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현시(縣試) (2)
시험이 이틀 앞으로 다가오자, 모두 외출하지 않고 방에서 복습만 했다.
매우 긴장한 고청명은 열심히 공부하다가, 가끔 고청운에게 무슨 말을 하려고 했다.
고청운은 고청명의 그런 모습을 못 본 척하고 그저 제 일에만 신경 썼다. 고청운은 열 몇 권의 책을 펼쳐 보았다. 이미 외웠지만 긴장해서 기억나지 않을 수도 있으므로 또 다시 숙지했다.
고청운은 가장 골머리를 앓게 하는 <주역(周易)>을 다 본 후, 종이를 깔고 먹을 갈며 글씨를 썼다.
이번에 준비한 문방사우는 평소에 사용하던 것보다 질이 좋았다. 전에는 이삼백 문이 들었다면, 시험을 위해 마련한 문방사우는 한 냥 반이나 들었다. 이마저도 하 주인이 깎아준 가격이었다.
고청명이 소리를 질렀다.
“전자야, 나 너무 긴장 돼!”
고청운은 고청명을 살짝 흘겨보며 말했다.
“긴장할 게 뭐가 있어요. 현시가 가장 쉬운 걸요. 사서오경만 잘 외우면 되어요.”
전생에서 시험을 수없이 치른 고청운도 긴장되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고청명 앞에서 티낼 수는 없었다.
“넌 공부를 잘하니까 그렇지.”
고청명은 원망스럽다는 듯이 고청운을 쳐다보며 말했다.
“나는 사서오경을 막 외웠다고. 뒤에 외워야 할 내용들이 그렇게 많은데, 할아버지는 왜 내게 시험을 보라고 하신 거지? 내년에 보면 안 되나? 내년에 보면 조금 더 나을 텐데. 심지어 스승님까지 동의하시다니!”
“아마 먼저 경험을 쌓으라는 뜻 아닐까요?”
고청운은 고백산의 뜻을 알지 못했지만, 아마도 고청명이 과거 시험의 분위기를 느끼고 부족한 점을 깨우치라는 의도 같았다. 고청명은 올해 16세이므로 이제 혼사를 알아봐야 했다. 동생(童生)이나 수재에 합격하고 나서야 혼인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혼인하면, 아내의 격려를 받고 합격할지도 모르는데 말이야.’
그런 사례가 종종 있었다.
“작년에 화본을 봐서, 큰할아버지께서 올해 시험을 보라는 벌을 내리신 걸지도 모르죠. 그럼, 적어도 현시는 통과해야죠. 어쨌든 시험을 볼 수 있게 해주었으니 이건 벌이 아니라 상이지 않나요?”
고청운은 그저 부러울 따름이었다. 이런 벌이라면 기꺼이 받을 만했다.
그 순간, 고청명의 얼굴이 빨개졌다. 당시에 고청명은 화본에 빠져들지 않겠다고 큰소리를 쳤었다. 그러나 자제력을 잃고 몰래 화본을 다 읽은 후 베끼려고 했다가 고백산에게 들키고 말았다.
‘할아버지께서는 내가 글자 연습을 안 하고 있는 걸 어찌 아신 거지? 할아버지께서는 내가 얼마나 공부했는지 진도를 확인하겠다며 단호하게 구셨지. 그러다가 들켜버렸고. 정말 재수 없기도 하지!’
고청운은 고청명이 혼인하면 아이처럼 굴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남자는 집안의 가장이 되면 빠르게 성숙하기 마련이니까.’
고청운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던 고청명은 더 이상 방해하지 않기로 했다.
‘할아버지께서 내게 시험을 보라고 한 건, 전자를 돕기 위해서인데, 오히려 전자가 나를 위로하고 있다니. 정말 부끄럽기 짝이 없구나!’
고청명은 더 긴장하지 않고, 서둘러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고청운은 매우 기뻤다.
‘이번에 정말 육촌형과 함께 좋은 결과를 얻고 싶다.’
* * *
어느덧 시험 날이 되었다. 어두운 새벽에 모두 일어나야 했다. 해가 뜰 때, 고시장에 입장해야 했기 때문이다.
고청운은 준비한 물건을 책 상자에 넣었다. 하루에 한 과목만 시험 보고, 답을 빨리 작성하면 시험지를 제출 할 수 있다. 그래서 음식을 가져가지 않아도 되지만 만일을 대비해서 찐빵 두 개와 물을 챙겼다.
이제 겨우 2월이었다. 솜저고리를 입어도 차가운 바람이 뼛속까지 들어가는 듯했다. 모두 아무 말하지 않은 채, 길을 걸었다. 여러 무리가 그들 곁을 빠르게 지나갔다.
일각(*一刻: 약15분)을 걸어 예방에 도착했다. 아직 날이 밝지 않은 터라, 예방 밖에 높은 횃불이 세워져 있었다. 현장에는 이미 몇 십 무리가 도착하여 대기 중이었고, 관아의 포역들이 질서를 유지하고 있었다.
모두 줄을 섰다. 응시생의 부모, 하인들이 자리를 떠나지 않고 서 있었다.
“올해는 총 몇 명이나 시험을 보는 거지?”
조옥당이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예방 밖에 많은 사람이 있는데도, 어수선한 소리가 나지 않았다.
“약 이삼백 명 정도인 것 같네요.”
하겸죽이 답했다. 임산현은 학문을 중시하는 분위기가 아니어서, 이삼백 명이면 사상 가장 많은 수였고, 이는 매년마다 늘어난 것이었다.
기다리는 건 고역이었다. 고청운은 유난히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고청운의 심장이 조금 빠르게 뛰었다.
날이 살짝 밝자, 드디어 입장할 수 있었다.
문 앞에는 사병 둘, 주변에는 관역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아들아, 시험 잘 봐야한다. 우리 집안은 네게 달려있어.”
누군가가 기대했다.
“아들아, 반드시 이름이 올려야 한다. 어디에 붙든 상관없어, 그런데 붙지 않으면, 나는…….”
누군가는 협박하고 이기적인 말을 했다.
“동생아, 긴장하지 말고, 잘 봐. 긴장하지 말고, 절대로 긴장하지 말고…….”
응시생의 가족들이 당부를 해댔다. 고청운은 고대하가 동행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 * *
고청운은 첫 번째 줄에 배치되었다. 좌측의 사병에게 신분 문서와 시험패를 주고, 다른 사병에게는 책 상자를 건넸다.
책 상자에는 붓 두 자루, 먹, 벼루, 붓통, 붓 거치대, 돌멩이 한 개, 낡은 천, 물을 담은 호리병, 기름종이로 싼 찐빵, 부싯돌 하나가 담겨 있었다.
좌측의 사병이 문서와 고청운을 번갈아 보았다. 문서에는 고시에 응모할 당시의 용모를 묘사한 글이 있었다.
고청운은 그 문서를 봤을 때, 본인과 별로 닮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아직 젖살이 있어서 둥근 얼굴, 눈썹에 있는 작은 점과 같은 특징이 그림에 담겨 있기는 했다. 하지만 얼굴이 지나치게 말끔하고 왜소했다. 수염이 없는 초상화와 11세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아, 열한 살이면 당연히 왜소하지!’
고청운은 ‘왜소’라는 글자가 상당히 불만스러웠다.
사병은 고청운에게 솜저고리를 벗으라고 했다. 전생에서 텔레비전으로 볼 때는 이런 장면에서 아무런 느낌이 없었는데, 정작 얇은 옷 한 장만 걸치고 있으니 추워서 벌벌 떨렸다.
다행히 사병이 빨리 검사를 마치고 솜저고리를 돌려줬다. 고청운은 고청명의 도움을 받아 얼른 솜저고리를 입었다.
‘옷을 다 벗지 않아도 돼서 다행이다. 그래도 찐빵을 반으로 쪼개보지는 않았네? 찐빵 속에 작은 종이를 넣었다가 꺼내어 보는 경우가 있어서 확인한다고 들었는데. 하긴, 아직 현시니까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는 거겠지.’
모든 사람들이 입장한 후, 현령, 현승(*县丞: 현의 부지사. 현령·현장 다음 가는 벼슬아치), 교유(*教谕: 현의 관아 내 직책) 등 관원들의 지도하에 공자에게 향을 올렸다. 절을 세 번했고, 교유가 고시 규칙을 읽었으며, 현령이 시험의 시작을 선포했다.
고청운은 시험패를 든 채, 아역(衙役)을 따라가서 호실을 찾았다.
호실은 연달아 있는 작은 방으로, 그 맞은편에도 한 줄이 있었는데, 두 줄 사이의 간격이 넉넉했다.
고청운은 호실로 들어갔는데, 좁고 낮아서 키가 6척인 사람은 반드시 허리를 숙여야할 정도였다. 다행히 고청운은 왜소해서 높이의 영향을 받지 않았는데도 매우 좁다고 느꼈다. 간격이 4척이기 때문에 딱 탁자와 등자만 하나씩 놓여 있었다. 초 세 개와 물이 담긴 필세(*筆洗: 먹이나 물감이 묻은 붓을 빠는 그릇)를 등자 위에 올려뒀을 정도로 협소했다.
이 중 밖에 있는 목판을 탁자로 삼아 사용했다.
‘이런 누추한 조건이라니, 거의 옥살이하는 수준이잖아? 현대에서 이곳으로 거슬러 온 이전 조대의 황제는 왜 과거 시험 조건을 바꾸지 않은 거지? 아예 방법이 없거나 성공하기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하긴, 황제는 과거를 보지 않아도 되니, 이런 작은 일에 관심을 줄 리가 만무하지. 여러 국가적 대사(大事)로 바빴을 테니까.’
고청운은 문판(*門板: 반닫이 앞편짝 위쪽 문짝의 널. 젖히면 열리게 되어 있다.)을 내려놓아 탁자를 만들고, 등자 위에 있던 초와 필세를 탁자에 올렸으며, 책 상자 안에서 낡은 천을 꺼내어 닦기 시작했다.
고청운의 맞은편에 있는 소년은 열대여섯 살로 보였다. 그 소년이 불안한 듯이 고청운을 봤다. 고청운이 쳐다보아도, 소년은 시선을 거두지 않고 곁눈질을 반복했다.
고청운은 그 소년을 쓱 쳐다보고는 개의치 않으려고 했지만, 너무 답답했다.
‘시험을 봐야 하는데 사전 작업을 어떻게 안 할 수가 있지?’
고청운은 하겸죽과 조문헌에게 경험담을 들었기에 호실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물을 사람이 영 없으면, 스승님께 여쭤 봐도 되는 일이었다. 호실은 더럽고 후줄근하기로 유명했다. 매년 수리하지만 일 년에 딱 한 번 사용하니, 현아에서 소홀히 관리했다. 시험 전에 청소하지만, 그건 청소하는 사람의 양심에 달린 일이므로 대체로 깨끗하지 않았다.
어떤 호실에서 시험을 치르게 되는지는 단지 운에 달린 것이었다.
고청운의 호실은 먼지에 덮였고, 구석에 거미줄이 쳐져 있었다. 하지만 고청운은 매우 만족했다.
‘지붕의 기와가 멀쩡해서, 비가 내려도 물건 젖을 걱정은 안 해도 되겠군.’
고청운은 맞은편의 소년을 본체만체했다. 이를 알아챈 소년은 이를 악물었다. 겉옷을 벗은 소년은 비단으로 된 겉옷도 벗더니 걸레 삼아 호실을 닦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본 고청운은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흥.”
소년은 시위하듯이 득의양양한 태도로 계속 호실을 닦았다.
청소를 마친 소년은 책 상자 안에 있는 물건을 일일이 꺼내 놓았다. 만두와 물만 상자에 남겨둔 소년은 눈을 감고 명상하며 시험지를 배포하길 기다렸다.
잠시 후, 시험지가 배포됐다. 고청운은 우선 초를 밝혔다. 고청운의 호실은 위치가 좋은 편이 아니었다. 막 날이 밝아지고 있었지만, 문과 멀어서 여전히 어두컴컴했다.
시험지의 내용은 매우 풍부했다. 총 스무 장 중 열 장은 백지였다. 고청운은 얼른 시험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훑어보았다. 흐려서 잘 안 보이는 부분이나 빠진 부분은 없는지 확인하고 안심했다.
시험지를 본 고청운은 마음이 놓였다.
고청운은 입김을 불어 촛불을 끈 후,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고청운은 눈을 감기 직전에 맞은편의 소년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시력이 너무 좋아도 문제군.’
고청운은 손으로 턱을 괴었다.
‘시험장이 얼마나 괴상한지. 옛 사람들의 말에는 전혀 거짓이 없구나.’
고청운의 손이 결릴 즈음, 해가 떴고, 호실이 밝아졌다.
고청운은 먹을 갈며 문제에 대해서 생각했다.
현시는 매우 간단했다. 다른 조대의 과거 시험에 대해서는 알 수 없지만, 이번 조대의 현시에 대해서는 이제 알았다.
첫째 날, 첩경(*帖经: 경서의 논문 일부를 가리고 그 대문을 알아맞히게 하던 고시 방법)을 본다. 고청운은 전생에서 비어있는 괄호 안을 채워 넣는 문제를 푼 적이 있었다. 소위 첩경은 암기력 시험이었다. 사서오경의 한 행이 출제되는데, 앞 문장 혹은 뒤 문장 을 적어야 했다. 기억력이 조금만 좋아도 전부 답할 수 있었다.
고청운은 책을 달달 외운 상태였으므로 거뜬히 답을 썼다. 단, 시험지를 깨끗이 유지하면서 글자를 정확하게 써야 하는 것이 고역이었다. 고청운은 전생에서 스무 해가 넘도록 간체자를 썼기에, 주의하지 않으면 작은 실수를 하곤 했다.
고청운은 두 손을 비빈 후, 답을 썼다. 다 작성하고 나서는 잘 말리고 몇 번이나 검토했다. 완벽하다고 느꼈지만 시험지를 제출하지 않고 누군가가 먼저 일어나기를 기다렸다.
‘난 절대로 첫 번째 제출자가 되지는 않을 거야.’
맞은편의 소년이 괴로워하며 발버둥을 쳤다.
고청운은 고소했다. 소년의 털외투를 보아하니, 집안 환경이 좋은 것 같았다. 게다가 몸이 살짝 통통한 편이었다.
‘평소 공부를 게을리 해서 그렇게 된 것이겠지. 부자인가보네.’
그렇다. 그는 그렇게 쪼잔한 면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