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대생활 (22)화 (22/504)

22화. 도산사 (2)

‘묘대랑?’

고청운은 재빨리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묘대랑과 묘이랑, 이 형제의 이름은 고청운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적이 있었다. 맨 처음 이 이름들을 들었을 때, 고청운은 그 이름들이 자신의 아버지와 삼촌 이름보다도 막 지었다고 생각했다. 보통 형제들은 대랑(*大郎: 장남), 이랑(*二郎: 차남)이라고 불렸는데, 고백산은 고청운에게 묘이랑이라는 이름에서의 ‘랑’은 랑(郎)이 아닌 명랑(明朗)의 랑(朗)이라고 말했다. 고향 호적에 기록할 때, 당시의 촌장이 글씨를 잘못 써서 이 사달이 났다고 했다. 

“몇 달 전에 분가한 걸로 들었는데? 저번에 청명 형이 그 집 할머니가 작은아들을 편애한다고 했어.”

고청운이 공부하러 고백산 댁에 갔던 어느 날, 고청명이 묘이랑의 어머니가 방문했었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묘이랑의 어머니는 달걀 한 바구니를 들고서 고백산 댁을 찾았다고 했다. 

“분가한 건 사실이지만 지금 그 할머니는 작은아들과 살고 있어.”

대아는 종일 공부만 하는 고청운이 이런 일도 알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고청운은 눈살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겼다. 한동안 그 이야기 역시 마을에서 회자가 되어 여러 소문을 자아냈다. 

“이건 아마 묘대랑의 어머니가 낸 소문일 거야. 그 집은 십 몇 묘나 되는 땅에 모시풀을 심어 두어서 은전이 넉넉한 편인데, 묘대랑의 어머니가 인색한 정도가 도를 지나친 거지. 또, 부귀와 같은 집안 아이들도 배를 겨우 채울 수 있을 정도로 먹을 수는 있지만, 허기를 면치 못한다고 들었어.”

‘아마 자주 죽을 먹고 있을 거야.’

“안 돼, 안 돼. 그 집으로는 시집가면 안 돼. 전에도 그렇게 좀생이였는데 이제 분가하면 제멋대로 살겠지. 더 심할 수도 있어."

고청운은 고개를 내저었다.

* * *

“묘대랑가(家)에는 현명한 부녀 한 명이 있단다.”

소진씨가 고청운에게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묘대랑가는 벽은 하얗고 기와는 검은 집을 한 채 지었는데, 그녀가 모든 살림을 한다고 했어.”

사실 대아도 시집가고 싶지 않았다.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집안사람들은 대아를 비롯한 여자아이에게 특별히 잘해주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배는 채우며 살 수 있게 해줬다. 특히, 대아는 지금 농사일을 하지 않아도 배불리 먹었다. 매월 한 끼 정도는 고기도 먹었다. 대아가 고청운처럼 많이 먹지는 않지만, 그래도 마을에서 여자아이가 이렇게 사는 건 드문 일이었다. 

‘시집가면 제대로 끼니를 챙겨 먹을 수 있을까?’

대아는 처음으로 깊이 의심했다. 

“묘부귀 집안 사정은 마을에서 상당히 훌륭한 편이지. 묘부귀는 올해 열여섯 살이고, 나이 차이 때문에 나와 같이 어울린 적은 없지만, 수더분한 사람인 걸로 기억해.” 

고청운은 턱을 만지다가 갑자기 윗니가 심하게 흔들리는 걸 느꼈다.

‘또 이갈이를 할 때가 되었나?’

고청운은 고민하면서 말을 이었다. 

대아는 고개를 푹 숙인 채 굳은살이 박인 손으로 꽃잎을 만지며 가벼운 장난을 쳤다. 

“땅에서 꼴풀을 벨 때, 가끔 그가 보였어. 한번은 산에서 장작을 패고 있는데, 그가 도와주려고 하는 걸 내가 당연히 거절했지.”

눈을 동그랗게 뜬 고청운에게 대아가 급히 말했지만, 고청운은 여전히 머뭇거렸다.

“묘부귀는 글자를 한 자도 모르고 어머니와 같이 살잖아. 묘부귀의 어머니와 누이가 충돌했을 때, 묘부귀가 누이 편을 안 들지도 몰라.”

대아의 이야기를 듣자 하니, 묘부귀는 대아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여자가 시집가는 문제는 정말 중요한 사안이었다. 고대뿐만 아니라 전생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몹쓸 남자에게 잘못 시집가면 울고 싶어도 마땅히 울 곳조차 없었다. 지금의 조정은 과부가 재가(再嫁)하는 것은 격려했지만 부녀가 이혼하는 것은 마땅하게 보지 않았다. 

“그럼, 큰누이는 그러고 싶어?"

고청운은 고개를 들고 대아를 쳐다봤다. 만약 대아가 원한다면 다시 이야기해 볼 문제이고, 만약 대아가 원하지 않는다면 고청운이 소진씨에게 가서 이야기할 생각이었다.

대아는 고개를 내젓고 다시는 입을 열지 않았다. 

고청운은 그제야 대아의 뜻을 알았다. 대아는 묘부귀가 눈에 들어오지 않은 것이었다. 

“응. 큰누이, 알겠어.”

“전자야, 고마워.”

대아는 불쑥 고청운을 살짝 안더니, 줄행랑치듯 그 자리를 떠났다. 

고청운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대아가 이렇게 감정을 드러내는 건 매우 드문 일이었다. 

저녁이 되자, 고청운은 소진씨에게 대아와 관련한 일에 대해서 물었다. 소진씨는 아직 고민하는 중이라, 고청운의 질문에는 응하고 싶지 않았다. 고청운이 몇 마디 덧붙이니, 소진씨는 더욱 머뭇거렸다. 

소진씨의 반응이 이러하니, 고청운도 별다른 수가 없었다. 소진씨는 이런 일에 관해서는 매우 강경했다.

“어떤 결정을 내리든, 사전에 제게 말해주세요.”

고청운이 소진씨에게 요구했다. 

고씨 집안에서 고청운이 아무리 총애를 받는다 해도, 어떤 사안에는 결정권이 없었다. 심지어 어떤 일에 대해서는 알 권리조차 없었다. 고청운이 여러 번 집안 사정을 나아지게 할 좋은 방법을 제시하지 않았다면, 특히 달걀 절이는 방법을 제시하지 않았다면, 대아가 약혼을 한 후에야 관련된 소식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다행히 고청운은 달걀 절이는 방법을 제시한 후부터 집안에서 어느 정도의 결정권을 갖게 된 것이었다.

* * *

쉬는 날이 되었다. 바람은 포근하고 햇볕은 따스했다. 고청운과 동창들은 하 수재 집안의 우마차(*牛馬車: 우차와 마차를 통틀어 이르는 말)를 따라 길을 나섰다. 우마차 안에는 사모님과 하 소낭자가 앉아 있었고, 고청운, 하겸죽, 조옥당, 조문헌은 하지와 함께 우마차를 따라 걸었다. 

노복이 매우 천천히 우마차를 끌며 나아가서, 모두 우마차를 따라 걸을 수 있었다. 

도산사는 도화진과 멀지 않은 거리에 있었다. 걸어서 이각(二刻) 정도 걸렸는데, 우마차를 타고도 그 정도 시간이 소요되었다. 

열일곱 살에서 열여덟 살 정도로 보이는 소년도 함께 걷고 있었다. 그 소년에 대해서 하지가 소개했다.

“저와 같은 집안사람이고, 이름은 하상춘(何常春)입니다.” 

남색 천으로 만든 옷을 입은 하상춘은 등에 대나무 바구니를 짊어지고 있었다. 그 바구니 안에는 짧은 호미와 나무하는 칼이 들어 있었다. 하상춘은 상당히 평범한 외모를 지녔고, 키는 살짝 큰 편이며, 항상 미소를 띠고 있었다. 하상춘은 우마차의 앞뒤를 오가며, 사람들에게 뒤처지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다. 하지만 그 말투는 상당히 온화했다. 

“둘째 사촌형은 우리 할아버지의 제자예요. 몇 년 동안 가르침을 받았는데, 다시 학당에 오지 않았죠.”

고청운이 하상춘을 자주 곁눈질하는 걸 알아챈 하지가 설명했다.

“그저 글이나 몇 자 익히려고 했던 거지, 공부하려던 건 아니에요. 그런데 할아버지께서 둘째 사촌형이 엄청 열심히 공부했다고 말씀해주셨어요. 중간에 그만 두지 않았더라면 아마 순탄하게 예비 시험을 준비했을 거라고요.”

그 순간, 고청운은 놀랐다. 고청운은 방금 전에 하상춘을 몇 번 더 쳐다봤다. 고청운은 학당에서 측문으로 왔다 갔다 하는 하상춘을 본 적이 있었다. 하상춘은 측문으로 들어갈 때 보통 손에 물건을 들고 있었는데, 측문을 열어 나올 때는 그 물건을 들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고청운은 하상춘과 스승님이 가까운 관계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가끔 심심할 때면 하상춘과 스승님이 어떤 관계인지 추측하곤 했다. 

‘그런데 가족이자 사제관계였다니.’

“그는 왜 공부를 안 해? 설마 은전이 없어서 그런 거야?”

 말이 안 됐다. 고청운이 보기에 하상춘은 낯빛과 체격이 좋았다. 보통 평민의 낯빛은 누렇고 체격은 왜소한데, 하상춘에게는 그러한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언행에서 교육을 잘 받은 티가 났고 교양이 묻어났다.

고청운의 말을 들은 하지는 급박한 표정을 짓더니 입을 오므리면서 망설였다.

“말하기 그러면 말 안 해도 돼. 난 그저 궁금해서 그냥 물어본 것뿐이야.”

고청운이 급히 덧붙였다. 

그제야 하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의 표정이 매우 귀여워서, 고청운은 저도 모르게 웃었다. 그러다가 재빨리 웃음을 멈췄다. 하지가 말하지 않고 망설인 이유를 깨달았다.

하상춘은 여섯 손가락을 가지고 태어난 사내였던 것이다!

하상춘은 왼손의 새끼손가락 옆에 작은 손가락을 하나 더 달고 태어났다. 그래서 비교적 소매가 넓은 옷을 입고 있었다. 고청운이 자세히 보지 않았다면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조금 신경을 쓰니 바로 알아차렸다. 하상춘은 왼손을 가리지 않고 두 손을 사용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는 고청운이 하상춘의 여섯 번째 손가락을 봤다는 걸 알아챘다.

“둘째 사촌형은 선천적으로 손가락을 여섯 개 갖고 있어요. 그래서 똑똑해도 과거를 보지는 않을 거예요.”

고청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고대에서 여섯 손가락을 가지고 태어난 건 장애인과 같았다. 그리하여 여섯 손가락을 가진 많은 이들이 어른이 되기 전에 일반인과 다르다는 이유로 가족들에게 버림을 받았다. 물론 이런 걸 개의치 않는 사람도 있었다. 마치 어떤 사람들은 천생적으로 다리 길이가 달라도 가족들은 여전히 그들에게 잘해주는 것과 같았다. 

고청운이 이 이야기를 하자 하지는 매우 기뻐하면서 웃었다. 

“맞아요. 우리 하씨 가문은 우매하지 않죠. 이게 무슨 재앙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아니고, 그저 세속의 사람들이 퍼트리는 헛소문이잖아요. 역사상 여섯 손가락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은 많아요. 이게 특수한 예도 아니고, 형도 잘 지내고 있어요. 첫째 사촌형도 둘째 사촌형에게 잘해줘요. 그런데 지금 백모님이 가장 걱정하는 건 둘째 사촌형의 혼사예요. 너무 높지도 낮지도 않아야 하는데 말이죠.” 

이야기를 마친 하지는 어른처럼 한숨을 쉬더니 근심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고청운은 <주역(周易)>을 배울 적에 사주와 점에 관한 책도 몇 권 보았다. 그저 궁금한 마음에 훑어본 게 전부였지만 손금과 관련한 내용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여섯 손가락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은 기구한 팔자를 가지고 있고, 특히 손가락이 여섯 개인 남자는 일생을 가난하게 산다고 여겼다. 

그러므로 지금 하상춘의 혼사가 순조롭지 않은 건 당연한 일이었다. 

고청운은 하지와 하상춘이 매우 가까운 혈연관계인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마치 고청운과 고청명 사이 같았다. 사모님께서 오늘의 외출에 하상춘도 부르신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하지는 고청운의 생각을 읽은 듯 웃으며 말했다. 

“그저 우연이에요. 둘째 사촌형은 도산에 가서 약을 캐야 해서 우리랑 같이 가는 것뿐이에요.”

고청운은 그제야 하상춘네가 한약방을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하상춘의 아버지는 진(镇)에 둘밖에 없는 의원 중 한명이고, 하상춘의 형은 의술을 배우고 있으며, 하상춘은 약을 캐는 역할을 담당하여 산에 자주 드나들었다. 

고청운은 하 의원이 누군지 단박에 알아차렸다. 조산아로 태어나서 자주 병치레를 한 고청운은 진의 두 의원을 만난 적이 있었다. 고청운의 집에 진료하러 온 하 의원은 매우 자애롭고 친절했으며 의술이 훌륭했다. 하 의원이 처방한 약은 복용 기간이 길긴 했으나 반드시 완치됐었다.

‘천하에 나처럼 약을 잘 먹은 아이가 또 있었을까? 중약(*中藥: 중국에서 사용하는 한방 생약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 얼마나 쓰면, 중약을 먹은 후엔 밥도 먹기 싫어졌었지. 나는 전생의 기억을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나마 중약을 잘 먹고 보양하려는 노력을 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어.’

고청운은 자신이 기특하고 대견스러웠다. 

고청운은 이곳저곳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게 되는 도화진이 정말 작게 느껴졌다. 

“하지야, 둘이 너무 처졌구나!”

하지와 고청운이 신나게 이야기하고 있을 때, 하상춘이 큰소리로 불렀다.

하지와 고청운은 서로를 바라보더니 발걸음을 서둘렀다. 그들은 정말로 많이 뒤처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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