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사숙 (2)
고청운의 말에, 고청명은 깊이 공감했다. 고청명은 항상 고청운보다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기 때문에, 고백산이 고청운과 비교해도 시기하지 않았다. 고청명은 고청운처럼 공부만 하면서는 살 수 없다고 생각했다.
“큰할아버지께서 진에 대해서 말씀하신 걸, 왜 다들 알고 있지요?”
이틀 전, 고백산은 고청운에게 진에 가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했다. 그런데 하루만에 이 사실을 고씨 집안사람들도 알게 되었다.
“모두 너를 예의 주시하고 있으니까. 그리고 우리 할아버지는 나도 진에 가서 공부했으면 하셔. 너랑 서로 의지가 되기도 하고, 진의 수재가 더 높은 지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지.”
고청명의 뺨이 살짝 붉게 물들었다. 사실 고백산은 손자인 고청명을 독하게 가르칠 수 없어 차라리 남의 손에 맡긴다고 말했었다.
고청명은 이미 잘못한 걸 알았고 앞으로는 노력할 요량이었다.
“우리 형은 이제 가정을 꾸리고 싶어 했는데 할아버지가 허락하지 않으셨어.”
땅콩사탕을 빨고 있던 고청량은 그들의 대화를 듣자마자 바로 이실직고하듯 이야기 했다.
고청량의 얼굴이 더욱 빨개지면서 동생을 째려보고는 소심하게 답했다.
“그런 적 없어.”
“마음에 없는 소리 하기는. 먹을래?”
고청량이 한마디 하고 사탕을 한입에 넣었다. 그리고 염낭에서 사탕 한 개를 꺼내더니 몹시 아까워하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고청명과 고청운은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 고청량은 어릴 적부터 몸이 둥글둥글했고 식탐이 많았다. 공부할 때도 할머니가 만들어 주신 땅콩사탕을 지니고 있을 정도이니, 고백산이 알게 되면 얼마나 화낼지 짐작이 가능했다.
고청운은 책을 꺼내 외우기 시작했다. 고청명과 고청량은 말을 하려다가 고청운이 공부하는 모습을 보고 따라서 공부했다.
* * *
그들이 공부하는 광경을 본 고백산은 안도했다. 그리고 조용히 고청운을 방밖으로 불러서 진으로 공부하러 가는 일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구체적인 상황은 이미 네 할아버지와 이야기했다. 하 수재 밑에서 공부하는 게 좋겠구나. 그럼, 우리 청명이와 같은 스승님 아래서 배울 수 있어.”
고백산은 고청운을 보면 기쁘고 안심이 되었다. 고청운은 한 번도 고백산의 속을 썩인 적이 없었고 알아서 공부했다. 고청운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해서는 안 되는지 잘 알고 있었고, 고백산의 말에 따라 착실히 움직였다. 고백산이 처음으로 글을 가르친 사람이 고청운이었다. 그러므로 나중에 고청운이 수재에 합격한다면 고백산에게도 공(功)이 있었다. 그 무엇보다 고청운이 같은 가문의 사람이기 때문에, 고백산의 성취감이 남달랐다.
고백산과 고청운은 사제지간이고, 이 시대에서 사제지간의 정(情)은 친척 관계보다 더욱 친밀했다.
“진에서 공부하게 되면 잘 쉬어야 한다. 몸이 망가져서는 안 돼.”
고백산은 고청운이 너무 열심히 공부해서 몸이 상할까 봐 넌지시 경고했다. 또한 고청명을 생각하며 굳은 결심을 내렸다. 고청운과 고청명을 진으로 보낸 후엔, 더욱 엄격하게 고청량을 공부시킬 것이었다. 고백산은 사실 고청량의 자질이 고청명보다 뛰어나다고 여겼다. 그런데 고청량의 할머니와 도 씨가 응석받이로 키운 탓에, 고청량은 노력할 줄 몰랐다.
고청운은 고개를 끄덕였고, 고백산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올렸다.
“큰할아버지의 가르침에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고백산은 고청운이 비록 몸은 왜소하고 얼굴은 앳되었지만 꼿꼿하고 여유로운 기질이 있다고 생각했다. 갑자기 눈가가 붉어진 고백산은 고청운의 양손을 잡고 말했다.
“진에 가서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하루라도 빨리 급제하여 네 할아버지도 편하게 해주려무나.”
이에 고청운이 답했다.
“큰할아버지, 걱정 마세요. 가서 열심히 할게요.”
고청운은 내일부터 고백산의 가르침을 받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아챘다.
고백산은 고개를 빼쭉 내민 고청량을 바라보았다. 할 말을 다 마친 고백산은 고청운을 집으로 돌려보냈다.
* * *
정원에 다다른 고청운은, 담소를 나누고 있는 노진씨와 큰할머니를 보았다. 인사를 드린 고청운이 옆에 서서 잠깐 듣자니, 소와 관련한 이야기였다. 어제 고청운이 소에 대해서 이야기한 것을 노진씨가 큰할머니에게 전하는 중인 듯했다. 고청운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마을 사람들을 계속 맞닥뜨렸고 일일이 인사를 나눴으며 또래아이들과도 몇 마디를 나눴다.
집에 돌아온 고청운은 평소처럼 공부하고 글자 쓰는 연습을 했다. 도중에 쉴 때는 누이들이 집안일하는 것을 도왔고, 그 외에도 대아, 이아, 삼아에게 글을 가르쳤다. 노진씨는 고청운이 누이들에게 시간을 뺏긴다고 여겨 글을 가르치는 걸 못마땅해했다. 하지만 고청운은 여인이더라도 글을 익혀두면 쓸모가 많다고 생각했다. 누이들이 글을 익히면 장부를 편히 볼 수도 있고 다른 사람에게 애걸복걸하거나 사기를 당할 일도 없을 것 같았다. 또한 더 나은 조건의 선 자리가 들어올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만약 고청운이 수재에 합격하고, 하물며 거인(*举人: 향시에 합격한 사람)이 된다면, 누이들이 글을 모르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고청운은 고씨 집안을 농사와 면학 가문으로 만들고 싶었다. 그렇게 된다면 종족(*宗族: 성(姓)과 본(本)이 같은 겨레붙이)의 단결력과 사족의 명성을 드높일 수 있었다. 이런 작은 지역에서는 충분하고 좋은 기회였다.
이러한 고청운의 주장에 설득된 노진씨는 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는 일을 더 이상 반대하지 않았다. 다만 대아, 이아, 삼아에게 청운의 공부하는 시간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고 여러 번 이야기했다.
* * *
대아, 이아, 삼아에게 새로운 글자를 가르친 고청운이 말했다.
“큰누이, 작은누이, 그리고 삼아야. 이제 <삼자경(三字經)>은 어떻게든 읽을 수 있지? <여계(女诫)>도 다 가르쳤어. 나는 이제 진에 공부하러 가야 되니, 길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 누이들을 가르칠 시간이 거의 없을 것 같아. 그러니 스스로 공부하고 기억이 안 나는 글자는 큰누이에게 물어봐. 큰누이도 모른다고 하면, 그땐 다시 나한테 물어봐.”
세 누이들은 고청운이 베낀 <삼자경> 한 권과 <여계> 한 권을 같이 보며 공부했다.
“알았어요, 큰오라버니.”
삼아는 아직 어렸다. 막 여덟 살이 되어 아직 <삼자경>을 다 배우지 못했다. 누이 중 가장 어린 삼아는 가장 활발하기도 했다. 해야 하는 집안일이 많지 않았고, 요즘의 주요 임무는 두 남동생을 돌보는 일이었다.
“글자도 몇 개 모르면서 알기는. 앞으로 큰누이한테 잘 배워야 한다.”
고청운은 삼아의 부드러운 뺨을 꼬집었다.
당옥의 요람에 누워 있는 구잉이 울어댔다.
“동생이 깼나 봐요.”
삼아는 불만이 가득한 얼굴을 하고서도 온순하게 구잉이를 달래러 갔다.
대아는 베를 짜러 갔고, 이아는 후원에 있는 닭장을 보러 갔다.
대아를 따라서 방에 들어간 고청운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큰누이, 어머니가 어느 집으로 결정하셨는지 말씀 안 해주셨어?”
그러자 대아가 얼굴을 붉히며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어머니께서 아직 말씀 안 하셨어. 전자야, 그건 물어서 뭐하려고?”
“내 큰누이잖아. 누이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나한테 얼마나 잘해줬는데! 당연히 누이의 큰일에 신경이 쓰이지. 여인이 시집을 잘못 가면 큰일이니, 반드시 남편감을 신중하게 골라야 해. 누이의 시어머니가 너무 힘들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우리 할머니 정도만 되어도 괜찮을 것 같은데.”
고청운은 진심이었다. 만약 이아의 일이었다면 그저 그냥 물어봤을 테지만, 대아의 문제인 만큼 매우 신중했다.
고청운은 대아의 시어머니가 노진씨 정도만 되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노진씨는 며느리에게 너무 박하지는 않았다. 노진씨가 남존여비 사상을 가지고 있긴 했지만, 이 시대에서는 너무나도 정상적인 것이었다. 이 씨가 몇 년 동안 아들을 낳지 못했던 시절에도, 노진씨는 몇 마디 말만 할 뿐 평소에 공정함을 유지했다. 게다가 노진씨는 외부인에게 소문을 듣는 것은 좋아했지만 집안일은 거의 밖으로 내뱉지 않을 정도로 입이 무거웠다.
고청운은 노진씨가 생존의 지혜를 갖춘 노인이라고 여겼다.
“아무튼 때가 되면 미래의 매형이 어떤 사람인지 보러 갈 거야. 그렇게 하면 적어도 누이한테 미리 알려줄 수 있으니까.”
고청운은 부끄러움에 어쩔 줄 몰라 하는 대아를 두고, 경쾌한 발걸음으로 문을 나섰다.
* * *
이틀 후, 고청운과 고청명은 고백산과 고대하를 따라서 진까지 걸어갔다. 고대하가 짊어진 대광주리에는 몇 근은 족히 되는 소금에 절인 고기 두 덩이가 있었다. 이 외에도 절인 달걀 두 바구니가 있었는데, 이건 스승에게 드릴 사례금이었다.
청실로 만든 두건을 머리에 맨 고청운은 청색 장삼 차림에 흑색 허리띠를 두르고 있었다. 2층짜리 책 상자를 짊어진 고청운은 낡은 천 신발을 신은 발을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움직이며 진흙길을 걸었다.
고청명도 고청운과 같은 서생 복장이었는데, 짊어진 책 상자가 2층이 아닌 3층짜리라는 점이 달랐다. 이 책 상자들은 고계산과 고대하가 고청운과 고청명의 체형에 맞춰 직접 제작한 것으로, 가정환경을 고려하여 모두 평범한 대나무로 만들었다. 그래도 갖춰야 할 건 모두 갖춘 상자인데다가 내부 공간 배치가 합리적이고, 가로와 세로의 열이 빽빽하면서도 정갈했다. 상자 안에는 붓, 먹물, 종이, 벼루 같은 서예 도구와 책이 들어 있었고 이 외에도 일상용품이 각기 다른 공간에 들어 있었다.
고청운은 물이 담긴 호리병도 책 상자에 넣어두었다.
그들은 걸으면서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대하야, 하 수재는 나보다 고작 몇 살 젊단다. 당시에 우리는 예비 시험을 같이 봤는데, 그는 마지막에 수재가 되었지. 그동안 왕래하는 사이였지만, 단지 그 이유로 그를 추천한 건 아니다. 학문을 논하자면 이 수재야말로 출중한 인물이지. 하지만 아직 너무 젊어. 기껏해야 스물일고여덟 살이고, 또 잘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아직 예비 시험에 마음이 가 있을 게야. 아마 더 나아가 향시를 보고 싶을 테지. 그렇게 되면 제자에게 쓰는 시간은 자연스럽게 적어질 테고. 게다가 사숙을 연 지 2년이 채 되지 않아서, 아직 제자를 가르치는 방법을 잘 모를 가능성이 있어.”
고백산은 가는 길이 단조로워진 것을 보고 고대하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백부님, 잘 알고 있어요.”
고대하는 물건을 짊어진 채 걸으면서도, 네 사람 중에서 가장 표정이 밝았다. 자주 고청운의 얼굴을 살폈고 힘들어하는 기색이 없는 걸 봐야 안심했다.
“알면 됐다. 하 수재는 예의범절을 중시하고 탄탄한 학문을 가지고 있지. 이전 조대에서 이미 수재였는데 새로 황조가 들어서고 나서 다시 시험을 보았단다. 게다가 현지 사람이고 집안도 부유하니, 제자들에게 물건을 탐하지는 않을 게야.”
고백산은 조금 더 자세히 말하는 게 좋다고 여겼다.
그는 동생 집에서 자신을 이토록 신뢰하니, 그 신뢰를 저버리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고청운의 스승을 정하는 문제에도 심사숙고했다.
스승과 제자는 자연스럽게 친밀해질 수밖에 없었고, 이러한 관계는 고청운과 고청명의 앞날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었다.
“이 수재의 집안 환경은 썩 좋지 않은 편이란다. 나와서 사숙을 하는 것도 아마 돈을 벌기 위함일 테지.”
고백산은 얼굴을 붉힌 채 주위를 둘러보며 지나가는 사람이 없는지 확인했다. 아무래도 다른 사람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하는 건 바람직한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낮은 목소리로 말하면서, 고청운과 고청명에게는 멀찌감치 있으라고 시키기도 했다.
고대하는 고백산에게 진심으로 감사했다.
“백부님, 우리 일가족은 백부님께서 우리 전자를 위해 마음 쓰신 걸 알고 있어요.”
고대하의 말에, 고백산은 수염을 만지며 웃었다.
고백산과 고대하가 이야기하는 동안, 고청운과 고청명도 작은 소리로 이야기했다. 고청운과 고청명은 길가의 푸릇푸릇한 풀 내음에 기분이 좋아졌다.
“청운아, 힘드니?”
시간이 흐르자, 고청운의 이마에 땀이 맺혔다. 고청운의 상태를 본 고청명이 얼른 물었다.
“내가 책 상자 대신 들어줄까?”
책 상자의 중앙에는 두 개의 손잡이가 있어서 들고 갈 수도 있었다.
“아니에요, 형. 제가 들게요. 앞으로 매일 이 길을 왕복해야 되는데 매번 형이 대신 들어줄 수는 없잖아요.”
고청운은 고개를 내저으며 손수건으로 땀을 닦았다. 고청운은 자주 몸을 단련했지만, 작은 체구에 무언가를 매고 한 시간 동안 걷기는 힘들었다.
진에 가서 공부하기로 결정한 이후, 고청명은 더 이상 고청운을 아명으로 부르지 않았다. 고청운은 그것을 알아차리고 이유를 물을까 하다가, 결국 아무 말도 않았다.
‘우리 육촌형은 정말 마음이 섬세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