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대생활 (25)화 (25/504)

25화. 우연

고청운은 눈을 가늘게 뜨고 여인의 옷을 주시했다. 단갈(短褐)과 마(麻)치마 차림이었다. 그리고 다시 아이의 비단옷을 살폈다. 갑자기 정자에서 그 옷을 입고 있던 아이의 모습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인신매매범이다! ……아닌가? 옆에 공범은 없나?’

다급해진 고청운은 다리가 풀릴 것만 같았다. 그 여인의 곁에는 마의(麻衣) 차림의 중년 남자가 있었는데, 계속 한 손은 품 안에 넣고 있었다. 

‘내가 잘못 판단했나? 내 생각이 너무 앞서 나간건가? 남의 일에 너무 개입하는 걸지도 몰라. 남자가 칼을 잡고 있으면 어떡해.’ 

고청운은 여인이 인파를 거의 헤쳐 나간 것을 보았다. 한 과일 노점상은 여인이 지나갈 수 있도록 복숭아를 옆으로 치워두기도 했다.

고청운은 조옥당 무리가 있는 쪽을 쳐다봤다. 

조옥당은 아직 오지 않은 고청운을 걱정하면서 찾는 중이었다.

“사형! 이 사람, 인신매매범이에요! 이 사람 아이가 아니에요!”

고청운이 용기를 내어 소리를 질렀다. 목소리가 날카롭게 갈라졌다. 

그 순간, 조옥당은 매우 놀랐다. 

고청운이 소리를 지르자 중년 남자가 뒤돌아봤다. 중년 남자는 고청운을 죽일 듯이 노려봤다.

“아이를 안고 있는 여자는 인신매매범이에요! 아이를 납치했어요! 모두 그녀를 잡아주세요!” 

조옥당을 본 고청운은 용기를 내어 소리를 질렀다. 곁에 많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더욱 힘을 낼 수 있었다. 고청운은 인신매매범의 매서운 눈빛에 맞섰다. 

여인을 위해 복숭아를 치워뒀던 과일 노점상인도 깜짝 놀라서 얼어붙었다. 고청운은 노점상에 있는 복숭아를 하나 들더니 중년 남자를 향해 던졌다. 

고청운은 매우 정확하게 조준했다. 그 복숭아는 중년 남자의 얼굴에 맞았다.

놀란 중년 남자는 고청운을 죽일 듯이 노려보고는 줄행랑을 쳤다. 

주위가 소란스러워지자 사람들의 시선이 몰렸다.

고청운이 ‘인신매매범’을 입 밖으로 내뱉었을 때부터 사람들은 신경을 곤두세웠다. 인신매매범은 벌을 받아 마땅했다! 

정신을 차린 조옥당은 아이를 안은 여인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고청운도 함께 뛰면서 소리를 질렀다. 

“빨리요! 저 여자를 잡아 주세요! 저 인신매매범을 잡아 주세요!”

노점상의 뒤에는 들풀이 난 공터가 있었다. 그곳에 소달구지, 마차, 당나귀와 같은 가축을 두고, 몇 사람이 지키고 있었다. 

그들은 고청운이 지르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래서 아이를 안은 여인과 중년 남자, 조옥당과 고청운, 그리고 여러 사람이 뛰는 것을 구경만 했다.

드디어 조옥당이 아이를 안은 여인과 중년 남자를 따라잡았다. 

고청운은 가까이 갈 엄두가 나지 않아서 허리를 숙이고 땅에 있는 돌을 몇 개 집어 들었다. 이어서 주먹만 한 돌을 힘껏 던졌다! 

퍽! 

돌은 중년 남자의 종아리에 정확히 맞았고, 중년 남자가 비틀거렸다.

그 틈에 조옥당이 중년 남자의 팔을 비틀었다. 

중년 남자는 옷 안에 숨겨 두었던 작은 칼로 조옥당의 팔을 찌르려고 했다.

“조심해요!” 

고청운은 소리를 지르며 망설이지 않고 손 안에 쥐고 있던 돌을 남자를 향해 던져버렸다.

훗날, 고청운은 당시의 자신을 돌이켜 보며 용감했다고 생각했다. 분명 두려웠음에도 불구하고 손발이 알아서 움직였다. 고청운은 중년 남자의 예리한 칼을 봤다. 마치 코앞에 있는 것 같았다.

고청운은 집에서 할 일이 없을 때, 돌을 던지며 놀곤 했다. 항상 조준을 잘했는데, 그 날에는 유난히 더 잘 맞췄다. 

조옥당의 아연실색한 표정, 중년 남자의 살기등등한 두 눈. 그리고 아이를 안은 여인이 뒤돌아보는 모습. 고청운은 이 모든 것을 똑똑히 봤다. 

돌멩이는 중년 남자의 손에 정확히 맞았다. 고청운은 저도 모르게 멈칫했다. 

고청운은 조옥당의 용감한 손을 보지 못했다. 재빨리 모인 사람들이 조옥당을 도와 인신매매범을 잡았다. 

고청운은 땅에 주저앉아서 숨을 크게 들이쉰 다음, 깊게 내쉬었다. 그랬더니 온몸의 긴장이 풀리는 것 같았고, 등에 매고 있는 책 상자가 유난히 무겁게 느껴졌다. 심장이 터질 듯이 뛰었고, 두 다리는 힘이 풀렸으며, 입이 바짝바짝 말랐다. 

‘너무 무서워!’

고청운이 땅에 앉은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날카로운 비명이 들렸다. 

“전자야! 내 아가야!” 

어디선가 나타난 소진씨가 고청운을 향해 달려왔다. 고청운은 소진씨의 부드러운 품에 안겼다. 소진씨의 품에서 익숙한 냄새가 났다.

“어머니, 저, 저 괜찮아요.”

뒤늦게 겁이 난 고청운은 잠시 힘을 잃었을 뿐이었다. 인파를 밀며 급히 다가오는 노진씨를 보자 마음이 따뜻해졌다. 

“사형은 어떻게 됐어요?”

고청운은 조옥당이 생각나서 급히 물었다. 

소진씨는 심장이 튀어 나올 것 같았다. 겁이 난 소진씨는 고청운의 몸을 훑으며 다친 곳이 없는지 확인했다. 마음이 놓인 소진씨는 고청운을 일으켜 세운 후 퉁명스럽게 답했다.

“지금 남 걱정할 때야? 네게 무슨 일이 있을까봐 무서워 죽는 줄 알았는데, 남 신경 쓸 겨를이 있니.” 

소진씨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눈으로는 군중을 살폈다. 소식을 듣고 인파가 몰려와서 발 딛을 틈이 없었다. 고청운은 누군가의 칭찬을 듣고서야 조옥당이 안전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드디어 도착한 노진씨가 고청운을 품에 안고 이곳저곳을 훑더니 안심했다.

고청운은 잔소리하는 소진씨와 노진씨에게 계속 죄송하다고 했다. 그들이 어떤 마음인 줄 알기에 조금도 짜증나지 않았다.

이후 이 사건은 현아(*縣衙: 현(縣)의 수령이 사무를 맡아보던 관아)의 하급 관리, 하인, 그리고 아이의 가족이 모여서야 해결되었고, 진상이 밝혀졌다.

고청운의 짐작이 맞았다. 그 젊은 여인이 아이를 훔쳤고, 그 아이의 가족은 정자에서 봤던 서른 남짓의 부녀자였다. 부녀자의 곁에 있었던 남종은 보였는데, 여종은 보이지 않았다.

‘어쩐지 그 아이의 옷이 매우 낯익더라니.’

어수선한 사건의 매듭이 지어졌다. 사람들에게 한바탕 맞은 인신매매범은 관부(官府)에 잡혀갔다.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이 일에 대해 논했다. 인파가 빨리 모였다가 흩어졌다.

부녀자는 고청운에게 한참 동안 감사를 표하고 이름을 물었다. 

고청운은 말하고 싶지 않은데, 부녀자가 계속 물었다. 부녀자는 하인을 부릴 정도로 집안 사정이 좋아 보였다. 고청운은 감사를 받고자 한 일은 아니지만, 자신과 함께 이 일을 도운 조옥당을 생각했다.

고청운은 조옥당을 쳐다봤다. 

많은 사람들의 칭찬을 받은 조옥당은 낯이 빨개진 채로 말을 더듬거렸다. 조옥당은 연신 두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아니, 아니……, 괜찮습니다.”

아이의 가족들도 더 이상 강요하지 않고 몇 마디를 급히 하더니 아이를 안고 자리를 떠났다. 놀란 아이는 계속 흐느껴서 목이 쉰 상태였다. 새빨간 낯빛이 걱정된 아이의 가족은 서둘러 의원에게 갔다. 

이런 일이 생기면 가족이 보고 싶기 마련이었기에 다들 얼른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고청운은 과일 노점상을 찾아가서 복숭아를 허락 없이 집어 던진 것을 사과했다. 상인은 흥분한 기색이었다.

“아니, 아니, 잘하셨어요! 아이를 훔친 놈은 잡아 죽여 마땅하죠! 아직 복숭아가 더 있는데, 전부 드릴게요! 돈 안 받고요!”

상인의 말투에는 정의와 분노가 뒤섞여 있었다. 상인은 고청운의 손에 커다란 복숭아 몇 개를 쥐어줬다. 

상인의 진심을 느낀 고청운은 정중히 거절한 후 자리를 떴다.

* * *

노진씨가 대아를 데리고 왔다. 노진씨는 이곳에서 복숭아, 절인 달걀, 날달걀 등을 팔았다. 이제는 복숭아 몇 개만 남아 있었다.

고청운의 가족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조 씨도 함께했다. 이번에는 산길로 가지 않고 진(镇)이 있는 방향으로 갔다. 

우마차에는 고청운네의 텅 빈 광주리, 책 상자, 조 씨가 산 물건이 있고, 하지와 하 소낭자도 타고 있었다. 그 외의 사람들은 두 발로 걸었다.

걷는 내내 조 씨가 잔소리했다.

“비록 올바른 일을 하셨지만, 너무 경거망동하셨네요. 주위에 어른이 그렇게 많은데, 꼭 아이인 두 분이 쫓아가야 했나요? 특히, 옥당이! 상대방이 칼까지 휘둘렀는데, 만약 무슨 일이라도 있었으면, 제가 부모님을 무슨 낯짝으로 뵙나요?”

노진씨가 동의하며 덧붙였다. 

“사모님 말씀이 맞다. 너무 경거망동했지.” 

말을 마친 노진씨가 고청운을 쳐다봤다. 

고청운과 조옥당은 어깨를 으쓱거리고 아무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 청운이는 어떻게 그 여자가 인신매매범인 걸 안 거야? 그 아이 생김새는 어떻게 기억하고?”

하겸죽은 고청운과 조옥당이 혼나는 모습을 안타깝게 여기면서 연신 질문했다. 

고청운은 노진씨와 소진씨를 슬쩍 쳐다보고는 작은 소리로 답했다.

“아이를 꽁꽁 싸맨 상태여서 생김새는 보지 못했어요. 하지만 우리가 정자에 있을 때, 아이가 입고 있던 옷의 천 종류를 기억해냈어요. 천의 재질을 자세히 보니, 인신매매범의 옷과 아이의 옷이 차이가 크더라고요. 애초에 가족처럼 느껴지지 않았어요.”

고청운은 전생에서 범죄와 관련한 정보를 많이 접해서 상상력이 뛰어났다. 그래서 사소한 것에 관심을 가지곤 했다. 

모두 의아했다. 보통은 타인에게 이토록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런데 고청운은 줄곧 타인을 살폈고, 그 덕분에 인신매매범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인신매매범이 고청운의 곁을 지나가지 않았다면 발각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그저 우연이었다!

당시에 고청운은 명줄을 매우 아꼈기 때문에 조금 두려웠다. 그래서 고민했지만, 그 아이의 천진난만한 모습을 떠올리자 외면할 수가 없었다.

‘만약 옥당 형이 없었다면, 난 어떻게 행동했을까?’

고청운은 생각했다. 아마도 어른들의 힘을 빌렸을 것이다. 좌우지간 고청운은 어린 아이여서 힘이 없었다. 그렇다고 타인에게 도움을 청하느라 시간을 허비했다면 인신매매범을 놓쳤을 것이었다.

그래서 고청운은 조옥당에게 가장 감사했다. 조옥당은 위기의 순간에 고청운의 앞에 나타났고, 인신매매범을 쫓아갔다.

어른들도 그렇게 생각한 것 같았다. 그래서 조옥당을 칭찬했고 걱정하는 마음을 담아 주의를 주기도 했다. 

고청운과 조옥당은 눈빛을 교환하며 웃었다.

하지는 도리어 고청운의 돌 던지는 실력에 관심을 가졌고, 우마차에서 머리를 내밀며 백발백중인 비결에 대해서 계속 물었다. 

고청운은 약간 난처했다. 실은 고청운에게 약간의 피해망상이 있었다. 고청운은 경성으로 시험을 보러 갔을 때, 나쁜 사람을 만나면 스스로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대장장이를 찾아가서 호신을 위한 비수(*匕首: 날이 예리하고 짧은 칼)를 만들어 달라고 의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채칼이나 도끼를 들고 외출하기도 우스웠다. 그리고 책 상자에 칼을 넣고 다니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소진씨는 계속 웃었다. 

“이 아이는 집에 있을 때, 정원에서 계속 돌을 가지고 놀았어요. 어렸을 때부터 돌 가지고 노는 걸 좋아해서 우리 집 정원에 있는 큰 나무의 나무껍질이 모두 벗겨져 버렸는걸요.”

조 씨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아이가 총명해서 다행이에요. 주위에 그렇게 많은 사람이 있었는데 아무도 그 여자가 인신매매범인 걸 몰랐으니까요.” 

조 씨는 앞뒤의 행인을 보면서 잠시 생각하고는 말을 덧붙였다.

“이 일에 대해서 더 이야기하지 말죠. 그 두 사람은 보통 인신매매범이 아닌 듯해요. 우리가 다른 집안일에 껴들게 된 것 같아요.”

세상물정에 밝은 노진씨는 그 뜻을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거리며 화제를 바꾸었다. 

“댁의 두 아이는 보살님 옆에 있는 동남동녀(*童男童女: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를 아울러 이르는 말)처럼 생겼어요. 전자가 그러는데 손자님이 공부를 그렇게 잘한다면서요.” 

조 씨가 진심으로 웃었다. 조 씨에게는 공부를 잘하지 못하는 아들이 하나 있는데, 그는 아내와 함께 부성(府城)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총명한 손자인 하지가 가문의 가장 큰 희망이었다. 하지는 아버지와 딴판이었다. 

조 씨는 줄곧 침묵한 채 걷는 대아를 보며 웃었다. 

“그래도 아이는 아이지요. 지금은 아이의 할아버지 밑에서 배우고 있어요. 이 아이가 댁의 큰손녀따님이지요? 올해 몇 살인가요? 적당한 상대는 있나요?”

“그러게 말입니다. 올해 열다섯인데 아직 상대가 없어서 지금 찾고 있어요.”

노진씨는 재빨리 조 씨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고청운은 조 씨, 노진씨, 소진씨, 하 소낭자의 이야기를 들었다. 대아는 끼어들 자리가 아니었기에 함께 담소를 나누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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