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대생활 (13)화 (13/504)

13화. 사숙 (1)

이 씨가 만족스럽다는 듯이 이야기했다. 

“제가 막 집에 왔는데, 전자가 방에서 공부를 하고 있더라고요. 이미 그 서책들을 다 보았다면서요. 이제 백부님은 전자에게 어떤 계획이 있대요?”

고청운은 정식으로 글을 익히기 시작한 후 베틀기가 있던 방을 쓰기 시작하였다. 베틀기를 이방(*耳房: 건물의 모퉁이에 있는 방)쪽의 상방(*上房: 한 집에서 주인이 거처하는 방)으로 옮긴 후 방을 수리해서 안쪽과 바깥방으로 나눴다. 안쪽이 고청운의 침실이 되었고, 그 안에는 침상과 옷장만 놓았다. 바깥방은 서재로 썼고, 이곳에서 고청운이 평소에 공부하고 글씨 연습을 했다. 

“이 이야기를 하면 내가 속이 답답해. 백부님은 전자를 진에 있는 사숙(*私塾: 학문 따위를 사사로이 가르치던 곳)에 보내 공부를 시키라고 하셨어. 진에는 두 명의 수재만 사숙을 열었고, 그곳에서 많은 아이들이 공부하고 있지.”

소진씨는 입으로는 고민이라고 말했지만, 얼굴에는 주체할 수 없는 웃음이 번졌다. 

“백부님은 이제 전자에게 더 이상 가르칠 게 없다면서 지체하지 말고 진으로 보내라고 하셨어. 나와 전자 아버지도 다른 의견이 없으니, 모든 건 아버지와 어머니가 하자는 대로 하려고.” 

그러자 이 씨가 탄식하며 자신이 들은 소식을 일일이 이야기했다. 

“사실 저는 그거에 대해서 말하려고 형님을 찾아온 거예요. 우리 친정 마을에서는 두 집안이 진에서 공부하고 있어요. 이번에 친정에 가서 들어 보니, 하나는 하 수재의 사숙에서 공부하고 있는데 일 년에 스승에게 주는 사례금만 두 냥이라고 하네요. 그런데 걸핏하면 제자를 때린대요. 불쌍한 것! 얼마나 맞았으면 어린아이 손이 만두 같이 부어서  젓가락질도 못하더라고요. 제가 그 집에 갔는데, 그 아이의 어머니가 밥을 먹여주고 있었어요.

반면 다른 수재의 사숙은 스승 사례금이 한 냥 반인데, 사람이 좋다더라고요. 젊고 학식도 깊고 온화해서 학생들한테 잘한대요. 손찌검하는 일도 거의 없고요.”

“스승이 제자를 때리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니, 우리 그 이야기는 하지 말자. 그런데 너무 심하게 때리면 그것도 안 될 일이긴 해. 몸이 허약한 아이는 어쩌려고. 병이라도 나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텐데.”

소진씨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하자, 이 씨가 급히 말을 덧붙였다. 

“이 일은 아버지, 어머니께 맡겨 두죠. 두 분께서 아시는 게 많으니 전자에게 해가 되는 일은 하지 않으실 거예요.” 

소진씨의 얼굴에는 다시 웃음이 번졌다. 시아버지 고계산과 시어머니 노진씨를 매우 신뢰하는 모양이었다. 

“그렇지. 전자는 장손이니까 아버지, 어머니께서 당연 중히 여기시고 신중하게 선택해주실 거야. 사실 하 수재 사숙으로 가도 좋을 것 같아. 엄격하긴 하지만 그게 다 제자가 잘되라고 그러는 것 아니겠어.”

고개를 끄덕거리던 소진씨는 무슨 말을 하려다가 고대하가 씻고 돌아온 것을 보았다. 고대하는 뜰 밖에 서서 안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씨는 소진씨의 시선을 따라 보다가 급히 허벅지를 치며 말했다. 

“아고고,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돌아가서 우리 사내아이들을 씻겨야겠어.”

이 씨가 소진씨의 방에서 나오기도 전에, 고대하는 고청운의 방으로 들어갔다.

* * *

고대하가 방으로 돌어왔을 때, 소진씨는 이미 침상을 정리한 후였고 등자(*凳子: 앉을 때에, 벽에 세워 놓고 등을 기대는 기구)에 앉아서 머리를 빗고 있었다. 

“전자는 아직 자지 않던가요?”

“당신은 그 아이가 일찍 자는 걸 본 적이 있소? 밥을 먹고 뜰을 한 바퀴 돌다가 방바닥에서 놀며 땀을 흘리고 있기에 어서 씻고 자라고 했소. 감기라도 들까 걱정이군.” 

고대하는 고청운을 나무라는 말투였지만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고대하는 목소리를 낮춰 말을 이었다. 

“전자 책상에 있는 글씨체를 보니 아직 어리긴 하지만 정말 잘 쓰더군.” 

소진씨도 웃으며 말했다. 

“제가 비록 글은 모르지만 볼 줄은 알죠. 전자가 쓰는 글씨는 크기가 일정하고 획이 정확해서 보기 좋더라고요.” 

“당신 아들이니 뭘 하든 예뻐 보이는 게지.” 

고대하는 옷을 벗은 후, 맞은편의 이방의 상방을 보면서 물었다. 

“방금 전에 제수씨는 무슨 일로 온 것이오?”

고대하가 이 씨의 방문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소진씨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가셨다. 소진씨는 이 씨가 방문해서 한 말을 고대하에게 전했다. 

“동서는 무슨 뜻일까요? 우리 전자가 좋다는 걸까요, 안 좋다는 걸까요? 이 수재가 낫다는 걸까요, 하 수재가 낫다는 걸까요?”

고대하는 눈살을 찌푸렸다. 

소진씨는 고대하를 보면서 머리를 계속 빗으며 말했다. 

“동서는 우리 전자가 수재에 합격하면 빛 좀 보려고 저러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전자가 오랫동안 합격하지 못하면 집안의 돈을 많이 쓸 테고, 그렇게 되면 자기 아들한테 영향을 미칠까 봐 걱정되나 봐요.”

소진씨는 내심 이 씨가 아들을 둘이나 낳아 기르는 걸 부러워했다. 하지만 마음씨가 따뜻하고 철이 든 고청운을 생각하면, 아들을 둘이나 낳은 이 씨에 대한 부러움을 뒤로 젖힐 수 있었다. 

“백부님께서 진의 두 수재와 교류하고 계시니, 그분의 의견을 중시하되, 다른 사람의 평도 한 번 들어봐야겠소.” 

고대하는 결국 결정을 내렸다. 

* * *

옆방에 있는 고청운은 고대하와 소진씨가 나누는 대화를 당연히 듣지 못했고, 그들이 다음 행로를 위해 무엇을 계획하는지도 알지 못했다. 고청운은 그저 열심히 팔굽혀펴기를 하고 있었다. 방금 전, 고청운의 방에 고대하가 들어왔었다. 고대하는 팔굽혀펴기를 하는 고청운이 놀고 있다고 여기고 엄숙한 얼굴로 한마디를 했다. 고청운은 자신의 행동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망설여져서 입을 다물었다.

사실 고청운은 몸을 단련하기 위해서 매일 밤마다 팔굽혀펴기를 하고 있었다. 특히 손목 힘을 기르고 싶었다. 아직 어린 고청운은 손목 힘이 부족해서 보기 좋은 글자를 쓰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힘이 담긴 글자를 쓰기 위해서 매일 밤마다 팔굽혀펴기를 했다.

고청운은 전생에서 어느 서예가에 대한 기사를 본 적이 있었다. 그 서예가는 두 근 정도 되는 철 덩어리를 팔에 매달고 글씨를 썼다. 그는 이 연습을 통해 팔 힘이 강해졌고 결국 명필가가 되었다. 

이 기사에서 고청운이 가장 인상 깊게 본 부분은 그 서예가가 오랫동안 팔에 물건을 매단 채 글씨를 연습해서 양손의 중지 관절이 휘었지만 팔 힘은 놀랍도록 세져서, 90세나 되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젊은이와의 팔씨름에서도 이겼다는 내용이었다.

그 서예가의 연습법을 떠올린 고청운은 글자를 쓰다가 진지하게 고민했지만 실행하지는 않았다. 고청운은 아직 너무 어리고 발육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손이 변형되거나 장애가 생길 가능성이 있었다. 그렇게 되면 과거 시험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므로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고청운은 더우나 추우나 벽에 글자를 수천 번씩 쓰며 연습했다. 그제야 글자다운 글자를 쓸 수 있게 되었다.

고청운은 진에 가서 책을 베끼고 돈도 벌고 싶었다. 고청운은 집에만 의지해서는 안 된다고 여겼다. 집안의 경제 상황이 좋아지긴 했지만, 앞으로 고청운이 시험을 보는 데에는 더 많은 돈이 필요했다. 게다가 책을 베끼는 건, 글자 연습을 하면서 돈을 벌 수 있는 나쁘지 않은 방법이었다.

‘그나저나 나는 어느 사숙에서 공부하게 될까?’

* * *

다음 날, 고청운은 평소처럼 공부하러 고백산의 집에 갔다. 문을 넘은 고청운은 큰할머니께 안부 인사를 올린 후 서재에 들어갔다. 

서재에서는 고청량과 고청명이 공부하고 있었고, 고백산은 아직 보이지 않았다. 

고청량과 고청명은 공부를 멈추고 고청운을 향해 웃었다. 

“저 신경 쓰지 말고 계속 공부하세요. 큰할아버지는요?”

고청운은 손을 내저으며 물었다. 고청량은 고청운보다 일 년 늦게 공부를 시작했다. 고청량은 항상 공부보다는 밖에서 노는 데에 정신이 팔려 있었는데, 이러한 데에는 고청량을 너무나도 사랑하는 도 씨가 영향을 미친 것 같았다. 고백산은 주로 고청운과 고청명의 공부에 주의를 기울이고 고청량에게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오늘 묘씨 집안사람들이 분가해야 된다고 난리쳐서, 할아버지께서 증인 서신대. 가시는 김에 분가 문서도 써 주시고.”

고청명은 눈을 깜빡거리며 비밀스럽게 말했다. 

“어제 묘이랑의 어머니가 달걀 한 바구니를 들고 우리 집에 왔는데, 아깝게도 할아버지가 받지 않으셨어요.”

“할아버지는 당연히 안 받으시지.”

고청량이 일어나서 뭉그적거리며 방 안을 돌더니 아쉽다는 듯 말했다. 

“할아버지는 이런 일에 끼어들어서는 안 된다고 하셨어. 어떻게 분가하든 그건 그들 마음이고, 너무 심하지만 않으면 된다고. 어쨌든 나는 그렇다고 해서 묘대랑이 손해 보지는 않을 것 같아. 장자이니까. 묘씨 집안의 어머니가 둘째 아들을 예뻐한다고 해도, 나중에는 큰아들이랑 살아야 하는걸.” 

말을 마친 고청명이 고청량을 슬쩍 쳐다봤다. 

그 순간, 고청량이 펄쩍 뛰며 화를 냈다. 

“형, 그게 무슨 뜻이야? 왜 나를 그런 눈빛으로 봐?”

고청명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가 널 어떻게 봤다고 그래? 어떤 사람들은 부모님의 총애로 하늘이 무서운 줄 모르지. 열심히 공부하라고 해도 안 하고, 수예를 배우라고 해도 안 하고. 나중에 어떻게 살래? 평생 부모님께 의지해 살 수 있을 것 같아?”

고백산은 이미 고청명에게 열심히 공부해서 적어도 동생(*童生: 생원자격 획득을 위한 과거 급제자)에는 합격해야 나중에 자리를 물려받을 수 있다고 말해뒀다. 고백산은 둘째 손자인 고청량에게는 다른 계획이 있었지만, 고청명에게는 공부가 가장 출세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고청명은 이미 15살이라 선을 볼 나이였다. 하지만 공부에 소질이 없었고, 선을 보게 하자니 정신을 더 다른 곳에 둘 것 같았다. 그래서 고백산은 일단 선은 고려하지 않았다. 이러한 고백산의 뜻을 알고 있는 고청명은 적어도 사서오경은 떼야 한다고 생각해서 이 일에 불만을 갖지 않았다.

고청명의 말을 들은 고청량의 표정이 갑자기 시무룩해졌다.

‘그래, 이건 불공평하지. 나는 어머니의 사랑을 등에 업고 자주 형의 일을 일러바쳤으니까.’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고청명은 곧잘 얻어맞곤 했다. 그 배후에는 고청량이 있는 경우가 상당했다.

고청명과 빈번히 싸우는 고청량은 이제 그러려니 했다. 어차피 금방 화해를 하니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것이다.

“아직 할아버지가 안 돌아오셨으니까, 우리 같이 공부하자.”

고청량이 말했지만, 고청명은 급히 거절하고 고청운에게 부럽다는 듯이 물었다.

“잠깐, 공부하기 전에 물어볼 게 있어. 전자야, 너는 진에 가서 공부할 거라며? 어쩜 이렇게 사람마다 다를까? 네 머릿속은 도대체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 싶다. 이렇게 공부를 잘하다니!” 

고청운은 고청명을 바라봤다. 15살인 고청명은 성인으로 보일 정도로 거의 다 자랐다. 연파란색 장삼 차림의 고청명은 호리하고 길쭉한 몸매였다. 고청명은 자주 웃곤 했는데, 언제부턴가 그의 앳된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고 두 살은 더 먹은 것 같은 느낌을 풍기기도 했다.

“제가 얼마나 노력하는지 형이 모르진 않죠?”

고청운은 고청명을 쳐다보다가 손에 들고 있는 <역경>을 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역경은 나도 외울 줄만 알아요. 내용이 너무 심오해서 대부분의 구절이 이해하지 못했어요. 역사적으로 역경 때문에 나온 학파만 해도 다섯 가지나 되고, 서로 논쟁을 벌이고 있잖아요. 하물며 우리는 입문조차 하지 않은 조무래기인데, 내가 어찌 대단하다는 거예요?”

팔괘는 건(乾), 곤(坤), 진(震), 손(巽), 감(坎), 이(离), 간(艮), 태(兑)로 구성되어 있고, 누군가는 자연과 사람의 길흉과 관련한 소식을 점쳤으며, 그에 따라서 마음의 준비를 했다. 고청운에게는 팔괘란 천수(*天书: 난해한 문장이나 알아보기 힘든 문자)였다. 지금까지 <역경>을 해설한 책은 천 권 이상이고, 고청운은 그저 책을 한 번 훑어봤을 뿐, 내용에 대해서는 이해하지 못했다. 앞으로 스승의 해석을 들어볼 참이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