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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생활 (26)화 (26/504)

26화. 감동

도산사에 들렀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마을 사람들이 인신매매 사건에 대해서 떠들어댔다. 그 내용에는 고청운과 조옥당이 끊임없이 언급됐다. 고청운은 귀를 쫑긋 세우고 엿들었는데, 자신의 신분이 밝혀지지는 않은 듯했다. 

그 사건은 너무나도 순식간에 일어났고, 모두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아역(*衙役: 각 관청에서 잡역에 종사한 사람)과 포역이 나타나서 인신매매범들을 끌고 갔다. 인신매매범들은 격리되어 심문을 당했다. 

하지만 누군가가 그들의 뒤를 봐줄 수도 있었다. 이는 그저 시간 문제였다. 인신매매범 중에서 그리하여 풀려난 자가 있다면 보복을 하러 오진 않을까? 고청운은 걸으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고청운은 다리가 피로했다. 인신매매범을 잡으려고 뛰어다녀서 그런 것 같았다. 고청운이 조옥당을 흘깃 쳐다보니, 그는 조문헌과 하겸죽에게 매우 용감했던 자신을 뽐내고 있었다. 

“그게 나지. 어렸을 때부터 무공을 배워서 그렇게 솜씨가 좋은 거야. 아버지, 어머니가 반대만 안 하셨으면 무거(*武举: 무예로 선발하는 과거 시험)를 보고 싶은 걸. 그러면 사서오경 같은 건 배울 필요가 없지.”

그렇다. 조옥당의 성적은 가장 낮았다. 시험을 치른 후 등수를 매긴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고청운은 조옥당의 성적이 가장 낮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조문헌은 조옥당의 사기를 꺾거나 비웃지 않았다. 좌우지간 오늘 조옥당과 고청운이 좋은 일을 한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말이다. 

하겸죽은 인신매매범의 출처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오랫동안 계획한 걸까요, 아니면 갑자기 행동한 걸까요? 사모님의 말대로 특정 대상만 고의적으로 겨냥한 걸지도 몰라요. 그들의 옷차림은 마을 사람과 별 다를 바가 없었는데, 왜 마차가 있는 거지요? 그들에게 다른 공범이 있는 건 아닐까요?” 

조문헌도 신나게 이야기했다. 

이 시대에서 마차를 소유하고 있다는 건 이야깃거리가 될 만했다. 마차를 가지려면 많은 돈이 필요했다. 하 수재 가문에도 마차는 없었다. 물론 필요하지 않아서 사지 않은 것일 수도 있었다. 아무래도 논밭이 있으니 소를 사서 키우는 게 더 합리적이니까 말이다.

하겸죽이 분석하자, 불안해진 고청운이 말했다. 

“그러면 저랑 옥당 사형이 보복을 당하지 않을까요?”

그 순간, 득의양양하던 조옥당의 얼굴이 굳었다. 그러나 이내 어깨를 펴고 큰소리를 쳤다. 

“보복? 두렵지 않아. 오면 하나하나씩 때려눕히고 발로 차면 돼!”

“그래도 우리 꼭 몸조심해요!” 

고청운은 아이를 납치당했던 가족이 인신매매범을 실컷 패주기를 바랐다. 

‘답답하다. 좋은 일을 했지만 그때문에 마음을 졸이며  조심해야 하다니! 또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그때는 얼굴을 가리는 게 좋겠어!’

고청운은 두려웠지만, 그렇다고 딱히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아무튼 이번 외출로 많은 것을 얻었다. 어떤 방면의 수확이냐고 묻는다면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를 것이었다.

* * *

밤이 되자, 할아버지인 고계산이 고청운을 불렀다. 고청운은 칭찬과 훈계를 한바탕 들었다.

“다음에는 마음대로 개입하지 말거라.”

고계산이 경고하자, 고청운이 맹세했다.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경거망동하지 않을게요.”

고청운은 가족의 시선을 환기하려고 선물을 꺼냈다.

노진씨와 누이들은 기뻐했으나 구단은 작은 입을 내밀고 물었다. 

“형, 왜 내 것은 없어요? 할머니랑 누나들은 다 있는데, 저도 갖고 싶어요.” 

고청운은 구단의 통통한 볼을 꼬집으며 웃었다. 

“구단아, 나중에 머리가 자라면 사줄게. 지금 사줘도 머리를 묶을 수가 없잖아.”

구단은 작은 손으로 자신의 짧은 머리를 매만지면서 누이들을 살폈다. 그리고 슬퍼하면서 말했다. 

“그래요. 그럼, 머리가 길면 주세요.”

모두 웃었다.

이 씨가 웃으며 말했다. 

“전자야, 어찌 어머니께는 안 드리니? 어머니께서 매우 부러워하시잖니.”

“동서, 그런 소리 하지 마. 내 비녀는 아직 쓸 수 있어. 대아랑 아이들은 한창 꾸며야 될 때고, 어머니는 우리 마을에서 가장 젊은 할머니시니까 또 꾸며야 되고말고.”

고청운은 웃으며 소진씨를 보았다. 소진씨는 활짝 웃고 있었다. 

“숙모, 저도 사고 싶어요. 그런데 책을 베낀 돈을 종이 사는 데 다 써서 십 몇 문밖에 없었어요. 다음에 또 돈을 벌면 할아버지께 술을 사 드릴게요.” 

노진씨가 한소리를 했다. 

“할아버지 버릇 나빠지게. 이 나이에 술은 무슨, 돈 낭비란다!”

그 순간, 활짝 웃던 고계산이 화를 냈다. 

“당신 같은 할매도 꾸미는데, 내가 술 마시는 게 어때서 그러오? 손자가 효도하겠다는데!”

고계산과 노진씨가 말싸움하게 될까봐 고청운이 급히 껴들었다.

“할아버지, 구단이가 이제 세 살이 다 되어 가는데, 이제 정식 이름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이틀 전에 제가 동생을 불렀는데, 근처에 있던 아이 두 명이 대답하더라고요. 이건 좀······.”

고계산은 고민에 잠겼다. 

“생각해볼 때가 되었구나. 둘째야, 어떤 이름이 좋으냐?”

침묵하던 고대하가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말했다. 

“저도 고민이에요. 이름을 잘못 지었다가 괜히 액이 낄까봐 걱정이에요.”

큰아들이 두 살 정도 되었을 때 요절했으니, 세 살인 아이에게는 더욱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고청운은 이러쿵저러쿵하는 그들을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고 얼른 방으로 돌아가서 물건을 정리했다. 그리고 저녁을 먹기 전에는 진흙물을 묻힌 털붓으로 석판에 글씨 연습을 했다. 

글씨 연습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되었다. 조금만 게을러져도 글씨를 쓰는 느낌이 낯설어졌고, 속도도 느려졌으며,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연습에 소홀하게 됐다.

* * *

목욕을 한 고청운은 고계산과 소진씨의 방으로 갔다. 

고청운은 품 안에서 복숭아나무 빗을 꺼내어 소진씨에게 건넸을 때, 소진씨의 반응에 깜짝 놀랐다. 

“어머니······.” 

고청운은 소진씨의 등을 두드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어머니, 울지 마세요. 눈 상해요.” 

소진씨는 고청운을 품에 안고 조금 울고 나서야 그를 놓아주었다. 아들이 조심스럽게 자신의 눈물을 닦아주는 모습을 보니, 소진씨는 코끝이 찡해졌다. 

“오늘 네가 어미를 너무 놀라게 했단다. 다음부턴 경거망동해서는 안 된다. 아이가 납치를 당하더라도 말이다. 네게 무슨 일이 생겨서는 안 돼. 네게 무슨 일이 생기면 이 어미는 어찌 살라는 거니?”

“어머니, 마음 놓으세요. 다음부턴 절대로 그러지 않을게요. 사실 오늘 저도 엄청 조심했는걸요. 믿을 게 있어서 같이 따라 뛴 거예요. 뒤에 많은 사람이 쫓아오고 있었으니까요. 게다가 그 남자와 여자한테 가까이 가지도 않고, 멀리 있었어요. 오히려 위험했던 건 옥당 사형이에요.”

“다른 사람은 신경도 안 쓴다. 나는 너만 신경 쓰지. 앞으로 이런 일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해주려무나.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해도 되지 않니.”

소진씨는 매우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 

고청운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참 동안 눈물을 흘린 소진씨는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그제야 복숭아나무 빗을 보며 웃었다. 

“넌 아들이지만 마치 딸 같구나. 누이들은 내 빗의 이가 다 빠진 걸 몰랐는데, 그걸 네가 보았어.”

“누이들은 돈이 없어서 봤어도 어찌할 도리가 없는 걸요.”

고청운은 매우 솔직하게 말했다. 모든 아이가 고청운처럼 어른의 마음을 가지고 입바른 소리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하지만 고청운은 정말 소진씨에게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고청운이 어릴 적에 병났을 때, 고대하와 소진씨가 밤낮없이 지극정성 간호한 일, 죽어라 돈을 벌어서 병을 고쳐준 일을 생각하면 깊은 감동이 밀려왔다. 

고대에서 이런 부모를 만나다니 정말 운이 좋았다. 고계산과 소진씨는 자식의 발목을 잡는 부모가 아니었다. 

소진씨는 매우 기뻐서 고청운의 이마를 살짝 건드렸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게 맞단다. 할머니께 물건을 사 드릴 때는 어미와 숙모에게는 사 주지 않는 게 옳아. 만약 오늘 그 앞에서 내게 빗을 꺼내줬으면 숙모가 얼마나 난처했겠니. 평소에 숙모가 네게 잘하는 편이잖아. 어미한테 몰래 빗을 건넬 줄도 알고 기특하구나. 나중에 돈을 벌면 모두가 보는 앞에서 공평하게 나누어 주렴.”

고청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소진씨는 소소한 생활의 지혜를 지니고 있었다. 그 지혜를 대아와 이아에게 알려주곤 했다. 

씻고 방에 들어온 고대하는 속닥거리는 소진씨와 고청운을 보고 웃었다.

“또 내 뒷말을 하고 있소?”

“뒷말할 수밖에 없지요. 우리가 부부가 된 첫 달에 비녀를 받았는데, 이후로 아무 것도 사 주지 않았잖아요. 그런데 당신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내가 사준 물건을 입고 있네요.” 

“하하, 난 돈이 없소. 돈은 모두 당신이 갖고 있잖소.”

* * *

고청운은 방으로 돌아왔다. 오늘 외워야 할 것을 아직 다 외우지 않은 상태였다. 

고청운은 오늘 외우기로 정해두었던 걸 다 외운 후 불을 밝혔다. 고청운이 기억나지 않는 부분을 다시 읽으려는데, 노진씨가 무언가를 들고 왔다.

“할머니, 무슨 일 있으세요?"

“네 어미한테 안신탕(安神汤)을 끓이라고 했다. 얼른 마시고 자거라. 오늘 큰일을 치르는 바람에 네가 잘 자지 못할까봐 걱정이다.” 

노진씨는 자애로웠다.

고청운도 오늘 받은 스트레스를 수용할 수 있을지 걱정하던 참이었다. 이번 생에서 처음으로 이런 일을 겪었으니까. 그래서 순종하고 아무 말 없이 탕약을 마셨다. 

고청운은 어릴 적부터 탕약을 자주 마셔서 매우 익숙했기에 한 번에 들이켰다. 약의 온도는 적당했다. 

‘할머니는 얼마나 오랫동안 밖에 서 계셨을까.’

“입을 헹구고 싶지? 여기 맑은 물 있다.”

노진씨는 고청운에게 물을 건넸다. 

고청운은 물을 한입 머금고 있다가 빈 그릇에 뱉은 후 말했다. 

“할머니, 다음에는 저를 부르시면 되어요. 밖에 그렇게 오랫동안 서 계시면 안 돼요.” 

“내가 언제 밖에 서 있었다고? 내가 오자마자 네가 불을 밝혔는데.” 

노진씨는 살짝 흘겨보며 반박했다. 

고청운은 더 말하지 않고 노진씨의 새하얗게 센 머리카락을 바라봤다. 갑자기 알 수 없는 힘이 샘솟는 것 같았다. 

“어서 자거라.”

노진씨가 고청운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 * *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깨어난 고청운은 밤새 잘 잤다고 생각했다. 

‘악몽을 꿀 줄 알았는데, 꿈도 꾸지 않고 날이 밝을 때까지 자다니. 그 안신탕이 효과가 있는 건가?’

그는 세수한 후 정원에서 주먹질을 하다가, 평소 훈련하는 자리에서 과녁을 발견했다. 과녁의 중앙에는 흑탄으로 그린 원들이 있었다. 

고청운은 멈칫했다. 

그때, 당옥(*堂屋: 안채의 한가운데 방)에서 도끼를 든 고계산이 나오며 웃었다. 

“전자야, 이건 네 아비와 내가 방금 전에 만든 것이다. 어떠냐? 앞으로 돌멩이를 던지고 싶을 때 나무 위 말고 과녁에 던지면 된다. 구단도 너를 따라하니 집안의 모든 나무들이 너희 둘 때문에 망가져서는 안 되지 않겠니.”

“좋아요, 할아버지. 엄청 마음에 들어요.”

고청운은 마음이 따뜻해졌고, 솔직한 감상을 이야기했다. 

이날은 이렇게 훈훈하게 시작되었다. 고계산은 논에 가서 벼가 자라는 상황을 보았고, 고청운은 자신의 계획대로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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