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대생활 (24)화 (24/504)

24화. 시를 짓고 싶은 마음

음식을 다 먹은 하겸죽, 조옥당, 조문헌, 하지가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연못으로 손과 얼굴을 씻으러 갔다. 정자에는 고청운, 조 씨, 하 소낭자만 남게 되었다.

그제야 조 씨는 고청운을 불러 찬찬히 살핀 후 집안 상황을 묻기 시작했다. 

하 소낭자는 손에 주전부리를 쥔 채 입을 뽀로통하게 내밀고 있었는데, 싫은 기색이 만연했다. 그래도 고청운을 쳐다보는 눈에는 호기심이 담겨 있었다.

고청운은 떳떳하지 못할 게 없었다. 조 씨는 하 수재와 고백산이 쌓은 세월을 지켜봤으니, 고청운의 집안 상황에 대해서 잘 알고 있을 게 분명했다. 그러므로 고청운은 그저 있는 그대로 털어놨다.

고청운의 이야기를 들은 조 씨는 음식을 권하며 미소를 지었다.

“자, 드시지요. 이건 계화설탕밤떡인데 주방아낙이 만든 거예요. 아까 배불리 못 드셨죠?”

고청운은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으나 동시에 감사를 표했다.

“괜찮습니다, 사모님. 이미 배불러요.”

“분명 배부르지 않을 텐데요. 제가 엄청 조금 드시는 걸 봤는걸요. 지금은 몸이 한창 자랄 때잖아요. 이걸 드릴게요. 이 아이는 먹다가 질린 모양인지 아무리 달래도 먹으려고 하지 않네요. 남기면 아까우니까 다 드세요. 드셔본 적 없지요? 정말 맛이 좋답니다.”

조 씨는 간식이 든 찬합을 고청운의 손에 쥐어주었다. 

그 순간, 고청운은 멈칫하며 이상하다고 느꼈다. 그러나 조 씨는 어른이므로 뜻을 거스르기 어려웠다.

“사모님, 감사합니다.”

열 살인 고청운은 이토록 정교한 간식을 본 적이 없었다. 

조 씨는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했다. 

“좋아요. 이제 다들 돌아올 때가 되었으니 다시 건너가보시죠.”

고청운은 음식함을 고이 들고서 원래 앉아있던 자리로 향했다. 고청운이 찬합을 바닥에 내려두었을 때, 조 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 그래. 먹기 싫으면 버리자꾸나. 조금만 마음에 안 들면 먹고 싶지 않아하는구나. 밖에 있는 많은 사람들은 이걸 먹고 싶어도 못 먹는단다.”

“할머니, 저는 그냥 먹기 싫은 걸요. 그리고 오늘 이 간식 맛은 별로 신선하지도 않은 것 같아요.”

“밖에 반나절이나 두었고 막 만든 것도 아니니, 신선하지 않은 건 당연하지.”

……

‘사모님은 내게 왜 이러신 거지? 내가 너무 예민한 건가? 열등감 때문인 걸까? 그런데 내가 열등감 느낄만한 게 뭐가 있다고.’

고청운은 진지하게 고민하면서 조 씨를 바라봤다. 조 씨는 이전과 다를 바 없이 자연스럽게 행동했다. 방금 전에 한 말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것 같았다.

‘내가 너무 예민한 건가?’

그때, 하겸죽, 조옥당, 조문헌, 하지가 돌아왔다. 

“청운아, 저쪽 못의 물이 매우 시원해. 가서 세수해도 좋을 것 같아."

하겸죽이 웃으면서 제안했다. 

“괜찮아요, 별로 안 더운걸요.”

고청운이 고개를 내저었다. 

“햇빛이 너무 강하니, 조금 더 있다가 돌아가도록 하죠?”

조문헌은 더운 날씨를 견딜 수 있을지 걱정했다. 

그의 말에 모두가 찬성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조 씨와 하 소낭자가 정자에서 나갔다. 

남은 사람들은 정자에서 풍경을 바라봤다. 사방으로 트인 길, 황금빛의 논, 바람이 불면 물결처럼 넘실거리는 벼, 끊임없이 이어진 푸른 산. 시원한 산바람이 얼굴을 스칠 때마다 더없이 상쾌했다.

고청운은 풍경 덕분에 방금 전의 생각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하겸죽은 시흥(*詩興: 시를 짓고 싶은 마음)이 일은 나머지, 내키는 대로 몇 구절을 지었다. 눈앞의 풍경을 노래하는 내용이었는데, 모두 좋다며 손뼉을 쳤다. 

고청운은 하겸죽의 옆에서 시를 지을 수 있도록 도왔다. 

다들 붓을 들고 써내는 하겸죽을 에워싸고 지켜보았다. 그리고 어떤 글자를 고쳐야 하는지도 의논했다. 

시를 읽은 고청운은 답답했다.

‘고대인들은 다 이렇게 대단한가? 그냥 아무렇게 말해도 글이 되다니.’

조문헌은 하겸죽이 크게 과시하는 것을 보고, 자신도 지지 않으려고 한 수 적어내렸다. 

다 같이 분석하면서 몇 글자를 고친 후에 조문헌을 칭찬했다. 

고청운은 일말의 깨달음과 수확을 얻었지만 더욱 답답해졌다. 그런데 조옥당은 감탄하면서도 시를 쓰고 싶은 충동을 느끼지 않는 것 같았다.

고청운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보아하니 모든 사람이 천부적으로 시를 쓰는 재능을 가지지는 않는 것 같았다. 고청운은 시를 쓸 때마다 몹시 초조했고, 한 수를 쓰기 위해서 고민을 거듭했다. 그렇게 쓴 시는 하 수재가 혹평한 적도 있었다. 

“청운아, 네 차례야.”

하겸죽은 왼손은 뒷짐을 지고 오른손은 허리춤에 둔 채로 말했다. 산바람이 불자 하겸죽의 옷깃이 살랑거려 매우 품위 있어 보였다. 

“다들 이 풍경을 보고 시를 짓는데, 나는 볏논만 보면 우리 집 벼를 벨 때가 되었다는 생각만 들어요. 사부님께서 농번기 휴가를 주실 때가 되지 않았는지요?”

고청운은 고뇌하는 표정을 지었다. 농번기 휴가는 현대에서나 있는 방학이었다.

엉뚱한 그의 말에 모두 크게 웃었다. 

이때, 돌아온 조 씨가 어떤 상황인지 물었다. 

하지는 마치 보물을 바치는 것처럼 하겸죽과 조문헌이 지은 시를 보여 줬다. 하겸죽이 막을 겨를조차 없었다. 

글을 읽을 줄 알았던 조 씨가 시를 훑어보더니 하겸죽과 조문헌을 쳐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훌륭하네요, 훌륭해요. 이렇게 짧은 시간 동안 이런 시를 짓다니, 참 영민하기도 하죠.”

그 순간, 하겸죽과 조문헌의 얼굴이 빨개졌다.

어느덧 행인이 부쩍 줄었다. 시흥(詩興)도 발산했으니, 이제 산을 내려갈 준비를 했다. 

고청운은 길을 걷다가 조옥당에게 말했다.

“하 사형이 문헌 사형보다 시를 잘 짓고, 문헌 사형이 하 사형보다 책의 뜻을 더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두 분이 지은 시가 막상막하네요. 보아하니 그동안 문헌 사형이 매우 노력하고 있었나 봐요.”

고청운은 진심이었다. 고청운은 시를 짓는 능력은 없었으나, 감상할만한 실력은 지니고 있었다. 

하겸죽과 조문헌의 실력은 그들의 나이에 비해 훌륭했다. 

조옥당은 피식 웃었다. 

“넌 정말 그들이 즉석에서 지은 줄 아는 거니? 아마 여기로 온다고 했을 때부터 이미 집에서 준비를 했을 거다.” 

고청운은 깜짝 놀랐다. 그 말에 조문헌은 비틀거리다가 넘어질 뻔했고, 하겸죽은 귀뿌리가 새빨개졌다.

‘그렇군. 보아하니 모두 다 알고 있었나봐. 순진한 나만 자극을 받고 스스로를 의심한 거군.’ 

고청운은 마음이 놓였다. 이 작은 지역에서도 천재를 몇 명이나 만난다면, 고청운이 다른 이들과 경쟁할 필요가 있겠는가? 좌우지간 과거에서는 시(詩)에 대한 재능이 중요했다. 비록 많은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았지만, 시를 잘 쓰면 분명 주임 시험관의 눈에 들 수 있었다. 시를 잘 못 쓰면 그들의 눈에 띄지도 못할 것이었다.

아무래도 책론(*策论: 과거시험에 주어진 대책과 의론문)에서는 주임 시험관에게 받는 인상이 매우 중요했다. 

산은 오르는 건 쉬웠지만, 하산하는 건 어려웠다. 하산할 때는 더욱 주의해야 했다. 그래도 도산사의 계단은 걷기 수월한 편이라서,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이미 산자락에 도착했다.

산 아래로 갈수록 사람이 많아졌다. 마치 현성 사람들이 모두 모인 것 같았다. 거기에 자리를 깔고 물건을 파는 상인까지 있어서 길이 더욱 혼잡했다.

길의 양측에 작은 노점상들의 물건이 널브러져 있었다. 가장 많이 팔리는 건 찻물과 음식이었다. 만두, 찐빵, 혼돈(*馄钝: 중국식 만둣국), 면병(*面饼: 밀반죽하여 구운 빵의 일종)이 있었고, 심지어 복숭아를 팔기도 했다. 복숭아 향을 맡으면 입에 침이 고였다. 사람이 유독 몰린 곳에서는 복숭아 향이 흩어져 버려서 아쉬웠다.

고청운은 시끌벅쩍한 곳에서 빗과 머리장식을 파는 노점상을 발견했다. 이가 다 빠진 나무빗을 쓰는 소진씨에게 새것을 사주고 싶었다. 고계산은 목수이긴 했으나, 빗을 만들 줄 몰랐다.

하겸죽을 비롯한 일행이 걸음을 멈추자, 고청운은 마음을 놓고 빗을 보기 시작했다.

고청운은 염낭을 시주했지만, 품 안에 돈을 조금 가지고 있었다. 소매치기를 당한다든지, 갑작스런 일이 닥칠 것을 대비해둔 것이었다. 

“하 사형, 저 뭐 좀 사고 빨리 따라 갈게요. 먼저 가고 계세요.”

고청운이 하겸죽에게 말했다.

하겸죽은 중년의 부녀자가 메고 있는 대나무 광주리에 밀려서 고생 중이었다.

“청운아, 그럼 조금 더 서둘러. 너무 오래 멈춰 있지 말고!” 

“알겠어요."

이렇게 사람이 많은 곳에서 일행을 놓치면 다시 찾기가 매우 어려웠다. 하겸죽은 고청운이 고작 10살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있었다. 만약 위험한 일이라도 생기면 어떻게 하나? 사람이 붐비는 곳에는 소매치기와 거지들이 창궐하기 일쑤였다. 순찰을 돌아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고청운은 재빨리 복숭아나무 빗을 골랐다. 소진씨만 편애하면 안 될 것 같아서 노진씨에게 줄 복숭아나무 비녀도 하나 골랐다. 그리고 매화가 멋들어지게 새겨져 있는 비녀가 마음에 들어서 자신이 쓰려고 하나 더 샀다. 

‘이제 이 비녀로 머리를 올리면 되겠지.’

고청운은 잠시 생각하다가, 세 누이에게 주려고 꽃이 조각된 나무 비녀도 골랐다. 

이 물건들은 흔히 볼 수 있는 복숭아나무로 만든 것이기 때문에 매우 저렴했다. 가격을 흥정하고 나니, 15문밖에 되지 않았다. 값을 치르던 고청운은 하겸죽이 있는 쪽을 확인했다. 일행이 아직 멀리 가지 않았고, 물건을 사는 조 씨도 보여서 안심했다. 

물건을 품에 넣은 고청운은 급히 군중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그리고 하겸죽이 있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하지만 고청운은 몇 걸음을 떼지 못하고 멈췄다. 사람이 너무 많았으므로 서두르지 않고 노점상이 깔아 놓은 물건을 구경하며 천천히 가기로 했다. 그리고 아는 사람이 있는지, 특히 가족이 있는지 살폈다.

그러던 중에 목청껏 우는 두세 살배기 아이를 안은 젊은 여인을 보았다. 그 여인은 인파를 비집고 지나가려고 최선을 다했다. 여인은 군중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면서 다급하게 말했다. 

“잠시만요, 잠시만요! 조금 비켜주세요. 제 아들이 많이 아파요, 의원을 보러 가야 해요!”

여인이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고청운은 여인을 위해서 얼른 자리를 비키며 외쳤다.

“모두 비켜주세요! 아이가 병이 나서 급히 가보셔야 한대요!”

고청운이 외치자 동정심을 느낀 사람들이 길을 내주려고 안간힘을 썼다.

곧이어 아이를 안은 여인이 고청운의 앞을 지나쳤다.

고청운은 저도 모르게 아픈 아이에게 눈길을 뒀는데, 여인은 최선을 다해 아이의 얼굴을 숨겼다. 

‘저 작은 손! 새빨간 옷! 어디서 본 것 같은데?’

놀란 고청운은 여인의 길을 막아섰다.

“비켜요!”

여인이 고개를 들었다. 외모가 수려한 여인은 산발한 채 눈물을 줄줄 흘렸다.

고청운은 매우 미안해서 변명했다. 

“죄송합니다. 뒤에서 누가 밀쳐서요.” 

길을 내준 고청운은 아이를 다시 살피려고 했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아이의 갈라진 울음소리만 들렸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