”

고청운은 밖에 널어놓은 의복을 거두었다. 시험을 보는 며칠 동안 주방아낙이 모든 빨래를 해주었다. 

“시험지에 전부 답안을 썼어요.”

고청운은 하겸죽과 조문헌을 바라보며 말했다. 

하겸죽은 미소를 지으며 조문헌에게 답했다. 

“꽤 괜찮은 것 같아.”

“분명 합격이지.”

조문헌이 입을 열었다. 

조옥당이 슬픈 소리를 내며 머리를 손으로 감싸 안았다. 

“정말 괜히 물어봤네!”

고청명 역시 마음이 약간 착잡했지만 아직 성적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조급해 하지도 않았다.

“형, 우리 빨리 짐 싸두고 날이 밝을 때 집에 가요.”

그들은 모두 오후에 시험을 마쳤기 때문에 지금 아무리 늦어도 네 시 정도 밖에 되지 않았고, 조금 서두르면 집에 갈 수 있었다. 

하겸죽은 본래 명단이 붙는 열흘 후까지 이곳에 머물면서 기다리려고 했다. 하지만 고청운과 고청명이 짐을 싸는 것을 보니 마음이 동요했다. 이 나이가 되도록 집을 이토록 오래 떠나 있는 건 처음이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 어머지께서 많이 걱정하실 테니 나도 돌아가야겠어요. 명단이 붙으면 다시 보러 오죠. 가까운 거리니까요.”

고대에서 반 시진이 걸리는 거리는 멀다고 할 수 없었다. 

결국 조옥당만 혼자서 이곳에 묵으면서 기다리겠다고 하고, 나머지 네 사람은 며칠 동안의 여비를 계산 한 후 집에 갈 채비를 했다. 

고청운과 고청운은 산 속 작은 길로는 가지 않기로 하였다. 그 길로 가면 시간을 반이나 아낄 수 있었지만, 산에서는 해가 빨리 지는 편이었기 때문에 위험할까봐 하겸죽, 조문헌과 함께 진(镇)쪽으로 돌아오는 게 나았다. 게다가 이쪽 길로 다닌 지 일 년이 다 되어서 이제는 꽤나 익숙했다.

그들이 짐정리를 하고 있을 때, 조옥당은 밖에 나가서 도화진에서 시험을 보러 온 사람들에게 같이 돌아갈 거냐고 물었고 다들 같이 돌아가기로 약속을 했다. 

마지막으로 무리에 합류한 두 사람은 모두 이 수재의 학생이었고 전에 진에서 공부할 때 만난 적이 있었기 때문에 모두 아는 얼굴들이었다. 

돌아가는 길 내내 그들은 이야기꽃을 피웠는데, 주로 시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고청운은 체력을 아끼려고 기본적으로 침묵을 유지했다. 하지만 이야기를 들어보니 조문헌과 하겸죽은 합격할 것 같았고, 이제 석차가 관건이었다. 

조문헌의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아하니 고청운은 그가 현안수(*懸案首: 현에서의 수석)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청운은 한 시진을 걸어서 드디어 집에 도착했다. 

가족들은 서둘러 돌아온 그를 보고 깜짝 놀랐다. 

“하룻밤 더 묵고 오지. 날 어두워지는데 서둘러 오다니, 무슨 일이라도 나면 어쩌려고?”

소진씨가 고청운을 나무라며 책 상자를 받았다. 

“일은 무슨 일? 밖이랑 집이랑 비교가 되니? 당연히 집에 있는 게 편하고 좋지.”

노진씨가 소진씨를 째려보았다. 

“전자야, 시험 어땠니?”

 이 씨가 급히 입을 열었다. 

 며칠 동안, 고청운은 돈을 물처럼 썼다. 대여섯 냥의 은자가 쓰였는데, 이 정도면 고씨 집안의 일 년 수입과 맞먹었다. 물론 절인 달걀과 닭으로 벌어들이는 수입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꽤 괜찮게 본 거 같아요.”

고청운은 가족들에게 사실대로 말하며 웃었다. 

“모든 문제를 다 풀었는데, 책을 꺼내서 보니까 답이 거의 다 맞는 것 같더라고요. 글자를 어떻게 썼는지가 관건인데, 이제 현관이 어떻게 채점을 하는지 봐야할 것 같아요.”

모두 긴장을 풀고 기대에 가득 찼다. 방금 이 씨가 질문했을 때, 다들 숨을 참는 게 느껴졌다. 

“아직 결과가 안 나왔으니, 밖으로는 이야기하지 말거라.” 

고계산이 주의를 주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 있는 동안 옥당 형의 별관에서 묵었어요.”

“그것 참 감사한 일이구나.”

노진씨가 말했다. 

“그럼 언제 조 씨 집안에 가서 감사의 표시를 할까?”

“하지만 우리보다 잘 사는 집이라서 부족한 게 없을 텐데요.”

소진씨는 매우 감사했지만, 어떻게 보답할지는 감이 잡히지 않았다. 

고청운이 급히 말했다. 

“조급해하지 마셔요. 이 인정(人情)은 나중에 제가 자연스레 갚을 거니까요."

고청운은 일 년간 조옥당과 친하게 지내면서, 그를 좋은 친구로 여기게 됐다. 

“참, 청명이는? 잘 보았다고 하더냐?”

고계산이 급히 물었다. 

“그건…….”

고청운이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직 잘 모르겠어요. 구체적인 건 명단이 공개되어야 알 것 같아요.”

고청운은 고청명의 시험지를 본 적이 없기에 답할 수가 없었다.

“그럼 기다리는 수밖에 없겠구나.”

고계산은 생각에 잠겼다. 

 “청명이는 분명 우리 전자보다 못 봤을 거예요. 전에 청명이가 마을 아이들과 산에서, 물에서 노는 걸 봤어요. 그건 학문하는 태도가 아니죠.”

이 씨도 공감하며 고청운을 보고 대견스럽다는 듯 말했다. 

“공부는 우리 전자처럼 해야죠. 전자는 전혀 아이 같지가 않아요. 아무튼 우리 구단이도 나중에 공부하게 되면 형처럼 해야죠. 어디 나가 놀아만 봐라 내 가만히 두나.”

이 씨는 말을 하던 도중에 고대하의 눈빛을 보고 목소리를 점점 낮췄다. 

고청운은 난처해졌다. 고청운은 일반적인 어린 아이가 아니긴 했다. 

그래서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할아버지, 할머니. 전 말씀 드릴 게 있어서 서둘러 돌아온 거예요. 내일 현성에 소를 사러 가야해요. 오늘 시험을 다 보고 나서 한 아역(*衙役: 지방 관아의 사내종)에게서 내일 소 판매상이 온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고청운이 급히 말했다. 고청운은 이 이야기를 하려고 빨리 귀가했던 것이었다. 그 아역의 말이 사실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서둘렀다. 

“정말이니? 잘 됐구나! 그럼 내일 해가 뜨기 전에 큰애와 함께 현성에 가봐야겠어.” 

고계산은 잎담배를 힘껏 핀 다음, 돈이 있어도 소를 사지 못했던 작년 8월을 기억했다. 소식을 듣고 급하게 갔는데 소는 이미 다 팔렸고, 당나귀와 노새도 살 수 없었다. 

“알겠어요, 아버지.” 

고대하는 대답한 후 고청운의 어깨를 두드렸다. 

“지난번에 형님과 의논했는데, 같이 소 한 마리를 사기로 했다. 이렇게 하면 돈을 아낄 수 있으니까. 소를 사서 우리 집에서 기르는데, 농사일이 바쁜 시기에는 형님이 먼저 쓰고, 평소에는 우리가 두고 쓰기로 했다.” 

고계산이 갑자기 말했다. 

고청운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미 고청명이 알려준 내용이었다. 내일 소 판매상이 온다는 소식을 듣자, 고청명이 이야기했었다. 고청명네는 일손이 너무 부족했고, 고청명과 고청량은 소를 방목할 수가 없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