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대생활 (18)화 (18/504)

18화. 상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고청명과 고청운은 학당의 상황을 공유했다. 

“몇 명만 노는 걸 좋아하고 대부분 엄청 열심히 공부하고 있어.”

고청명은 매우 깊은 감명을 받은 듯했다. 

“노는 애들은 이전의 나처럼 아직도 시간이 많이 남은 줄 알고 시간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거지.”

고청운은 고청명의 간곡하고 진심이 그득 담긴 모습에 적응이 되지 않았다.

‘청명 형이 이런 감탄을 하다니. 큰할아버지의 선택이 정말 옳았나 보구나. 게다가 오늘 오후에는 <국색천향> 줄거리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은 것을 보니, 그 화본에 빠져 정신을 못 차리는 것도 아니네.’

고청운은 정말 기뻤다!

어렵사리 집에 돌아온 고청운은 누이들의 애정 어린 관심을 받은 후, 달걀물 한 사발을 마시고 생각했다.

‘발바닥이 조금 아프네. 저녁 때, 뜨거운 물로 족욕해야지.’

고청운은 자신의 방에서 잠시 휴식한 후, 고백산에게 인사를 올리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고청운은 고백산가(家)로 가는 길에 마을 사람들과 마주치고는 했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웃으면서 고청운에게 인사했다. 

“전자야, 진에서 돌아온 거니?”

묘씨 집안 사람이 고청운에게 매우 반갑게 인사했다. 

“전자가 수재공(秀才公)이 되면, 우리 임계촌의 경사지. 나중에 다른 마을과 다투게 되어도 더 이상 두려울 게 없겠어.” 

그 순간, 고청운은 침울해졌지만 애써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아요. 방금 진에서 돌아왔어요.”

고청운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저 사람이 갑자기 내게 왜 이렇게 친절하게 굴지? 전에는 그냥 평범한 마을 사람이었는데.’

* * *

고백산네 도착한 고청운은 오늘의 일을 간단히 이야기했다. 

고청운이 많은 것을 배워온 듯한 것을 본 고백산은 매우 기뻐했다. 고백산은 고청운의 어깨를 두드리며 웃었다. 

“열심히 하거라.”

고청운은 세차게 고개를 끄덕이고서, 다른 사람들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오늘 서점에 간 일을 언급하며 우려하듯이 말했다. 

“형은 돈이 부족하지도 않으니 그만 두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계속했다간 형의 공부에 방해가 되지 않을까요?

고청운은 이런저런 궁리를 하다가 큰일이 나기 전에 아무래도 사전에 준비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오늘 있었던 일을 큰할아버지에게 알려드리는 게 맞다고 여겼다. 

고백산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 문제는 내가 주시하고 있으마. 누가 그 아이가 돈이 안 부족하다고 했느냐? 그 아이가 나처럼 시험을 두어 번 더 보면 돈이 부족해지겠지! 하지만 너도 본말(本末)이 전도되지 않도록 시간을 잘 안배해야 한다.”

고백산은 고청운네의 사정을 잘 알고 있었기에 책을 베끼지 말라고는 하지 않았다. 필경(*筆耕: 직업으로 글이나 글씨를 쓰는 일)은 가난한 집안 출신 학자들이 돈을 버는 수단 중 하나였다. 

고청운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이 일을 고백산에게 이야기하니, 마음이 훨씬 편해졌다.

* * *

저녁이 되자, 어른들이 밭일을 마치고 돌아와서 고청운에게 안부를 물었다. 어른들은 고청운이 아주 멀리 다녀온 것처럼 굴었고, 특히 노진씨는 고청운을 품에 안고 한참을 쓰다듬었다. 

“이제 그만하고 전자보고 이야기 좀 해보라고 하죠.” 

노진씨가 고청운을 오랫동안 안고 있자, 고계산이 질투하며 말했다.

그러자 노진씨는 고계산을 살며시 흘겨보더니 고청운을 놔줬다. 

“스승님은 무척 좋은 분이세요. 학문이 깊으시고, 시험을 치른 후에는 저를 갑반에 넣으셨어요.”

고청운은 사실대로 말했다. 

“함께 공부하는 세 명의 나이는 거의 비슷하고, 저보다 다섯 살 정도 많은데, 모두 친절하고 저를 괴롭히지 않아요.” 

고청운이 말을 마치자, 고대하가 고계산에게 갑반과 을반의 차이에 대해 설명했다. 

갑반은 예비 시험을 준비하는 반이라는 소식에 모두 크게 기뻐했다. 

“그러니까 전자가 이제 시험을 응시할 수 있다는 말이지요? 그럼 곧 수재공이 되겠네요?”

구잉이를 안고 있는 이 씨가 매우 흥분하여 웃었다. 

“구잉이 너도 커서 큰형처럼 열심히 공부하고 수재공이 되어라. 구잉아, 그럴 수 있지?”

이 씨의 품에 안긴 구잉은 다리를 마구 움직이면서 침을 흘렸다. 이 씨가 재미난 장난을 하는 줄 알았는지, 구잉이가 방긋 웃었다. 

“잘 모르면 말조심해야 하오. 남들이 들으면 웃겠소.”

고이하는 눈살을 찌푸리며 이 씨를 쳐다봤다.

“예비 시험 기간은 이미 지났소. 첫 번째 현시는 내년 2월부터 시작하니까, 아직 열한 달이나 남은 것이지.” 

고이하의 말을 들은 이 씨는 조금 난처해졌다. 그래서 고이하를 원망하는 눈으로 보면서 입으로는 억지로 웃었다.

“제 탓이에요, 제 탓. 날짜 기억을 잘못했네요.” 

노진씨가 이 씨를 째려보며 정곡을 찌르는 말을 했다. 

“틀린 걸 알면 됐다. 허나 밖에서는 말조심하거라. 만약 밖에서 언쟁이라도 하면 구잉이가 물들까 무섭구나. 그랬다가는 내가 혼자서 키울 테니, 알아서 해라.”

고청운의 몸이 많이 좋아진 후, 노진씨의 고청운을 향한 사랑은 그 무엇과도 비할 바가 못 되었다. 또한 소진씨가 노진씨의 친정집 사람이므로 조금 편을 들어주는 게 당연했다. 

이 씨가 아들을 낳은 후, 그래도 노진씨는 눈치를 좀 덜 줬다. 그랬더니 이 씨는 뭐가 뭔지를 잘 구분하지 못했다. 이 씨가 친정에 가서 무슨 성혼식(*成婚式: 남자와 여자가 부부가 되기 위하여 치르는 혼인 의식)에 참석한다고 했던 날, 노진씨는 구잉이가 아직 어려 폭죽에 놀랄 수 있으니 데리고 가지 말라고 누누이 말했다. 하지만 이 씨는 노진씨의 말을 듣지 않고 구잉이를 데리고 친정에 갔다. 결국 그날 일 때문에 구잉이는 병이 나서 여태껏 낫지 않았다. 

그래서 구단이와 구잉이가 있는데도 노진씨의 마음속에서는 여전히 고청운이 가장 중요했다. 노진씨가 있는 한, 그 누구도 고청운의 이익을 해할 수 없었다. 

한편, 오늘 마을 사람들은 책 상자를 맨 채 걸어가는 고청운과 고청명을 보자마자 진에 있는 사숙으로 공부하러 간다는 걸 알아챘다. 그래서 이 일은 큰 소문거리가 되었고, 여태껏 마을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락내리락했다. 노진씨의 경험에 따르면, 내일은 소문이 더 커져서 더 많은 사람들이 이것저것 캐물으러 집까지 쫓아올 것이었다. 

“네 동창이라는 조문헌과 하겸죽이라는 아이가 작년에 시험에 응했지만 현시만 통과하고 부시(*府试: 현시에 합격한 후에 응시할 수 있는 시험)는 통과하지 못했다고 하는구나. 그래서 올해는 아마 응시하지 않은 모양이야.”

분위기가 살짝 이상한 것을 본 고대하가 새로운 화제를 꺼냈다. 

“제가 들은 건, 하겸죽이 하 수재의 조카라는 것이었어요. 그들 모두 도화진 하 이정(何里正)의 가족으로, 가까운 편이라고 하네요.”

고청운은 깜짝 놀랐다. 도화진에는 몇 개의 큰 성씨가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하(何)씨였다. 모두 친척 혹은 벗 관계였기 때문에 하씨 가문에서는 인재가 여럿 나왔다. 

“언젠가는 우리 가문도 그들처럼 되었으면 좋겠다. 하씨 가문에서 수재가 두 명 나왔는데, 첫 번째가 사숙 선생이고 두 번째가 이정이지. 그 가문에는 또 장사에 능한 사람이 있어서 도화진에 단단히 뿌리내려 정착하게 되었지.”  

고계산은 탄식하면서 잎담배를 한입 피웠다. 

고청운은 잠자코 있었다. 모두에게서 급박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비록 지금 관리의 품행과 치적(*治績: 정치상의 공적)이 올바르고 깨끗하다고 해도, 소리(*小吏: 하급 관리)가 문제를 일으킬 수 있었다. 고청운은 이전 조대의 마지막 십 몇 년이 혼란하여 윗대에게 참혹한 기억을 남겼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아버지, 저는 오늘 전자를 데려다주고 현성에 다녀왔는데요. 굵은 소금을 사면서 일품향(一品香)의 주인에게 우시장(*牛市場: 소를 사고파는 장)에 대해서 물어보니, 정말 그런 일이 있다고 하네요. 며칠 뒤에 소장수가 우리 마을에 온다더라고요. 만약 소를 살 생각이 있으면, 비교적 비쌀 터이니 은전을 많이 준비하라던데요."

고씨 집안에는 다소 많은 양의 굵은 소금이 필요했다. 그래서 항상 현성에서 굵은 소금을 구매했다. 그러면 진에서 사는 것보다 십 몇 문을 아낄 수 있었다. 

고계산이 화제를 돌리는 이야기를 하자, 모두 고대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고대하는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분위기를 파악한 노진씨는 어른들의 대화를 열심히 듣고 있는 대아와 아이들에게 말했다. 

“모두 여기서 정신 놓고 뭐 하고 있는 게냐. 어서 가서 밥을 하고 채소에 물을 주거라.”

이아의 입술이 달싹였다. 이아는 노진씨에게 할 일을 다 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말하기도 전에 대아의 눈짓을 봤다. 그래서 이아는 세 살인 동생 구단을 데리고 얌전히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고대하가 다시 입을 열었다. 

“게다가 주인이 최근 어느 지역에서 닭 전염병이 발병했다고 말해줬어요. 닭과 달걀의 수가 많이 감소했으니, 이번 달에 닭과 달걀의 시장가가 두 배 정도 오를 거라네요.”

고대하는 이어서 자신들이 거둬들인 달걀의 수를 말했다. 

그러자 고청운은 즉시 계산하여 말했다. 

“그럼, 이 달에는 약 1,200문의 수입이 있겠네요.”

이번 조대에서는 1,000문을 1냥으로 바꿀 수 있었다. 변동이 있긴 했지만, 그 폭은 크지 않았다. 

방금 성급하게 말해서 안 된다는 교훈을 얻은 이 씨는 잠시 생각한 후에 입을 열었다.

“마을에 닭 전염병이 돌더라도, 우리 집 닭에게만 옮지 않으면 적지 않은 돈을 벌 수 있겠네요.”

이 씨의 말에 모두 미소를 지었다. 비록 인정이 없는 짓이었지만,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기대감에 가슴이 떨렸다.

“그런데 우리 집에 절일 수 있는 달걀이 그렇게 많이 있나요?”

소진씨는 노진씨를 한 번 보고 부드럽게 말했다. 

“어머니, 부족하면 전처럼 마을 사람에게 살까요?”

“사긴 사야 한다. 전에 우리가 절인 달걀과 아직 팔지 않은 달걀을 합쳐도 조금 모자랄 거야. 모자라면 네가 마을에서 사람을 찾아 관례대로 달걀을 사거라.”

노진씨가 분부했다. 

소진씨는 노진씨의 뜻을 알아차리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노진씨가 말한 관례는, 우선 사이가 좋은 집부터 찾으라는 뜻이었다. 예를 들자면, 성씨가 같은 집안을 찾은 후 성씨가 다른 집안을 돌아다니는 것이다.

“닭은 지금 52마리가 있고, 그중 암컷 35마리는 아직 알을 낳고 있어요. 그러니까 늙은 수컷 2마리와 알을 낳지 못하는 늙은 암컷 10마리는 팔아도 되겠더라고요.”

고청운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고청운은 자주 닭을 보러 간 덕분에 닭장의 상황에 대해서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모두 고청운의 말에 찬성했다. 

이 일에 대한 이야기를 마치니, 모두 기분이 좋아졌다. 노진씨는 대아의 혼사에 대해 물었다. 노진씨는 집안의 많은 일을 책임지고 관여하고 있었지만, 손녀의 혼사에는 개입하지 않았다. 혹여 나중에 원망을 사지는 않을까 걱정되어서 아들과 며느리가 알아서 하게끔 놔둔 것이었다.

고청운은 노진씨가 고대하와 소진씨에게 대아의 혼사를 맡기고 개입하지 않은 부분을 높이 평가했다. 노진씨는 가끔 너무 엄격했지만, 또 어떤 일에 관해서는 매우 관용적이었다. 노진씨에게는 강함과 부드러움이 적절하게 공존하여, 소진씨와 이 씨를 고분고분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마을의 노부인들은 노진씨에게서 비법을 전수받고 싶어 했다. 

“그런데 앞으로 대아, 이아, 삼아가 시집가면 우리 집안의 절인 달걀 비법을 가지고 가는 셈인데, 그럼 우리가 돈을 못 벌게 되는 거 아닌가요?”

갑자기 이 씨가 물었다. 

그 순간, 모두 깜짝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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