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대생활 (11)화 (11/504)

11화. 비법

전염병은 주로 겨울과 봄 사이에 발병했다. 이 시기에는 닭장에 출입하는 사람을 최소한으로 유지하여 병균이 유입되는 것을 막았다. 심지어 가족도 닭장에 출입하지 못하게 했지만, 혼자서 많은 닭을 관리하기는 불가능했다. 

그래서 고청운은 이아를 조수로 선택했다. 대아는 집안일을 하고 바느질을 했으며 베짜기를 배우는 중이었다. 이아는 아직 어려서 할 수 있는 게 적었고, 그래서 고청운이 데려다가 닭장을 관리하는 일을 함께할 수 있었다.

조수를 구한 이유는 고청운은 이런 일에 흥미가 없었고, 조금이라도 편하게 일하려면 도와주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만약 닭을 사육하는 일이 돈이 되지 않았다면, 조용히 공부만 했을 것이다. 그는 하루라도 빨리 시험에 합격하고 싶었으니까.

고청운은 자신과 이아만 닭장에 드나들 수 있도록 하고, 닭에게 약도 먹이기로 했다.

“약을 먹이자.”

고청운은 이아와 함께 뜰에서 선인장을 짓이겼다. 그 외에도 박하, 생강, 마늘 등 쉽게 얻을 수 있는 재료를 짓이겨 전염병 예방약으로 썼다. 이렇게 매일 두 번씩, 이틀이나 사흘 연속으로 닭에게 약을 줬다.

정말 이 약의 효과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전염병 발병률이 대폭 낮아졌다. 이웃이 기르는 닭에 전염병이 돌면, 옮을 수 있으므로 이웃이 와서 닭을 보는 것을 거절했다. 

만약 닭들에게 전염병이 돌면 바로 격리를 시켰다. 병들어 죽은 닭은 고청운과 이아가 묻거나 태웠고, 절대로 먹지 않았다. 가족들은 아까워하면서도 병에 걸릴까봐 걱정하여 말리지 않았다. 정말로 병에 걸리기라도 하면 더 많은 은전을 사용해야 했다. 

이어서 도구를 팔팔 끓는 물에 넣어 깨끗하게 소독하고 햇빛에 말렸다. 방역을 위해서라면 사용하던 도구를 버리고 아예 새것으로 바꾸기도 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고 나서야 고씨 집안의 닭이 점점 늘어났다.

닭에게 약을 먹인 고청운은 이아와 함께 한숨 돌렸다. 닭이 사흘째 약을 먹었으니 올해는 전염병이 발병하지 않기를 바랐다. 

“오늘 닭들이 달걀을 스무 개나 낳았어.” 

이아는 광주리에 담은 달걀을 세며 기뻐했다.

“날씨가 점점 따뜻해지고 있으니 달걀을 더 많이 낳겠지? 그러면 달걀을 절일 거야.”

봄은 달걀이 풍족해서 절인 달걀을 만들기 좋은 시기였다. 처음 달걀이 많아졌을 때, 고씨 집안사람들은 매우 기뻐했다. 고청운이 매일 두 개씩 먹고도, 다른 사람들도 가끔씩 부추달걀볶음을 먹을 수 있게 되었으니까. 그러다가 닭이 스무 마리 이상이 되자, 매일 낳는 달걀의 개수도 늘었다. 그러자 먹기만 하기엔 아까워서 팔기로 했다. 그러나 누군가가 시장에 나가서 종일 앉아 있어도 팔리지 않았고 노동력만 낭비했다.

고청운은 식당에 달걀을 납품을 하려고 시도해 보았으나, 저마다 거래처가 있다며 거절당했다. 그나마 달걀을 살 의향이 있는 식당에서는 주인장이 가격을 너무 낮게 불렀다. 달걀 3개에 겨우 1문을 주겠다고 했다.

시장에서는 달걀 한 개에 1문이었으므로, 식당에 달걀 세 개를 1문에 팔면 손해를 보는 격이었다. 집에서 현까지 반 시진밖에 안 걸리긴 하지만 좁은 산길을 가로질러야하기 때문에 풀로 달걀을 받쳐두어도 도중에 깨지는 것이 있기도 하였다. 이렇게 되면 이리보나 저리보나 손해를 보게 될 것은 안 봐도 뻔했다.

그렇다고 진을 통과해 현까지 걸어가자니, 한 시진이 걸렸다.

그러면 달걀을 팔아 버는 돈이 더욱 낮아지는 꼴이었다.

이런 상황을 보고 있자니 고청운은 마음이 너무 답답했다. 이 시대에서는 물건을 팔고 싶어도 팔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 이 모든 건 경제가 발전하지 않아서 생긴 일이었다. 임산현은 전조에서 그저 하나의 진이었다. 그러다가 최근 몇 년간 현성(*县城: 현 정부 소재지)이 되었는데, 사람 수가 많은 가문이 많지가 않아서 아직 번영하지는 않았다. 

그러다 고청운은 전생의 기억을 헤집어 보다가 정말 좋은 방법을 생각해냈다. 고청운은 전생의 외할머니에게 진심으로 감사했다. 외할머니는 연로해질수록 농사를 짓기 어려워했는데,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히 있기는 싫어했다. 사람들이 토종 달걀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외할머니는 닭 열 마리를 길렀다. 닭이 알을 낳으면 딸과 손녀에게 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전생에서의 어머니는 이런 호의를 감사히 여길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외할머니가 어머니에게 준 달걀은 남아돌았는데, 그래도 외할머니는 어머니에게 계속 달걀을 줬다. 달걀은 점점 많아졌고 아무리 먹어도 줄어들지 않았다. 결국 외할머니는 손녀에게 달걀을 소금으로 절이라고 했는데, 그 맛이 매우 좋았다. 

그 일을 기억한 고청운은, 달걀을 소금에 절이는 방법을 가족들에게 급히 알려줬다. 

고청운이 달걀 절이는 방법에 대해서 처음 이야기했을 때, 노진씨를 비롯한 집안의 여인들은 딱히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달걀을 절이는 일은 마을의 여느 여인들도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고청운은 기존의 방법으로 절인 달걀은 맛없어서 팔기 어렵다고 여겼다. 그래서 기존의 방법이 아닌, 새로운 방법으로 달걀을 절일 것을 제안했다.

고청운이 말한 방법은 생각, 팔각 등이 들어가 고씨 집안에서 달걀을 절이던 기존의 방법보다 복잡했다. 기존의 방법으로 달걀을 절일 때는 소금만 넣고 그 외의 재료는 거의 넣지 않았다. 

노진씨는 고청운이 헛소리를 하는 줄 알고 달걀 절이는 방법을 바꾸지 않았다. 그래서 고청운은 노진씨를 설득하기 위해 그 방법을 누런 고서(古書)에서 봤다고 말했다. 아마 비법일 것 같다고 하자, 노진씨는 다음 날부터 그 말을 믿었다. 

고청운은 처음에는 절인 달걀 만드는 재료의 정확한 비율을 말하지 않고 노진씨에게 일일이 시도해 보라고 했다. 그랬더니 노진씨가 소량의 달걀로 시험한 후 절인 달걀에서 기름이 많이 나오고 맛도 가장 향긋해지는 비율을 찾아냈다. 

고씨 집안 사람들은 매우 기뻐했다.

“이는 가문의 비법이니 밖으로 발설하면 안 된다. 그랬을 시에는 가문의 배신자다.”

노진씨가 못을 박았다. 

모두 기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그들은 시험을 통해 절인 달걀에 술을 넣으면 기름이 많이 나온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절인 달걀을 햇빛 아래 반나절 정도 두면 더 많은 기름이 나온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고씨 집안의 절인 달걀 맛이 출중해지자, 중등 규모의 식당과 힘들게 거래를 텄다. 금액은 달걀을 절이는 데 드는 비용을 감안하여 날달걀보다 높은 가격으로 책정되었다. 식당 주인과 협상한 끝에, 절인 달걀 개당 3문에 팔기로 했다.

고청운은 3문이라는 가격이 썩 흡족하지 않았지만, 다른 방법으로 달걀을 팔자니 일손과 시간이 부족했다. 큰 술집에도 거래를 제안했으나, 그들은 절인 달걀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게다가 큰 술집의 주인은 죽어도 가격을 올리려고 하지 않았다. 한 곳이 아닌 여러 술집에 거래를 제안해 봤으나, 도리어 더 낮은 가격을 부르기도 했다. 임산현은 너무 작고 경제 수준이 높지 않아서, 거래할 시에 비싼 가격에 팔수 있는 여지가 없었다. 그리고 절인 달걀은 엄청난 미식이 아니고, 심지어 절이지 않은 신선한 달걀이 더 맛있다고 생각하거나, 달걀은 이미 질렸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고청운은 생각했다.

‘이곳은 봉건사회, 자급자족하는 소농 경제구나.’

고청운은 재빨리 비용을 계산했다.

‘생강, 팔각, 화초는 집에서 키울 수 있어. 혹은 산에 널려 있으니 별도의 돈이 들지 않아. 소금은 지금 그다지 비싸지 않고 굵은 소금은 두 근에 16문, 백설탕과 술은 30문, 이렇게 재료를 들여 달걀 50개를 절이면? 시장에서 날달걀을 파는 것보다 54문이나 많은 이익을 취할 수 있어.’ 

주루(*酒樓: 비교적 큰 규모의 술집)마다 달걀 50개를 공급하면 104문 정도의 수입이 생길 것이었다. 주루의 장사는 잘 되는 편이었고 절인 달걀도 꽤 잘 팔리는 편이니, 매달 300~400개의 달걀을 제공하면 이로써 매달 거의 600~800문 정도의 수입이 생길 터였다.

게다가 절인 달걀 만들 때, 간수는 여러 번 사용할 수 있었다. 그래서 간수에 소요되는 비용을 줄일 수 있었다. 

계산을 마친 고청운이 집안사람들에게 말하자, 모두 진정으로 기뻐했다. 

후원에 있는 닭장은 외부인 접근 금지 구역이 되었고, 웬만한 사람은 닭장을 들여다 볼 수도 없었다. 물론, 외부인이 닭장에 들어간다고 해도, 여느 닭장과의 차이를 알아차리지는 못했을 것이다. 고씨 집안사람들이 닭을 기르는 비결과 절인 달걀 비법에 대해서 절대로 외부인에게 말하지 않았으니까.

평소에 마을 사람들은 수군거리거나 이견 내기를 좋아했다. 이를 염려한 고씨 집안사람들은 미리 간작(*間作: 어떤 농작물을 수확하고 다음 작물을 씨 뿌리기 전에 채소 따위를 심어 가꾸는 일) 기술에 대한 소문을 퍼뜨렸다. 산에 있는 부식한 흑토가 비료라는 이야기도 고씨 집안사람들이 퍼뜨린 것이었다. 그 덕택에 임계촌에서 고가(顾家)의 위망은 더욱 높아졌다. 누군가가 고씨 집안에 대해서 수군거리면, 다른 누군가가 나서서 저지할 정도였다.

집안마다 각각의 비법이 있고, 이 비법이 어떤 사람에 의해 발설되면 원수를 짓기 마련이었다. 비법을 발설한 사람은 비난의 대상이 되어 마땅했다.

* * *

최근 몇 년간 농사가 잘 되어서, 고계산네 사람들은 매우 기뻤다. 농가가 매월 반냥 이상의 수입을 거두는 건 극히 드문 일이었다. 

고청운과 이아는 후원의 닭을 제자리에 보낸 후, 주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채소를 씻고 밥을 짓는 대아를 도왔다. 

열다섯 살인 대아는 한창 선을 보고 있었다. 대아는 용모가 빼어났고, 분칠을 하지 않아도 피부가 살짝 하얬다. 치마를 입은 대아의 자태는 아름다웠다.

사실 대아는 열두 살때부터 가족들과 함께 밭일을 하느라 바람을 쐬고 햇볕을 쬔 피부가 거칠었고 누런빛을 띠었다. 반 년 전까지만 해도 그런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대아가 선을 본다는 소식을 들은 고청운이 노진씨를 여러 차례 설득했다.

“큰누이의 피부가 흰 편이어야 더욱 고운 모습으로 시집갈 수 있지 않겠어요?”

결국 노진씨는 대아가 밭일 대신 집안일하는 것을 허락했다. 고청운이 설득에 나서지 않았다면, 노진씨는 대아의 피부색과 혼사에 대해서 전혀 개의치 않았을 것이었다. 필경 매 분기마다 논벼를 수확하기 때문에 집안사람 모두 밭에 가서 일해야 했다. 만약 폭우가 쏟아져 제때 논벼를 수확하지 못하면, 이에 해당하는 한 분기는 수확을 망치고 말았다.

이 시기에는 고청운과 고청운보다 두 살 어린 삼아가 집안의 요리를 거의 다 했다. 이건 노진씨가 특별히 덜 고된 일로 분배한 것이었다.

노진씨의 유일한 딸도 시집가기 직전까지 줄곧 밭에서 일했으니, 한 대 거른 외손녀라고 덜할 리가 없었다. 

고청운은 임계촌에서 피부가 새하얗고 보드라운 여성을 보지 못했다. 아낙네, 소녀, 모두 그랬다. 고대 농촌 여성의 청춘은 정말 너무나도 짧았다. 십대가 되어 소녀 분위기를 풍길라치면 시집가서 아이를 낳고 금세 시들어 버렸다. 

고청운은 다시 한 번, 자신이 남자로 태어난 것을 다행스럽게 여겼다. 적어도 자신의 노력으로 운명을 바꿀 수는 있으니까. 여자였다면 하늘과 가족의 손에 의해 운명이 좌지우지되었을 것이다. 가끔은 정말 사람의 뜻대로 되지 않는 일들이 있었다. 

고씨 집안사람들이 딸을 대하는 태도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고씨 집안에는 딸이 꽤 많은 편이었다. 학대를 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딱히 관심을 갖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나이에 맞는 생존 방법을 가르칠 뿐이었다. 하지만 마을의 여자아이들은 대부분 종일 뼈 빠지게 일했으니, 고씨 집안의 딸들은 처한 환경이 비교적 좋은 편이라고 말할 수는 있었다.

고청운은 매일 기상할 때마다 자신이 남자임을 인지했지만, 전생에는 여자였기에 이곳의 여인들에게 연민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가끔씩 노진씨와 소진씨에게 여자아이들에게 좀 더 잘해달라고 사정하곤 했다. 그래야 나중에 시집가도 친정에 신경을 쓰고, 가능한 상황이면 집안의 형제를 돕지 않겠냐고 설득하였다. 물론, 그때 진심으로 돕는 것인지 아닌지도 매우 중요했다.

고청운이 노진씨와 소진씨에게 사정한 덕택에, 집안에서 대아의 대우는 좋은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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